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52
제353화
“하…. 백도운 저 새낀 저기까지 가서 스마트폰을 두드리고 있네….”
한재임이 중얼거렸다.
TV 화면엔 그와 만났다 하면 말싸움하기 바쁜 도운이 보였다.
그는 스마트폰을 검지로 두드리면서 교황청이 보낸 안내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맞은편 소파에 드러누운 태천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뭐 어때. 너도 저러는 이유 알면서.”
“알기야 하지. 아는데, 저런 자리에선 좀 참아도 되지 않느냐는 거지, 내 말은.”
“그건 그렇긴 하지만….”
태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도운이 방금 들어간 곳은 교황청이었다.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모습이 세계 곳곳에 생중계되는 꼴이 보기 좋을 리 없었다.
초대받아 간 것이라고 해도 무례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그게 걱정스러웠는지 한재임이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반응을 확인했다.
피식….
곧 입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안심하는 목소리와 함께.
“그나마 다행이군.”
“…왜? 반응이 썩 괜찮아?”
“그래. 사람들이 이해해주고 있다.”
“사람들이?”
“정확히 말하면, ‘그러려니’하고 넘어가는 거지.”
한재임이 어깨를 으쓱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태천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너도 알다시피, 백도운은 스마트폰 게임 중독자로 알려져 있잖냐.”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 그 때문인 건지…. 방금 모습을 보고서도 ‘백도운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라는 반응이 대다수야.”
“헤, 그거 다행이네.”
“다행이긴 한데, 길게 봐선 그리 좋은 모습도 아니야. 어쨌거나 시와 때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이긴 하니까.”
“음….”
톡, 톡….
태천이 검지로 관자놀이를 천천히 두드렸다.
그 모습에서 도운이 떠오른 탓에 한재임은 눈을 찌푸렸다.
톡톡 두드리는 소리도 듣기 싫은 듯했다.
“왜 그러냐?”
“도희라면 너와 똑같이 생각했을 것 같아서.”
“음…?”
한재임은 TV를 바라봤다.
화면 속 백도희는 도운의 뒤에서 홍수정과 함께 걷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홍수정의 손을 꼭 붙든 채다.
“도희가 분명 말렸을 텐데도 스마트폰을 쥐고 있다? 그건 손에서 뗄 수 없는 이유가 있어서일 거야.”
“…글쎄다. 그냥 백도희가 백도운을 못 말린 것 같다만.”
“그럴 수도 있고.”
그러면서 태천은 호방하게 웃었다.
아무렴 어떠냐고 말하는 듯한 웃음에 한재임은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태천은 TV에서 또 반가운 얼굴을 발견해 밝게 웃었다.
“오. 무기 씨다!”
화면엔 무기가 구불거리는 모습이 떠올랐다.
무기는 평소처럼 도운이나 도희의 목에 둘려 있지 않았다.
혼자서 허공을 유영하는 모습과 함께 ‘최초로 교황청에 들어가…’라는 자막이 흘러갔다.
“…용케 교황청이 무기 씨가 교황청에 함께하는 걸 허락했군그래.”
“초대한 건 자기들이잖아. 저 정돈 양보해야지.”
“그렇긴 하다만…. 내부적으로 여러 말이 나왔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 뭐, 나왔겠지? 그런데 재임아.”
“응?”
“우리가 그걸 알아야 해?”
“그야….”
“그야?”
“…알 필요 없긴 하지.”
한재임이 어깨를 으쓱였다.
교황청 내부에서 말이 많았다 한들.
백운천 소속으로서 아무 연관도 없는 그가 알 필요는 없었다.
성녀파가 알아서 조율했을 테니까.
못했다면 ‘함께 해도 좋다’는 대답도 하지 않았겠지.
다만….
한재임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어 보였다.
“걱정돼서 그런다.”
“응? 뭐가?”
“단체로 호랑이 굴로 기어들어 가는 건 아닌가 해서.”
“호랑이 굴?”
“저기, 교황청 말이다. 암살자를 보낸 놈들이 있는 곳인데 그냥 보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야, 야.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너희가 괜찮다고 확신하니까 조용히 있었지….”
“하여간…. 재임이 넌 쓸데없는 걱정이 많아서 문제야.”
“아무 걱정 없이 사는 네가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한재임이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사나운 얼굴이었으나 장난인 걸 아는 태천은 낄낄 웃었다.
그가 웃어대는 동안 화면 속 도운 일행이 방금 교황청 건물로 들어갔다.
