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89
제491화
“…….”
우린 조용했다.
시야에 꽉 차던 블랙 드래곤이 사라졌건만….
죽었나?
그 비슷한 말을 하는 이는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그저 블랙 드래곤이 있던 자리를 볼 뿐이다.
여전히 그곳엔 크고 새카만 그림자가 져 있었다.
블랙 드래곤이 서 있는 듯이….
– 그림자 속으로 도망친 모양인데?
태천이 중얼거렸을 때였다.
불쑥!
그림자 정중앙에서 손 하나가 튀어나왔다.
가늘고 창백한 손은 인간의 것이었다.
저건, 설마….
「‘폴리모프(polymorph)’로군.」
무기가 바로 말했다.
폴리모프….
외형을 다른 형태로 변화시키는 마법이었다.
갑자기 왜 인간 형태로 변한 거지?
그런 의문을 품은 채로 블랙 드래곤을 바라봤다.
『…….』
놈은 웃기게도 이름과 어울리지 않은 새하얀 피부를 지녔다.
반면에 머리 위의 두 뿔과 허리까지 자란 머리카락 그리고 몸에 걸친 옷은 밤하늘의 어둠보다도 새카맸다.
얼굴은… 아주 잘생긴 편이었으나 절세의 미남이라고 표현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우리 태천이가 훨씬 더 잘생겼거든.
[세계수가 관리인을 황당하게 바라봅니다.] [지금 누가 더 잘생겼는지가 중요하냐고 따집니다.] [그러면서 관리인의 생각에 동의하기는 한다고 덧붙입니다.]꾹, 꾹….
나와 새싹이의 생각을 알 리 없는 블랙 드래곤이 무표정하게 주먹을 쥐었다가 편다.
이어 어깨를 천천히 돌리는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가벼워 보였다.
원래 모습인 드래곤이었을 때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태천이의 중력장이 여전히 전개되어 있는데….
“아….”
조금 전 떠올랐던 의문.
그 답이 떠올랐다.
저놈이 폴리모프 마법을 쓴 것은 중력장의 영향을 덜 받기 위해서였다.
부피가 작아진 만큼 중력의 영향이 줄어들 테니까.
또한….
세상에 많고 많은 생명체 중에서 굳이 인간 형태를 고른 것은 악취미를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들을 짓밟는다는 악취미 말이다.
그 생각이 옳다고 인정하듯, 놈이 히죽 웃었다.
『여의 다리를 노렸더구나.』
블랙 드래곤의 목소리는 여전히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바로 눈앞에서 인간 형태를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오만하디오만한 저놈은 아마도 인간의 입으로 말하는 것이 싫은 것이리라.
『그렇다 한들 달라질 것은 없을 거다.』
“…글쎄.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말로 꺼내지도 않았겠지.”
『큭큭…. 그래. 직접 보여주는 게 더 빠르겠지.』
그리 말한 후 블랙 드래곤은 고개를 들었다.
뭘 하려는 거지?
긴장하며 지켜보다가 눈을 한 번 깜빡였다.
그 사이,
“……!”
블랙 드래곤이 사라졌다.
또다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 걸까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 밀러, 조심해요…!
태천이가 소리쳤다.
그 외침에 곧바로 하늘 높은 곳에서 날고 있던 밀러를 쳐다봤다.
블랙 드래곤이 밀러의 목을 붙들고 있었다.
태천이가 펼친 두 개의 중력장이 어떠한 영향도 주지 못한 것이다.
크기가 작아졌을 뿐인데 저렇게 될 줄이야….
『인간 마법사야. 여를 귀찮게 한 대가를 치러야 하지 않겠느뇨?』
– 흐윽…!
밀러가 신음을 흘린다.
손에 붙들린 목이 그림자에 물든 것처럼 새카맣게 변하고 있었다.
저놈이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는, 금세 추측할 수 있었다.
암흑의 안개….
그것과 같은 짓을 하겠지.
저대로 내버려 뒀다간 밀러의 목은 썩어 문드러지고 말리라.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만큼 버둥댈 만도 한데,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두 손을 들어 놈의 오른팔을 꽉 붙잡고, 살포시 미소 짓는다.
『인간 마법사야. 지금 웃은 것이냐?』
– 이럴 줄, 알았거든요….
『알았다?』
– 네. 당신이, 이곳에서 가장 약한 나를 먼저 노릴 줄… 알았어요.
『…….』
블랙 드래곤이 눈을 깔아 우릴 내려다본다.
다급하게 소리쳤던 태천이를 포함해 다들 가만히 있었다.
