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s being mistaken for a soccer genius RAW novel - Chapter (226)
226화 빚 청산 -1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다.
누가 한 말이고,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는 잘 모른다.
대충 유명한 사람이 했을 거다.
그러니까 유명한 말이 됐겠지.
아무튼, 저 말에 나는 꽤 공감한다.
인간은 확실히 적응하는 동물이 맞다.
뭐, 어렵게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살면서도 여러 번 느끼지 않나.
뭐든 시간이 지나면 다 익숙해지고, 결국엔 적응하게 된다는 거.
예를 들면··· 그렇게 적응이 안 되던 이탈리아가 어느새 내 집처럼 느껴졌던 거라거나.
말도 안 되는 일로 느껴졌던 1군 시합 출전이 나중엔 아무렇지 않게 느껴졌다거나.
나만 해도 적응의 경험은 많다.
남들보다 훨씬 적응력이 떨어지는 나조차 그렇게 적응해가면서 살아온 걸 보면, 확실히 인간은 적응의 동물인 거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인간에게 중요한 게 있다면, 그건 바로 주변 환경이 아닐까 싶다.
왜냐면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주변 환경에 적응하며 사는 동물이고, 적응한다는 건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아 바뀌어 간다는 거니까.
적응의 동물인 인간에게 주변 환경이란 건 정말 중요할 수밖에 없는 거다.
과학 시간의 교과서에도 본 적이 있다.
추운 지방에 사는 인종은 적응을 위해 어떻게 진화했고, 더운 지방에 사는 인종은 어떻게 변화했고.
나로 비춰봐도 그렇다.
유학을 스페인으로 갔다면 스페인어를 했겠지만, 이탈리아로 갔기에 이탈리아어를 할 수 있게 됐고.
프랑스 요리보단 이탈리아 요리를 더 좋아하게 됐고, 누가 파인애플이 들어간 피자를 먹고 있으면 화가 나게 됐고.
결국 사람은 주변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동물인 거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나는 참 운이 좋다.
내 주변엔 항상 배울 점 많은 사람들이 가득했었으니까.
피렌체에 와서 만난 친구들이라든가, 감독 코치님들이라든가, 프로의 세상을 알게 해 준 선배들이라든가.
특히 어쩌다 보니 내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지우도 나쁜 애는 아닌 걸 보면 운이 참 좋은 거다.
만약 지우가 나쁜 애였으면 뭐, 나도 안 좋은 영향을 받았을 텐데 그 반대였으니까.
되돌아보면··· 나는 꽤 괜찮은 환경에서 자라온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파아앙-!
파아앙-!
잠시 이온 음료로 입을 헹궈내며 휴식을 취하는 와중.
오늘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릴 바라보는 감독님과, 훈련에 한창인 선수들로 훈련장은 실제 시합 중인 것처럼 분위기가 진지하다.
이틀 전 치러진 번리와의 개막전에서 우리는 3대0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쉽지만은 않은 시합이었지만 결국 우린 답을 찾아냈고, 3점 차라는 꽤 만족스러운 결과와 함께 맨체스터로 돌아온 것이다.
다만 내게 인상적이었던 건, 누구도 들뜬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는 거였다.
솔직히 나는 조금 들떠 있었다.
시합이 끝난 직후엔 말이다.
긴장이 풀리면서 느껴지는 안도감과 깨닫고 배운 게 있다는 것 때문인지, 유독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다른 선수들은 그러지 않았다.
되려 시합이 끝나자마자 라커룸에서 서로 무엇이 부족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식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팀 규율에 따라 우리는 모두 함께 아침을 먹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시합 얘기를 했다.
누가 잘했느니, 뭐가 좋았느니 하는 얘기는 일절 없었다.
마치 어제 시합을 진 사람들처럼 피드백을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은 이기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었다.
이기는 건 당연하고, 3대0으로 이겼어도 4대0, 5대0으로 이기지 못한 걸 아쉽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감독님 보고 승리에 미친 인간이라고 했던 사람이 제일 열심히 피드백하는 걸 보곤··· 헛웃음이 나오더라.
어쨌거나, 그 모습을 보니 당연히 내 들뜬 기분도 금세 차분해졌다.
어제 승리의 기쁨보다는 내일과 다음 주를 먼저 생각하게 됐다.
어떻게 하면 더 큰 승리를 거둘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거다.
이런 감독님과 이런 동료들이 있는 팀에 있다 보면 나도 적응을 하게 될 것이고, 버티고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나도 저런 선수가 되어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나란히 설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하게는 될 수 있지 않을까.
어쨌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니까 말이다.
파아앙-!
파아앙-!
“Faster! FA-S-TER-!!”
···흐음.
