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51
251화 격변하는 세계 (6)
아르칸은 한참 걷다가 저 앞에서 커다란 성을 발견했다.
‘저기가 마신성이로군.’
마신성은 다른 마왕성과 다르게 지상에 나와 있었는데, 하늘과 땅으로부터 뿜어져 나온 마력이 마신성으로 끊임없이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 안으로 들어가면 투명화한 게 걸릴 거 같네.’
여기까지 오는 데 할루시네이션 마법으로 투명화한 덕분에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
다만 오는 길에 이성을 잃고 인간계로 가기 바쁜 수많은 몬스터와 악마족 들을 볼 수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저들을 막아 내고 있을 부하들이 걱정됐다.
‘다들 무사해야 할 텐데.’
아르칸이 할 수 있는 건 한시라도 빨리 마신을 쓰러트리는 것뿐.
그 때문에 쉬지도 않고 여기까지 달려온 거였다.
정령왕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다.
마기의 농도가 평소보다 몇 배나 높아 정령왕이 활동하기도 힘든 데다가, 정령왕의 도움을 받았다가는 주목을 받아 마신이 대비할지도 몰라서였다.
“좋아, 들어가자.”
아르칸은 그대로 마신성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탁 트여 있고 아주 넓었는데,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
그때, 어마어마하게 큰 소리가 마신성을 뒤흔들었다.
-쥐새끼가 들어왔군! 마침 심심했는데, 잘됐다. 꼭대기까지 올라와라. 도망치면 바로 죽이겠다.
예상대로 아르칸이 들어오는 걸 감지한 듯했다. 그 탓인지 투명화도 해제되었다.
“도망치기는, 덕분에 찾는 시간이 줄었군.”
아르칸은 그대로 마신성의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
꼭대기 층에 도착한 아르칸은 마력으로 뒤덮인 존재를 볼 수 있었다.
‘저게 마신, 확실히 강하긴 강하네.’
게티아로 감정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격차가 어마어마했다.
‘역시 준비해 온 걸 모두 쓰는 수밖에.’
잠시 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던 마신은 아르칸의 인기척을 느꼈는지 뒤를 돌아봤다.
“드디어 왔군. 어떤 쥐새끼인지 한번 볼까? 음? 이 정도로 강력한 기운을 가진 존재가 이 세계에 있었다니.”
아르칸의 기운을 살펴보며 놀라던 마신은 순간 고개를 갸웃했다.
“이건 내가 이 세계로 올 때 가로막던 방어막과 같은 기운? 설마 네가 이 세계의 새로운 수호신인가?”
“그런 셈이지. 역시 나에 대해 전혀 모르나 보네.”
“아, 전보다 약해진 기운을 보고 알 필요 없다고 여겼지. 근데 수호신이 직접 나타날 줄은 몰랐다. 보통은 자기 보신을 위해서라도 다른 공간에서 숨어서 지켜보는데 말이지.”
“수호신이 된 지 얼마 안 되어서 의욕이 넘치거든.”
“으하핫. 재밌는 녀석이로군. 오랜만에 재밌게 해 줬으니 한 번쯤은 봐주지. 지금이라도 꽁무니를 빼고 도망치면 잡지 않겠다.”
“마신이라면서 설마 겁먹은 거야? 너야말로 지금 물러나면 봐줄게.”
“이런 건방진!”
아르칸의 너스레에 호탕하게 웃던 마신은 금방 인상을 쓰며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아르칸과 거리가 한참 떨어져 있는데도, 아르칸은 손에 잡힌 듯 서서히 허공에 떠올랐다.
“큭.”
아르칸이 괴로워하는 걸 보며 마신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후회스럽나? 그러게 좋게 말할 때 듣지 그랬어.”
“누가 후회할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알지.”
아르칸은 이마의 뿔에서 빛을 내뿜으며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마신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훗. 내 힘으로 저항해 봐야 소용없다. 신력을 써도 마찬가지……. 윽.”
