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485
제487화
– 이상해요.
머릿속에서 밀러의 목소리가 울린다.
지팡이에 부여해놓은 텔레파시 마법으로, 그녀가 아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끼리 대화할 수 있었다.
이상한 건 블랙 드래곤을 공격하고 고개를 갸웃거린 당신 같은데.
그렇게 말하는 것보다, 블랙 드래곤에게서 떨어지는 리롄제가 밀러의 의견에 동의하는 게 더 빨랐다.
– 그 말대로군. 분명히 때렸거늘, 때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
– 그리고… 왠지 이 현상을 어디에선가 본 것 같은 기시감이 들어요.
– 노부도 그렇군. 이 불가해한 감각이 꼭 경험한 듯 친숙하구나.
– 음…. 저는 잘 모르겠는데요…?
태천이가 뻔한 대답을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S급 헌터인 두 사람이 공통으로 기시감을 느꼈다면 절대로 단순한 감각일 리가 없었다.
때린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데, 그 현상이 어떤지 친숙하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어라?”
생각하고 나니….
나도 어쩐지 익숙했다.
그들이 느꼈던 것처럼 어디에선가 경험했었던 것만 같다.
내가 이걸 어디에서 봤더라…?
그런 고민을 하는 내 눈앞에, 블랙 드래곤의 그림자 마법과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림자 마법은 우리 모두를 향해 쇄도했다.
태천이는 중력으로 그림자를 억눌렀고, 리롄제는 두 손으로 그림자를 쳐냈으며, 밀러는 그림자를 굴절시켜 지나가게 했다.
나는 그림자 마법을 피하지 않고 여유롭게 서서 메시지창만 봤다.
우르르!
무기가 번개를 뿜어내며 피해줬기에 직접 대응할 필요가 없었다.
[세계수가 약점 찾기를 종료합니다.]메시지창엔 드디어 ‘관찰 중….’이라고 쓰여 있던 메시지가 바뀌어 있었다.
이어 새싹이의 설명이 이어졌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결과였다.
[세계수는 블랙 드래곤에게 약점이 없다고 설명합니다.]약점이 없다고?
그게 말이 돼?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메시지에 반문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어떻게 약점이 없을 수 있다는 말인가?
[세계수는 대수롭지 않게 말이 된다고 전합니다.] [왜냐하면….]왜냐하면?
[세계수는 블랙 드래곤이 표절을 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설명합니다.]표절이라고?
갑자기 웬 표절?
생각지도 못한 단어가 나와 연달아 되묻고 말았다.
블랙 드래곤의 약점이 없다고 말하다 갑자기 표절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니 이해가 잘 가지 않았다.
저놈이 대체 뭘 따라 했다는 걸까, 아?
“설마…?”
순간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생각은, 리롄제와 밀러가 느끼고 내가 느낀 기시감을 이해시키기에 충분했다.
새싹이가 긍정하듯 메시지를 보내왔다.
[세계수가 블랙 드래곤은 전대 세계수의 ‘명제 마법’을 표절했다고 전합니다.]명제 마법을 따라 했다….
즉.
내가 울릉도 게이트에서 무기가 무엇인지 선택하고 나서야 보호하던 실드가 없어졌듯이.
아바돈이 전대 세계수에 해를 가하고자 전대 세계수 관리인을 먼저 살해해야 했듯이.
블랙 드래곤이 무수한 공격에도 데미지가 입지 않도록 어떤 장치를 해놨다는 뜻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우리 새싹이가 틀림없이 알아냈으리라.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자신만만하게 끄덕입니다.] [사실 그것을 분석하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다만 분석하고 나니, 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지 생각할 만큼 너무나 당연했다고 전합니다.] [왜 그 생각을 바로 못 했는지 황당할 정도라고 덧붙입니다.]너무나도 당연했다?
그 조건이 뭐기에 그래?
[세계수는 나뭇가지로 하늘을 가리킵니다.]그 메시지에 바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와 동시에 또다시 블랙 드래곤의 그림자 마법이 날아들었지만, 이번에도 가만히 서 있는 내게 닿지 못했다.
우르르!
무기가 번개를 뿜어내며 그림자 마법을 모두 상쇄시켰다.
덕분에 시선을 하늘에서 떼지 않을 수 있었다.
빛의 성역으로 새하얗게 빛나는 하늘….
-보다, 더 높은 곳의 하늘은 어두웠다.
그리고 그 어두운 하늘엔 ‘녹티스 헬리오스’가 떠 있었다.
