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vive in Banjiha Demon Castle RAW novel - Chapter 252
252화 격변하는 세계 (7)
마신이 추방되자마자 다시 한번 세계가 격변했다.
당장 하늘의 마기가 흩어지면서 낮에도 밤처럼 어두웠던 하늘이 밝아졌다.
시커멓게 변해 죽은 것처럼 보였던 땅도 본래 모습으로 바뀌었다.
바람의 정령왕 제피로스가 알려 준 전장의 상황도 희망적이었다.
“아르칸님, 인간계를 침공하던 적들이 혼란에 빠진 듯합니다. 아무래도 마신이 사라지고 어느 정도 정신이 돌아온 거 같습니다.”
“그래, 이전과 비교해서는 어때?”
“……아직 이전처럼 돌아오진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한가 보네. 아바로스에게 방어만 하고, 공격하지 않는 이상 반격하지 말라고 전해 줘. 또 도망쳐도 추격하지도 말고.”
“알겠습니다.”
원래부터 몬스터였다가 더욱 흉포해진 녀석들이나, 동식물이 몬스터가 되어 버린 건 상관없었다.
다만, 마인족과 수인족, 악마족 들은 원래부터 마계의 주민들. 자아가 돌아온다면 해칠 이유가 없었다.
그때 용사가 넌지시 물었다.
“앞으로 마계는 어쩔 생각이야?”
처음 아르칸은 용사에게 자신이 마계를 정복하고 마신의 자리에 오른 뒤, 마계와 인간계가 평화롭게 지내도록 만들 거라고 했다.
하지만 마왕성부터 마신의 유산임이 드러난 데다 이 난리가 났으니, 앞으로 어떻게 할지 궁금했던 것.
“후후, 두고 보면 알 거야.”
아르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용사는 이해가 안 됐지만, 더 캐묻기도 그래서 적당히 납득하고 넘어갔다.
‘적어도 다들 평화롭게 지낼 수 있도록 하겠지?’
그런데.
대마왕성으로 돌아간 후 아르칸이 내린 지시는 용사가 예상했던 것보다 한층 더 극단적이었다.
일단 모든 마왕성을 한데 모아서 마정석을 뽑아내고 폐쇄한 뒤, 마계를 정화하기 위해 세계수를 곳곳에 심는다고 했다.
마인족들과 수인족들은 대찬성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반대가 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악마족들까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마신의 부하들이 마신에게 마력을 빼앗기며 소멸하면서 배신감을 느낀 것처럼,
마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던 악마족들도, 돌아온 마신 때문에 이성을 잃고 괴물이 된 것에 분노했기 때문이다.
놀라운 건, 마왕성을 폐쇄하고 마계를 조금씩 정화해 나가자 생긴 변화였다.
마인족들의 마력이 사라지면서 뿔도 작아지기 시작한 거였다. 이대로라면 인간족처럼 변할 게 분명해 보였다.
다만 수인족들은 뿔만 작아질 뿐, 동물의 특성이 사라지거나 한 건 아니었다.
악마족들도 마찬가지. 박쥐 날개가 줄어들고, 꼬리도 짧아졌다.
“마인족보다는 오랜 세월이 걸리겠지만, 악마까지 인간처럼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네.”
“그러게. 참 잘됐어.”
그 변화에 용사는 아주 만족했지만, 완전히 돌아오는 걸 볼 수는 없었다.
마신을 퇴치한 후 아르칸의 신력이 빠르게 모였는데, 어느덧 용사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낼 정도로 신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르칸은 그걸 확인한 즉시, 용사에게 이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작 용사는 돌아가고 싶어 했던 이전과 달리 떨떠름한 얼굴이었다.
아르칸은 용사가 왜 저러는지 짐작이 갔다.
용사는 이 세계에 와서 파티를 꾸려서 모험하다가 동료를 모두 잃는 비극적인 사건을 겪었다.
그 후 솔플을 고집하다가 아르칸의 용사가 된 후, 예전에 가지고 있던 전시안 대신 협동의 권능을 얻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바로 동료를 모집해 파티 플레이를 하기로 한 거였다.
