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56
제357화
“이곳이에요.”
이자벨 성녀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녀가 안내한 곳은 교황의 집무실 뒤쪽에 있는 건물이었다.
엘릭서를 만드는 곳이기 때문일까?
교황이 있는 곳과 가까운 위치에 자리했다.
“이, 이곳이….”
꼴깍.
홍수정이 침을 삼켰다.
기대에 벅찬 얼굴로 오래된 건물을 올려다본다.
조금 전 교황에게 엘릭서 제조실 구경을 허락받았다는 소리를 들은 이후로 계속 저런 얼굴이다.
당장 구경하고 싶다는 말에 일단 자고 낮에 가자고 했었는데, 이자벨 성녀가 교황이 안내를 부탁했다며 찾아왔다.
본인이 바랐던 대로 당장 구경할 수 있게 된 홍수정은 좋아 죽겠는 얼굴로 모든 준비를 끝마쳤다.
뭐, 구경할 수 있게 된 것을 마음에 들어 한 건 도희도 마찬가지였다.
교황청이 엘릭서를 어떻게 제조하는지 순수하게 궁금했으니까.
그래서 우린 무기까지 포함해 쉬는 이 하나 없이 다 함께 제조실로 향했다.
“들어가시죠.”
이자벨 성녀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얌전히 따라갔는데,
「음….」
무기가 짧게 신음을 흘렸다.
왜 그런가 하고 쳐다보니 새싹이가 곧바로 가르쳐주었다.
[세계수 어린나무가 교황청 결계의 마나가 짙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이곳이 바로 결계의 핵이라고 전합니다.]아, 그런 거군.
가뜩이나 무기를 힘들게 하던 결계다.
그런 결계의 핵과 가까워졌으니 힘들만도 하다.
「관리인. 목 좀 빌리지.」
“응. 그렇게 해.”
바티칸에 온 후로 지켜보는 시선 때문인지 스스로 날던 무기였다.
그런 녀석이 이자벨 성녀가 지켜보는데도 목에 둘리다니….
내 생각보다 결계 때문에 더 힘든 모양이다.
역시 교황청이라고 해야 할까.
무기가 이렇게 힘들어할 정도의 결계니 웬만한 몬스터는 뼈도 못 추릴 것이 분명하다.
드래곤 정도는 돼야 오롯이 있을 수 있겠다.
“괜찮으신가요?”
앞서 걷던 이자벨 성녀가 걱정스러운 듯 물었다.
교황청의 결계 때문이니 병 주고 약 주는 듯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정도 수준의 결계를 며칠 보내다 갈 손님을 맞이하고자 꺼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다시 전개하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고.
아무리 짧게 잡아도 반년은 필요하겠지.
「괜찮으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곤 이자벨 성녀는 계단으로 내려갔다.
바로 뒤에서 따라가던 홍수정이 잠깐 멈춰섰다.
막연히 계단 위로 올라갈 거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
콩.
스스로 머리를 한 대 때리더니 성녀를 따라 계단으로 내려갔다.
우리 백 씨 남매도 뒤따랐다.
대신 걸음 속도를 조금 늦췄다.
도희가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려왔기 때문이다.
“정말 괜찮은 거예요?”
「괜찮다.」
“하지만, 내려갈수록 더 심해질 거예요.”
「그래서 관리인 목에 둘린 것이다.」
“아….”
「걱정시켜 미안하군.」
“아니에요. 그걸로 괜찮다면 다행이에요.”
도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 속도를 올렸다.
톡톡.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듯 무기의 턱을 두드렸다.
「…뭐 하는 것이냐?」
“그냥. 걱정시키는 네 모습이 귀여워서.”
「…….」
무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모습에서 인간처럼 뺨이 붉어지거나 하진 않았지만 민망함을 느낀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귀엽기는.
[어린나무는 무기를 바라봅니다.] [무기를 향해 라이벌 의식을 불태웁니다.]뜬금없이 뭔….
새싹이의 어이없는 메시지에 당황하는 동안 계단을 다 내려갔다.
“오.”
넓고 둥근 공간이 보였다.
엘릭서 제조실은 아니었다.
그 공간엔 제조에 필요한 그 어떤 도구도 없었으니까.
천장에서 새하얗게 빛나는 마나등을 제외하면 있는 것이라곤 딱 한 가지였다.
바로 공간의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결계다.
꼭 유리 벽 같네.
뱅글….
이자벨 성녀가 뒤돌아섰다.
“사실, 교황님께선 여러분을 속이셨어요.”
그리 말하며 싱긋 웃는다.
