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54
제355화
카롤 궁무처장은 나를 교황의 집무실로 안내했다.
나 혼자인건 다른 두 사람은 초대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기 역시 방에 남았는데, 교황청의 결계 영향이 컸다.
침대에 뻗은 채로 쉬는데도 점점 힘들어했다.
혹시 결계가 신체에 좋지 못한 효과를 끼치는 건가?
걱정하는데 새싹이가 그건 아니라고 전해왔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저 정신적인 피로가 쌓여 무기력해진 것뿐이었다.
오랜 피로가 쌓여 손가락 하나 꿈쩍하기 싫은 것처럼.
주말 아침 침대 바깥으로 나가기 싫어하는 것처럼 꼬리를 꿈틀거리는 것조차 싫은 상태였다.
또 한 가지.
장소가 장소다 보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도 방에 남은 이유였다.
그도 그럴 게, 추기경 파의 처지에서 보면 암살하려던 대상이 제 발로 굴러들어온 상황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놈들은 결계나 실드를 손쉽게 뚫어낼 수 있었으니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두 분 모두 어쩐 일이십니까?”
카롤 궁무처장이 제자리에 우뚝 섰다.
질문의 방향은 내 쪽이 아니었다.
톡톡톡….
스마트폰을 두드리며 앞을 바라봤다.
“…….”
“…….”
교황의 집무실 앞엔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명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날 반겨주었던 이자벨 성녀였고, 또 한 명은… 키가 엄청 큰 노인이었다.
누구지?
성녀 맞은편에 서 있는 것도 그렇고 나이가 지긋한 것도 그렇고….
분명 고위 사제가 분명했다.
아쉽네.
도희가 따라왔으면 설명해주었을 텐데.
[세계수 어린나무가 근원이라고 설명합니다.]근원?
아.
지금 추기경파의 리더 말하는 거야?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바로 저 노인이 관리인이 찾던 홍수정 암살 시도의 주동자라고 전합니다.]말인즉슨.
차기 권력들이 현 권력의 집무실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
저런 면상이었군.
카롤 궁무처장이 나를 가리켰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든, 교황님께선 이쪽 분을 먼저 만나실 겁니다. 두 분은 기다려주십시오.”
“네.”
“…….”
이자벨 성녀는 흔쾌히 대답했다.
추기경 파의 리더는 대답 대신 무표정한 얼굴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동의하자 카롤 궁무처장은 나를 돌아봤다.
집무실로 들어가서 교황을 만나란 뜻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후 들어가려는데,
“예의를 갖추시오.”
추기경 파의 리더가 나를 가로막아 섰다.
이 양반이 갑자기 왜 이래?
“보르자 추기경!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내가 따지기도 전에 카롤 궁무처장이 나섰다.
성녀도 그의 편을 들 생각인지 옆에 섰다.
나도 가만히 있는데 왜 자기들이 열을 내는 거람.
고맙게시리.
그나저나, 이름이 보르자인가 보지?
“뭐하긴. 예의를 갖추라고 말도 못 하나?”
“예의를 갖추라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립니까?”
“…하!”
보르자 추기경은 헛웃음을 냈다.
비웃는 얼굴을 한 채 고개도 절레절레 젓는다.
“어떤 점에선 대단한 일이로군. 궁무처장은 지금 저게 안 보이시오?”
“뭐가 말입니까?”
“저자의 손 말이오!”
보르자 추기경이 검지를 내뻗는다.
내 오른손을 향해서.
톡톡 톡톡톡.
톡톡톡톡!
“손이 왜…, 아….”
카롤 궁무처장이 보르자 추기경의 행동을 이해한 듯 탄식을 흘렸다.
이자벨 성녀도 그와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지금까지 왜 저걸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자신도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뭐, 그럴 만도 하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스마트폰을 한 시도 떼어놓지 않았으니까.
스마트폰을 들고 있지 않은 나를 생각하지 못하는 걸 거다.
유재이는 내가 대장간에 간 걸 화면 두드리는 소리로 알아차릴 정도이기도 하고….
“궁무처장은 저런 꼴로 교황님을 만나 뵙게 할 생각이시오?”
“그, 그건….”
카롤 궁무처장을 할 말이 없는 듯 말끝을 흐렸다.