칠흑처럼 어두워서 구멍이라도 뚫린 것 같은 검은 태양이.
“…저거라고?”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끄덕입니다.] [저걸 부수면 블랙 드래곤의 ‘표절 마법’은 힘을 잃게 되고 공격이 통하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새싹이의 설명을 듣고 나니,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런 거라면 애초에 부수고 오는 게 좋지 않았나.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했을 때, 왜 새싹이는 부수고 말고 무시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말한 걸까.
이번엔 한진환 때와는 달리 예지가 아니라 느낌에 불과했던 건가?
[세계수는 자신도 잘 모르겠다고 나뭇가지를 으쓱입니다.] [이어 그때와 완전히 똑같은 느낌이었다고 변명합니다.]끄응….
아쉬운 마음이 들긴 하지만, 이미 결정했던 일이다.
안타까워 해봤자 달라질 것은 없었다.
행동으로 나아가면 될 뿐.
세 사람에게 바로 ‘녹티스 헬리오스를 부숴야만 블랙 드래곤을 공격할 수 있다’라는 사실을 알렸다.
– 이런, 부수고 올 걸 그랬구먼….
– …역시 드래곤이네요. 설마 세계수와 같은 마법을 쓸 수 있을 줄은 생각 못 했어요.
– 어르신이 갔다 오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블랙 드래곤의 행동을 저지하려면, 도운이가 여기 있어야 하니까.
과연 S급 헌터들다웠다.
겨우 세 마디 만에 아까움을 훌훌 털어버리고 대책을 세우다니 말이다.
– 바로 가겠네.
태천이의 의견에 리롄제는 바로 동의했다.
그가 보기에도 그가 남아 블랙 드래곤을 제지하는 것보다는 내가 남는 게 더 나을 터였다.
훅, 훅….
리롄제가 높은 절벽을 오르듯 허공을 밟으며 빠르게 올라갔다.
그 순간,
『생각보다 빨리 알아차렸구나.』
블랙 드래곤의 말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하늘 위로 올라가는 리롄제의 행동에서 우리가 뭘 노리고 있는지 빠르게 파악한 것이다.
『어린 세계수 덕분이겠지…. 그런데, 관리인이여. 저 늙은 인간 따위가 할 수 있을 성싶으냐?』
“뭐?”
『여의 마법이니라.』
블랙 드래곤의 목소리는 자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리롄제로서는 녹티스 헬리오스를 파괴할 수 없다고 단정을 내리는 듯했다.
『진정으로 저 늙은 인간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하느냐?』
리롄제도 그걸 느꼈는지 올라가는 것을 멈추고 내려다봤다.
그새 밀러가 있는 곳 비슷하게 올라간 그의 눈빛이 싸늘했다.
진짜 드래곤이 아닌 우리 무기를 볼 때도 초롱초롱 빛났던 눈이었는데….
그런 눈이 진짜 드래곤을 바라보는데도 얼어붙을 것 같이 서늘하다.
지금 그의 기분이 얼마나 더러울지 예상할 수 있었다.
비위가 뒤집힐 것처럼 거슬릴 테지.
『저 늙은 인간으로는 무리다. 저것을 부수려면, 관리인이 직접 올라가는 수밖에는 없느니라.』
“…그래서? 그걸 굳이 친절하게 가르쳐주는 이유는?”
『세계수 관리인을 위해 순수하게 친절을 베푼 것이라면 믿겠느뇨?』
“너 같으면 믿겠냐?”
『큭큭큭….』
블랙 드래곤이 비웃음을 흘린다.
순수. 친절.
그런 정다운 짓을 할 리가 없는 놈이다.
저런 정보를 굳이 가르쳐준 것은… 아마도 이런 걸 거다.
내가 녹티스 헬리오스를 부수려면 무기와 함께 올라가야 하고, 그리하면 태천이와 리롄제와 밀러만 남게 된다.
즉. 우리 없이 세 사람만으로 블랙 드래곤을 상대해야 했다.
“…….”
아무리 생각해봐도 무리다.
내 머릿속에선, 부수고 왔을 때 태천이 혼자 살아남아 있는 모습만 그려졌다.
그때였다.
– 괜찮네.
밀러의 텔레파시 마법을 통해 리롄제의 말이 머릿속에 들렸다.
목소리가 차분한 것이, 블랙 드래곤의 도발에 넘어간 것 같지는 않았다.
– 노부가 할 수 있네. 이런 순간을 대비해 준비해온 것도 있으니.
