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88
제490화
무기와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가 격렬하게 부딪쳤다.
순수하고 강력한 두 힘의 충돌은 충격파가 되어 주변으로 퍼졌다.
보통의 A급 헌터라면, 저 충격파에 휩쓸려 날아가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
우르르!
벼락이 떨어지고 무기의 몸이 부풀어 오른다.
더 강한 브레스를 쏘아내기 위해서다.
블랙 드래곤이 자신에게 닿을 수 있을 것 같냐고 말했던 것처럼, 무기의 브레스가 서서히 밀리기 시작했다.
진짜 드래곤인 존재와 아닌 존재 사이에 있는 ‘격의 차이’였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블랙 드래곤을 공격하려던 것을 멈추고 무기를 돕기로 했다.
저 브레스에 직격당하면 무기가 다칠지도 몰랐고….
곧장 무기에게로 날아가 목덜미쯤에 내려앉았다.
그런 후,
– 미스터 백? 대체 무슨 짓을…!
밀러가 당황스럽게 소리칠 행위를 했다.
바로 번개의 마나가 담긴 3m짜리 칼날을 무기의 목덜미에 푹 찔러 넣은 거다.
우르르 쾅!
벼락이 치는 소리와 함께 한진환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난 ‘버스트 모드’로 그놈을 공격했거든?”
“그랬는데 구렁이 새끼 다치기는커녕 더 강해지더라니까?”
한진환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 무기는 같은 번개 속성으로 공격받을 경우 더 강해진다.
그럼, 이렇게 번개 속성 마나가 잔뜩 담긴 마나 칼날에 찔리면 어떻게 될까.
– 얼씨구? 브레스의 위력이 증가했네?
그 사실을 알아차린 태천이가 중얼거린다.
중얼거림을 듣고 나서 씩 입꼬리를 올리며 밀러를 쳐다봤다.
그녀는 놀란 얼굴을 지우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 마법을 캐스팅하며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화아아… 뚝!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녀가 외우던 마법은 곧바로 블랙 드래곤에게 봉인 당했다.
하지만 밀러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음 마법을 캐스팅했다.
이 세상에서 마법들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대마법사는 아직도 외울 수 있는 마법이 무수하게 남아 있었다.
그렇게, 밀러와 블랙 드래곤은 각자 마법을 캐스팅하고 봉인하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했다.
『…….』
후웅!
서로의 브레스가 팽팽한 접전을 형상화하는 동안.
서로의 마법이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반복하는 동안.
블랙 드래곤이 세차게 날갯짓했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간 태천이와 리롄제를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단 한 번의 날갯짓은 거센 바람을 일으켰다.
심지어 바람 사이사이엔 새카만 그림자 창이 두 남자를 꿰뚫고자 했다.
쾅, 쾅!
태천이 방패를 들어 공격을 막아내느라 나아가지 못하는 동안, 리롄제는 계속해서 나아갔다.
태천이처럼 알루키노르의 비늘로 만든 방패가 없는 리롄제는 검은 그림자 창을 회피해야 했다.
둘의 스타일이 다른 것일 뿐, 절대 우리 태천이가 리롄제보다 못해서 그런 게 아니다.
심지어 태천이는 중력을 이용해 떠 있는 것이지만, 리롄제는 허공을 밟으며 달릴 수 있지 않았던가.
물론, 저 거센 그림자 창 사이를 파고들 만큼 흐름을 읽는 눈은 대단하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수가 나뭇가지로 리롄제의 검지를 가리킵니다!] [인정할 것은 흐름을 읽는 눈만이 아니라고 다급하게 전합니다.]검지?
고개를 갸웃거리며 리롄제의 손을 바라봤다.
뒷짐을 진 덕분에 아주 잘 보였다.
그런데… 새싹이 말대로 검지의 형태와 색깔이 이상했다.
온통 새하얀 손가락은 마치 투명한 유리처럼 보였다.
투명한 마나 덩어리처럼 보인달, 까….
“설마…?”
마나 덩어리.
그 단어에 리롄제가 지금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리롄제는 지금 한진환처럼 신체 일부를 자신의 마나 그 자체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준비한 게 있다더니 바로 저것이었나 보다.
그 짧은 사이에 저걸 터득하고 운용할 줄이야….
역시 허투루 볼 영감이 아니다.
그위친이 나타나기 전까지 오랫동안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나이’라고 불렸던 이유가 다 있었다.
오른팔 전체를 구성했던 한진환과 달리 겨우 손가락 하나였지만, 저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나도 훈련해봐서 안다.
저건, 마나의 흐름이 아주 조금만 어긋나도 심장의 마나가 폭주하려고 드는 위험천만한 짓이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리롄제가 저 크기보다 더 키웠다간 심장이 위험해지리라.