그나저나, 나중에 가면 저 감독님의 불호령에도 적응이 될 수 있을까.
지금은 시도 때도 없이 깜짝깜짝 놀랄 만큼 무섭기만 한데.
“후우-”
적당히 쉬었으니 이제 다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이 미친 사람만 모인 팀에 걸맞은 미친 사람이 되기 위해 훈련장으로 나섰다.
ㆍㆍㆍ
리그 2라운드이자 홈 개막전, 뉴캐슬 유나이티드라는 팀과의 경기를 이틀 앞둔 날.
쓸데없이 크기만 한 집이 오늘따라 더 조용하다.
“···”
아빠와 지우가 외출한 탓이다.
아빠와 내가 꺼낸 그 식당 얘기 때문에 요즘 바쁜 둘인데, 오늘은 그 일 때문이 아니고.
공항까지 마중 나갈 일이 있어 나갔다.
[······내일 맨체스터의 기온은 최저 13도, 최고 20도에 형성될 것으로 예측되며······]덕분에 거실엔 TV 소리만이 공허하게 흘러나오는 와중.
내 귀엔 그마저도 들어오지 않는 게, 솔직히 말하면 지금 나는 많이 긴장한 상태다.
홈 개막전이 이틀 남아서 그런 거냐면, 그런 건 아니고.
아빠와 지우가 마중을 나갔다던 손님들이 슬슬 도착할 시간이라서다.
손님들은 다름 아닌 지우의 부모님이었다.
여름 휴가를 맞아 지우를 보러온다고 하셨다.
그래서 당연히 우리 집으로 오시게 된 건데.
으음.
근데 왜 긴장이 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지우네 가족들이야 나한테도 가족이나 다름없는 분들이라 긴장될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
그런데도 아까부터 소파에 편히 누워있질 못하겠다.
···뭔가 켕기는 느낌이다.
죄지은 것도 없는데 죄지은 기분이랄까.
왜 그런가 굳이 생각해보면, 나 때문에 지우가 한국으로 안 돌아가고 여기 있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실 그렇잖아.
아무리 서로 얘기는 했다지만, 따지고 보면 나 때문에 딸 얼굴을 못 보게 된 거니까.
아무리 좋은 분들이시라도 내가 미워 보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거다.
부모님 입장에선 내가 딸을 뺏어간···
“···”
···뭔가 말이 이상한 것 같아서 고개를 세차게 젓는다.
굳이 따지면 맞을 수도 있긴 한데, 그래도 그건 좀 뭔가 이상하게 들리잖아.
그건 아니지.
입을 삐죽 내민 채 괜히 고개를 젓고 있을 때였다.
띵동-
“···!”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나도 모르게 벌떡 소파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얼른 인터폰을 확인해보곤, 침을 꿀꺽 삼키며 문을 열어준다.
“···”
어떻게 하고 있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그 자리에 차렷 자세로 문이 열리길 기다렸다.
*
“세상에, 세상에. 어떻게 점점 더 잘생겨지니, 지안아.”
“아, 아뇨···”
“키도 그때보다 더 큰 것 같다, 얘. 어릴 땐 작다고 고민하더니. 이렇게 잘 클 건데 고민을 왜 했대.”
“하하···”
쉴 틈 없이 쏟아지는 허무맹랑한 칭찬에 어찌할 바를 몰라,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만 긁적인다.
지우네 부모님께서 오셨다.
지난 월드컵이 열리기 전 한국에 갔을 때 뵀었으니까 거의 1년 만인데···
“밥은 계속 잘 먹고 있지? 요즘도 막 먹는 거 조절해서 먹고 그러니?”
“아, 네···”
“아이구, 딱해서 어떡해. 한창 먹을 때인데 맘대로 먹지도 못하고.”
···왠지 모를 죄책감 때문에 긴장했던 게 무색한 반응이셨다.
문을 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10분은 넘은 것 같은데, 아직까지도 반가움의 인사가 끝이 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다.
덕분에 괜히 걱정한 것 같아 다행이긴 한데···
“차암, 정말. 이렇게 훌쩍 컸는데 그래도 어릴 때 얼굴이 남아 있네. 어떻게 이렇게 잘 컸을까? 응?”
누가 지우 어머니 아니랄까 봐.
쏟아지는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조금 버겁다.
끝나지 않는 인사도 그렇고, 그··· 엉덩이 토닥토닥은 좀.
어릴 때 지우네 집에 놀러 간 기분이 된 건 좋지만, 그래도 나 밖에선 나름 어른인 척하고 다니는데···
“아, 이 사람아. 어딜 자꾸 만져. 저 몸이 수천억짜리인데 귀한 줄도 모르고.”
“에고! 미안해라. 나는 너무 반가워서. 미안해, 지안아!”
