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1
제392화
“허억, 허억….”
최동훈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노려본다.
여전히 두 눈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구해준 사람을 향해 저런 눈을 떠 보이다니, 확 검지로 정수리 후려갈겨 버릴까 보다.
그 분노가 고통을 참아내는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음…?”
노려보던 최동훈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고는 제 몸을 이리저리 훑어보기 시작한다.
이제 알아차렸나 보군.
방금 내가 한 일이 마족의 에너지를 흡수만 한 게 아니라는 걸.
사실, 흡수하고 정화만 한다면 최동훈이 괴롭고 고통스러울 일은 없었다.
녀석이 느낀 고통은 세계수의 마나로 신체 구조를 바꾸는 데에 따른 것이었다.
“무슨… 짓을 한 거냐, 백도운…?”
“네 신체를 좀 개조했지.”
“개조라니…. 왜 그런 짓을… 어?”
“우후후….”
“백도운…. 제대로 한 것 맞냐?”
“뭐, 인마?”
“아직 변태화를 쓸 수 있다는 말이다. 그 고생을 시켜놓고 왜 이 힘이 남아 있는 거지?”
“일부러 남겼다는 생각은 안 하냐?”
“일부러…?”
“…….”
생각해본 적 없다는 얼굴이군.
조금만 더 힘줘서 심장 고장 낼 걸 그랬나.
“…이래도 괜찮은 거냐?”
“변태화만 남겨 놓은 거라 괜찮아. 의식을 지배당하게 되는 일은 없어.”
“…….”
꽈악….
내 말을 들은 그가 주먹을 꽉 쥔다.
변태화.
그 강력한 힘을 잃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쁜 거다.
“…고맙다. 이 은혜는 꼭 갚겠어.”
“은혜는 됐고. 기부나 해라.”
“아, 그러고 보니….”
피식.
최동훈이 실실 웃는다.
광주 보육원에 기부하라던 말이 기억난 거다.
툭툭….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다.
“두 번 하도록 하지. 두둑이.”
“잘 생각했어.”
그러면서 주변을 돌아본다.
해골의 은신처는 텅 비어 있었다.
놈이 지금까지 연구해온 모든 것들은 내 인벤토리에 있었고, 놈의 연구 결과는 S등급 비료가 되어 새싹이의 성장에 보탬이 됐다.
진정한 세계수가 된 덕분에 관련 스킬들도 진화했으니, 빈집털이 한 번 제대로 했다.
해골이 돌아왔을 때 얼마나 좋아할지 상상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실실 지어졌다.
“…서두르는 게 좋지 않냐?”
“응?”
“크라우드가 어딘가를 노리고 있잖아. 지금 네가 여기 여유롭게 있을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그래. 슬슬 돌아가야지.”
“서둘러라. 아무리 이무기가 빠르다고 해도 돌아가는 게 시간이 걸릴 테니….”
“괜찮아.”
씩 웃으며 최동훈을 안심시켰다.
백운천 녀석들에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이동할 수 있게 씨앗을 주고 왔다.
하지만 현재 새로 심어진 씨앗은 없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씨앗을 심을 시간도 없이 당했을 가능성도 있지만, 그건 도희와 태천이 그리고 한재임을 상정하지 않았을 때다.
그 셋이라면 무슨 일이 벌어져도 씨앗을 심었을 거다.
설령 드래곤과 맞닥뜨리게 됐다고 해도.
“…….”
녀석은 눈을 찌푸렸다.
세계수의 뿌리를 거둔 탓에 더는 감정이 전달되지 않았는데도 알 수 있었다.
두 눈에 날 향한 불신과 언짢음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을 것이지….
뭐,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빠를 거다.
“잘 봐.”
그러면서 씨앗 심어놓기 스킬을 사용했다.
원래라면, 다 같이 이동하기 위해선 손을 맞잡거나 어깨를 짚는 등 나와의 신체접촉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이젠 그러지 않아도 됐다.
새싹이가 성장하면서 씨앗 심어놓기 스킬도 진화했기 때문이다.
[씨앗 심어놓기(S등급)] [세계수의 마나로 씨앗을 만들어 심을 수 있다.] [씨앗을 심어놓은 곳으로 이동할 수 있으며, 결계나 봉인 마법 속에서도 사용이 가능하다.] [한 번 사용한 씨앗은 꽃으로 자라난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씨앗으로 돌아간다.] [UP! 접촉하지 않아도 주변 동료들과 함께 이동할 수 있다.]곧 시야가 변했다.