감탄하는 사이,
– 자…. 어디 용의 비늘이 얼마나 단단하지 보자꾸나!
리롄제가 블랙 드래곤의 왼쪽 다리 앞에 도달했다.
콰앙!
도달하자마자 바로 새싹이가 표시한 약점 부분을 검지로 후려쳤다.
『…….』
약점을 얻어맞았는데도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는 끊기지 않았다.
고통에 몸부림친다거나 비명을 내지르기는커녕 신음도 흘리지 않는다.
단지, 아주 미세하게 ‘움찔’할 뿐이었다.
마치 옆구리에 예상치 못한 손가락을 찔린 것 같은 반응이랄까…?
약점이 뭐 저래?
[세계수가 약점은 한 대 쳤다고 해서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힐 수 있는 곳이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다른 부위보다 ‘더 약한 부위’를 지칭하는 말이었다고 덧붙입니다.]과연….
그런 메시지를 보고 나니 이해가 가긴 한다.
다른 부위를 공격했을 땐 저 조금의 ‘움찔’도 없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걸 상정해도 충격적이긴 했다.
리롄제의 검지는 현재 평범한 상태가 아니지 않나.
마나 그 자체가 된 상태로 때렸는데 겨우 움찔하게 만든 게 전부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저거라면 충분히 데미지를 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말이다.
푸학!
큰 데미지를 받지는 않았지만 거추장스럽긴 한 모양이다.
블랙 드래곤이 그림자를 뿜어내며 리롄제를 공격했다.
그 순간,
– ‘히에마레(hiemāre)’!
밀러가 A등급 공격 마법을 발동했다.
블랙 드래곤에게 양자택일(兩者擇一)을 강요한 것이다.
그녀의 계획은 반만 성공했다.
금방 선택을 결정한 블랙 드래곤이 ‘무언 마법’을 썼기 때문이다.
땅에서부터 그림자로 된 사슬들이 리롄제를 붙들고자 솟아 나왔다.
그와 동시에 블랙 드래곤은 자신의 긴 목을 향해 날아드는 얼음 마법을 날개로 막아냈다.
쩍, 쩌적…!
얼음 마법을 막은 날개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가,
– ……!
눈 깜빡할 사이에 녹아 사라져 버렸다.
얼어붙었던 것 자체가 눈의 착각인 것처럼 말끔해졌다.
아무래도 마법을 무효로 돌린 것 같다.
쾅! 쾅!
그 사이, 리롄제 옆에 도착한 태천이가 방패로 블랙 드래곤의 그림자 사슬들을 쳐냈다.
알루키노르의 비늘로 제작한 방패는 단순히 쳐내는 것만으로 사슬들을 다시 그림자로 돌려보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태천이는 자신을 중심으로 또 하나의 중력장을 펼쳤다.
중력장 속에 새로운 중력장이 더해진 것이다.
– 윽!
– 흐음…!
그 중심에 서 있던 태천이와 리롄제가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그것은,
『……!』
블랙 드래곤도 마찬가지였다.
브레스를 쏘느라 신음이 나오진 않았으나 거대한 신체가 아주 조금 떨리기 시작했다.
지금인 것 같은데….
바로 이 타이밍에 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공격이 필요했다.
이 자리에서 나를 제외하고 그런 데미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밀러뿐이었다.
세 번째 계책을 쓸 때가 됐다.
그리 판단해 밀러를 올려다봤다.
그런데,
[세계수가 “설치 완료, 에너지 충전 100% 확인.”이라는 도희의 말을 전달합니다.]내 눈에 보이는 건 밀러가 아니라 메시지 창이었다.
그 메시지에 생각을 고쳤다.
준비가 끝났다면 얘기가 다르다.
그것이라면 밀러보다도 확실하게 큰 데미지를 줄 수 있을 터였다.
휙.
뒤를 돌아본 후 고개를 한번 끄덕인다.
빛의 성역 속에 있으므로 도희는 내 행동을 파악할 수 있을 터였다.
끄덕인 의미가 잘 전달됐다는 증거가 곧 나타났다.
– 헉?
– 이 땅 울림은…?
– 오. 드디어! 드디어 왔구나!
쿠구구구구!
세 사람이 깜짝 놀랄 정도로 땅이 울렸다.
태천이의 중력장이 만들어냈던 것보다도 큰 울림….
그 울림이, 무기와 블랙 드래곤의 브레스보다 훨씬 굵고 격렬한 빛줄기로 모습을 드러내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덮쳤다.
블랙 드래곤의 모습을 완전히 덮어버릴 정도였다.
저게, 내가 아는 한 세계 최고의 대장장이인 유재이가 만든 ‘헤미스파이리움 캐논(hēmisphaerium cannon)’의 힘이었다.
그렇다.