“아, 아니에요.”
아니, 뭐 그렇다고 사과까지 하실 건 없다만.
저 뒤에서 키득대고 있는 지우의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이다.
“그, 집 소개해드리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머, 우리 좀 봐. 아줌마가 주책 부리느라 여기서 또 잡아두고 있었네. 응, 가자.”
“넵. 그, 저쪽으로 가면 2층 가는 계단이 있거든요.”
“어머나, 세상에.”
아무튼.
우선은 집부터 구경시켜드리고 있었던 참이다.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1층은 대충 다 둘러봤고,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그나저나.
아까부터 어딜 볼 때마다 지우 어머니께선 지우에게 한 소리씩 하고 계신다.
“얘, 밥은 잘하고 있지? 귀찮다고 대충 하는 건 아니고?”
“아 쫌, 아니라니까. 집에 있을 땐 내가 세 끼 다 해주거든?”
“그냥 해주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정성껏 해줘야지.”
“내가 뭐 유학을 괜히 왔겠어? 연구까지 해가면서 해준다, 연구까지.”
“그래도 더 열심히 해. 이 집을 봐라. 이런 데서 공짜로 사는 게 가당키나 하니?”
“아, 뭐래. 언제는 나한테 돈 같은 거 안 중요하다면서.”
“이건 얘기가 다르지, 지지배야!”
···이유는 모르겠다만 지우는 계속 혼나는 중이다. 거실, 부엌, 방 하나하나 볼 때마다 더 크게 혼났다.
이런 집에서 산다는 게 말이 안 되는 거라면서 말이다.
정작 지우가 여기 사는 건 나 때문인데.
“그, 여기가 2층 거실이고요. 이쪽으로 나가면 테라스···”
“어머, 어머! 지우야!”
“아 또 왜!”
“세 끼론 부족해! 네 끼로 가! 베이킹도 따로 배우라구!”
···머리가 조금 어질어질하다.
*
“우리 때는, 응? 요기 거실 반에 반 만한 방을 신혼집 삼아서, 그렇게 시작했지.”
“크흠, 여보.”
“왜, 맞잖아요. 당신 살짝 꼬셨더니 홀랑 넘어와가지고는. 그때 내가 살던 원룸에서···”
“아이, 참. 그만하라니까.”
지우 아버지의 얼굴이 붉어지자 어머니께서 킥킥대고 웃으신다.
예전부터 느낀 거지만 지우는 참 엄마를 많이 닮은 것 같다.
“아무튼, 지우야. 넌 복에 겨운 줄 알아야 돼.”
“내가 뭐가.”
“뭐가라니! 이런 으리으리한 궁전에서 공주처럼 사는데! 엄마 아빠는 원룸에서 시작했다니까?”
“아, 대체 그거랑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아이고, 답답해. 당신도 뭐라 좀 해봐요. 네?”
“···크흠.”
지우는 아직도 혼나고 있다.
그 모습이 조금 고소하긴 한데, 솔직히 왜 혼나고 있는 건진 나도 모르겠다.
덕분에 나랑 아빠는 지우가 혼날 때마다 서로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참는 중.
결국 마음 착한 아빠가 지우를 도와준다.
“그, 일주일 계신다고 하셨죠?”
“네, 네. 휴가를 길게 잡았어요. 또 언제 올 수 있을지 모르니까.”
“뭐 하고 싶으신 거나 가고 싶으신 곳은 있으시고요? 저도 잘 모르긴 하는데, 그래도 차로 모시고 다닐 수는 있으니까요.”
아빠의 물음에 두 분께선 고개를 젓는다.
“그냥 아드님 얼굴 보러 온 거죠, 뭐. 겸사겸사 딸 얼굴도 좀 보고.”
“···엄마.”
“농담도 못 하니, 얘. 그래, 너 어떻게 지내나 보러 왔지. 근데 복에 겹게 살고 있네.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하지. 이런 곳에서···”
“아, 좀 제발!”
참 대단한 분이시기는 하다.
지우를 질리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원조는 못 이기는 법인가 보다.
또다시 시작된 모녀의 티격태격에, 허허 웃은 아빠가 나를 보더니 말한다.
“그럼 그, 혹시 티켓 같은 거 구할 수 있나?”
“티켓이요?”
“응. 시간이 촉박해서 어려우려나.”
티켓이라면 내일모레 시합 말인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한다.
“구할 수는 있죠. 제가 말하면.”
“그럼 부탁 한번 드려볼래? 여기까지 오셨는데, 직접 한번 보시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럴게요.”
으음, 잠깐만.
지우 부모님이 직접 경기를 보러 오신다고···
“···”
왜 갑자기 미친 듯이 잘하고 싶지.
이거 참 모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