밀러가 말했던 대로, 블랙 드래곤이 가장 먼저 밀러를 노릴 걸 예상했기 때문이다.
그에 대해 대비도 해놓았을 게 당연하지 않은가.
화악…!
밀러와 블랙 드래곤 사이에 붉은 원형의 문양이 그려졌다.
그건, 밀러가 공격당할 때 즉시 발동하게 되는 조건부 소환 마법이었다.
「약점이 목이라고?」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피 냄새가 나는 듯한 붉은 문양에서 임페일이 등장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블랙 드래곤의 목을 물었다.
하지만….
『가소롭구나.』
「…….」
『그따위 송곳니로 여의 목을 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느냐? 뱀파이어.』
임페일은 놈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넣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 아쉽지는 않았다.
임페일의 송곳니는 무기의 비늘도 뚫지 못하니까.
블랙 드래곤의 목을 꿰뚫지 못하리라 예상하는 건 퍽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굳이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가까이 접근하기 위해서다.
여유롭고 오만한 블랙 드래곤은 임페일의 접근을 허락할 테니까.
「짐은 왕이다. 드래곤.」
『감히 누구 앞에서 ‘왕(王)’을 논하느냐?』
「세계수와 그 관리인 앞이지 않나?」
『이놈이-』
「‘캐슬링(castling)’.」
임페일이 마법을 쓰자 시야가 변한다.
작게 보였던 블랙 드래곤이 줌인한 것처럼 크게 보였다.
갑자기 내 시력이 상승한 것이 아니다.
나와 놈 사이가 그만큼 가까워진 탓이다.
“안녕?”
해맑게 인사하며 세계수의 뿌리를 쓴다.
나무뿌리로 변한 손가락들이 열 마리의 뱀처럼 허공을 구불거리며 블랙 드래곤에게로 향했다.
놈은 밀러를 거칠게 내던진 후 빠르게 허공을 활강해 손가락들을 회피했다.
날개도 없는 모습인데 참 잘도 나는군.
나와 달리 말이야.
『…설마, 부유 마법을 못 쓰는 것이냐?』
세계수의 뿌리를 한창 피하던 블랙 드래곤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 말대로였다.
부유 마법을 쓰지 못하는 난 한창 추락하고 있었다.
원래 계획은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는 거였는데….
놈의 속도가 내 예상치를 벗어날 만큼 빨라서 실패해버렸다.
스륵, 스르륵!
나무뿌리로 변했던 손가락들이 원래대로 되돌아온다.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것이냐?』
머릿속에 황당해하는 놈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했냐고?
그야 뻔한 것 아닌가.
“스마트폰 두드렸는데?”
『…….』
“아주 열심히 두드렸어.”
심심한 마음을 달래고자 장단까지 맞췄었다.
중모리장단, 자진모리장단, 휘모리장단 등등 돌아가면서.
심지어 잠을 잘 때조차도.
그런 내 최선과 노력을, 저 빌어먹을 놈이 간단히 무시했다.
『하찮구나….』
“뭐, 인마?”
『너무 하찮아서, 여는 분노마저 느끼고 있느니라!』
화악…!
고성을 지르는 놈의 몸에서 어두운 마나가 뿜어졌다.
분노를 형상화한 것 같은 마나는 그대로 떨어지는 내게로 날아들 줄 알았는데….
내가 아니라 놈의 몸으로 다시 모여들었다.
그러자마자,
[경고! 경고!] [세계수가 관리인에게 방심하지 말라고 전합니다!]새싹이가 경고를 보내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블랙 드래곤의 몸이 그림자에 물들고 있었다.
리롄제의 검지처럼, 한진환의 오른팔처럼.
변하지 않은 부위는 딱 두 곳.
디싱 나 토르에 의해 영원토록 낫지 않는 상처가 생긴 목과 왼쪽 다리뿐이었다.
『후우….』
놈이 숨을 길게 내쉬자, 암흑의 안개가 뿜어졌다.
저것 또한 닿은 순간 모든 것을 부식시킬 터였다.
별로 좋은 상황은 아니로군….
한진환은 오른팔만 번개로 바뀌었는데도 크라우드를 압도했었다.
그런데 놈은 거의 전신이 그림자가 되지 않았나.
얼마나 더 강해졌을지, 대충이나마 어림잡을 수도 없었다.
『더는, 여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
그 목소리가 들린 후, 블랙 드래곤이 행동에 나섰다.
아까 밀러에게 그랬던 것처럼 눈 깜빡할 사이에 내 앞까지 날아온 것이다.
그런데, 놈의 오만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었다.