다만 모은 동료가 하나같이 여자였는데, 문제는 모두 용사에게 푹 빠졌다는 것.
정말로 하렘 파티가 되어 버렸다.
‘부러운 녀석.’
아르칸은 잠깐 그런 생각도 했지만, 이내 철회했다.
용사의 동료들은 용사가 원래 세계로 돌아가려고 한다는 걸 뒤늦게 알고는 혼란에 빠졌다.
그것만이라면 다행이지만, 다들 용사에게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 아수라장은 차마 아르칸도 모르는 척할 정도였다.
어쨌거나 용사는 동료들에게 한참을 시달렸고, 지금도 이도 저도 못 하게 된 상황이었다.
“그냥 눈 딱 감고 돌아가 버리면 되잖아.”
“나 사라지면 죽는다고 난리라서…….”
“그래서 이 세계에 계속 있을 거야? 나야 말동무가 생기는 거니까 상관없지만. 원래 세계에 좋아하던 사람 있다면서?”
“으응. 그러니까, 돌아가야 하는데…….”
용사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하는 수 없지. 내가 등 떠밀어 주는 수밖에.’
아르칸은 쓴웃음을 지으며 용사에게 말했다.
“일단 돌아가. 돌아가서 부모님 만나고, 그 썸 탄다는 동생도 봐야지. 너 기다리고 있다면서? 네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데 돌아가야지.”
“아, 미안…….”
용사는 뒤늦게 아르칸의 원래 세계에서의 처지를 떠올리고는 사과했다.
“미안은 무슨, 일단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 판단해. 다시 돌아오든 거기서 눌러살든.”
“어, 다시 돌아올 수 있어?”
“내가 불러 주면 되지. 대신 내가 못 본 영화나 드라마 좀 챙겨 오고.”
“알았어. 일단 돌아가면 그것부터 태블릿 PC에 잔뜩 쟁여 놓을게.”
“그 전에 부모님이랑, 그 썸 탄다는 동생부터 만나야지.”
아르칸이 웃으면서 말했다.
사실 아르칸이 신력을 쓰면 다른 차원의 문물을 즐기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었지만, 그러기에는 신력이 아까웠다.
무엇보다 방금 요구는 어디까지나 용사가 마음 편히 돌아가라고 한 말이었다.
용사는 아르칸과 대화한 후 정신을 차렸는지 동료들과 만나서 작별을 고했다.
동료들은 용사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있다는 소리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아무래도 그동안의 소란은 용사가 썸 탄다는 의미를 잘못 이해시킨 탓에 벌어진 듯했다.
어쨌거나 마음의 준비를 마친 용사가 아르칸을 찾아왔다.
“그럼 시작한다.”
아르칸은 용사의 앞에 검은 소용돌이를 만들어 냈다.
“저기를 넘어가면 지구야.”
“고맙다. 아르칸.”
“그래, 잘 가라.”
아르칸의 작별 인사에 고개를 까딱한 용사는 그대로 검은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다.
“휴, 드디어 끝났나.”
아르칸이 한숨 돌리려고 할 때, 아르칸을 이곳으로 빙의시킨 원흉이 찾아왔다.
그건 바로 빙의 전 아르칸이 즐겨 읽던 판타지 소설, 마계정벌기의 작가였다.
정확히는 모습을 드러냈다기보다는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작가 : 이야, 역시 임시현. 해낼 줄 알았다. 아니, 이제 아르칸이라고 불러야겠지?
놀랍게도 그 말은 아르칸에게 익숙한 이미지 형태로 변환되어 보였는데, 마치 웹소설 댓글창 같았다.
‘이건 내가 댓글 단다고 의식하고 말하면 써지는 건가?’
아르칸은 곧바로 댓글로 대답했다.
>아르칸 : 솔직하게 말해. 내가 해낼 거라고 안 믿었지?
>작가 : 아니, 내 능력을 알면 내가 믿었다는 걸 너도 믿을 수 있을 거야.
