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10
제411화
1회전 대련은 스미르노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온 마나를 담고 내지른 리우이호의 주먹을 스미르노프가 막아낸 것이다.
물론, 주먹엔 가공할만한 위력이 담겨 있었기에 스미르노프는 결국 거인화를 썼다.
놀라운 점은 평소처럼 온몸을 거대하게 바꾼 게 아니었다는 거다.
놈은 부분 변화를 썼다.
그리고 울릉도 게이트에서 그위친이 그랬던 것처럼 주먹을 내뻗을 때만 거대하게 바꿨다.
그위친한테 한 대 맞더니 터득했었나 보다.
아니면….
“커지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강아지야.”
그위친이 했던 말대로 한낱 강아지로 남지 않고자 애썼던 것일지도.
격투기를 훈련한 것도 그것 때문이겠지.
그냥 주먹을 내지르는 것과 정확한 자세로 주먹을 내지르는 건 그 위력이 전혀 다르니까.
옆에 서 있던 태천이도 그리 생각했는지 말했다.
“리우이호 씨도 아쉽게 됐네. 설마 스미르노프가 격투기를 훈련했을 줄이야.”
“그런 훈련도 하지 않고 S급 헌터가 됐었던 게 이상한 거지.”
“그렇긴 해.”
“뭐. 그래도 아쉽다는 말은 틀렸어.”
“응?”
“리우이호는 아마-”
“그럼! 2차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앨릭스 협회장의 목소리가 내 목소리를 지워 버렸다.
내 말을 들으려던 태천이 눈을 찌푸리며 경기장을 바라봤다.
경기장엔 리롄제가 어느새 올라와서는 태천을 노려보고 있었다.
태천을 향한 불쾌함이 노골적으로 느껴졌다.
여전히 태천이가 1차 테스트에서 통과한 게 못마땅한 모양이다.
“…이거 순서 잘 못 짠 거 아냐?”
“응?”
“그렇잖아. 수제자가 시험에 떨어진 스승과 대련이라니… 괜찮은 거 맞아?”
“그게 아까 하려던 말인데. 아마 괜찮을 거야. 리우이호는 테스트에 떨어진 게 아니니까.”
“뭐? 어째서?”
태천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어째서냐고?
살벌한 분위기로 진행되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대련이기 때문이다.
누가 더 강한지 정하기 위한 결투가 아니다.
스미르노프가 이겼다고, 리우이호가 졌다고, 테스트의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 일이 아닌 거다.
톡, 톡.
그 사실을 설명해주지 않고 검지로 앞을 가리켰다.
“그만 궁금해하고 네 할 일이나 하셔.”
“아, 깜빡했다.”
태천은 뺨을 긁적이다가 경기장 위로 올라갔다.
깜빡했다니.
바로 조금 전에 앨릭스가 2차전 시작하겠다고 말했었는데.
경기장 위로 올라간 태천이 나를 돌아봤다.
“참. 생각해 보니 깜빡한 게 또 있었다.”
“……?”
“2차 테스트. 나 그 힘 안 쓰고 통과했어.”
“아.”
그 말대로다.
힘 자체는 썼었지만, 그건 내가 발사한 솔라빔을 막느라 썼던 거다.
2차 테스트에 통과하기 위해 썼던 게 아니었으니 내기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내기 내가 이긴 거다?”
“쳇….”
진심으로 혀를 찼다.
도희에게 대신 혼나주기를 얻지 못하다니!
낭패도 이런 낭패가 없었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내기에 대해 굳이 지금 말을 한다는 건….
“리롄제한테 쓰려고?”
“써야지. 안 쓰면 무난하게 공격 막아내다가 부전패 당할 것 같은데.”
“부전패, 라…. 대회도 아니니 상관없을 거래도 그러네.”
“응?”
“아냐, 아무것도.”
중얼거리는 걸 제대로 듣지 못한 태천에게 손을 휘저었다.
자기가 자기 힘을 쓰겠다는데 굳이 말릴 필요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권장하는 게 나을지도.
현재 태천이의 갑작스러운 테스트 참가에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눈앞의 리롄제도 태천이가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을 불편해하고 있었고.
내가 아니라 태천이를 대련 상대로 선택한 것도 그래서겠지.
그런 상황이었으니 태천이는 본 실력을 드러내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할 필요가 있었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
“그럴 생각이야. 다녀올게!”
태천이 밝게 말하며 경기장 중심으로 걸어갔다.
“다녀올게!”라니….