있는 것이라곤, 예상치 못한 것을 본 듯 부릅뜬 눈과 경악이 튀어나올 것처럼 한껏 벌어진 입뿐이다.
놈은 그런 얼굴을 한 채로 나를 향해 오른팔을 내뻗었다.
그 오른 손목을,
『……!』
꽉 붙잡는다.
여러 갈래의 나뭇가지가 얽히고설킨 듯한 내 왼손으로.
블랙 드래곤이 아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관리인…. 네까짓 놈이, 어떻게…?』
어안이 벙벙한가 보다.
놈은 머릿속에 직접 전달하지 않고 인간의 입으로 말했다.
“그러게 말했잖아.”
『말했다고?』
“그래. 스마트폰 열심히 두드렸다고.”
『관리인…!』
블랙 드래곤이 이를 악물며 날 부른다.
능멸이라도 당한 것처럼 험상궂어지는 얼굴이 퍽 웃기다.
이쪽은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말이다.
뭐, 힘껏 패줄 생각은 있었지만.
“히히!”
스륵, 스르륵!
패주겠다는 생각이 왼손에 전달된 걸까?
세계수의 뿌리를 쓴 것처럼 손가락들이 빠르게 자라나더니 블랙 드래곤의 오른팔을 휙휙 휘감았다.
『이거, 놓지 못하겠느냐!』
블랙 드래곤이 소리치며 오른팔을 뒤로 당겼다.
그러나 내 손가락은 땅에 깊게 내린 뿌리처럼 놈의 오른팔을 칭칭 옭아맨 상태다.
아무리 당겨봐야 내 왼팔을 뿌리칠 수 없으리라.
설령 놈이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고 해도 내게서 벗어나지는 못할 거다.
놈만큼은 아니어도 나도 그림자엔 일가견이 있는 편이었으니까.
“자. 이제 좀 맞을까?”
맑게 웃으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나뭇가지가 얽힌 모양새의 오른 검지가 블랙 드래곤의 목을 향했다.
『관리이이인…!』
그놈 참….
왜 자꾸 부르고 지랄이야?
아가리부터 갈겨 버리고 싶게.
***
톡 톡 톡 톡 톡….
도운의 오른손 검지가 빠르게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정확히 1초에 열 번씩 두드리는 손가락엔 도운의 무의식만이 담겨 있었다.
그렇다.
현재 도운은 잠을 자고 있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리면서.
평소처럼.
그러던 와중이었다.
[업적 달성!]팟!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온통 어두운 방에 빛이 떠오른 탓일까?
잠든 도운의 눈꺼풀이 살짝 꿈틀거렸다.
잠에서 깨어나려는 듯이 보였으나….
“으음….”
도운은 뒤척일 뿐 깨어나진 않았다.
그때, 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관리인 백도운 님이 세계수에게 따스한 손길을 1억5000만 회 사용했습니다!]푸른빛에 도운의 눈꺼풀이 또 꿈틀거렸다.
그러나 두 번째라서 벌써 익숙해진 것인지 도운은 뒤척이지도 않고 잤다.
그때,
[선행 조건, ‘세계수 키우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또다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심지어 이번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팟, 파바바바밧!
[선행 조건, ‘세계수 성장시키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선행 조건, ‘마족 권속 처치하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선행 조건, ‘이무기와 친구 되기’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선행 조건, ‘세계수 관리인’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선행 조건, ‘차원 이동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선행 조건, ‘광합성 모드’ 스킬을 터득했습니다.] [여러 업적, 타이틀, 스킬을 획득한 보상으로 스킬 ‘광합성 각성 모드 훈련장’을 드립니다.] [획득 보상은 바로 우편함으로 전송됩니다.]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엄청난 속도로 떠올랐다.
그 푸른빛의 잇따른 공격에, 아무리 무딘 도운이라고 해도 잠에서 깰 수밖에 없었다.
눈꺼풀을 무겁게 든 도운이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창들을 쳐다봤다.
“…….”
읽은 것은 아니다.
그저 보기만 했다.
끔뻑….
끔뻑끔뻑….
눈을 감았다가 뜬다.
그러다가,
“…….”
도운은 눈을 뜬 채로 잠이 들었다.
그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걸까?
[보상을 받으시겠습니까? (YES / NO)]팟!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마지막으로 떠올랐다.
그와 동시에 도운의 동태눈에 천천히 생기가 감돌았다.
승리를 손에 쥔 메시지창을 보며 도운이 활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맹세하는데, 별거 아니면 메시지창 너 부숴버릴 거야.”
또랑또랑 울리는 목소리와 달리 내용은 살벌했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도운의 오른손 검지는 열심히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톡 톡 톡 톡 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