잘난 체하던 마신은 괴로워하면서 뒷걸음질 쳤다.
눈앞의 수호신이 갑자기 강해진 게 아니었다. 자신의 힘이 약해진 거였다.
“아니, 어떻게 된 거지?”
“내가 여기 오면서 아무런 대비도 안 했을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순간, 아르칸이 들고 있던 게티아에서 조용히 마력이 분출됐다.
한편 아르칸의 말을 곱씹던 마신은 어떻게 된 건지 깨달았다.
“아, 그렇군. 차원의 조각을 썼나 보군.”
그 말대로 어느새 마신의 뒤에는 검은 소용돌이가 나타나, 마신의 힘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커다란 걸 썼군. 제법이야.”
실제로 검은 소용돌이는 아주 컸는데, 다른 차원의 조각의 다섯 배 효과를 내는 거였기 때문이다.
다만, 마신은 놀라긴 했어도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재롱은 잘 봤다. 그럼 이제 끝내 주지.”
오히려 마신은 더욱 힘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차원의 조각 때문에 힘이 반감되었지만, 여전히 아르칸을 압도하기에는 충분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르칸도 순순히 잡히지 않았다.
“에잇.”
아르칸은 몸을 날리며 뻗어 오는 마력을 피했다.
“쥐 새끼처럼 피하기는. 하지만 계속 피할 수는 없을 거다!”
마신의 말처럼 이곳 마신성은 마신의 손바닥 안이나 마찬가지. 사방에서 송곳같이 날카롭게 변한 마력이 아르칸을 노리고 찔러 왔다.
하는 수 없이 아르칸은 마탄을 여럿 발사해 모조리 박살 낸 다음, 마력을 끌어올려 마신을 향해 발사했다.
마신은 가소롭다는 듯, 가볍게 아르칸의 공격을 쳐 냈다.
“훗, 이것도 공격이라고 한 거냐. 이 정도는 되어야지.”
그러면서 마신이 손을 위로 올리자, 그 주위로 마력이 휘몰아치며 모이기 시작했다.
평소와 달리 체내의 마력까지 끌어다 쓰는지, 전신에 흐르던 마력이 일시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끌어모은 마력은 공 모양으로 응축됐다. 마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 부분만 공간이 흔들려 보일 정도였다.
이 세계의 어떤 것도 저기에 맞는다면 소멸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아르칸은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모으고 있었다.
“어리석은 녀석, 이 힘에 맞설 생각인가?”
마신은 더 봐줄 것도 없다는 듯, 머리 위에 올린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마신의 마력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아르칸을 엄습했다.
아르칸도 뒤늦게 마탄을 발사하려고 했지만, 예상보다 빠른 마신의 공격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르칸을 덮친 마신의 마력은 그대로 부풀어 올랐다.
잠시 후 부푼 마력이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아르칸부터 마력이 닿은 바닥과 벽까지 모두 사라진 상태였다.
“싱겁군. 그나저나 수호신이 죽었으니, 내가 어서 이 세계의 신이 되어서 방어막을 준비해야 하나.”
마신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면서 몸을 돌렸을 때였다.
마탄이 가슴팍을 후려쳤다.
“컥!”
마신이 피를 토하면서 뒤로 날아갔다.
치명상은 아니지만, 불의의 일격이다 보니 타격이 작지 않았다.
당황한 마신이 앞을 보니, 아르칸이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니, 어떻게……. 소멸한 게 아니었나?”
“아니, 네가 보고 있던 건 내 환영이었어.”
아르칸은 마신에게 멱살을 잡힌 후, 할루시네이션으로 투명화하는 동시에 자신의 환영을 만들어 둔 거였다.
“쯧, 방심했군.”
마신이 혀를 차며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했다.
아르칸이 마신성에 잠입한 걸 느끼긴 했지만, 들어온 뒤로는 무슨 짓을 하든 신경 쓰지 않았다.
