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87
제489화
『여는 도울 생각이 없네.』
레드 드래곤, 데이모스 모노스가 대답했다.
그 대답에 리롄제는 쓴웃음을 지은 채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직접 찾아오기까지 했으나 처음부터 부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것을 예상했었다.
세계수 관리인이라는 이유로 백도운에게 존중을 보이던 그린 드래곤조차 도울 생각이 없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저 한순간의 변덕과 흥미로 친구가 됐을 뿐인 리롄제의 함께 싸워달라는 부탁을 레드 드래곤이 들어줄 리 없었다.
데이모스가 못 박듯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이곳은 여의 세상이 아니네.』
“음…. 이해하네.”
그리 대답한 후 리롄제는 끌끌 웃었다.
레드 드래곤은 자신의 세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곳 평양 던전에 가만히 있었다.
홀로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었음에도.
심지어 이번 싸움은 데이모스와 같은 종족인 블랙 드래곤을 쓰러뜨리는 싸움이 아니던가?
배신자라고 해도 인간의 편에서 싸우는 것은 또 다른 일이리라.
그 사실들을 잘 알았기에, 리롄제는 데이모스의 “도울 생각이 없다”라는 말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끌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릴 뿐.
『그리고… 아마 여가 없어도 충분할 걸세.』
“음?”
『이곳엔 세계수 관리인이 있지 않나.』
“아.”
『문지기도 있는 데다가, 관리인을 따라다니는 시건방진 애송이 놈도 하나 있고.』
“애송이라면, 청룡을 말하는 건가?”
『‘용(龍)’이라…. 그리 불리기엔 놈의 격이 아직 부족하다만.』
데이모스가 헛웃음을 짧게 흘렸다.
리롄제가 보기에 이무기는 몸의 크기며 비늘의 빛깔이며 훌륭한 청룡으로만 보였다.
하지만 눈앞의 존재는 진짜 드래곤이지 않던가.
레드 드래곤의 눈엔 이무기가 성에 차지 않더라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 만큼 리롄제보다도 보는 눈이 정확하리라.
『그러고 보니….』
“음…?”
『자네도 있군.』
“……!”
리롄제의 눈이 조금 커졌다.
설마 데이모스한테서 “자네도 있다.”라는 인정이 담긴 말이 나올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뒤늦은 인정이었으나 인정은 인정이었고,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었다.
그 때문일까?
노인은 아주 오랜만에 쑥스러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러한 감정을 얼마 만에 느끼는 것인지 생각도 잘 나지 않았다.
해서, 리롄제는 조용히 서 있었다.
“…….”
『…그렇지. 이걸 가져가게나.』
휙…!
데이모스가 아공간에서 세로로 말린 나뭇잎을 하나 꺼냈다.
리롄제는 그 나뭇잎이 무엇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예전에 데이모스에게 마셔 보라고 건넸었던 ‘새싹이 꽃차’였다.
달다고 생각하고 마시면 달고 떫다고 생각하고 마시면 떫은, 생각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 퍽 재미있는 차였다.
툭.
새싹이 꽃차를 건네받은 리롄제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이걸 왜 돌려주는 건가?”
『여와는 어울리지 않네만….』
“……?”
『기앙(企仰)을 담아봤네.』
“기앙이라니?”
『자네가 그 차를 여에게 돌려주길 바란다는 뜻일세.』
“허어….”
리롄제의 눈이 또다시 커졌다.
멋쩍은 마음도 들어 자기도 모르게 탄성까지 흘렸다.
“…자네 마음이 참 기쁘군. 그러나-”
『그만.』
“……?”
『그러나, 는 없네.』
데이모스가 리롄제의 말을 단칼에 끊어냈다.
평소 같지 않은 모습에 리롄제는 의아함을 느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데이모스의 평소와 다른 모습이 또 한 번 이어졌다.
『가져가게.』
데이모스의 태도는 단호했다.
꽃차를 돌려받지 않겠다는 의지는 결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으나 그 상황에서 리롄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다.
바로 당황스러운 웃음을 흘리며 평양 던전을 떠나는 것이다.
“허, 허허허…?”
평양 던전을 떠나는 동안, 리롄제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우르르!
벼락을 마구 뿜어내며 블랙 드래곤을 공격했다.
블랙 드래곤이 두 날개를 활짝 펼쳐 벼락을 막아냈다.
날개를 펼쳤을 뿐인데, 어째서 피뢰침이라도 세운 것처럼 번개의 흐름이 바뀌는 걸까.
그런 의문을 생각하는 동안,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드디어 새싹이의 약점 찾기가 끝난 것이다.
[세계수가 약점 찾기를 종료합니다.] [이어 블랙 드래곤의 약점은 두 군데로, 각각 ‘목’과 ‘왼쪽 다리’라고 설명합니다.]목과 왼쪽 다리?