속였음을 털어놓는 사람답지 않게 맑은 웃음이었다.
그 순간 홍수정이 내 뒤쪽으로 달려와 숨었다.
암살당할 뻔한 전적이 있는 사람다웠다.
행동이 빠릿빠릿한걸.
쏙!
홍수정이 내 뒤에 숨어서 얼굴만 드러낸 채로 따졌다.
“너무해! 엘릭서 보여준다는 게 거짓말이었어요?”
“네? 아하하. 아뇨. 그 말에 거짓은 없었어요. 그렇죠, 백도운 님?”
“도운 씨. 저 말이 사실이에요?”
홍수정이 나를 올려다본다.
흠….
아쉬운걸?
이렇게 내 팔을 붙잡고 올려다보는 게 유재이였음 참 좋았겠어.
찰싹!
“…왜 때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대답이나 해라, 관리인.」
“쓸데없는 생각 아니었-”
휙, 휙!
무기의 꼬리가 허공에서 좌우로 흔들렸다.
계속 말했다간 이번엔 머리가 아니라 입을 얻어맞았을 거다.
어깨를 으쓱인 후 대답했다.
얻어맞아도 아프진 않겠지만 기분이 나쁠 테니까.
“사실이에요. 교황님은 사죄의 의미로 수정 씨에게 엘릭서 제조실을 구경시켜주고 싶어 했어요.”
“……?”
홍수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을 물었다.
“그럼 성녀님께선 왜 교황님이 우릴 속이셨다고 한 거예요?”
“숨기는 게 있는 거죠.”
“숨기는 거요?”
“이를테면.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도록 마법을 걸어놓았다거나.”
“네?”
“저거요.”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결계를 가리켰다.
짝!
결계를 보고는 홍수정이 손뼉을 쳤다.
그제야 교황이 우릴 속였다는 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것이다.
이자벨 성녀가 내 말이 옳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유리 벽 같은 결계로 걸어가 쉽게 건너갔다.
그냥 통과해버리네?
“이쪽으로 오세요.”
“…….”
우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도희가 먼저 건너가고, 홍수정이 건너갔다.
두 사람은 결계를 손쉽게 통과한 후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렇게 쉽게 통과할 수 있다면 결계가 무슨 소용인 거지?
그리 생각하며 결계로 다가갔다.
앞선 두 사람처럼 내디딘 발과 내뻗은 손이 쉽게 결계를 통과했다.
욕조에 채워놓은 물에 몸을 담그는 듯한 따스한 느낌과 함께,
쿵!
결계에 이마를 찧었다.
몸이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도희와 홍수정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나도 마찬가지다.
“……?”
“저런….”
이자벨 성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뭔데.
두 사람은 통과했는데 난 왜 안 돼?
도희도 그게 궁금한 듯 설명을 요구했다.
“이자벨 성녀님?”
“결계를 지나가기 위해선, 한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해요…. 백도운 님은, 아쉽게도 그 조건을에 해당하지 못한 거고요….”
“조건…. 대체 그 조건이 뭐길래 오라버니과 통과하지 못한 거죠?”
“그게, 그러니까….”
이자벨 성녀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십자가 목걸이를 어루만지는 모습에선 불안함마저 느껴진다.
그 조건이란 게 말하기 좀 그런 모양이다.
그래서 더 궁금하다.
“판단은 결계가 한 거예요. 절대 저를 비롯한 다른 사제들의 의사는 개입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밝힐게요.”
아니, 대체 뭔데 그래.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걱정되잖아.
내가 어디 하자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알겠습니다. 괜찮으니까 말씀해보세요.”
“그러니까, 결계를 통과할 수 있는 조건은….”
조건은?
꼴깍.
홍수정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자벨 성녀가 뜸을 들인 탓인지 긴장을 한 것 같다.
“선한 사람…이에요.”
뭐? 뭔 사람?
이자벨 성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방금 한 말을 머릿속에서 자꾸만 되뇌었다.
선한 사람, 선한 사람….
결계를 지나가기 위해선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즉….
방금 결계를 통과하지 못한 나는 선한 사람이 아니다, 라는 소리이지 않은가.
[어린나무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 [나뭇가지로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고 전합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 너머로는 날 바라보는 홍수정의 안쓰러운 눈길이 느껴진다.
옆에 서 있는 도희는 이마를 천천히 문질렀다.
오빠가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증받은 동생의 기분은 과연 어떨까.
하….
도희야, 못난 오빠라 미안하다….
얼굴에서 화끈거림이 느껴지는구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는 말이 딱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후후….」
귓가에 무기가 짧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래.
