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86
제488화
빛 에너지가 한꺼번에 소실되어 광합성 모드가 풀렸다.
솔방울이 발사될 때 광합성 에너지가 모두 사용된 탓이다.
큰 문제는 아니었다.
새싹이가 성장하면서 스킬이 진화한 덕분에 절전해야만 했던 페널티가 사라졌으니까.
광합성 에너지도 다시 채워질 터였고.
[현재 관리인 백도운님이 빛의 성역 안에 있습니다.] [광합성 모드의 충전량이 증가합니다.] [광합성 에너지 1%….] [광합성 에너지 2%….]역시 빛의 성역.
광합성 에너지는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대로라면 5분도 채 안 돼서 에너지가 완충될 것이다.
“오….”
메시지 너머로 산산이 부서진 녹티스 헬리오스가 조각조각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빛의 탄알로 변모했던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도 마찬가지로 부서져서 형태를 완전히 잃었다.
그렇게, 빛을 빨아들이는 조각들과 빛을 뿜어내는 조각들이 뒤엉켜 떨어져 내린다.
아름다움마저 느껴지는 모습이었으나 그 조각조각들보다도 더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바로 태양이었다.
하늘 가장 높은 곳에 떠 있는 태양은 베르동 협곡 게이트 전체를 밝게 비추며 어둠을 몰아냈다.
이제 디버프 해제 포션을 마시지 않아도 괜찮겠군.
그때였다.
『알루키노르…!』
현재 벌어진 일의 원인을 깨달은 블랙 드래곤이 분노에 찬 목소리를 토해냈다.
바로 알아차린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에 알루키노르의 마나가 담겨 있던 것을 느꼈나 보다.
뭐, 알루키노르의 마나가 잔뜩 머금은 빛이 발광해대는 데 느끼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했다.
– 도운아.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 그래요. 그린 드래곤은 우리를 도울 생각이 없었다고 했잖아요?
– 우리 속인 거야?
– 허허허….
태천이가 밀러가 연결된 텔레파시 마법으로 질문을 해왔다.
이어 리롄제가 황당하게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타깝게도 나도 그들처럼 당황스러운 것은 매한가지였기에 해줄 말이 없었다.
알루키노르는 분명 세상만사 모든 일에 초탈의 경지에 이른 듯한 모습을 해서는 “돕지 않겠다”라고 말했었다.
뿐인가?
우리가 기분이 나쁠 수 있다는 걸 이해한다면서 발광석으로 개조한 솔방울을 돌려주었었다.
안 그래도 반협박까지 해가며 굳이 돌려주려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었는데….
이제야 그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예상컨대….
“내가 속이긴 뭘 속여….”
– 그럼 저건 뭔데?
“나도 속은 거지.”
– …아?
“그러니까, 그때부터 알루키노르는 블랙 드래곤이 녹티스 헬리오스를 쓸 걸 알고 있었던 것 같아.”
– 앗. 그럼, 설마 발광석을 부탁했던 것도…?
“아마도.”
– 와우.
태천이가 감탄을 흘렸다.
밀러와 리롄제도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일 테니,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갔다.
내가 그런 기분이었으니까.
이것 참….
이번 토벌이 끝나면 꼭 새로운 발광석을 제작해 갖다 줘야겠다.
정말로 필요해서 요구했던 물건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알루키노르…. 네놈은 쓸데없는 짓을 한 거다….』
“…쓸데없다고?”
『그렇다. 녹티스 헬리오스를 부순다고, 오늘의 결과가 달라질 듯싶으냐?』
“그야 당연하지.”
아르카를 쥔 오른손 검지를 펼쳤다.
세계수의 마나가 오른 검지에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갔다.
그러자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세계수가 ‘블랙 드래곤 약점 찾기’를 시작합니다.] [관찰 중….] [관찰 중….]약점 찾기가 시작된 메시지를 읽으며, 천진난만하게 블랙 드래곤에게 물었다.
“못 믿겠으면, 이번에도 어디 당당하게 맞아보시든가.”
『…….』
당연하게도 블랙 드래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침묵이 내가 바라던 대답이 될 걸 놈도 알지만, 허세로라도 “어디 한번 해보라.”라고 감히 말할 수 없었으리라.
녹티스 헬리오스 없이 세계수 휘두르기를 무방비하게 맞았다간 좋지 못하리란 걸 저도 잘 알 테니까.
