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398
제399화
– 그곳에 도운이랑 같이 들어가 줘.
원장 아줌마가 한 부탁은 생각지도 못한 거였다.
베르동 협곡 게이트에 같이 들어가 달라니….
S등급 게이트인 그곳에 들어가려면 S급 헌터여야 한다.
현재 A급 헌터인 태천이는 진입할 수 없다.
이곳에서 나와 같이 들어갈 수 있는 인원을 굳이 꼽자면, 무기와 임페일 그리고 한진환일 것이다.
A+급이니 최소한의 자격은 있는 셈이니까.
앨릭스는 날 S급으로 만들고 싶은 마음에 법 운운하면서 테스트를 치르게 했지만.
“원장 수녀님. 그건 안 될 것 같습니다.”
태천이 선뜻 대답하지 못하자 한재임이 끼어들어 거절 의사를 밝혔다.
스마트폰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송구스럽다는 듯 말한다.
“수녀님은 잘 모르시겠지만, 지금 백도운이 진입하려는 곳은 S등급 게이트로, 태천이는 자격이 없습니다.”
– 재임아.
“네, 원장 수녀님.”
– 시끄러워.
“…네?”
– 내가 지금 태천이한테 말하고 있잖니. 왜 끼어들어.
“…….”
– 넌 다 좋은데 꼭 끼어드는 게 문제야. 잠깐 조용히 있으렴.
“…죄송합니다.”
한재임이 풀이 죽어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툭, 툭.
이현욱이 녀석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그 옆의 서인철은 “내 저럴 줄 알았지.”라고 중얼거리며 키득키득 웃었다.
– 태천아.
“네, 원장님.”
– 내 부탁, 들어줄 거지?
“흠….”
태천이는 콧숨을 내쉬며 팔짱을 꼈다.
곤란하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데, 어쩐지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었다.
자신감…?
“이 부탁…. 새삼스러운 거 알죠?”
– 새삼스럽다니?
“뭘 그런 걸 부탁해요? 도운이가 가는 곳에 제가 같이 가는 건 당연한 건데.”
– 아아! 고마워, 태천아! 네가 같이 가겠다니, 덕분에 한시름 놓겠어!
원장 아줌마가 신나서는 목소리를 높였다.
너무 좋아하는데?
꿈자리가 뒤숭숭하다느니 어쩌니 걱정해놓고서, 태천이가 같이 가는 것만으로 모든 게 해결됐다는 태도다.
설마… 아줌마는 태천이의 그 이질적인 마나에 대해 아는 건가?
아니, 그럴 리는 없나.
나한테 비밀로 한 힘을 아줌마한테 밝혔을 리가.
“아줌마, 내가 그렇게 못 미더웠어요?”
– 어머. 당연한 거 아니니? 네가 벌여온 사건 사고가 있는데?
“그 사건 사고 대부분을 태천이와 함께했다는 건 기억에서 지운 거예요?”
– 함께하긴. 너 때문에 휘말린 거겠지!
응, 응.
원장 아줌마의 말에 모든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과거를 잘 모르는 유재이와 홍수정, 무기와 임페일까지도.
일말의 의심도 없이 확신에 찬 얼굴들이었다.
어떻게 된 게 날 믿어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지?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그럼 이태천이 관리인에게 휘말린 게 아니냐고 질문합니다.]물론, 보통 휘말린 게 맞기 하지.
나와 태천이가 함께한 그 모든 사건 사고의 9할은 내가 벌인 짓이니까.
[…….]그래도 나머지 1할은 태천이 때문이었다고?
완벽하게 나만 잘못을 저지른 건 아니야.
[세계수는 참으로 졸렬한 변명이라고 나무랍니다.]졸렬하다니….
우리 새싹이는 그런 어휘를 어디에서 배운 걸까.
한숨을 내쉬는 동안, 태천이와 원장 아줌마의 대화가 짧게 이어졌다.
– 부탁 들어줘서 정말 고마워. 난 태천이만 믿을게!
“별말씀을.”
– 그럼 아줌마 용건은 이걸로 끝! 이만 끊을 테니, 다들 크리스마스….