이름에 쓰여 있듯이 헤미스파이리움를 개조해서 만든 무기다.
아마 지금 이 순간이 크라우드가 세상에 유일하게 도움이 된 순간이지 않을까.
나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
헤미스파이리움 캐논.
원래 크라우드가 갖고 다니던 검은색 기계장치는 갈색으로 도색된 상태였다.
백도운이 소환한 세계수와 비슷한 형태였는데, 심지어 표면은 나무껍질 문양으로 푸르게 빛났다.
그러나 디자인을 위해 새겨넣은 건 아니다.
그것은 마나 회로였다.
회로를 타고 흐르는 푸른 마나는 옆에 연결된 3층짜리 건물 크기의 마나 저장고로부터 전달됐다.
드래곤 브레스와 같은 빛줄기를 발사하기 위해선 엄청나게 많은 양의 마나가 필요했고, 당연히 저장고도 그만큼 커야만 했다.
연결된 마나 저장고의 정체는 바로 ‘전대 세계수의 굵은 나뭇가지’였다.
“엄청나군요….”
“오….”
빛줄기를 본 이들이 각자 감탄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백도희와 한재임이 자랑스러운 듯이 웃었다.
“대단하군요. 헤미스, 음….”
“헤미스파이리움 캐논. 그냥 ‘헤미스 캐논’이라고 불러도 돼요.”
“그러겠습니다.”
리우이호가 고개를 끄덕인 후 “헤미스 캐논”을 몇 번 중얼거렸다.
그런 후 원래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헤미스 캐논은 작동할 수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만….”
“…….”
백도희는 말을 고르기 위해 싱긋 웃었다.
그의 말처럼 헤미스파이리움은 한국 정부와 일대 길드에서 가동하는 데 실패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그러나 유재이는 다른 대장장이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열쇠를 제작한 것만으로 헤미스파이리움을 작동시켰다.
왜 그럴 수 있는가.
유재이 본인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다만, 몇 가지의 근거들로 예상해볼 수 있기는 했다.
크라우드가 전 세계의 날고 긴다는 대장장이 중 한국 100대에서도 끝줄에 해당하는 그녀를 포섭하려고 했다는 점.
10년 전쯤 하필 그녀의 아버지가 크라우드에 납치당했던 전적이 있다는 점.
다른 대장장이들이 만든 열쇠로는 가동하지 않은 헤미스파이리움이 그녀가 만든 열쇠로는 잘만 된다는 점 등등….
그것들을 취합하면 한 가지의 정보를 추론해 낼 수 있었다.
헤미스파이리움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유지성’이라는 것이다.
“저는 잘 모르는 일이라서요….”
백도희는 진실을 숨겼다.
리우이호에게 친절히 말해줄 이유도 필요도 의리도 없었다.
남의 프라이버시를 뭐하러 함부로 떠든단 말인가?
심지어 하나뿐인 오빠가 사랑하는 여자의 일인데.
“그렇습니까….”
리우이호가 아쉬운 듯이 중얼거렸다.
백도희의 거짓말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듯했다.
사실 백도희는 백도운의 동생답게 거짓말을 썩 잘하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이 자리에서 그녀의 거짓말을 눈치챈 사람은 이자벨 성녀뿐이었다.
세상에서 거짓을 잘 파악하는 사람의 후계자답게.
“…….”
“…왜요?”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이자벨 성녀는 모른 척했다.
굳이 캐물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정치적인 생각도 있었다.
백운천 길드는 S급 헌터 둘과 A+급 몬스터 둘, 엘릭서와 헤미스 캐논이라는 무기까지 제작할 수 있는 조직이었다.
절대로 한 국가의 대형 길드쯤으로 취급할만한 체급이 아니다.
백도운이 마음을 먹는다면 능히 ‘교황청’ 같은 특수한 단체가 될 수 있으리라.
아니.
어쩌면 그보다도 더 큰….
“그럼… 블랙 드래곤은 죽은 겁니까?”
침묵 속에서 진지우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들 묻고 싶었으나 질문할 수 없었던 질문이었다.
“죽였나?”라고 중얼거린 후 몬스터가 살아나오는 것은 만국 공통이었으므로.
“잠시만요….”
도희는 블랙 드래곤의 마나를 탐색했다.
그녀와 이자젤 성녀는 빛의 성역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대략 파악할 수 있었다.
“마나는 느껴지지 않네요.”
“그럼-”
“하지만 존재감은 여전해요.”
“존재감…이요?”
진지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슥….
도희는 고개를 들어 세계수를 올려다봤다.
세계수의 꽃 속에 있는 검은 구슬은 해제되지 않은 상태였다.
블랙 드래곤의 생존 여부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기에,
“…다시 마나를 채우도록 하죠.”
도희는 다음 발사 준비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