기술이나 기교 따윈 무시해도 될 정도로 체급 차이가 났으니까.
그 탓에 아르칸이 할루시네이션으로 투명화했는데도 눈치채지 못한 거였다.
‘덕분에 한 방 먹일 수 있었지.’
다만 마신은 아르칸의 전력이 담긴 마탄을 정통으로 맞고도 큰 타격을 입은 거 같지 않았다.
‘그나마 마신의 마력을 낭비시킨 게 성과인가?’
“크윽, 귀한 마력을 소비하게 만들다니…….”
아르칸의 생각대로 마신은 분노했다.
기껏 체내의 마력까지 모아 공격했는데, 허탕 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보며 아르칸이 씩 웃었다.
“이제야 싸워 볼 만하겠네.”
“호오, 정말 마력이 엇비슷해졌군. 그럼 잠깐만 즐겨 볼까?”
마신은 이 순간에도 여전히 여유를 잃지 않았다.
마신과 수호신의 전투는 마력 대결이나 마찬가지.
지금이야 비슷하지만, 싸우는 와중에 계속 마력을 흡수하면 금방 아르칸을 압도하는 게 가능했다.
이런 뻔한 결과를 모르는 아르칸이 열심히 싸우도록 만들면서 농락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둘은 격돌하며 마력으로 치열한 혈투를 벌였다.
마신은 상처를 입으면서도 아르칸이 싸우는 걸 보고 감탄했다.
“호오, 제법인데.”
“언제까지 여유 부리는지 보자.”
“너야말로.”
마신은 인상을 쓰는 아르칸을 보며 느긋하게 대꾸했지만.
아르칸의 말대로 그 여유는 오래가지 않았다.
마신은 당황했다.
‘이상해. 어떻게 된 거지? 내가 밀리고 있잖아.’
분명 전투 때문에 소모되는 마력보다 흡수하는 마력이 더 커야 했다.
그러나 소모되는 마력이 더 컸는지 싸우기 전보다 마력이 줄어 있었다.
예상보다 전투가 격렬했기에 그것까지는 이해되는 범주였지만, 문제는 정작 아르칸의 마력은 줄어들지 않는다는 거였다.
“젠장!”
결국 참다못한 마신이 순간적으로 마력을 분출해 아르칸을 밀어냈다.
“왜 화를 내? 마력이 잘 안 모여서 짜증 나?”
“어?”
“놀랄 거 없어. 내가 마신의 시신을 모두 모아 부활시켜서 마력 흡수력을 떨어트렸거든.”
아르칸의 말에 마신이 혀를 찼다.
“이런 못난 부하 놈들, 유산을 모조리 나눠 놓으라고 했더니 아니었나?”
“나눠 놨어. 내가 다 찾아서 부활시켜 놨을 뿐이지.”
한편 아르칸의 대답에 마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노려봤다.
“단순히 내 육신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마력을 뺏지 못할 텐데……. 아니 그전에 내 힘을 빼앗을 수 있다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너한테 잡아먹힌 부하들이 알려 주더라고.”
정확히는 마신의 부하 중 하나인 하얀 미라 칼라마르를 둘러싸고 있던 벌레가 알려 줬다.
수백 년 동안 마신을 기다렸는데, 자신들을 그저 마력 덩어리로 보고 흡수하려는 마신에 실망한 부하들이 마신의 유산에 대한 비밀을 알린 거였다.
아르칸은 그 비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마력 연구가 길리암과 인공장기를 만들어 이식하는 실력을 갖춘 드워프 브롬이 나서서 마신의 육신을 부활시켰다.
그 때문에 아바로스가 힘겹게 적을 막아 내는 와중에도 마신의 눈을 사용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부활한 마신의 육신은 영혼이 없어서 가만히 있을 뿐이지만, 아공간 주머니 밖에 꺼내 놓으면 갓 부활해 부족한 마력을 마신 대신 흡수했다.