리롄제는 성공할 수 있다고 담백하게 자신했다.
믿어도 좋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블랙 드래곤의 행동이 여유롭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큭큭큭….』
블랙 드래곤은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웃음만 흘렸다.
내 선택을 기다리는 듯이 말이다.
『진정으로 저 늙은 인간으로 가능하리라 생각하느냐?』
『저것을 부수려면, 관리인이 직접 올라가는 수밖에는 없느니라.』
생각해 보면, 드래곤은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이 있었다.
알루키노르가 나한테 세계수의 성장을 서두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블랙 드래곤도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저렇게 자신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백도운.
리롄제가 나를 불렀다.
서둘러 결정을 내리라는 뜻이 분명했다.
하지만… 무엇이 좋을지 고민이 되어 선뜻 선택할 수가 없었다.
리롄제를 믿을지.
지금 무기와 올라갈지.
무기 대신 곧 도착할 임페일과 함께 올라갈지.
그렇게 고민이 길어지려고 할 때였다.
[알림!] [알림!]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이 깜빡깜빡 떴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메시지창이 나타났다가 사라져서 그런가?
평소처럼 메시지를 연달아 보내는 것보다 더 눈에 띄었다.
[세계수가 관리인에게 서둘러 인벤토리를 확인하기를 요구합니다.] [현재 인벤토리에서 어떤 물건이 흰빛을 엄청나게 발산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인벤토리에서…?
바로 인벤토리를 열어 확인했다.
“오…?”
새싹이의 말대로였다.
정말 인벤토리에서 빛이 눈부시게 발광하고 있어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게 대체 어떤 물건에서 나는 빛일까.
눈을 살짝 찌푸린 채로 허공에 뜬 인벤토리 안을 톡톡 두드렸다.
그렇게 몇 차례 두드렸을까….
톡.
이내 빛을 발산하는 물건을 정확히 두드렸다.
그러자,
쾅!
내 검지에서부터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운석이 떨어지는 소리 같기도 하고, 공기를 찢어발기는 소리 같기도 했다.
그 소리를, 나는 놀랍게도 몇 번이나 들어본 적이 있었다.
“솔방울….”
전대 세계수의 솔방울이 발사할 때면 꼭 났던 소리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하늘 높이 솟아오르는 저것은 그저 솔방울이 아니다.
알루키노르 루모스의 부탁으로 심해를 비추는 발광석(發光石)이 된 상태였으니까.
***
태평양 던전의 깊은 심해.
빛을 뿜어내는 발광체 아래 알루키노르가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나 살짝 올라간 입술 끝이 그린 드래곤이 잠들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하르모니아 카무스….』
그때, 알루키노르의 입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올라간 입꼬리만큼 높은 목소리였다.
『여가, 이 몸이…, 진정으로 그저 지켜보고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더냐?』
그린 드래곤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은 즐거움과 상쾌함이었다.
바닷속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가 유쾌함을 느끼고 있는 탓일까?
고요하던 태평양 던전이 평소보다 조금 요동쳤다.
『그리 멍청하니, 아바돈 따위에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이다…!』
아니, 실제로 태평양 던전은 평소보다 많이 요동쳤다.
아주 많이….
***
휘오오오…!
바람이 휘몰아친다.
자연적인 바람이 아니다.
하늘 높이 솟구쳐 오르는 발광석이 만들어낸 바람이다.
“당시엔 몰랐는데….”
[……?]「……?」
내 중얼거림에 새싹이와 무기가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누구에게랄 것 없이 중얼거린 것이기 때문에 누가 반응하든 상관은 없었다.
해서, 하려던 말을 계속했다.
“발광석 모양이 꼭 그거 같지 않아?”
[세계수가 나뭇가지를 갸웃거립니다.]「……?」
“아. 너희는 본 적 없겠구나.”
새싹이와 무기는 둘 다 차원을 넘어온 존재다.
알루키노르의 마나를 잔뜩 머금은 빛을 뿌려내면서 솟구쳐 올라가는 발광석이 ‘빛의 탄알’처럼 보인다고 말해봐야 이해하지 못하겠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중얼거릴 때였다.
콰아아아아앙!
내 손에서 제멋대로 발사된 발광석이 굉음을 내며 녹티스 헬리오스와 격돌했다.
그리고….
S등급을 웃도는 방어력과 내구성을 지니고, 모든 마법 공격에 면역인 탓에 물리 공격만 통한다던 검은 태양이 파괴됐다.
본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입에서 제멋대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