화면엔 ‘백도운 일행, 방금 교황청 안으로 들어가…’라는 문장이 지나갔고, 곧 거대한 교황청 건물이 풀샷으로 웅장하게 비쳤다.
“네겐 저곳이 호랑이 굴로 보일 수도 있겠지.”
“내겐…?”
“하지만, 도운이에게 저곳은 호랑이 굴이 아니야.”
“…그럼 뭔데?”
“토끼굴.”
“……!”
한재임은 눈을 찌푸렸다.
자신에게 호랑이 굴로 보이는 곳이 백도운에겐 토끼굴이다.
그 말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탓이었다.
하지만….
“…….”
왜일까?
화면 속 교황청의 모습이 아까와는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
거대해 보이지 않았고, 웅장함도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래되고 거대한 나무의 뿌리에 휘감겨선 금방이라도 무너져버릴 것처럼 초라하게 보였다.
“쳇….”
한재임이 혀를 찼다.
방금 교황청이 초라하게 보인 것을 보고 그 자신도 알아차린 것이었다.
도운의 실력이 압도적이란 사실을 인정하고 있음을.
인정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
톡톡 톡톡톡….
교황청 소속 사제의 안내를 따라 10분쯤 걸었을까?
전방에 커다란 문이 보였다.
저 문 뒤에 우리를 초대한 이자벨 성녀가 있을 터였다.
그나저나 문도 그렇고 복도도 그렇고….
우리나라에선 쉬이 볼 수 없는 형태의 건물이라서 그런가?
기분이 참 묘하다.
마치 게이트 속의 고성(古城)을 걷는 느낌이랄까?
게이트와 던전처럼 마나 압박이 느껴지는 것도 착각하게 하는데 한몫했다.
마나 압박이 느껴지는 건 교황청의 결계 때문이었지만.
내가 압박을 느낄 정도다.
다른 사람들은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지만….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무것도 아냐.”
“……?”
도희는 멀쩡하게 걸었다.
도희의 손을 꼭 붙잡고 있는 홍수정도 긴장한 것 같기는 해도, 마나 압박을 느끼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홍수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무기가 더 압박을 느낀 듯 피로해 보였다.
허공을 유영하는 모습이 평소와 달리 더디고 흐느적거리는 듯하다.
결계 때문인 것 같은데….
혹시 강한 존재일수록 오히려 마나 압박을 느끼게 되는 종류이려나?
아니면 무기의 존재 자체가 문제일 수도….
교황청의 결계인 만큼 몬스터의 힘을 억제하는 성질이 포함돼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까.
무기와 함께 하는 걸 흔쾌히 수락한 것도 그래서였나?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아직 결계에 대한 조사가 끝나지 않아 확실하지 않지만, 관리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역시.
그렇다면….
“무기야.”
「음?」
“내 목에 감길래?”
「…사양하지.」
“괜찮겠어?”
「괜찮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고개를 한 번 끄덕인 후 다시 앞을 바라봤다.
몇 초 후, 우린 곧 이자벨 성녀가 기다리고 있을 곳의 문 앞에 다다랐다.
우릴 안내했던 사제가 문을 열었다.
쿠구구….
얼씨구.
문 여는 소리 한 번 엄청 요란한걸.
아. 정말 그러네.
교황청에서 뱀파이어 로드가 살던 곳이 떠오르다니….
입 밖에 냈다간 신성을 모독했다고 한 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는걸.
톡톡톡….
“스마트폰 좀. 제발 좀…!”
도희가 오른팔을 빠르게 휘둘렀다.
스마트폰을 빼앗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았기에 팔을 들어 올렸다.
문이 완전히 열리는 동안 우리 남매는 엎치락뒤치락했다.
“…안녕, 하세요.”
어눌한 한국어가 들려왔다.
이자벨 성녀.
그녀가 우리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나와 도희를 쳐다보는 그녀의 얼굴은 살짝 당황스러움이 묻어나 있었다.
하긴….
그녀는 스마트폰 때문에 다투는 남매를 본 적이 없을 거다.
도희가 얼굴을 붉히며 팔을 내렸다.
톡톡톡.
이겼다.
[어린나무가 감탄합니다.] [눈앞의 인간에게서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느꼈습니다.]뭐라고?
순수하고 완전한?
설마, 성녀가 S급 헌터란 소리야?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를 소유하고 있지만, 총량이 많지는 않다고 전합니다.]아, 맞다.