최동훈이 영혼 상태로 찾아왔었던, 바로 그 파티장이었다.
***
백운천 간부들이 모인 파티장은 반짝이는 장식들과 달리 분위기가 밝지 않고 진중했다.
앨릭스 세계 헌터 협회장.
리롄제, 밀러, 스미르노프 등 그위친을 제외한 S급 헌터들.
한국을 포함한 각국 정부 관료와 헌터 협회장.
그리고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을 교황 프란치스코 2세까지….
굵직한 인사들이 홀로그램 통화로 연결돼 있었다.
– 앨릭스 협회장. 확실한 정보가 맞는 겁니까?
– 앞서 말했을 거요, ‘무라타마 신이치’ 협회장. 가능성이 클 뿐이라고.
– 그러니까 그 가능성이 얼마나 큰지를 묻는 겁니다. 오늘 이 일이 그냥 헛수고에 불과하다면, 그땐 어떡하실 겁니까?
– 흠….
앨릭스는 콧숨을 짧게 내쉬었다.
백운천이 갖고 온 정보는 정확하지 않았다.
본인이 말했던 대로 가능성의 문제.
크라우드가 테러를 저지를 가능성이 클 뿐.
그 테러가 이번 크리스마스에 일어나는 지도 확실치 않다.
일어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 천공.
“네. 신이치 협회장님.”
– 오늘 이 일이 헛수고가 되면, 어떻게 보상할 겁니까?
“보상…이요?”
– 뭘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반응입니까! 지금 세계 각지의 헌터들이 고생 중이란 말입니다! 이게 헛고생이 되면…! 당연히 보상을 해주셔야지요!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은 거 아닙니까?”
태천은 순진한 얼굴로 말했다.
그의 순진무구한 얼굴은 도희와 백운천 간부들의 얼굴을 붉히게 했다.
그들은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인가?’ 하는 생각으로 시선을 피했다.
– 하…! 말이 통하질 않는군!
신이치 협회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대꾸했다.
홀로그램으로 떠오른 면면들도 마찬가지였는데, 불안함도 함께 피어올랐다.
저런 인간이 마스터로 있는 길드의 정보가 과연 정확할 것인가?
그런 의심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 기사님이셔서 그런가? 현실을 전혀 모르시는군….
신이치 협회장이 비아냥거렸다.
시선을 슬쩍 피하던 백운천 간부들은 하나가 되어 신이치 협회장을 노려봤다.
그들은 태천과 도희에게 반해 따라온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남이 욕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욕을 해도 그들이 해야 했다.
러시아의 S급 헌터인 스미르노프도 신이치 협회장을 째려봤는데, 태천을 자신의 기사로 삼고 싶다는 마음은 여전한 모양이었다.
제 동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태천은 하하 웃었다.
“…그런 문제는 이따가 얘기하시죠.”
할 수 없이 도희가 끼어들었다.
태천은 누가 제 얼굴에 침을 뱉어도 하하 웃는 인간.
대신 나서주지 않으면 계속 당해줄 거다.
– 이따가 하라고?
“탐색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벌써 그런 문제를 논하는 건 아닌 것 같네요.”
– 이봐요. 하얀 성녀…!
– 난 하얀 성녀의 말에 동의합니다.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교황이 나섰다.
교황이 나서자 조금 소란스러웠던 분위기가 천천히 잠잠해졌다.
기세 좋게 떠들어대던 신이치 협회장도 입을 다물었다.
– 하얀 성녀의 말대로 탐색을 시작한 지 반나절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테러의 위험에서 완전히 안전해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벌써 보상이니 뭐니 하는 문제를 논하는 건 사리에 맞지 않는 것 같군요.
– 흠, 흠…! 흠!
신이치 협회장이 헛기침해댔다.
아무리 한 나라의 협회장이라고 해도 감히 교황의 발언에 딴지를 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극적이지는 않았으나 그에게 동조하던 다른 나라 관료들과 협회장들도 뻘쭘한 듯 시선을 피하거나 콧숨을 짧게 내쉬었다.
도희가 교황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고마움을 전했다.
– 교황님의 말씀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결과가 나오지 않은 문제에 떠드는 건 바보 같은 짓이지요.
– 크, 크흠…!
– 그래서. 난 결과가 나온 문제에 대해 논하고 싶소만.
– 그게 뭡니까, ‘웨스트 민스터’ 협회장.
앨릭스가 묻자 민스터 협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일랜드의 헌터 협회장의 홀로그램이 떠 있었다.
