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7
제398화
“궁금해도 안 가르쳐줘.”
한진환이 피식 웃었다.
이 양반이?
꼭 가르쳐줄 것처럼 행동하더니만….
“아무튼. 가르쳐주겠다는 약속은 지킨 거다?”
휘릭, 착!
그는 나무젓가락에 베이컨을 말며 말했다.
약속이라….
검기와 검강을 쓸 수 있게 됐으니 지킨 것은 맞다.
그런데 어쩐지 당한 것 같은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의 도움으로 검기를 쓸 수 있게 된 것은 맞았지만, 검강은 자연스럽게 쓰게 됐기 때문이다.
“그거 아냐? 네가 ‘검강의 극의’라고 할 수 있는 버스트 모드-”
“광합성 모드요.”
“어쨌건. 그걸 쓰는 걸 보고 얼마나 놀랐는지? 검기도 못 쓰는 놈이 말이야.”
“아하….”
확실히, 한진환으로선 웃기긴 하겠다.
원래 검기, 검강, 버스트 모드 순으로 습득할 테니까.
하지만 난 세계수 퀘스트를 깨고 광합성 모드를 얻었기 때문에 그 반대가 됐다.
“하지만… 넌 아직 제대로 쓰고 있는 건 아니야.”
“그렇겠죠. 쓰고 나면 선배랑 달리 기절했었으니까.”
“올 수 있겠어?”
올 수 있겠냐고?.
한진환의 질문에 미소를 짓는다.
그 질문은 잘못됐다.
“…이미 왔구나?”
그가 깨달았다는 듯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마따나 이제 광합성 모드를 써도 기절하지 않게 됐다.
새싹이가 성장하면서 세계수 스킬인 광합성 모드도 진화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젠 사용해도 페널티가 발생하지 않는다.
절전 기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충전만 계속하면 연달아 사용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어느새 이 만큼 충전됐지?
아까 한진환한테 번개로 근육 마사지를 받은 덕분이려나.
“이걸로 네가 세 번째네.”
“세 번째요?”
“두 번째는 염제 그 아저씨거든.”
염제라면, 김서준과 조주현의 스승인 윤건을 말하는 게 분명하다.
윤건은 현재 우리나라 1위인 마인 길드의 수장이기도 했다.
우리 백운천이 치고 올라와서 명성에 금이 가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1위는 아직 마인 길드였다.
아직은 말이다.
“과연, 선배 라이벌답네요.”
“라이벌 아니거든? 저번에 힘의 격차를 보여줬다고. 완전 하늘과 땅 차이였어.”
“…….”
“…뭐. 대단한 아저씨라는 건 인정하지만.”
한진환이 젓가락에 말았던 베이컨을 뜯어 먹으며 대답했다.
힘의 격차를 보여줬다, 라….
어딘가에서 둘이 한 판 붙었었나 보다.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한진환이 압승한 것 같고.
“저기….”
“응?”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우린 고개를 돌렸다.
유재이가 손을 들어 올린 채로 한진환을 쳐다보고 있었다.
질문할 게 있는 표정이었다.
“대화 중에 실례해도 될까요? 한진환 님.”
“아. 인사가 늦었네. 재이네 대장간의 주인이시죠? 아르카를 제작하신 분이고.”
“맞아요. 물론, 제 실력보다는 재료가 워낙 좋아서 가능한 거였지만요.”
“실력이 뛰어나니까 그 좋은 재료를 다루신 거겠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이의 얼굴이 쑥스러운 듯 붉게 물들었다.
뭐지.
홍수정도 그러더니, 재이도 한진환 팬이었나?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자리를 15년 넘게 꿰찼으니 그럴 만도 하긴 하다만….
썩 기분 좋은 모습은 아닌데 그래.
“아무튼, 질문이 있어서 끼어들었어요. 한진환 님.”
“님 자는 빼도 돼요. 편하게 불러요.”
“…그러니까, 검강이란… 검기에 속성 에너지를 담은 거죠?”
“그렇죠.”
“그러면… 혹시 이것도 검강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
재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는 한진환에게서 고개를 돌려 테이블을 둘러봤다.
그녀의 시선은 곧 한재임 앞에서 멈췄다.
갑작스러운 시선에 녀석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다가 이내 깨달았다는 듯 “아!” 하고 탄성을 흘렸다.
마법 주머니에서 스톨로 카풀루스를 주섬주섬 꺼낸다.
한진환이 그것을 단번에 알아봤다.
크기와 형태가 달랐으나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건, 설마….”
“네. 아르카를 작게 만든 버전이에요. 이름은 스톨로 카풀루스. 줄여서 스카라고 부르고요.”
“아르카를…. 역시 대단하시네요. 재료가 없어서 더 못 만든다고 들었는데요?”
“그, 그렇게 됐어요. 재임 씨.”
재이는 한재임을 부르며 대충 넘겼다.
내가 세계수 나뭇가지를 잔뜩 가져왔다고 말할 수는 없던 탓이다.
한진환도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헌터의 눈을 뜬 채 스카를 눈여겨보기는 했지만.