그래서 놈은 당당한 대답 대신,
『‘칼리기니스 칼리고(cālīginis cālīgō)’….』
제 그림자에서부터 ‘암흑의 안개’를 뿜어냈다.
안개는 사방팔방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저 안개는 또 뭘까.
머릿속에 의문이 떠올랐을 때,
새싹이가 다급하게 메시지를 보내왔다.
불길함?
[세계수는 블랙 드래곤의 마나에 닿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경고합니다!]바로 새싹이의 경고를 전달했다.
방금 녹티스 헬리오스를 파괴한 솔방울로 확실해지지 않았던가.
우리 새싹이의 느낌은 그저 느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경고를 전달하자마자, 무기와 세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안개로부터 황급히 떨어졌다.
블랙 드래곤과 가장 가까이 있던 태천이는 중력구까지 새롭게 만들어서 부랴부랴 몸을 피했다.
다행이다.
중력구로 안개의 진출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면 발뒤꿈치가 아주 살짝 닿았을지도 모르겠다.
[세계수가 관찰을 끝냅니다.] [저 안개는 닿는 순간 몸이 부식(腐蝕)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닿는 순간 부식된다니….
방금 태천이의 발뒤꿈치가 부식됐을지도 모른다는 뜻 아닌가?
하여간 블랙 드래곤.
자기 성격만큼이나 끔찍한 마법을 쓰는구만.
『조금 아쉽구나. 문지기를 끝낼 수 있었거늘….』
블랙 드래곤의 말을 씹으며 새싹이가 알아낸 사실을 모두에게 알렸다.
끝내긴 개뿔.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우리 태천이는 새싹이가 순식간에 치료해줬을 거다.
발이 없다고 해서 데메르고에 당할 녀석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블랙 드래곤은 안개를 부려 우리를 공격했다.
태천이의 중력이 안개를 억누르지 않았다면, 솔직히 말해서 조금 위험했을지도 모르겠다.
리롄제와 밀러가 말이다.
– 지팡이에 분석 마법 부여해뒀어요. 분석 후 소멸시킬게요.
– 그전까지는 제가 중력으로 계속 억누르겠습니다.
– 그동안 노부와 백도운이 놀아주면 되겠군.
정보를 전해 들은 이들은 빠르게 대응책을 의논한 후 바로 행동에 나섰다.
태천이는 블랙 드래곤의 안개가 바닥에 완전히 깔릴 정도로 중력의 출력을 올렸다.
원래 중력보다 몇십 배는 더 될 듯한 저런 곳에서 오롯이 서 있는 게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밀러는 말한 대로 지팡이에 부여된 분석 마법으로 암흑의 안개를 살폈고, 리롄제는 나를 돌아봤는데….
“……?”
뭐지.
저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웃는 낯짝은.
– 흑룡의 흑암(黑暗) 비늘을 누가 먼저 꿰뚫을지 내기하지 않겠느냐?
“지금 우리 새싹이가 약점 찾고 있는데요.”
– 약점이야 어차피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나.
“하.”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약점은 만들면 되는 것 아니냐고?
정말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가 없는 말인걸?
[……?] [세계수가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다면서 황당해합니다.] [충분히 할 수 있다고 다시 강조합니다.] [금방 약점을 찾아낼 테니, 힘들게 헛수고하지 말-]새싹이가 보내오는 정론을 무시했다.
그러면서 아까부터 조금씩 오르던 에너지 충전율을 보여주던 메시지창을 확인했다.
타이밍 좋네.
곧바로 광합성 모드를 썼다.
그런데(하지만), 이번엔 빛의 에너지를 사용해서 광합성 모드를 쓰지 않았다.
빠직, 빠지직…!
온몸을 번개로 바꾸는 광합성 모드, ‘리히텐베르크’를 썼다.
그리고,
「버스트 모드.」
무기도 썼다.
푸른 번개와 같은 모습이 된 것이다.
“그런데 영감님.”
– 음?
“우리 따라올 순 있겠어요?”
– …….
꿈틀.
리롄제의 흰 눈썹이 꿈틀거렸다.
무시당한 것 같아서 불만스러운 모양이지?
그러거나 말거나.
무기의 이마 위에서 뛰어내리고 블랙 드래곤에게로 향했다.
바로 이 점이 리히텐베르크를 쓴 이유이기도 했다.