어째 엄청 생뚱맞은 것 같은데.
목이야 대부분의 척추동물의 급소 부위니까 그렇다고 치더라도….
다리는 딱히 급소도 아닌데 왜 약점인 거야?
우르르!
질문하면서 블랙 드래곤에게 돌진했다.
마냥 여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놈이 시간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태천이의 중력이 강하다고 한들 놈의 그림자를 전부 끌어당길 수는 없었다.
뭐, 닿으면 부식하는 안개가 사방팔방 뻗어 나가지 못하도록 억제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다.
사실 그 이상 더 바라는 게 욕심이겠지.
[세계수가 현재 블랙 드래곤의 약점인 목과 다리는 ‘부상을 당한 상태’라고 설명합니다.] [설령 영원(永遠)의 세월이 지나도 치료할 수 없는 굉장히 심각한 부상이라고 덧붙입니다.]심각한 부상을 당한 상태?
혹시 차원을 넘어 쫓겨날 때 아바돈과 격돌했던 것이려나?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그것이었다.
우리를 제외하면 블랙 드래곤과 가장 최근에 격돌한 존재가 바로 아바돈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계수는 나뭇가지를 가로젓습니다.]아바돈이 아니었다.
새싹이의 말에 의하면 상처를 남긴 존재는….
[세계수는 블랙 드래곤의 상처를 살펴본 결과 익숙한 마나가 느껴졌다고 전합니다.] [그 마나는 바로 ‘세계수 관리인’의 것이었다고 설명합니다.]세계수 관리인의 마나….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는 분명했다.
디싱 나 토르.
우리의 전대 세계수 관리인이 블랙 드래곤에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고 죽은 것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말이다.
“푸흐흐….”
그 사실을 깨닫자 웃음이 절로 나왔다.
동시에 온몸에서 푸른 번개가 우르르 뿜어졌다.
번개 줄기가 가까이에 있는 블랙 드래곤을 향해 나아가지만, 아까처럼 활짝 펼친 두 날개에 빨려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내 머릿속엔 디싱 나 토르에 대한 생각만 맴돌았다.
그래.
이래야 세계수 관리인이지.
세계수 관리인인 데다가 드래곤 로드씩이나 되는 양반이 저런 상처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었다?
그건 너무 우스운 꼴이지 않은가.
사실 저런 놈한테 패배했다는 점이 실망스럽기까지 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방금 그 실망감이 조금 해소됐다.
[세계수가 블랙 드래곤이 명제 마법을 표절한 이유를 알 것 같다고 전합니다.]표절한 이유.
나도 예상가는 점이 있었다.
블랙 드래곤은 완벽한 존재였던 디싱 나 토르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던가.
그만큼 자신도 완벽한 존재이길 열렬히 바랐으리라.
오랜 세월이 지나도 완치할 수 없는 상처 때문에 그럴 수 없겠지만.
그럼 저 열등감 덩어리인 블랙 드래곤은 무슨 짓을 할까?
뻔하다.
바로….
[세계수는 숨기고 싶었던 것 같다고 전합니다.] [다른 이들에게 완전한 존재로 보일 수 있도록….]역시 우리 새싹이.
나와 같은 추측을 했는걸?
[그런 의미로….] [세계수가 블랙 드래곤의 신체에 약점 부위를 표시합니다.] [아주 잘 보이게.]메시지와 함께 블랙 드래곤에게 약점이 표시된다.
목 정중앙과 왼쪽 정강이 바깥에 푸른 빛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발견한 세 사람이 빠르게 대화를 나눴다.
– 저기, 저만 그런가요? 지금 드래곤의 목과 정강이가 빛나는데요.
– 나한테도 그래요, 미스터 리.
– 노부의 눈에도 그리 보이는군.
– 드래곤의 마법은 아니에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거든요.
– 그럼 저건 대체 뭐죠?
셋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각자 할 일을 잘 해냈다.
밀러가 방금 막 안개 분석을 끝내고 마법으로 서서히 소멸시켰다.
그 덕분에 태천이는 블랙 드래곤에게 다가가는 식으로 중력 지역을 옮길 수 있었다.
물론,
– …….
내게 막타를 빼앗겠다고 공언했던 리롄제는 가만히 있었다.
그래도 별생각 없이 가만히 서 있는 것은 아니다.
뒷짐을 진 손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빠르게 모여들고 있었으니까.
대체 뭘 할 생각이기에 저렇게 계속 마나를 모으는 걸까….
“…뭐긴.”
리롄제를 힐끔 보면서 대화에 끼어든다.