“드디어 자신이 아줌마라는 걸 인정하는 거예요? 보기 좋네요.”
– 잘 들, 보내렴….
빠득빠득.
아줌마가 이를 갈며 인사했다.
펑!
도희가 또다시 내 머리를 향해 힐을 쏘았다.
전보다 강한 위력이 담겨 있다.
점점 꿀밤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은데….
– 메리… 크리스, 마스…!
저게 인사야 저주야?
목소리만 들어서는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인 줄 알겠는데.
수녀님이 저래도 되나 몰라.
“메리 크리스마스…!”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안녕히 들어가세요!”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는지 다들 밝고 해맑게 대꾸했다.
시무룩하게 앉아있던 한재임조차도 활기차게 인사했다.
답지 않은 모습을 보게 돼서 그런가?
눈꼴이 시렸다.
뚝….
전화가 끊기자 최희주와 김보민을 중심으로 몇 명이 나를 노려보았다.
시선을 슬쩍 피하며 화면을 두드렸다.
이제 두드릴 필요가 없는데도 습관인지라 쉽게 바뀌지를 않았다.
가만히 내버려 두다가도 의식을 딴 데 두면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두드리고 있었다.
이 꼴을 보니, 내가 자는 와중에도 화면을 두드려댄다는 새싹이의 말이 이해가 갔다.
“제정신이야?”
통화가 완전히 끊긴 것을 확인한 한재임이 따지듯 물었다.
날 째려보던 녀석들의 시선도 그쪽으로 옮겨간다.
태천이가 알겠다고 말할 줄 몰랐을 테니 당연했다.
다른 녀석들뿐만 아니라 나도 거절할 줄 알았기 때문에 적잖게 놀랐다.
“그야 당연히-”
“아니. 제정신일 리가 없지!”
“어, 나 제정신 아닌 거 확정이야?”
“정신이 똑바로 박혔으면 원장님한테 그렇게 대답할 리가 없잖냐!”
“그런가?”
“그런가? 그런가아? 베르동 협곡 게이트는 S등급 게이트라고…! 앨릭스 말 못 들었어? 거기 들어가려면 S급 헌터가 돼야 한다잖아!”
“알아. 나도 들었어.”
“들었다는 놈이 같이 들어가겠다고 대답해? 원장님 실망하는 꼴 보려고 작정이라도 한 거야?”
“흠….”
태천이는 목을 긁적였다.
천천히 테이블에 앉아 그를 쳐다보는 녀석들을 돌아본다.
불안, 걱정, 근심, 염려….
여러 감정이 섞인 눈길을 마주한 태천이는 곤란하다는 듯 웃었다.
그 미소는 마치 ‘왜 내가 못 들어갈 거로 생각하는 거야?’라고 묻는 듯했다.
설마, 태천이 저 녀석…?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 [이태천의 마나는 여전히 순수하다고 전합니다.] [아직 마나 성질이 순수하고 완전하게 되지는 않았다고 설명합니다.]그래?
근데 왜 저렇게 자신만만해?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하긴.
새싹이 네가 알 리가 없지.
속마음은 읽어도 생각까지 읽어내진 못하니까….
“어쨌거나… 이태천 너도 백도운이랑 같이 S급 헌터 테스트를 치러야겠다?”
“아. 아직 있었어요?”
“그래. 있었다.”
한진환은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케이크 위의 딸기를 먹었다.
먹을 거면 다 먹을 것이지 맛있는 딸기만 쏙쏙 빼먹네.
“이태천. 할 수 있겠냐?”
“…….”
태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원장 아줌마에게 대답했을 때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려 웃을 뿐이다.
그게 대답이 되었는지 한진환이 킥킥 웃는다.
그러고는 질문을 던졌는데, 테스트에 관련해서가 아니었다.
“아까 그분이 너흴 키워주신 수녀님이시냐?”
“최 클라우디아 수녀님이세요.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키워주셨죠.”
도희가 자랑스럽게 양팔을 벌리며 대답했다.
그러자 테이블에 앉은 녀석들이 히죽 웃어댔는데, 저마다 아줌마와 함께한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도 그랬다.