웃기겠지.
나도 지금 상황이 우스운걸.
그렇다고 웃으면 내 기분이 더럽잖아.
“웃어?”
「본인 잘못이다, 관리인. 그러게 선하게 살았어야지.」
“끄응….”
할 말이 없었다.
무기의 말마따나 선하지 못한 내 잘못이었으니까.
내가 선했다면 아무 문제 없이 결계를 통과했겠지….
“미, 미안해요…?”
이자벨 성녀가 조심스레 사과를 전해왔다.
물론, 그녀 본인도 사과하는 게 옳은 일인지 몰라서 말끝을 올려버렸다.
하하하.
쪽팔려 죽겠네, 진짜.
「고맙다, 관리인.」
“뭐가?”
「재미있는 구경을 했더니 힘이 조금 나는군.」
“…….”
「그럼, 관리인은 여기에서 혼자 기다리도록. 우리끼리 다녀올 테니.」
그러면서 무기는 내 목에서 떨어졌다.
나아가는 방향은 결계 너머의 도희 쪽이었다.
이 녀석이….
“너 지금 도희한테 가려는 거야?”
「그렇다만.」
“친구인 날 버리고?”
「친구이니까 그런 것이지.」
“…….”
쩝.
할 말 없네.
태천이도 저렇게 말할 거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고.
무기는 히죽 웃으며 결계로 날아갔다.
힘들다고 내 목에 휘감길 땐 언제고….
“앗, 잠시만요…!”
그때, 성녀가 손을 뻗어 무기를 말렸다.
무기는 그녀의 제지에도 멈추지 않았다.
「음? 걱정하지 마라. 난 관리인이랑 달리 선하니까.」
자신만만한걸.
목소리에선 통과하지 못할 거라는 의심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쿵!
그건 지 생각일 뿐이었다.
무기는 불과 3분 전의 나처럼 머리를 결계에 찧었다.
“하하, 꼴좋다!”
쾌재를 부르는 나를 뒤로 한 채 무기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꼬리를 휘둘렀다.
텅, 텅!
꼬리가 결계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꾸 가로막혔다.
이자벨 성녀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잠시만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어떻게 된 거지? 난 관리인과 달리 선하다만.」
“물론 그러시겠죠. 이무기님의 성정을 의심할 생각은 추호도 없답니다.”
「그렇다면-」
“하지만 사람이 아니시죠.”
「아.」
무기가 얼빠진 목소릴 냈다.
그러고 보니, 그녀는 ‘선한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었다.
이런, 이런….
세상일이란 게 참 마음대로 안 된단 말이지.
“으흐흐….”
「…….」
“역시 우린 친구야. 그치, 무기야?”
무기를 보고 해맑게 웃었다.
그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은 걸까?
빠드득!
이를 갈기까지 한다.
히히, 무서워라.
저러다가 물어뜯겠어.
[어린나무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바로 그런 점이 관리인의 문제라고 전합니다.]“…오라버니.”
무기를 조롱하고 있는데, 결계를 유심히 보던 도희가 날 불렀다.
“왜?”
“다시 해볼래요?”
“응?”
“다시 시도해보시라고요.”
시도해보라니….
결계를 통과해보라는 소린가?
톡, 톡.
검지로 두드리듯 결계를 가리키자 도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내가 선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은 건가.
설마 통과하지 못한 것에 충격받고 자괴감을 느끼길 바라는 건 아닐 테고.
그런 거라면 잘못 생각해도 한참 잘못 생각한 건데.
뭐….
어쨌건 도희가 하는 말이니까 들어주도록 하자.
고개를 끄덕인 후 결계를 향해 걸어갔다.
아까처럼 내디딘 발과 내뻗은 손이 결계를 통과한다.
욕조에 채워놓은 따듯한 물에 몸을 담그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어라?”
튕겨 나갈 줄 알았던 몸이 결계를 완전히 통과했다.
그 현상을 보고 이자벨 성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의 얼굴은 마치 물음표를 형상화한 듯했다.
옆에 서 있는 홍수정과 혼자 남게 된 무기도 마찬가지였고, 당연히 내 얼굴도 다를 바 없었다.
유일하게 도희만이 이 현상을 이해한 듯 빙그레 웃고 있었다.
결계에 대해 훨씬 잘 알고 있을 이자벨 성녀도 당황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도희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어떻게 된 일이긴요. 뻔한 거죠.”
“뻔하다고?”
“네. 오라버니가 선한 사람이란 뜻이에요.”
“…….”
내가?
이게 무슨 이태천 금식하는 소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