마신이 눈치 못 채게 전투 중에 마신성 1층에 꺼내 놓으라고 시킨 거였다.
“이런 배신자들이.”
“글쎄, 네 부하들이 느낀 배신감이 더 큰 거 같던데?”
아르칸은 그들이 마음을 달리 먹은 게 충분히 이해됐다. 수백 년간의 기다림을 허송세월로 만들어 버렸으니까.
심지어 마신은 이미 신경도 안 쓴다는 듯 아르칸을 비웃기 바빴다.
“흥, 멍청한 녀석. 네 속셈을 알았으니 이제 통하지 않는다.”
“괜찮아. 나는 주인공이 준비될 때까지 시간을 끌었을 뿐이니까.”
“주인공?”
마신이 반문하는 순간, 뒤에서 나타난 용사의 성검이 마신의 목을 베어 냈다.
마신의 얼굴은 바닥에 나뒹굴었으며, 얼굴을 잃은 마신의 몸은 그대로 앞으로 엎어졌다.
아르칸은 용사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수고했어. 역시 최후에 악당을 쓰러트리는 건 주인공이 할 일이지.”
용사와 파티를 만들어 마신을 퇴치하러 가려고 했던 아르칸은 칼라마르의 벌레에게서 마신의 유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작전을 변경했다.
최대한 전력을 숨기고 가서 결정타를 날리기로 한 거였다.
마신의 육신과 용사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 두고 마신성에 들어온 다음, 할루시네이션으로 투명화한 후 마지막까지 전력을 숨겼다.
마신이 다른 적이 있나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들통났겠지만, 오만함 덕분에 작전은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난 건 아니었다.
용사는 자신이 떨어트린 마신의 목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해치웠나? 아, 미안.”
생존 플래그 대사를 했다는 걸 깨달은 용사가 곧바로 사과했다.
아르칸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클리셰는 클리셰네. 아직 살아 있어.”
그 말에 용사뿐만이 아니라, 쓰러져 있던 마신의 목과 몸이 움찔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죽음으로 위장한 걸 들켰기 때문이다.
“후후, 겨우 내 목을 벤 정도로는 날 해치지 못한다.”
안 되겠다 싶었던 마신은 몸을 일으키면서 여유 있는 척했지만, 아르칸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알았으니까, 돌아가.”
“어? 으아아아아악!”
아르칸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몰랐던 마신은, 이내 강렬한 힘이 자신을 빨아들이자 깜짝 놀랐다.
모스록을 추방했을 때처럼, 아르칸이 신력으로 검은 소용돌이를 불러낸 거였다.
“수호신이 직접 나서면 이런 것도 가능하지.”
“크으으윽.”
마신은 거기에 저항하려고 했지만, 이미 차원의 조각에 아르칸과의 전투. 용사에게 목을 베인 것 때문에 마력 소모가 극심했다.
할 수 있는 건 추방당하기 전에 으름장을 놓는 게 전부였다.
“두고 보자. 이번에는 방심했지만, 다음에 돌아올 때는 다를 것이다.”
“누군 그동안 놀아? 다시 왔을 때 네가 발붙일 자리는 하나도 없을 거야.”
“…….”
아르칸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꾸하자 할 말을 잃은 마신은 입을 닫고 그대로 추방됐다.
남은 건 차원의 조각 하나뿐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용사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진짜 끝났어?”
그 물음에 아르칸은 시원스러운 미소로 대답했다.
“아직.”
“뭐? 또 뭐가 남았는데?”
“네가 돌아가야 진짜 끝이지.”
“이 자식이. 죽을래?”
놀라서 묻던 용사는 얼굴을 붉히며 그렇게 말해 놓고는 이내 피식 웃었다.
이제 정말 끝났다는 게 실감 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얼마 후.
아르칸을 이곳으로 빙의시킨 원흉이 찾아왔다.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