>아르칸 : 능력?
>작가 : 그래, 나는 미래를 볼 수 있거든.
이후 작가는 자신의 정체를 소개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원래 여신 셀레니아가 소환한 용사라고 했다.
소환되면서 얻은 권능은 용사의 전시안이 아니라, 미래시.
작가가 말한 대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이라고 했다.
‘정확히는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라고 했지.’
평소 망상을 자주 하던 게 능력으로 발현된 거 같다고 했다.
그 능력 덕분에 위기를 많이 넘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마왕도 다수 퇴치했다고 한다.
문제는 아무리 미래시를 써도 이 세계에 평화가 찾아오는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결국 포기한 작가는 여신 셀레니아에게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지만.
당시 셀레니아는 거절했다고 했다. 되든 안 되든 부딪쳐 보라는 거였다.
‘그때도 성격이 안 좋았네.’
그걸 거부한 작가는 남몰래 외신이 되어 원래 세계로 돌아갔다고 했다.
셀레니아는 방해하지 않는 대신, 한 가지 조건을 걸었다.
자신의 세계가 마신을 비롯한 외신의 침공을 막아 내고 평화로워지도록 만들라고 말이다.
안 그러면 다시 원래 세계로 불러온다고 했단다.
악질이었지만, 추가로 따로 신력을 모을 수 없었던 작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사실 셀레니아가 압박하지 않았더라도, 이 세계에서 맺은 인연도 있기에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 나름대로 찾은 방법이 바로 웹소설을 쓰는 거라고 했다.
그래서 작가는 셀레니아에게 이 세계의 근황과 새로운 용사에 대한 정보를 받아 웹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한참 써 내려가다 배드 엔딩이 뜰 거 같으면 여신에게 알려 줘, 배드 엔딩을 피할 방법을 강구하도록 했다.
그런데도 실패해 배드 엔딩으로 끝맺은 작품이 여럿 됐단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소설을 연재하게 됐는데, 그게 아르칸이 읽던 마계원정기였다.
그 말을 듣던 아르칸은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아르칸 : 그렇다면, 지금 마계원정기는 연재하고 있는 거야?
>작가 : 사실 그것 때문에 곤란하게 됐어.
>아르칸 : 왜?
>작가 : 네가 아르칸에 빙의하고 나서 사과글 올리고, 수정해서 널 등장시켰거든. 그런데 어느 순간 연재를 계속할 수가 없어서 연중 상태야.
>작가 : 아니, 무슨 이유?
아르칸은 벌컥 화를 냈다.
웹소설을 사랑하던 애독자로서 무책임한 연중은 참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작가는 납득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댔다.
>작가 : 도중에 네가 여신 셀레니아를 소멸시키지 뭐야. 그걸 쓸 수는 없었다.
>아르칸 : 아, 그런 거라면 하는 수 없지…….
만약 그걸 썼다가는 셀레니아가 보고 대비했을 수도 있었다. 그러면 소멸하는 건 셀레니아가 아니라, 아르칸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아르칸 : 덕분에 살았군.
>작가 : 덕분이라고 할 것까지도 아니야. 셀레니아가 소멸하면 내 속박도 풀리는 거니까. 내게도 이득이거든.
>아르칸 : 그건 그렇겠네. 참, 그럼 앞으로 연재는 어떡할 거야?
>작가 : 이제 연재해도 문제없으니 조만간 재개할 거야. 이번에는 미래가 아니라 과거의 일을 기록하는 셈이 되겠지. 얼마나 볼지는 모르지만.
>아르칸 : 기대되는데? 참, 약속대로 내 빙의는 유지되는 거겠지?
아르칸에게는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이 세계의 신이 되는 위업까지 이뤘는데, 본래 몸으로 돌아가면 말짱 도루묵이었으니까.
사실 아르칸은 크게 걱정하고 물은 건 아니었지만.
>작가 : 너도 알잖아. 이제 내 힘으로는 빙의를 못 돌린다는 걸.
