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50
150
사실, 바둑판을 쳐다볼 기분이 아니다. 저 멀리서 두 노부부가 걸어오고 있다.
팔을 잘린 노파는 핏물이 베인 상의를 입고 있다.
지혈을 시켰지만 그래도 피가 흘러나오는 것은 어쩌지 못한다. 붕대로 감은 부분이 시뻘겋다. 앞으로 팔이 아물려면 한 달 이상 걸릴 게다.
그 옆에 노인이 있다.
별로 눈에 띄는 점은 없는 노인이다. 지극히 평범해서 시골 촌구석 어디에서나 흔히 보는 노인들과 구분이 되지 않는다. 헌데 이 노인이 사총을 만들었다.
그들에게 신경이 쓰인다.
“이놈아, 바둑을 둘 때는 집중해야 하는 겨!”
“하하! 네.”
“왜? 죽을 까봐 겁나냐?”
노인이 바둑판에 돌을 올려놓으면서 말했다.
노인은 혼자서 바둑을 둔다. 하얀 돌을 올려놓고, 검은 돌을 만지작거린다. 돌을 놓기 전에 고민을 한다.
루주는 대답도 하지 못했다.
노부부가 걸어올수록,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무형의 압력이 한층 가중된다.
노파는 이러한 기도를 뿜어내지 못했다.
팔을 자를 때만 해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헌데 지금은…… 팔이 잘린 지금은 더욱 강해졌다. 저런 사람과 싸울 수 있을 까 하는 의문까지 치민다.
파아아아아앗!
강렬한 강기가 목을 조여 온다.
“격공전이(隔空轉移)라는 것이다. 허공에서 진기를 자유자재로 주고받는 절공인데…… 저것 때문에 내가 꼼짝하지 못했다니까. 검치하고 한 번 저 짓을 해봤는데 잘 안되라. 헌데 저것들은…… 희한한 것들이야.”
노인이 바둑판을 들여다보면서 말했다.
노부부의 진기가 상호 교류한다. 사내와 여인이 서로 진기를 주고받는다. 걸어오면서…… 행공(行功)으로…… 서로의 진기를 북돋아준다.
‘두 사람의 힘이 아니야. 그 이상의 힘이야.’
이건 상당한 부담이다.
그가 아무리 빠른 검을 지녔다고 해도 두 노부부의 이백 년 공력을 맞받아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만한 힘이 있을 리 없다.
멍천한 노인에게 진기도인을 해줄까? 하지만 방법이 문제다. 일반적인 도인(導引)으로는 진기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 거의 절반 정도가 중간에서 소멸되어 버린다. 그래서 정작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진기는 절반 이하다.
두 사람이 진기를 주고받으면 두 배의 힘이 비축되는 게 아니다. 세 배, 내 배로 증폭된다. 상대가 전해주는 힘을 바탕으로 지닌 무공을 극성으로 끌어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저들 부부처럼 격공전이라는 것을 하지 못한다면 승부를 결행할 수 없다.
이런 압박박감은 바둑을 두는 노인이 평생 동안 받아온 것이다.
그래서 그는 싸우지 못했다. 두 사람의 합격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그래서 검치를 키웠다. 같이 상대하려고.
그런데 검치를 키워도 노부부의 상대는 되지 못한다. 그들의 진기 교류는 행공의 정점에 서있다.
“키키! 키키키!”
노파가 루주를 알아보고 웃었다.
“저놈이야? 임자 팔을 자른 놈이.”
“키키키!”
“쯧! 어린 놈한테.”
“검치보다 빨라.”
노파가 노인에게 말했다.
“빠르다는 건 임자 팔만 보아도 알 수 있고. 잠시 비켜서있게. 내 저놈부터 처리하고.”
노인이 상의를 벗으면서 말했다.
노인의 근육은 젊은이 못지않게 잘 발달되어 있었다. 젊어서 팔난봉꾼 소리를 들을 만큼 용모도 빼어나다. 군계일학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을 사람이다.
스읏!
노인이 검을 들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다. 노파에게 물러가 있으라고 했지만, 노파는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 약간 뒤로 물러서서 끊임없이 노인과 진기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건 반칙이다.
딱악! 탁!
등 뒤에서 바둑돌 놓는 소리가 들린다.
바둑 두는 노인…… 그는 긴장하고 있다. 바둑판에 떨어지는 돌 소리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않는다. 마치 ‘이 싸움은 네 싸움이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
루주가 일어섰다.
어미를 욕보인 자, 아버지를 죽게 만든 자.
난생 처음 보는 낯선 자인데 무서운 분노가 일어난다.
그는 노인 앞으로 걸어갔다.
“검치에게서 십검을 배웠다고? 검치는 할멈 손에 죽었는데, 그런 할멈을 뱄다. 검치를 능가하는군.”