교황의 비서로서 내 행동을 두둔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자벨 성녀도 입을 비튼 채로 조용히 있었다.
입을 비튼 걸 보니 뭐라도 대꾸하고 싶기는 한데, 그럴 상황이 아니어서 못하는 것 같다.
뭐….
“나 지금 예의 갖추고 있는데.”
그건 카롤 궁무처장과 이자벨 성녀 두 사람에 한해서다.
난 두 사람과 달리 할 말이 있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보르자 추기경이 나를 내려다봤다.
“뭐라고 하셨소. 지금, 갖추고 있다고 한 거요?”
“응.”
“…한국에선 게임을 하며 사람을 만나는 게 예의요?”
“설마. 우리나라 동방예의지국이야. 어른 앞에서 이랬다간 뺨 맞아도 할 말 없어.”
“…….”
보르자 추기경이 시선을 내리깐다.
옆에 있는 이자벨 성녀와 카롤 궁무처장도 마찬가지다.
그럼 네 오른손은 지금 뭐 하고 있는 건데?
그렇게 묻는 듯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톡톡톡!
“대체 그 모습 어디가-”
“당신을 잘난 듯이 떠들게 내버려 두고 있잖아. 내 소중한 사람의 친구를 죽이려고 했는데도.”
“……!”
“뭘 그리 놀라. 알아차리지 못할 줄 알았어?”
톡톡톡.
집무실 앞에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보르자 추기경도, 이자벨 성녀도, 카롤 궁무처장도 입을 열지 못했다.
다만, 이자벨 성녀는 흥미로움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기대되는 것 같다.
이곳에 오기 전 느꼈던 의문이 또다시 떠올랐다.
성녀가 되면 저렇게 되는 건지.
그런 사람이 성녀가 되는 건지.
“지금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건지 모르겠군!”
발뺌하는 건가.
뭐, 당연한 거겠지….
추기경이란 작자가 암살 명령을 내렸다고 순순히 인정할 순 없을 테니.
보르자 추기경이 소리쳤다.
“궁무처장! 이런 미친 작자를 교황님과 만나게 할 생각이오?”
“…저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뭐라고?”
“교황님께서 만나고 싶다고 하시니, 저로서는 따를 수밖에요.”
카롤 궁무처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 말마따나 내가 미친 작자든 뭐든 알게 뭐냐고 말하는 듯한 태도다.
왜일까?
그에게서 상사들 사이에 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직원의 모습이 떠오르는 건….
“원하면.”
“……?”
“진짜로 예의를 안 갖춰줄 수도 있는데.”
톡톡톡, 톡톡.
톡….
스마트폰을 두드리던 검지를 멈춘다.
이어 흉기로 가슴을 찌르듯 앞으로 내밀었다.
“감히….”
그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얼굴을 찌푸린다.
할 수 있으면 해보라고 말하는 듯하다.
좋아.
원한다면 해줘야 인지상정이겠지.
[어린나무가 마나의 흐름을 느꼈습니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라고 설명합니다.]그때,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라고 해서 이자벨 성녀가 움직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 마나는 집무실 안에서부터 느껴졌다.
즉, 교황의 마나란 뜻이다.
교황도 성녀처럼 순수하고 완전한 마나의 소유자였나….
과연 교황이란 직책을 거저 가진 게 아니로군.
“…이런. 아무래도 손님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한 것 같군요.”
카롤 궁무처장이 집무실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느새 집무실 문이 열려 있었다.
아까 교황이 마나를 뿜어냈던 게 저 문을 열기 위해서였나 보다.
나를 말리기 위해서였겠지…?
[어린나무가 나뭇가지를 끄덕여 관리인에게 동의합니다.] [관리인이 검지를 내밀자마자 마나의 흐름이 느껴졌다고 설명합니다.] [집무실 안에 있는 교황은 지금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고 덧붙입니다.]역시나….
그럼 십리안 마법을 써서 지켜보고 있었던 건가?
아니, 그랬다면 새싹이가 시선을 느꼈다고 전했을 터.
주변 인기척이나 마나의 흐름을 느꼈다고 보는 게 옳겠다.
“보르자 추기경. 이제 그만 비켜주십시오. 교황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
그 말에도 보르자 추기경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는 시선을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 보았다.
톡톡톡…!
또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면서 화면을 두드렸다.