스카에선 곧 푸른 마나 칼날이 뿜어져 나왔다.
“오. 크기를 줄였군요?”
“네. 보시다시피 크게 만들 필요가 없거든요.”
“하하. 도운의 아르카가 워낙 크긴 했죠. 그런데, 이걸 갑자기 왜 보여주시는 거죠?”
설마 새로 제작한 무기 자랑하는 거냐?
그런 비아냥이 들린 것 같다면 착각인 걸까.
재이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젓는 걸 보면 그저 착각은 아닌 것 같다.
“아, 아뇨! 재임 씨. 부탁해요!”
“흠…. 알겠습니다.”
한재임은 못마땅한 듯 콧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대답은 “알겠습니다.”였는데, 딱히 숨길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 분명했다.
옳은 판단이었다.
재이가 새싹이의 나뭇가지로 제작한 스카의 본질은 바로 무기.
고이 모셔두는 장식용이 아니다.
곧 스카의 마나 칼날에서 서늘한 냉기가 뿜어져 나왔다.
얼음 에너지가 담겨 얼음 속성의 칼날이 만들어진….
어라?
속성 칼날?
“검강…이잖아?”
한진환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기가 차서는 헛웃음을 흘려댔다.
“역시, 이거 검강 맞았구나….”
재이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수정이 벌떡 일어났다.
흐뭇함이 물씬 풍기는 얼굴이었고, 기쁨과 감격이 가득 차서 벅찬 얼굴이기도 했다.
또 잘난 척하는 듯한 얼굴은 마치….
“그거 봐요! 내가 완전 대박이라고 했죠! 우린 유재이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잖아요!”
-라고 떠들어댈 것 같았는데, 정말로 떠들어댔다.
역사에 길이 남을 콜라보라고도 했었지?
알고 보니 정말 그 말대로였네….
그런데 지금 정 세실리아 수녀가 째려보고 있다는 건 깨달아줬으면 좋겠다.
수녀 앞에서 종교를 만들어야 한다고 떠들다니.
미친 거야?
“백도운. 저건, 비밀로 하는 게 좋겠다.”
“비밀로 하라고요?”
“그래. 누구나 검강을 쓸 수 있게 해주는 무기? 저건 절대 세상에 풀려선 안 돼.”
“아.”
그가 뭘 걱정하는지 알겠다.
검기를 쉽게 터득하고 힘에 취하게 되는 헌터가 나오는 걸 걱정했던 그다.
저것도 같은 이유로 걱정하는 걸 거다.
“잠, 잠깐만요! 한진환 선배님. 그럼 우리 이거 사용하면 안 되는 거예요?”
최희주가 벌떡 일어나 따졌다.
답지 않게 공손히 따지는 그녀는 어느새 꺼냈는지 스카를 품에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쟤는 쌍검을 다루는 녀석인데 한 자루로 괜찮나?
형평성 문제로 한 자루만 만든… 것일 리는 없다.
저 바보 녀석들이 그런 걸 신경 쓸 놈들이 아니니까.
“뭐? 아, 설마…!”
홱, 홱!
한진환이 고개를 세차게 돌려 가며 테이블을 돌아본다.
그의 시선이 닿을 때마다 녀석들은 흠칫흠칫 놀라며 스카를 손에 쥐었다.
수 번의 움찔거림을 보고 한진환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고 보니 간부들 전부 지녔다고 했지…. 즉,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는 거네?”
“…아니에요.”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니…. 정부가 알면 가만히 있지 않겠는데요.”
“아, 아니라니까요?”
재이가 부정했지만, 한진환은 믿지 않았다.
뭐….
저렇게 시선 피하며 찔리는 사람처럼 말하면 나 같아도 안 믿었을 거다.
그가 턱을 쓸며 말했다.
“마나 칼날까진 괜찮을 거야. 백도운이 아르카를 계속 휘둘러 댔으니까. 하지만….”
“속성 에너지를 사용하는 건 피하는 게 좋겠다는 겁니까?”
“역시 안경쟁이. 똘똘하네.”
“제 이름은 한재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안다니까. 안경쟁이.”
“…….”
한재임은 싱긋 웃었다.
오, 저 만사 다 포기한 미소를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향하는 걸 보다니.
대단-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한 일은 아니지…!
음, 음!
“휴우우….”
“다행이다….”
“압수당하는 줄 알았네….”
“그냥 압수당할 생각은 없었지만 말이야.”
최희주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걸 시작으로 저마다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한진환이 앞에 있는데 그냥 압수당할 생각은 없었다고까지 말하다니.
스카가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나 보다.
하긴.
나도 아르카가 마음에 드니까 이해는 한다.
“저기, 이거….”
“이게 뭐죠?”
“이번에 제작한 팔찌예요.”
재이는 한진환에게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인면오공의 독샘을 꿰어 만든 묵주 팔찌다.
“설명서를 읽으면 아시겠지만, 독을 흡수하고 정화하는 팔찌예요. 그걸 자신의 마나로 다시 흡수할 수도 있고요.”