십검이라는 말을 세상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검치, 루주, ‘멍청한 놈’은 사사십검이라는 이름 하나를 더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 노부부는 무결이라는 이름으로 오인한다.
지금도 그렇다. 노인은 십검이라고 말하면서도 무결에 대한 호기심으로 두 눈이 일렁거린다. 노파를 벨만큼 강해진 십검, 아니 무결을 보고 싶어 한다.
“무결…… ”
루주가 목검을 뽑으면서 말했다.
“무결은 있는 그대로…… 자신이 수련한 것 그대로…… 무결이란 무공은 없어. 내 무공이 완성되면 그게 바로 무결이야. 당신들 사부가 한 말, 나도 알겠는데…… 아직도 그 이치를 모르나? 어떤 무공이든 정점까지 수련하면 그게 바로 무결. 도대체 무결을 무공으로 알고 찾아다닌 멍청함은 뭐야?”
“크�! 이놈아, 그걸 말해주면 어떻게? 이제 저 두 사람…… 확실히 죽여야겠다. 안 죽이면 분해서라도 무림을 피바다로 만들 작자들이야.”
“그까짓 무림이 어떻게 되든 내가 상관할 바 아니고…… 당신!”
루주가 목검을 들러 노인을 가리켰다.
“당신이 희롱한 여자, 내 어머니야.”
“후후! 내가 희롱한 여자가 어디 한둘 이래야지. 가만…… 그럼 내가 네 아비?”
노인이 히죽 웃었다.
루주는 웃지 않았다. 침착하고, 조용하게 말했다.
“그래서 죽이려고.”
츠으읏! 츠츠츠츳!
노파의 기세가 더욱 강해졌다.
노파는 루주의 검을 경험해봤다. 그렇기 때문에 무서움을 안다. 노인이 경거망동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진기로 자극한다. 방심하지 말라고 말한다.
두 사람이 합공을 하는 것과 진배없다. 아니, 그보다 더한다. 합공은 검이 두 자루로 늘어난 것일 뿐이지만, 지금은 진기가 합일되었다. 그 힘, 그 강력함을 무슨 수로 상대한 단 말인가.
루주가 수련한 무공은 일단검파가 아니다.
정통 무공이 아니라 ‘멍청한 놈’이 변형시킨 과외무공이다.
그 위력이 일단검파에 못지않다고 해도 어딘가에는 허점이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멍청한 놈’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그는 새로운 무학을 창조한 셈이니 사부를 능가한다.
검을 들고 선 노인도 안광이 싸늘해졌다.
“지금부터 셈하지. 살천루주를 죽인 죄, 하나. 사총주를 죽인 죄, 둘. 할멈의 팔을 자른 죄, 셋. 존장을 능멸한 죄, 넷. 내 앞에 검을 든 죄, 다섯. 넌 다섯 토막 난다.”
“병신.”
“뭐?”
“내 어미가 너 같은 병신에게 당했다는 게 억울해. 그래서 난 널 천참만륙 시킬 거야.”
쒜에엑!
루주는 신형을 띄웠다.
빠르지 않다. 평범하다.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환히 보인다. 하지만 목검 끝이 움직이자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타타타타탓! 타타탓!
순식간에 콩 볶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노인은 물러서지 않았다. 손에 든 검을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십검과 정면으로 부딪쳐간다.
쾅왕! 쾅! 쾅쾅쾅!
일검이 노인의 검을 후려친다. 박살난다. 이검이 후려친다. 박살난다. 삼검도 후려쳤고, 박살났다. 치는 족족 박살이 난다.
헌데 터져나가는 것은 루주의 검뿐이다.
노인의 검은 요지부동, 까딱도 하지 않는다. 노인의 진기에 노파의 진기까지 합해져서 극강의 검이 탄생했다.
검이 십검을 무너트리면서 다가온다. 루주의 가슴을 찔러온다. 느물느물 웃으면서, 지금이라도 피하고 싶으면 피해보라는 듯이 살살 놀려대면서 다가온다. 그 때,
수에엑!
바둑판이 날아왔다.
“크크크! 저놈…… 드디어 발광하네. 크큭! 오래 기다렸지. 무려 칠십 년인가? 키키킥! 난 평생 동안 꽁지만 말다가 갈 줄 알았는데, 그래도 찍 소리는 내보기로 한 거야?”
노파가 웃었다.
꽈앙!
바둑판이 노인의 검을 가로막았다.
바둑판은 나무로 만든 게 아니다. 강철로 만든 것이다. 헌데 두부! 마치 두부처럼 바둑판이 관통된다. 그리고 계속해서 루주의 심장을 향해 찔러든다.
루주는 마지막 남은 두 자루의 검을 뽑았다. 그 순간,
쒜엑!
바둑판 앞으로 희끄무레한 인형이 뛰어들었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노파의 진기까지 흡수한 검은 바둑판 앞으로 뛰어든 사람을 꿰뚫었다. 사형의 가슴을 찍었다.