추억 대부분이 내가 놀리고 화가 난 아줌마가 쫓아오는 내용이었지만.
[세계수가 관리인을 게슴츠레 바라봅니다.]흠, 흠.
철이 없었어, 그땐….
당연한 걸 뭘 물어?
지금도 없지!
“흐음….”
한진환이 눈을 찌푸렸다.
그러고 보니, 아까 원장 아줌마랑 통화할 때도 저렇게 눈을 찌푸렸었다.
왜 그러지?
“목소리가 굉장히 좋으시네.”
“뭐?”
“묘하게 자꾸만 듣고 싶어지는 목소리란 말이지. 분명 예전에 이런 목소리를… 너희 뭐하냐?”
한진환이 말을 하다 말고 묻는다.
천천히 나와 다른 녀석들을 훑어본다.
우리의 손엔 무기가 쥐어져 있었다.
아르카를 포함해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제작된 총 13개의 무기의 끝이 한진환을 향했다.
유일하게 다른 것은 정 세실리아가 내민 십자가뿐이었다.
대표로 나서서 그에게 경고했다.
“우리 아줌마한테 치근덕거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뭐, 뭐?”
“그러다 사달 나는 수가 있거든.”
“하…!”
한진환은 코웃음을 쳤다.
당황스러움이 얼마나 컸는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너흰 대체 날 뭐로 보는 거냐? 설마 내가 수녀님한테 집적대겠어?”
“모르죠. 워낙 신뢰감이 없는 분이시니.”
도희가 투덜거렸다.
다른 녀석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아까까지만 해도 팬심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눈을 한 녀석이 한 명도 없었다.
내게 원장 아줌마가 소중한 사람이듯 녀석들에게도 그렇기 때문이었다.
“신뢰가 없다니…. 내가 언제 약속 어긴 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말하네.”
“제주도 안 왔잖아요.”
“그 일을 말하는 건 좀 억울한데. 오빠한테 못 들었어? 그때 난 다른 크라우드 간부 놈들이랑 싸우고 있었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더 실망이에요. 우리나라 헌터 랭킹 1위가 겨우 두 놈을 상대하지 못하다니. 뇌제라는 별명이 울겠어요.”
“…….”
그가 입을 꾹 다문다.
나를 돌아보고 어떻게 해보라는 듯 턱짓으로 도희를 가리킨다.
안타깝게도 이곳에서 도희를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설득당해서 도희의 앞잡이가 되면 됐지.
“원장 수녀님한테 치근거리지 마세요.”
“미치겠네, 진짜. 안 한다니까?”
“역시 불안해. 아무래도 새로 결계를 쳐야겠어….”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내가 눈이 얼마나 높은데. 수녀? 수녀를 거들떠보기나 할 것 같아?”
“지금 우리 언니 무시한 거예요? 우리 언니가 얼마나 예쁜데 감히 그딴 소리를…!”
“……어쩌라고!?”
한진환이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도희를 포함한 백운천 녀석들은 한진환에게 눈을 부라렸다.
나는 도중에 그만뒀다.
왜냐하면, 아줌마한테 치근거리는 걸 보게 됐을 때 죽여도 늦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
파티장은 조용했다.
다들 떠드는 것도 지친 거다.
크리스마스가 된 지도 벌써 7시간이나 지났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다들 A급 헌터들이라 24시간 깨어 있는 거야 별문제도 되지 않지만 계속 왁자지껄 떠드는 건 다른 얘기였다.
자연스럽게 헌터가 아닌 이들은 파티장을 떠났다.
유재이는 밤늦게 홍수정과 함께 떠났고, 정 세실리아는 새벽에 첫차를 타고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우웅…!
스마트폰이 울려 바로 확인했다.
[지상욱 : 형님,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또 인사야….”
밤 동안 크라우드에 관한 연락은 오지 않았다.
12시 정각 김재식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우연후, 최희석, 배수현 등등 그간 알고 지냈던 이들에게서 안부 연락이 왔다.
아.
개중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인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바로 아일랜드다.
공식 SNS를 통해 나와 백운천에 인사를 보낸 것이다.
글렌비 던전을 1 대 9 비율로 소탕해주겠다는 말이 그만큼 기뻤나 보다.
