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53
제354화
새싹이의 메시지창 테러는 식사가 끝나고서야 잠잠해졌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하나둘 다 먹고 포크나 숟가락을 내려놓았을 때 이런 메시지를 보내며 기분이 풀렸음을 알렸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흡족해합니다.]후….
새싹이가 흡족함을 느낀 건 내가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다.
시야를 온통 가릴 정도로 많이 보내진 메시지창 때문에 음식을 먹기는커녕 집는 것조차 버거웠다.
잘 먹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만족하다니….
대체 누구한테 이렇게 못된 짓을 배운 거람?
[어린나무는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자신의 시선이 대답이라고 전합니다.]쩝….
유구무언(有口無言)이구만….
새싹이 말마따나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존재가 바로 항상 붙어 다니는 나였다.
내가 하는 짓을 똑 닮았다는 점에서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이래서 부모들이 애 앞에선 말조심 행동 조심하는 거겠지.
“다들 맛있게 드신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자벨 성녀가 주변을 돌아보며 말했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만족스러운 식사였다고 대답했다.
아주 잠깐 그녀가 나를 돌아봤는데, 그 시선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식사하는 내내 딴청을 부린 탓이다.
같은 이유로 식당에 있는 성녀파 일원들의 날 향한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익숙하게 느껴왔던 아니꼽고 못마땅한 시선들을 받아야만 했다.
내 잘못이었으므로 도희도 내 편을 들어주지 못했고.
새싹아.
이게 다 네 탓이라고.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자신은 만족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전합니다.]후우….
반응마저 나와 똑 닮았구만.
이걸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형은 고민이 된다, 새싹아.
달그락….
혼란스러워하던 내 앞에 따듯한 찻잔이 놓였다.
시야가 맑다는 건 참 행복한 일이군.
그래, 그래.
알아 모시겠습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찻잔을 집어 들었다.
차라도 마셔야지.
호로록….
나를 포함해 다들 차를 한 모금 마셨을 때, 이자벨 성녀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홍수정을 쳐다봤다.
“여러분, 제 초대를 흔쾌히 받아주셔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희야말로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감사해요.”
도희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옆에 앉은 홍수정이 “응, 응!”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라면 내가 대표로서 대답했어야 했는데….
새싹이의 메시지 테러 때문에 어느 순간부터 도희가 나서게 되었다.
“그런 일….”
이자벨 성녀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그 순간, 식당에 있는 사제 몇 명이 어깨를 움츠러뜨렸다.
그들은 추기경파의 홍수정 암살 시도를 알고 있는 이들이 분명했다.
알지 못하는 이들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이 있었으니, 무시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
“그런데 여러분이 이렇게 와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인도해주심에 도저히 안 올 수가 없었답니다.”
“어머나….”
도희의 대답에 이자벨 성녀가 탄성을 흘렸다.
그 말에 담긴 속뜻이 절대로 좋은 뜻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정확한 뜻풀이일지는 모르겠는데….
내게 방금 도희가 한 말은 “네놈들이 우릴 건드렸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지 않겠니?”로 들렸다.
아마 그녀도 별반 다르지 않게 해석했을 테지.
이자벨 성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를 쳐다봤다.
서로의 시선이 허공에 맞닿았을 때,
“우후후….”
이자벨 성녀가 대뜸 웃음을 흘렸다.
갑자기 사람 얼굴을 보고 왜 웃는 거야?
내 얼굴이 그렇게 웃기게 생겼나?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주변에 있던 성녀파 사람들의 얼굴에서 의문이 떠올랐다.
그 반응을 보니 그녀가 저렇게 웃는 게 흔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원하는 건 찾으셨나요?”
“네?”
이게 뭔 소리지?
원하는 걸 찾았느냐고?
호록….
그녀는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도운 님은 식사하시는 동안 계속 다른 곳을 보고 계셨죠.”
“…그래서요?”
“무언가를 찾고 있던 것 아닌가요?”
“…….”
이런….
아무래도 이상한 오해를 한 것 같은데?
새싹이의 메시지 테러 때문에 앞을 제대로 못 봤던 것뿐인데….
그녀는 내가 천리안 마법 같은 걸 써서 주변을 확인하고 있었던 거로 착각한 것 같다.
그걸 방지하기 위한 결계가 전개돼 있을 텐데도 저런 착각을 한 건 내가 A+급 헌터이기 때문이겠지.