“오오. 굉장한 팔찌네요. 그런데 이걸 왜 내게…? 아. 뇌물?”
“…….”
슬쩍….
재이는 시선을 피했다.
그러면 누가 봐도 뇌물을 주는 것처럼 보이잖아, 재이야.
“하하. 걱정하지 마요. 비밀로 하라고 한 게 난데, 내가 말하겠어요?”
“앗. 그것도 그렇네요….”
재이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왜 그 생각을 못 한 것인지 스스로 부끄러운 거다.
아무래도 며칠 동안의 밤샘 철야에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모양이다.
그런 재이의 모습이 퍽 귀여운지 한진환이 킥킥 웃으며 팔찌를 챙겼다.
썩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군.
[세계수가 관리인을 바라봅니다.]뭐.
왜.
“만복의 근원 하나님….”
새싹이에게 퉁명스럽게 대답하는데, 뜬금없이 찬송가가 들려왔다.
이 자리에서 찬송가라면….
“아. 원장 수녀님이시네요.”
정 세실리아가 스마트폰을 꺼내며 말했다.
역시 그녀의 벨소리였다.
자신이 수녀라는 걸 저렇게 피력할 필요가 있을까.
옷차림으로도 충분하지 싶은데.
“여보세요?”
– 정 세실리아 수녀?
“네. 저예요. 참, 이거 스피커폰이에요. 다들 옆에 있거든요.”
– 자, 잘됐다. 그럼 도운이도 있니?
“나 여기 있어요. 왜요?”
정 세실리아가 대답하는 대신 내가 먼저 대답했다.
무슨 일 있나?
다들 옆에 있다고 했는데 콕 집어 날 찾다니….
아줌마답지 않은걸.
– 도운아.
“왜요?”
– …….
펑!
도희가 내게 힐을 썼다.
아야….
세계수의 나무껍질이 발동돼 있는데도 꿀밤을 때린 듯한 충격이 전해졌다.
하여간 대단하다니까.
“…무슨 일 있어요?”
– 너…. 혹시 해외에 있는 게이트에 가니?
“어라? 어떻게 알았어요?”
아, 맞아.
원장 아줌마 교황이랑 아는 사이였지.
나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전화 통화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 거기 너 혼자 가니?
“아마도요.”
– 가지 마.
“네?”
– 가지 말라고!
“……?”
왜 이래?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도희를 쳐다본다.
혹시 왜 이러는지 아나 싶어서다.
하지만 도희도 나처럼 영문을 몰라 눈만 끔뻑끔뻑 떴다.
정 세실리아도 마찬가지.
“S등급 게이트라서 그래요? 걱정하지 마요. 자세하게 말은 못 하는데, 별일 아니니까.”
이렇게 만난 드래곤이 벌써 두 번이다.
그들은 세계수 관리인인 내게 존중의 태도를 보였고, 블랙 드래곤도 그럴 터였다.
이 사실을 한진환이 없었다면 솔직하게 말해줬을 텐데.
“…….”
저 양반도 조금 이상하네.
갑자기 눈은 왜 찌푸려?
– 꿈….
“네?”
– 꿈자리가 뒤숭숭해서 그래…. 그러니까 가지 마, 응?
“무슨 꿈이었는데 그래요?”
– …….
아줌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어떤 꿈을 꿨는지 가르쳐줬다.
꿈에서 내가 크게 다치거나 죽었겠지.
거론하고 싶지도 않을 만하다.
“하여간 걱정은 팔자라니까. 정말 별일 없을 테니 안심하세요.”
“그래요. 다른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오라버니는 괜찮아요.”
도희가 내 편을 들어주었다.
평소라면 원장 아줌마의 편을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었다.
전대 세계수가 보낸 퀘스트에 따르면 내가 블랙 드래곤을 만나러 가지 않으면 인류가 멸망하게 될 테니까.
아.
혹시 전대 세계수가 퀘스트를 보낸 게 이것 때문이었나?
인류가 멸망할 거라는 실패 페널티를 보지 않았다면, 난 아줌마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음에 만나러 가면 된다면서 말이다.
– 도희까지 그렇게 말한다면…. 태천아.
원장 아줌마는 방향을 바꿨다.
아마 태천이한테 나를 말려보라고 부탁하려는 모양이다.
세상에 내 의지를 말릴 수 있는 건 도희와 태천이뿐이었으니까.
뭐….
이젠 새싹이를 포함해 늘어났지만, 아줌마는 그 사실을 모른다.
– 부탁할 게 있는데 들어줄래?
“뭔데요? 죄송하지만, 도운이 말리라는 거면 어려울 거 같아요….”
당연한 일이다.
태천이도 내가 베르동 협곡에 가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으니까.
– 알아. 그래서 다른 거 부탁할 거야. 아마 도운이 말리는 거보다 쉬울걸?
“그렇다면야…. 알겠어요. 말씀해보세요. 최대한 들어드릴게요.”
– 고마워…! 아줌마가 너한테 부탁하려는 건….
부탁하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