누가 보면 소풍 떠나는 줄 알겠네.
지금 경기장엔 사나운 맹수가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태천을 향한 리롄제의 시선은 관리인을 향했던 것과 비슷하다고 전합니다.]나를 향하던 것…?
그게 뭔데?
[세계수는 아니꼬운 시선이라고 밝힙니다.]“…….”
톡톡….
톡톡톡 톡톡…!
***
도운이 스마트폰 화면을 마구 두드리는 동안, 태천과 리롄제의 대련이 시작됐다.
그리고 대련은 일방적이었다.
리롄제가 공격을 퍼붓고 태천이 방패로 막아내는 그림이 한동안 이어졌다.
태천이 경기장에 오르면서 했던 “무난하게 공격 막아내다가 부전패 당할 것 같다”라는 짐작대로였다.
“과연! 세계 최고의 탱커라고 자신할 만하구나!”
공격을 이어나가던 리롄제가 태천을 칭찬했다.
하지만 그건 순수한 칭찬이 아니었다.
자신의 공격을 막아내기만 하는 태천을 향한 조롱이었고 비아냥이었다.
막고만 있을 거냐?
그럴 거면 뭐하러 시험을 치르고 있는 거냐?
그러한 속뜻을 을 알아차린 태천은 봄날 햇살 같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뭐라?”
“제가 누구인지는 이제부터 확실히 보여드리겠습니다.”
“하…! 끼리끼리 논다고, 네놈도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는…!”
팟…!
리롄제가 곧바로 거리를 벌렸다.
자신이 말을 하고 있었다는 것도 잊은 채로 태천을 노려보았다.
그 시선에도 태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뭐냐?”
“네?”
“그 이질적인 기는 대체 뭐냔 말이다!”
“이런 거죠.”
쾅!
태천이 오른발로 땅을 세차게 짓밟았다.
그러자마자 그가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파였다.
무언가가 위에서 짓누른 듯한 모습이었다.
푹! 푹, 푹! 푸욱!
그리고 그것은 그를 중심으로 점점 퍼져나가더니 리롄제가 서 있던 자리까지 도달했다.
태천이 만들어낸 원 속에 들어서게 되자,
“크흠…!”
리롄제는 신음을 흘리며 눈을 부릅떴다.
위에서 짓누르는 압박을 리롄제는 처음에 기의 압박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1초 만에 그 생각을 치워 버렸다.
그가 기의 압박을 느낄 정도로 태천은 기의 양이 방대하지 않았다.
태천에게서 느껴지는 마나의 양은 수제자인 리우이호와 비슷한 정도였으므로 이렇게 광범위한 압박을 일으킬 수는 없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뚜벅…!
리롄제는 질문을 던지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뚜벅, 뚜벅!
걸어 나갈 때마다 경기장 바닥에 리롄제의 발자국이 패여서 문신처럼 남았다.
“놀라운데요? 이 속에서 어떻게 걸으시는 겁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걷는 사람은 지금껏 아무도 없었는데요.”
“흥. 나야말로 놀랍구나. 대체 어떻게 나를 이 공간을 짓누르는 게냐? 살면서 이런 힘은 본 적이 없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2년 전부터 갑자기 쓸 수 있게 된 힘이라서요.”
“2년 전…?”
리롄제의 반문에 태천은 쓰게 웃었다.
2년 전에 있었던 슬픈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태천은 가장 친한 친구를 홀로 남겨둔 채 도망쳐야 했었다.
자만과 오만에서 비롯된 사고였다.
“살면서 나 자신에게 그렇게 실망스러운 적이 없었죠.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실망과 후회 속에서 이 힘을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렇지. 깨달음이란 원래 그런 식으로 불현듯 찾아오는 것이지. 나 또한 그랬느니.”
“…….”
“…그래. 네 힘을 보았다. 1차 시험을 통과한 것도 납득이 가는군.”
“그렇습니까?”
“하나. 이걸로 끝이라면 S급 헌터가 될 수 없을 게다.”
“그렇다면 출력을 더 높여야겠네요.”
그러면서 태천은 왼발로 땅을 세차게 짓밟았다.
푹! 푹, 푹!
아까처럼 땅이 움푹 파이는 현상이 그를 중심으로 둥글게 퍼져나갔다.
리롄제에게도 금세 도달했다.
“큭큭….”
리롄제가 웃으면서 자리에 멈춰 섰다.
어깨를 짓누르는 강력한 힘을 느꼈다.