– ‘킬리언’ 협회장.
– …뭡니까. 민스터 협회장.
킬리언 협회장은 평소 사이가 좋지 못한 이가 이름을 부르자 못마땅한 얼굴을 지었다.
그는 민스터가 이런 자리에서 제 이름을 부를 때면 공격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공격하려는 내용은….
– 백운천이 전달한 정보에 따르면, 크라우드라는 테러 조직의 리더의 은신처가 아일랜드에 있다더군?
– …그렇더군요. 그래서요?
– 정말 몰랐소?
– 뭐? 지금 그 발언의 저의가 뭐요. 우리가 테러 조직을 숨겨주기라도 했다는 거요?
–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소만.
민스터 협회장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를 보자마자 킬리언 협회장은 테이블을 쾅 내리쳤다.
– 말하지 않긴! 내가 당신을 몰라?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똑바로 해보시지!
– 이런, 이런. 또 오해를 하시는군….
– 오해는 무슨!
– 나는 그저 도움을 주고 싶어서 말을 했을 뿐이오.
– 뭐? 도움?
– 당신네로는 그곳을 탐색하는 게 버거워 보여서 말이지.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제안하는 거요.
– 이….
킬리언 협회장이 이를 악물었다.
굳게 닫힌 입에선 지금 당장이라도 욕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두 사람을 바라보는 눈동자가 수십 개에 달하지 않았다면, 진작 튀어나왔을지도 모른다.
–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씀하시오. 우리는 언제나 손을 빌려줄 준비가 돼 있으니.
– 필요 없어!
– 그러시든지. 선택은 그쪽이 하는 것이니.
그러고는 민스터 협회장은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밀러의 홀로그램이 떠 있는 곳이었다.
칼끝이라도 겨눠진 것처럼 밀러는 입술을 살짝 비틀었다.
– …뭐죠?
–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서.
– 뭔데요?
– 에디탓 그위친은 왜 안 온 거요? 자연을 사랑하시는 드루이드께서는 속세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나?
– 그런 거 아니에요.
– 그럼?
– …….
밀러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모든 이들이 그위친이 이곳에 없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연락이 연결되지 않은 거다.
그위친은 명상하느라 연락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었다.
그렇다고 그가 있는 곳에 함부로 찾아갈 수도 없었다.
그곳은 A+등급 몬스터들이 득실거리는 던전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위친의 친구인 그들은 먼저 인간을 공격하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마음 편하게 진입할 만한 곳도 아니었다.
– 역시 속세에서 벗어나신 분인지라 연락을 드리는 것도 힘이 드시는 모양이로군.
– …….
밀러는 싱긋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않으면 솟아오르는 화를 참지 못할 것만 같아서다.
긁적긁적.
태천이 머리를 긁적이면서 한재임에게 물었다.
“저 사람 뭔데 저렇게 독설을 쏟아내?”
“흔한 기 싸움이지, 뭐.”
“기 싸움을 밀러에게 걸어? 미친 거 아니야?”
“영국이잖아. S급 헌터가 없는 나라 중에선 가장 헌터풀이 넓고 전력도 강하니 자신만만한 거겠지.”
“그렇다고 우리처럼 A+급 헌터가 있는 것도 아니잖아.”
“…있을지도 몰라.”
“응?”
“소문이긴 한데, 영국에 은둔한 강자가 있단다. A+급을 넘어 S급과도 겨룰 수 있는 강자가. 그게, 저 자신만만한 태도의 원동력일지도.”
“헤에….”
태천이 흥미로운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은둔한 강자가 누구일지 궁금한 듯 턱을 쓸어넘기기도 했다.
그때,
– 허허허….
리롄제가 웃음을 흘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한재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설마 내가 한 말이 들렸나?
S급과도 겨룰 수 있다는 말이 썩 즐거운 말은 아닐 터….
그런 걱정을 하며 리롄제를 바라봤는데, 노인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재임은 노인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봤다.
파티장 한가운데에 푸른 꽃이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이 뭘 뜻하는지 아는 백운천 간부들은 빙긋 웃었다.
“……!”
그러다가 당황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지금 우리가 백도운이 돌아왔다고 웃은 거야?
화악…!
한가운데 자란 푸른 꽃에서 빛이 내뿜어지더니 곧 도운이 나타났다.
그 주변엔 무기와 임페일, 구조 대상자였던 최동훈이 함께 서 있었다.
“…깜짝이야. 얼굴이 대체 몇 개야?”
도운은 오자마자 얼빠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