우리 새싹이의 대단한 점을 알리기에 지금이 딱 좋은 타이밍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새싹이가 약점을 찾아내서 보기 좋게 표시한 거지.”
– 오. 저기가 약점이야?
– 생각보다 빨리 찾아냈네요!
– 이런, 이런….
태천이와 밀러가 감탄하는 가운데, 리롄제만 아쉬운 듯한 감탄사를 흘렸다.
아마도 언젠가 나와 무기가 만들어냈을 약점의 막타를 빼앗지 못해 안타까운 것 같다.
저 양반도 제정신은 아니라니까.
하긴, 그런 인간이니까 레드 드래곤이랑 친구 같은 게 됐겠지.
“전대 세계수 관리인이 입힌 부상이래요.”
– 오.
“평생토록 낫지 않는 상처라니까, 저길 집중적으로 공격하죠.”
– 알았네.
리롄제가 바로 대답했다.
그러면서 무릎을 살짝 굽혔다.
드디어 지금껏 손에 모으고 모으던 마나로 무슨 짓을 하려나 보다.
하지만….
「쳐라.」
우르르 쾅!
모두의 시선을 빼앗듯 번개가 내리쳤다.
푸른 번개는 블랙 드래곤에게로 떨어지지 않고, 떨어뜨린 장본인인 무기에게로 떨어져 내렸다.
그것도,
「막 쳐라…!」
우르르 쾅! 쾅! 콰앙!
한두 번이 아니라 막 쳤다.
그렇게 수없이 번개가 내리쳤을 때….
쩌억!
무기가 입을 벌렸다.
그러자 끝없이 떨어지던 번개가 입속으로 모이는 것처럼 둥글게 압축(壓縮)되기 시작했다.
우르르…!
뭘 하려는 건지 알겠다.
약점을 알아냈으니, 전력을 실은 공격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래야 블랙 드래곤에게 데미지를 줄 수 있을 테니까.
우리 무기의 전력을 실은 공격기는 당연히….
– ‘용의 숨결(dragon breath)’인가…!
리롄제도 무기가 하려는 것을 깨닫고 소리쳤다.
목소리에 기쁨이 한가득 담긴 것을 보니, 누가 용 오타쿠 아니랄까 봐 실제로 보게 되어 즐겁나 보다.
정확히는 ‘이무기 브레스’라고 불러야겠지만.
『우습구나, 이무기야. 네놈 따위의 숨결이 여에게 닿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블랙 드래곤은 리롄제와 달리 가소로워했다.
그러더니,
『세상 모든 빛의 이면(裏面)이여. 여에게 모여라.』
지도 아가리를 쩍 벌렸다.
아가리 속에서 흑암빛의 마나가 응축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브레스를 쓰려는 모습이다.
자기가 무슨 함무라비 법전도 아니고….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하려고 하는 꼴이 퍽 웃긴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이 어이가 없을 테지.
– 허허허!
…착각이었다.
리롄제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처구니없는 마음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 흑룡도 용의 숨결인가! 용의 숨결끼리 부딪치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보다니!
감탄하는 리롄제의 얼굴에 해맑디해맑은 웃음꽃이 피었다.
기분 탓인가?
오랜 세월 멀리서 지켜만 보던 연예인을 아주 가까이에서 만나게 된 팬 같아 보인다.
저러다가 기뻐서 실신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걱정이 절로 들 정도였다.
– 백도운.
“왜요?”
– 자제는 청룡과 힘을 합치게. 번개를 다루고 있으니 서로 방해가 되지 않을 테니 말이야.
“…알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리롄제는 제정신이었다.
용 오타쿠의 본능 때문에 정신을 빼앗길까 걱정이 됐었는데… 괜한 기우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아르카에 마나를 불어넣는다.
마나 칼날에 번개 속성이 담기며 길어지기 시작했는데, 그 길이가 3m가 넘지 못하도록 제어했다.
세계수의 마나로 구성된 칼날과 달리 번개 속성이 담기면 주변으로 뻗어 나가 피해를 줬기 때문이다.
내가 아무리 태천이 친구라지만, 유성우를 빠르게 떨어뜨리는 식의 유례없는 팀킬을 한 것과 비슷한 경험을 따라 하고 싶지는 않다.
– 흐흐흐…. 안개도 사라졌겠다, 용의 숨결이 쏘아지는 모습을 코앞에서 볼 수 있겠구나…!
…아니.
기우 맞나?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순간, 푸른빛의 브레스와 흑암색의 브레스가 동시에 쏘아졌다.
그리고,
– 내가 간다!
리롄제가 블랙 드래곤에게로 뛰어들었다.
아까와 같이, 해맑디해맑은 얼굴을 한 채로.
대체 저게 어딜 봐서 드래곤 토벌에 임하는 사람의 얼굴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