그렇게 서로 마주 보길 5초쯤 흘렀을까?
그가 천천히 옆으로 비켜섰다.
높은 분 아니랄까 봐 엉덩이가 참 무겁구만….
“자, 백도운 님. 들어가시죠.”
“아, 네. 여기까지 안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궁무처장님.”
“아닙니다. 제가 할 일인 것을요.”
그와 인사를 나눈 후 집무실로 들어갔다.
뒤에서 날 노려보는 보르자 추기경의 시선이 느껴졌다.
본인이 암살 시도의 주동자라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
이제 어떻게 나오려나?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향한 시선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내 생각을 끊어내려는 듯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 메시지 너머로 날 쳐다보는 노인이 보였다.
노인은 도희처럼 온통 흰 사제복에 고급스러워 보이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이곳 교황청의 절대 권력.
교황, ‘프란치스코 2세’였다.
“환영하오. 최 클라우디아 수녀의 아들, 백도운….”
……?
교황이 우리 아줌마를 어떻게 알지?
***
우르르 쾅…!
벼락이 쳤다.
어둠이 내려앉은 세상을 밝게 비출 정도로 커다란 벼락이었다.
그 벼락을, 최 클라우디아 수녀가 멍하니 바라봤다.
“원장 수녀님…?”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정 세실리아 수녀가 그녀를 불렀다.
목소리가 작았던 탓일까?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저 다시 어둡게 변한 바깥만을 바라봤다.
왠지 모를 불안함을 느낀 정 세실리아는 다시 그녀를 불렀다.
“원장 수녀님!”
“…어, 어? 아…. 수연이…?”
“네? 갑자기 왜 본명으로 부르세요?”
“앗…! 어머, 미안.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미안해, 세실리아 수녀.”
“아이, 뭐 이런 거로 미안해하세요. 이름으로 불러주니 옛날 생각나서 오히려 좋은걸요.”
“…아하하.”
최 클라우디아가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그러면서 가슴께에 놓인 십자가를 어루만졌는데,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정 세실리아는 그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괜찮으세요?”
“응?”
“원장 수녀님, 지금 엄청 불안해 보이세요….”
“아….”
최 클라우디아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또 힘없이 고개를 숙였는데, 그 모습이 정 세실리아를 불안하게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을 담아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어디 편찮으신 거예요…? 도희한테 연락할까요?”
“어머. 너 지금 나 늙은이 취급하는 거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잖아요.”
“괜찮아, 괜찮아. 그런 거 아니야. 나 쌩쌩해.”
불끈…!
그녀가 팔을 구부려 보디빌더처럼 자세를 취했다.
마치 몸으로 한자 력(力)을 그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정 세실리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후, 제발 체통 좀 지키세요.”
“체통이 네 걱정 불식시켜주니?”
“…왜 그러시는 건데요?”
“걱정돼서 그래.”
“걱정이요? 갑자기 뭐가요?”
“지금 도운이 교황청에 가 있잖니.”
“그게 어때서요…?”
정 세실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도운 이야기가 왜 나오는 걸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걸 너한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
“네?”
“그게 사실…. 아니, 됐다. 넌 모르는 게 좋겠다.”
“아이! 지금 나랑 장난해요?”
“…그럼 너만 알아야 해? 비비안나 수녀한테 말하면 안 된다?”
“알았어요.”
그리 대답하며 정 세실리아는 성호를 그었다.
자신만이 볼 수 있는 마음속 손가락으로.
“며칠 전 추기경파가 엘릭서 때문에 암살자를 보냈어. 도운이가 그걸 막았고.”
“그, 그게 정말이에요?”
“이런 거로 거짓말을 하겠니?”
“추기경파가 아무리 막 나간다지만 암살 시도를 하다니…. 아니, 잠깐. 그럼 지금 도운 오빠는 암살자를 보낸 교황청에 간 거예요?”
“그래서 걱정이란 거야. 도운이가 사고 치면 어떡해?”
꼴깍….
두 수녀는 동시에 침을 삼켰다.
정 세실리아가 확신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초대받아 간 거잖아요. 이상한 짓을 저지르진 않을 거예요.”
“백도운인데?”
“…….”
“옆에 태천이도 없는데?”
“오, 주여….”
정 세실리아가 앓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