잠깐 동안이지만 검이 묶였다. 루주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파파파파�N!
루주의 십검이 작렬했다. 원한을 버린 검, 무심으로 쳐낸 검이 누군가에게 작렬했다. 한 사람을 베고, 그 뒤에 서있던 노파까지 베어낸다.
상식적으로 두 노인은 피했어야 옳다. 하지만 그들을 피하지 못했다. 가슴을 꿰뚫린 노인이 사력을 다해서 두 노부부의 진기를 빨아들이고 있다. 흡인신공(吸引神功)으로 노부부를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놓았다.
퍽!
목검이 노인의 옆구리를 파고들어 명치어림에서 멈췄다.
퍽!
목검이 노파의 머리를 두들기며 들어가 목젖 아래서 멈췄다.
3
“하루 술값이 얼마라고?”
“은자 한 냥.”
“그러면 이건 뭐야?”
“은자 한 냥.”
“그런데 왜 술상 안 내와!”
“햐! 이런 쥐방울만한 놈이! 야, 이놈아! 이곳은 어른만 오는 곳이라고 했어, 안 했어!”
“쥐방울만한 놈?”
이제 겨우 열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애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홍독사는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가 눈을 위로 치켜뜨면 검은 동자가 말려 올라가면서 흰자위만 퀭하니 드러난다.
어린애가 움찔거렸다.
“이 어린놈이! 너 누구 허락 받고 온 거야! 네 아비한테 일러줄까!”
“햐! 그러지 말고 기녀 구경 좀 하게. 돈 주잖아.”
어린애가 금방 웃는 낯으로 돌변했다.
“흐흐흐! 한 가지만 묻자. 그렇게 기녀를 봐서 뭐하려고? 얼굴만 보게? 아니면 다른 짓도 하려는 게야?”
“거, 우리 같은 사내끼리……”
어린애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홍독사는 기가 막혀서 말문이 막혔다.
기루를 운영하다보면 별의별놈을 다 보지만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기녀를 찾는 건……
“야, 이놈아. 너 고추나 여물었냐?”
“거 자꾸 이놈아 저놈아 하지 마쇼! 무슨 놈의 기루가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해. 이거 확 뒤집어버릴까?”
어린애는 제법 어른 흉내까지 냈다.
“어떻게 뒤집으려고?”
“어떻게? 어떻게는 뭘 어떻게…… 가 아니고요.”
어린애의 말투가 갑자기 공손해졌다.
뿐만이 아니다. 어린애는 벌써 벌떡 일어섰다. 눈은 사방을 향해서 휘휘 돌아간다.
“한 발짝만 움직이면…… 장담하는데 사흘 동안 피똥 싼다.”
북풍한설이 몰아치는가. 차가운 한기가 뚝뚝 떨어진다.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이, 이모(二母), 이모, 저 그게…… 그게 아니라……”
어린애는 말을 하면서도 연신 사방을 살폈다. 도주할 구멍이 있나 없나 살피는 게다.
“아휴, 내가 이놈 때문에 미치겠소. 이놈 루주 자식이라는 거 속일 수도 없겠어. 루주도 아마 어렸을 때, 딱 이랬을 거야. 가거든 한 번 물어보슈. 그랬나, 안 그랬나.”
“물어볼 것도 없어요. 그랬대요.”
한기를 물씬 풍기는 여인이 들어섰다.
주설언……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긴 하지만 여전히 아름답다. 여전히 청초하다. 하지만 수정 같이 맑은 눈동자에는 칼날 같은 서릿발이 맺혀 있다.
“너 지금 혼원벽력도 수련할 시간 아냐!”
“그건…… 그러니까 그게 재미가 없어서…… 이모, 저 이모의 독공을 배우면 안 될까요?”
어린애는 활로를 찾은 듯 주설언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혼원벽력도부터 끝내고.”
이번에는 더욱 차가운 음성, 얼음처럼 찬 음성이 들렸다.
“어, 어머니!”
어린애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주설언이 아이의 한 팔을 잡았다. 새로 나타난 여인, 팽가연이 다른 팔을 잡았다.
어린애는 허공에 번쩍 들렸다.
홍독사는 고개를 휘휘 내저었다.
“갔어?”
천정에서 속삭이는 음성이 들려왔다.
“갔소!”
홍독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쉬익!
한 사람이 날렵하게 뛰어내렸다. 루주! 그다!
루주가 말했다.
“어험! 허! 저 놈 저거 뭐가 되려고…… 저놈이 효자라면 다른 기루를 찾았을 텐데. 쯧! 그런 건 기대하기 틀렸지? 그건 그렇고…… 이번에 새로 온 기녀가 있다며?”
“아휴! 내가 빨리 죽던가 해야지.”
홍독사가 골치 아픈 듯 머리를 탁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