이걸 쓸 땐, 한진환이 그랬던 것처럼 하늘을 날 수 있었다.
***
“흐음….”
우르르…!
리롄제는 뒷짐을 진 채로 마른하늘에 떨어지는 벼락을 바라봤다.
그 벼락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었다.
백도운과 이무기가 번개를 두른 모습을 한 상태로 블랙 드래곤을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
블랙 드래곤은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날개와 그림자 마법을 펼쳐 공격을 방어할 뿐이었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이태천이 만들어낸 중력 지역에 붙들린 탓인 듯했다.
또 같은 이유에서인지 현재 밀러가 분석 중인 암흑의 안개도 무릎 위까지 올라오지 못했다.
“흠….”
리롄제는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정확하게 측정해보진 않았으나, 눈 앞에 펼쳐진 중력 지역은 원래 중력으로부터 수십 배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블랙 드래곤은 여유로웠다.
도운과 무기의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는 데다가 반격까지 했고, 동시에 리롄제 자신과 밀러의 행동도 주시하고 있었다.
특히, 밀러가 도운과 무기를 지원하려고 마법을 쓸 땐 마법을 봉인하는 마법을 써서 그녀를 순식간에 무력하게 만들기까지 했다.
“대단하군….”
리롄제가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러나 그 감탄은 블랙 드래곤이 아니라 밀러를 향한 것이었다.
사실 그는 밀러가 이번 토벌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하리라 생각했었다.
마법을 봉인하는 블랙 드래곤과 싸우는 것 아니던가?
마법사가 큰 도움이 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 고마워요, 밀러. 덕분에 그림자에 붙잡히지 않았어요.
– 별말씀을.
밀러는 오히려 그것을 역이용해 도움이 되고 있었다.
S등급에 해당하는 공격 마법을 시전해 블랙 드래곤이 억지로 그녀를 신경 쓰도록 만든 것이다.
그것도 도운과 무기가 블랙 드래곤을 공격하기 쉽게 하는 타이밍에 맞춰서.
혹은 블랙 드래곤이 그 둘을 공격하려는 타이밍에 맞춰서.
“저것이 두 번째 계책이었지….”
리롄제가 끌끌 웃으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제 처음 들었을 땐 허무맹랑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두 눈으로 보고 나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과연 대마법사라는 명성은 허울이 아니었다.
– 이대로라면, ‘세 번째 계책’도 통할 것 같네요.
– 네. 저도 동의해요.
– 조금 더 이 방식으로 싸워볼까요? 밀러.
– 좋아요.
“끌끌….”
뒷짐을 진 리롄제가 밀러의 계책을 인정하며 끌끌 웃고 있는 그때,
– 뭐가 그렇게 웃깁니까?
머릿속에 고까워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운의 목소리였다.
푸른 번개가 되어 눈으로 쉬이 좇을 수 없을 만큼 빨리 움직이면서도, 도운은 리롄제를 신경 썼다.
아니, 정확히는 언짢아했다.
– 웃지만 말고 좀 거들지 그래요?
“그게, 아직 때가 아닌 듯해서 말이네.”
– 때…?
“노부는 자네와 청룡이 지금 정확히 흑룡의 이마만을 공격하고 있음을 아네.”
– 그래서요?
“아직 그 비늘이 꿰뚫리려면 멀었다는 것도 알고.”
– …그러니까, 지금 막타를 대놓고 노리겠단 겁니까?
“내기란 자고로 비정한 법 않겠나.”
– 아주….
도운이 말을 하다 말았다.
그러나 리롄제는 도운이 하려던 말이 무엇인지 쉬이 추측할 수 있었다.
아주 지랄을 하고 있네.
그리 말하고 싶었으리라.
아마도 리롄제의 나이가 도운의 나이보다 4배 가까이 많지 않았다면, 분명히 그리 말했을 터였다.
– 미리 말해두는데, 그러고 있다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끝날 겁니다?
“걱정하지 말게. 노부가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으니.”
– 그러시든가 말든가.
“끌끌….”
리롄제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우르르 쾅!
타이밍이라도 맞춘 듯이, 벼락이 요란하게 울리며 그의 웃음을 지워버렸다.
이어 대화가 끊겨 조용해진 머릿속에,
『여는 도울 생각이 없네.』
레드 드래곤, ‘데이모스 모노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어 자신을 심드렁하게 바라보던 황금빛 눈동자도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