“과연. 출력을 높인다던 말대로군.”
“그런데도 서 있으시네요.”
“날 어디까지 우습게 볼 생각이냐? 네놈이 이 힘으로 지금까지 누굴 상대해왔든 감히 나와 비교가 될 것 같으냐?”
“…….”
“착각하지 말거라. 지금 시험을 치르는 건 내가 아니라 네놈이니까. 그러니 전력을 다해야 할 게다. 내 걸음을… 멈춰보란 말이다!”
뚜벅!
리롄제는 다시 발을 내디뎠다.
두 발이 교차하면서 태천을 향해 나아갔다.
리롄제가 뚜벅뚜벅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서 태천은 활짝 웃었다.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라.”
“…전력을 다해도 위험하진 않을 거 아니야.”
며칠 전, 도희에게 지나가듯이 했던 말대로 되었기 때문이다.
쾅!
태천은 또다시 발을 굴렀다.
경기장이 조금 더 아래로 파였는데, 이번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리롄제의 “전력을 해야 할 게다”라는 말에 답하려는 듯 힘을 끌어 올린 탓에 계속해서 움푹 파여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천이 서 있는 곳은 경기장이 아니라 땅바닥이 됐다.
리롄제가 걷는 바닥도 마찬가지였다.
태천의 힘에 짓눌려 광활하게 펼쳐졌던 사각 경기장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허허….”
리롄제가 퍽 흥미롭다는 듯이 웃었다.
웃음과는 달리 뚜벅뚜벅 걷던 걸음은 더뎌졌다.
태천의 힘이 확실히 그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걸음을 완전히 멈추게 할 정도는 아니어서 곧 리롄제가 태천의 앞에 섰다.
얼굴은 웃음을 흘리며 평온했으나 팔과 다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게 전력인 게냐?”
“지금으로서는… 그런 셈이죠.”
태천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고 리롄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치곤 아쉬운 눈치로군.”
“…….”
“마치 ‘더 낼 수 있다’라고 말하는 듯한데. 기다려 줄 테니 해보거라. 내 걸음은 멈추지 못했으나 두 다리는 꿇릴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느냐?”
“네. 꿇릴 수 있을 겁니다.”
“자신만만하군. 그런데 왜 하지 않지?”
“…….”
태천은 옅게 웃었다.
곤란한 감정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리롄제는 노련하게 그 감정을 읽었다.
태천이 더 낼 수 있으면서 내지 않는 이유.
그것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이유를 알아차린 거다.
“과연. 이 힘은 대단하나 약점이 있는 게로군.”
“…….”
“공간 안에 있는 누구에게나 평등하다는 것. 그게 바로 이 힘의 약점이지. 힘을 쓴 네놈조차도.”
“…역시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간단하지….”
리롄제는 말을 하다 말고 클클 웃었다.
그러고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이 덧붙였다.
“이런 강력한 힘의 한 중심에 있는데 아무런 영향이 없을 리 있겠느냐?”
“…네. 여기에서 힘을 더 끌어올렸다간 저도 온전치 못할 겁니다.”
“사용자라고 해도 평등하게 짓누르는 힘이라…. 이 힘이 뭔지 알겠군.”
“알겠다고요?”
“중력(重力)이지?”
“……!”
태천은 눈을 휘둥그레 떴다.
리롄제의 말이 정답이었기 때문이다.
현재 두 사람의 몸을 짓누르고 있는 건 바로 중력이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의 공간만 몇십 배로 강력해져서 그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늘 느끼고 있어 바로 떠올리지는 못했네만, 그게 바로 세상의 모든 이를 평등하게 짓누르는 힘이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중력을 다루는 스킬이라…. 앞으로 자네는 ‘중력 술사’라고 보는 게 옳겠군.”
“아뇨.”
태천은 리롄제의 말을 곧바로 부정했다.
그의 눈에서는 ‘중력 술사’라는 말을 향한 불쾌함이 느껴졌다.
“저는 ‘천공의 기사’입니다.”
“…….”
“이 중력은… 그저 제가 다루는 힘에 불과합니다.”
“…옳거니!”
리롄제가 감탄하더니 끌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경기장 경계에서 태천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도운이 보였다.
하지만 리롄제가 고개를 돌린 건 도운을 쳐다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리롄제의 시선이 맞닿은 것은 카메라였다.
“대련은 끝났소.”
노인의 목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결과는 말하지 않았지만, 지켜본 사람들은 알았다.
이태천이 새로운 S급 헌터가 됐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