결계를 무시하고 탐색하는 마법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거나.
알레딩 밀러라면 그럴 수 있을 테니까.
“…오해입니다.”
“오해요?”
“네.”
“아하하. 그렇군요. 오해군요.”
이자벨 성녀는 빙긋 웃었다.
분명 웃는 얼굴임에도 날 향한 믿음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안 믿겠는걸.
억울하네.
진짠데 말이야.
[어린나무는 그렇지도 않다고 전합니다.]응?
갑자기 뭔 소리야?
[근원을 찾아냈다고 전합니다.]갑자기 웬 근원?
아, 설마….
혹시 새싹이 너 추기경파의 리더를 찾아낸 거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헐….
어떻게 찾아낸 거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인간인데.
아.
혹시 향로에서 느껴지던 마나로 대조한 거?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관리인에 대해 심각하게 떠들어대는 인간들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대화의 내용으로 유추하건대 주동자인 것 같다고 덧붙입니다.]뭐야….
대화 엿들어서 찾은 거야?
간단한 방법으로 찾아냈네.
[어린나무는 엿들은 게 아니라 들린 거라며 관리인에게 정정하길 요구합니다.]그거나 저거나.
뭐가 다른데?
[ ]아, 진짜.
정정하면 되잖아, 하면.
엿들은 게 아니라 들린 거.
됐어?
어휴….
이 개구쟁이를 어쩌면 좋아.
“사실. 여러분을…. 아니, 홍수정 님을 초대한 이유는 엘릭서 때문이에요.”
꿀꺽….
홍수정이 큰소리가 나게 침을 삼켰다.
엘릭서 때문에 암살당할 뻔했으니 긴장하는 건 당연했다.
“홍수정 님.”
“네, 네…!”
“우리 엘릭서 레시피 공유할래요?”
이자벨 성녀의 목소리는 단조로웠다.
마치 음식 조리법을 공유하자는 사람처럼 평온했다.
그래서일까?
“…네?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홍수정이 얼빠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도희와 무기는 질문을 정확하게 받아들이지 못해 눈을 끔뻑끔뻑 감았다가 떴다.
그럴 만도 하다.
세상에 엘릭서 레시피를 공유하자는 말을 저렇게 무심하게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엘릭서 레시피를 공유하자고 했어요.”
음.
여기 있네….
***
우린 성녀와 헤어진 후 어린 사제에게 방을 안내받았다.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무기는 침대로 날아가 뻗었다.
배를 뒤집어 까기까지 한 모습에서 피로함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교황청의 결계 때문에 힘든 모양이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죽은 줄로 착각할지도 모르겠는걸.
저 정도면 괜찮냐고 묻는 것도 귀찮을 테니, 내버려 둬야겠다.
톡톡톡….
“엘릭서 레시피를 공유하자니, 성녀도 정상은 아닌 것 같네요….”
방에 따라 들어온 도희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도희와 홍수정에게도 따로 방이 준비돼 있었지만, 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 들어왔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이곳 교황청에서 홍수정을 혼자 둘 수는 없었으니까.
설마 초대해놓고 암살하는 멍청한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혹시 또 모를 일이었다.
급진적인 놈들은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 바보짓을 해대니까.
“다른 사제분들은 전혀 몰랐던 것 같죠?”
“네. 그런 것 같아요. 하나같이 엄청나게 반응한 걸 보면….”
홍수정의 질문에 도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성녀가 레시피를 공유하자고 한 후 주변에 있던 사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절대로 안 된다며 말리기 위해서다.
다급함이 잔뜩 묻어난 반응들을 보고 성녀는 “안 된다고요? 왜요?”라고 물어서 사제들을 또다시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엘릭서 레시피를 그렇게 쉽게 공유하자고 하다니….
“흐음….”
“오라버니? 왜 그래요?”
“…그냥. 문득 궁금해져서?”
“뭐가요?”
“성녀라는 별명이 붙으면 그런 사람이 되는 걸까? 아니면 그런 사람들에게 그런 별명이 붙게 되는 걸까?”
“무슨 소릴 하는….”
도희는 말끝을 흐렸다.
방금 내가 한 말이 놀리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아차린 것이다.
부르르….
꿀밤이라도 때리고 싶은 듯 주먹을 쥔다.
“…이자벨 성녀가 너처럼 정상이 아니라고 해도.”