S급 헌터가 되기 위해선 여러 조건이 필요하지.
마나의 총량, 신체 능력, 전투 센스, 사용하는 스킬 등등….
총량이 많지 않다는 평가도 그렇고.
운동이라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듯한 몸도 그렇고.
그녀는 S급 헌터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저는, 이자벨… 이라고 함미다…?”
말하던 어미가 살짝 올라갔다.
자신이 한 말에 대해 확신이 없어서다.
이어 그녀는 조심스럽게 우리의 반응을 확인했다.
본인이 제대로 말했는지 확인받고 싶은 게 분명했다.
우린 모두 빙긋 웃었다.
못하는 한국말로 인사를 하는데, 설령 완벽하지 않았다고 한들 안 좋게 볼 수 있겠는가.
오히려 준비한 작은 성의가 기꺼울 뿐이다.
우리 중에선 도희가 나섰다.
“buona sera.”
이탈리아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도희뿐이었다.
내가 말해도 말이야 통하겠지만, 그건 순전히 통역 마법 덕분이다.
지금처럼 직접 이탈리아어로 대답했을 때의 감동을 주진 못하리라.
이자벨 성녀가 활짝 웃었다.
“반가워, 함미다!”
한국어 공부를 오래 하진 못했나 보다.
무조건 어미를 ‘~합니다’로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보면 말이다.
한국말로 해줘서 고맙긴 한데 이래선 대화가 통하지 않겠는걸.
“Piacere di conoscerti.”
도희는 개의치 않고 화답했다.
하얀 성녀와 성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라….
전 세계 방송국이 촬영하고 싶은 모습일 테지.
그때 이자벨 성녀가 두 손을 꼭 모았다.
기도하기 위해서다.
뜬금없이 웬 기도?
우리가 그런 의문을 느낄 때,
“다시 정식으로 인사할게요. 저는 이자벨, 감사하게도 많은 분께서 성녀라고 불러주고 있죠.”
기도를 끝낸 이자벨 성녀가 능숙한 한국말로 말했다.
갑자기 실력이 늘었을 리는 없고….
아마도 방금 동시통역 마법을 쓴 것 같다.
툭…!
도희가 내 등을 살짝 쳤다.
어서 인사하지 않고 뭐하냐는 것이었다.
자신이 나서지 않고 날 시키는 건 내가 이 파티의 리더였기 때문이다.
나이로든 실력으로든 명성으로든, 나여야 했던 거다.
“…안녕하세요. 푸른꽃 백도운입니다.”
[어린나무가 흡족한 듯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마음 같아선 관리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고 전합니다.]“어머…. 그렇게 소개해도 괜찮나요?”
“네?”
“바로 옆에 이무기 님께서 계시는데, ‘이무기의 친구’라고 소개하지 않으셔서요….”
“아, 그게….”
「…난 괜찮소.」
무기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씁, 착각인가?
조금 토라진 것 같은데….
“…그렇다네요.”
“아, 네….”
이자벨 성녀가 뺨을 긁적였다.
무기의 심드렁한 태도에 그녀도 당황한 것 같다.
내게 걱정스러운 시선을 잠깐 보내기도 했다.
다음부터는 ‘이무기의 친구’라고 소개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는 느낌이었다.
어휴….
그건 이자벨 성녀가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날 이무기의 친구라고 소개한다?
그 순간 새싹이는 내게 토라져 버릴 거다.
자신이 토라졌음을 알리고자 수많은 메시지를 보내올 테고.
무기는 그나마 어른스러워서 참아주니까 괜찮다.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흘겨봅니다.] [어른스럽지 못해서 참 미안하다고 투덜거립니다.]앗….
잠깐만.
형은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어.
[ ]아, 공란 보내지 말고…!
그렇게 새싹이와 투덕거리고 있는데,
“…안녕하세요.”
도희가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원래는 내가 소개해야 했는데, 멀거니 허공만 쳐다보고 있으니 직접 나서기로 한 게 분명하다.
착각인가?
어쩐지 이자벨 성녀가 내 정신이 제대로 박혀 있는지 걱정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 ]그러거나 말거나 새싹이는 계속 공란을 보내왔다.
그것도 같은 자리에.
새싹아, 그만해.
창이 겹쳐서 앞이 안 보이잖아.
이런 점이 바로 어른스럽지 못하단 거라고.
[ ]정말이지….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냥 이무기의 친구라고 소개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