그 말대로 현재 아르칸의 신력은 작가보다 월등히 높았다. 같은 신격이라고 해도 격이 차이가 나는데 손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르칸도 그걸 알면서 확인차 물어본 것에 불과했다.
>작가 : 그럼 잘 지내. 이 세계로는 안 돌아올 거 같아서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한 거니까.
>아르칸 : 그래, 참, 한 가지만 더 묻자. 네 미래시에 보인 앞으로의 내 미래는 어때?
>작가 : 네 미래라……. 잠시만.
잠시 뜸을 들인 작가는 그동안 미래시를 써서 들여다봤는지 대답했다.
>작가 : 아주 평화로워. 한동안이지만.
>아르칸 : 한동안? 그게 얼마인데?
>작가 : 네가 권태를 느끼기 전까지라고 할까?
>아르칸 : 그거면 충분해.
아르칸의 대답을 마지막으로 작가로부터 말은 더 들리지 않았다.
>작가 : 아주 평화로워. 한동안이지만.
>아르칸 : 한동안? 그게 얼마인데?
>작가 : 네가 권태를 느끼기 전까지라고 할까?
>아르칸 :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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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 년 뒤.
아르칸은 이 세계를 무사히 지켜 내며 여전히 수호신의 자리에 있었다.
첫 수십 년 동안에는 수백의 악신이 쳐들어왔으나 모조리 물리쳤다.
그러자 소문이 났는지 쳐들어오는 악신이 끊겼다.
그런 와중에 딱 100년째에는 마신이 다시 침공해 왔다.
그러나 이미 모든 준비를 마친 아르칸에게 피떡이 되다시피 했다.
겁먹은 마신이 도망치려고 했지만, 아르칸은 도망치지 못하게 붙잡아 소멸 직전까지 약하게 만들어서 추방했다.
다시 힘을 키우기도 힘들 테고, 운 좋게 힘을 키운다고 할지라도 수백 년은 족히 걸리고도 남았다.
그러고 나니 아르칸의 세계를 노리는 악신은 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하고 지키는 와중에, 세상은 몰라보게 바뀌었다.
그러면서 아르칸이 알던 이들도 하나둘씩 세상을 떠났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로 몇십 번 몇백 번을 반복하자 아르칸이 아는 이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 후로도 세계는 여전히 아르칸을 신으로 모셨지만, 아르칸은 모습을 감추고 자신만의 공간에 틀어박혔다.
그곳에서 아르칸은 새로운 취미를 찾았다.
“와! 정말 이렇게 끝이라고?”
폰을 쥔 채 뒹굴뒹굴하던 아르칸이 목소리를 높였다.
읽던 웹소설이 터무니없는 전개로 흐른다 싶었는데, 기어코 급완결이 나 버린 거였다.
과거였다면 화내면서 댓글 보러 가는 게 끝이었겠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거 가만두면 안 되겠는데? 게티아, 어서 찾아봐. 소설을 바탕으로 한 세계가 있는지.”
아르칸의 말에 게티아가 가름끈으로 폰을 휘감더니 웹소설을 감정했다.
신이 된 후 아르칸이 알게 된 건, 작가 권능인 미래시를 이용해 쓴 게 아니더라도 대부분 이야기에는 그 근간이 되는 세계가 있다는 거였다.
그 후 아르칸은 일이 잘못되어 연중이 된 소설이 생기면, 게티아의 감정으로 그 근간이 되는 세계의 위치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으로 건너가서 연중이 되지 않도록 막았다.
신력이 있다 보니 빙의될 때와 달리 아주 쉬웠다.
그게 바로 아르칸에게 새로 생긴 취미였다.
“아, 찾았다. 여기야.”
오랜 세월 아르칸과 함께 지내며 더욱 강해진 게티아가 직접 검은 소용돌이를 열었다.
“좋아. 그럼 간다!”
아르칸은 망설임 없이 검은 소용돌이 너머로 사라졌다.
새로운 세계로의 여정을 떠난 거였다.
-끝-
지금까지 ‘반지하 마왕성에서 살아남기’를 사랑해 주신 모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