“후…. 오라버니가 그렇게 말하지 말아 줄래요? 생각보다 기분 더러워요.”
“엘릭서가 함부로 다뤄도 되는 물건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거야.”
“…그래서요?”
“그런데도 공유하자고 손쉽게 말했지. 즉,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 아니겠어?”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도운 씨?”
도희와 홍수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한 말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대답해주는 대신 스마트폰을 들어 올렸다.
새싹이가 나뭇가지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그걸 바라보던 도희는,
“아…!”
이내 깨달았는지 탄성을 흘렸다.
천천히 고개도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그런 거라면 공유하자는 말을 쉽게 하는 것도 이해가 가네요.”
“그렇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지만, 또 공유하자고 하면 그땐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진 않겠어요. 서로 소용없는 건 같으니까.”
“궁금하기도 하고.”
“맞아요.”
“…저기요.”
홍수정이 손을 들어 올렸다.
선생에게 질문하는 고등학생 같아서 왠지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는 샐쭉 토라진 듯이 중얼거렸다.
“저한테도 설명 좀 해줘요. 두 분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아, 미안해요.”
도희가 사과하곤 바로 설명을 덧붙였다.
“쉽게 말하자면, 레시피를 안다고 해서 엘릭서를 제조할 수 있는 건 아니란 뜻이에요.”
“안다고 해서…. 아…?”
홍수정의 얼굴에 천천히 깨달음이 피어올랐다.
레시피를 아는데도 만들지 못하는 이유를 잘 알기 때문이다.
재료를 구할 수 없다거나.
스킬 등급이 달린다거나.
실력이 부족하다거나.
홍수정은 포션 메이커이니까 그런 경험을 한 적도 있을 거다.
“그래서 그걸 보여준 거군요.”
그녀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화면 속 새싹이가 여전히 나뭇가지를 살살 흔들었다.
저 나뭇가지에서 자라는 푸른 새싹이 꽃이 없다면 엘릭서는 만들 수 없었다.
그리고 그건 교황청의 엘릭서도 마찬가지일 거다.
분명 교황청만이 구할 수 있는 재료가 필요할 터.
홍수정도 그걸 알아차리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자벨 성녀 님…. 생각보다 음흉한 분이시네요.”
“그러니까 말했었잖아요.”
“네?”
“성녀가 그렇게 되는 건지, 처음부터 그랬던 사람이 성녀로 불리게 되는 건지 궁금하다고.”
“아….”
“…….”
“…도희야, 지팡이 내려놔.”
“싫어요.”
도희는 어느새 지팡이 꺼내 들었다.
날 향한 지팡이 끝에선 빛의 마나가 빠르게 모여들었다.
나무껍질 스킬 덕분에 다치진 않겠으나 힐링으로 고통을 줄 수 있는 아이다.
아르카를 꺼내 막아야 하나?
동생의 힐링을 빙자한 공격을 막기 위해 아르카를 꺼내는 게 맞나?
그런 고민이 연거푸 떠올랐을 때,
[어린나무는 인기척을 느꼈습니다.] [문 바깥에 한 나이 많은 사제가 서 있다고 전합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손을 뻗어 도희를 말렸다.
“잠깐만. 밖에 손님 왔어.”
“이 타이밍에요? 말도 안 되는….”
도희는 말을 하다 말았다.
똑똑….
정중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온 탓이다.
“쳇….”
도희는 혀를 차며 지팡이를 내렸다.
지팡이 끝에 모이던 마나도 금방 사라졌다.
휴, 다행이다….
또 남매끼리 투덕거리는 꼴을 보여줄 뻔했네.
“계십니까?”
“네,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쉬시는데 실례합니다. 저는 ‘카롤’, 궁무처장입니다. 백도운 님을 만나고 싶은 분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나를요?”
“네.”
“만나고 싶다는 분이 누군데요?”
“네?”
문 바깥에서 당황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문에 질문으로 대답하면 어쩌자는 거지.
누군지 가르쳐줘야 할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 서 있던 도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만나고 싶다는 사람이 누군지 아는 눈치다.
뭐지.
내가 뭐 놓쳤나?
“궁무처장이라고 했잖아요.”
“그랬지.”
“…궁무처장은 교황 비서 겸 재무관이에요. 누구겠어요?”
“아.”
즉.
날 만나고 싶다는 사람은 교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