“아무래도… 너무 성급하게 생각했던 것 같은데.”
“성급했다뇨?”
“제주도 때를 생각해봐. 크라우드는 몰래 숨어들어 몇 개월 동안 준비를 했었잖아.”
“그렇죠. 바깥의 도움을 차단하기 위해 결계를 치고 워프 게이트를 통제했었어… 아!”
도희는 금세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깨달았다.
“오라버니 말이 맞네요. 이번엔 국가가 목적이니까, 더 비밀스럽게 움직이고 있을 거예요.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싶진 않을 테니….”
“과연…. 길게 봐야 하는 사안이었다는 거군.”
한재임도 바로 동의했다.
그럴듯했는지 다른 녀석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네가 웬일이냐?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한진환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맞는 말 같다. 내가 앨릭스 협회장한테 전화를… 오. 이 인간도 양반은 못 되네.”
그러면서 스마트폰 화면을 우리에게 내보인다.
화면엔 앨릭스 헌터 협회장이라는 이름이 떠 있었다.
그가 전화를 받자마자 앨릭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진환. 백운천에 연락을 연결해주겠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나 지금 백운천에 있으니까. 이거 스피커폰이고.”
“백도운입니다. 혹시, 뭐라도 찾아낸 겁니까?”
이름을 밝히며 끼어들자 앨릭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한 게 분명하다.
역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린 게 맞나 보다.
– 아무래도 우리 예상이 잘못된 것 같네. 제주도 때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크라우드는….
“거기까지만 말씀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 알겠다고?
“우리도 마침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 그런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돼서 좋군. 그래서 우린 경보 조치를 한 단계 격하하기로 했네. 물론 탐색은 계속 진행할 거지만.
“저도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 그리고… 글렌비 던전에 있는 은신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나오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좋은 생각 같지는 않은데요.”
– 어째서지?
그야, 크라우드 놈들은 제주도 사건 때 최소 3개월 이상 처박혀 있었으니까.
이번에도 그럴 게 뻔하고.
“언제 돌아올 줄 알고요?”
– 아.
나지막이 탄성을 내뱉는다.
이어서 헛웃음을 흘렸는데, 왜 그런 간단한 사실을 깨닫지 못했는지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그도 우리처럼 24시간 이상 깨어 있었으니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은 게 분명하다.
자리가 자리인 만큼 더 피곤한 하루를 보냈을 테고.
국가 간의 시답잖은 견제와 기 싸움 같은 것 때문에.
–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더 열심히 탐색하는 것뿐이군….
“그렇죠, 뭐.”
– 끙….
“아, 맞다. 베르동 협곡 게이트 관련해서 말씀드릴 게 있는데요.”
– 왜? 테스트를 치르면서까지 진입하고 싶진 않나?
“그런 게 아니라, 한 사람 더 같이 들어가고 싶어서요.”
– 한 사람 더? 누구?
“태천이요.”
– 천공? 안 되네. A급이잖나.
“등급을 올리면요?”
– ……호오.
앨릭스가 흥미로운 듯 감탄을 흘렸다.
그러자 한진환이 스마트폰을 태천이 쪽으로 내밀었다.
사실 스피커폰이라서 거리는 별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이런 건 원래 기분 문제니까.
“전화 바꿨습니다.”
– 자네… 자신 있나? 테스트가 쉽지는 않을 거네.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어서 떨어지면 큰 창피를 당할 것이고.
“흠…. 솔직하게 말할까요?”
– 물론이지.
“S급 헌터 테스트. 쉬울 것 같습니다.”
– 쉬울 것 같다고…?
“네. 도운이 말리는 것보다요.”
– …….
침묵이 흘렀다.
스마트폰 너머에 있는 앨릭스는 분명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고 있을 것이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백운천 녀석들처럼 말이다.
그때, 한재임이 평온한 얼굴로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침묵을 깨뜨렸다.
“굉장한 설득력인데 그래. 반박할 말이 안 떠올라.”
“그, 그러게….”
“나도 지금 설득됐어.”
뒤이어 다른 녀석들이 동의했다.
아니.
내가 뭐 어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