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56
제56화
원탁이 놓인 어두운 방에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모여 있다.
로브에는 벌이나 해골 등 각기 다른 형태의 브로치가 달렸다.
얼굴을 가린 서로를 구별하기 위해서다.
현재 원탁에는 3개의 빈자리가 있다.
2개의 의자는 주인을 잃었고, 나머지 1개 의자의 주인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들 중 개미 브로치를 단 사람이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푸르스름한 빛이 나며 그 사람의 입을 막았다.
빛무리가 사라지자 그들처럼 똑같이 로브를 뒤집어쓴 사람이 나타났다.
그 사람의 로브에는 버섯 브로치가 달려 있었다.
자신을 향하는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푹 숙여 보인다.
“죄송합니다. 일을 처리하다가 늦었습니다.”
“버섯 애송이. 누가 보면 우리 중에 너만 일하는 줄 알겠어?”
“그래. 우리 모두 다 바쁜데 모인-”
개미를 시작으로 각자 한마디씩 거든다.
해골 브로치를 한 사람이 손을 올렸다.
그 순간 원탁을 둘러싼 입들이 조용해졌다.
원탁은 둥글어 평등할 것 같았지만, 분명한 계급이 존재하고 있었다.
해골은 나무라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다음부터는 빨리 오도록 하게.”
“네, 죄송합니다.”
버섯은 고개를 숙이며 또다시 사과했다.
원탁에 모인 사람들은 그 사과를 가만히 지켜봤다.
눈은 보이지 않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은 시선임이 틀림없었다.
원 형태의 브로치를 한 사람이 손을 휘휘 젓는다.
그는 해골 브로치를 한 사람의 바로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해골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펼쳤다.
원탁 가운데에 영상이 하나 떠오른다.
영상 속에는 백도운의 히죽 웃는 낯이 담겨 있다.
“다들 이 영상 봤나?”
그 질문에 원탁에 앉은 이들은 각자 다른 반응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 고개를 가로젓는 이들, 가만히 있는 이.
“못 본 사람들을 위해 짧게 보도록 하지.”
재생된 영상에는 그들이 잘 아는 얼굴들이 있었다.
이태천과 백도희다.
그 얼굴들을 보고 몇몇이 이를 갈았다.
그들이 하는 ‘일’에 몇 번이고 방해가 된 이들이다. 반가울 리 없었다.
원탁에 앉은 이들을 대표해 개미가 질문을 던졌다.
“백운천이 또 무슨 짓이라도 저지른 겁니까?”
“김무연과 싸웠더군.”
“김무연…? 아이가이온? 설마, 두 길드가 충돌한 겁니까?”
“그건 아니다.”
그들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오르려다가 말았다.
해골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개인적으로 다툰 것 같더군. 이태천도 ‘개인적인 싸움’이라고 못을 박았고.”
“애도 아니고, 그놈들은 그따위 변명이 통할 거로 생각한답니까?”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거지. 이태천. 그놈에겐 그만한 ‘힘’이 있으니까.”
“…….”
“잠깐. 김무연이 하트 브레이크를 썼군?”
원이 영상을 가리키며 묻는다.
사람들은 원의 손가락을 따라 영상을 쳐다본다.
영상 속 김무연에게서 은빛 마나가 강렬하게 내뿜어지고 있다.
그 상태로 백도운을 향해 자신의 애검 칼립스를 휘둘렀다.
“맞는군요. 하트 브레이크.”
“김무연이 하트 브레이크를?”
“S급의 힘을 얻었겠어.”
“그래 봐야 한순간이었겠지만.”
“사그라들 힘이 눈물겹군.”
영상을 보던 이들은 영상 속 김무연을 비웃는다.
그러나 해골은 그들처럼 웃지 않았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웃을 때가 아니다.”
영상 속에서 김무연을 맞상대하는 백도운을 가리킨다.
백도운에게서도 김무연처럼 푸른 마나가 강렬하게 발산됐다.
“하트 브레이크?”
“저따위 놈이 하트 브레이크를 쓴 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하트 브레이크가 아니니 하는 말이다.”
“네?”
해골의 말을 들은 이들이 다시 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곧 하트 브레이크의 ‘마나가 흩어진다’는 특징이 없음을 알아차린다.
백도운은 하트 브레이크를 하지 않고서 그것과 비슷한 힘을 내었다.
즉, 목숨을 대가로 걸지 않아도 그만한 힘을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이래도 웃고만 있을 건가? 어떤 의문이 떠오르지 않느냔 말이다.”
“…….”
그 물음에 원탁에 모인 이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딱 한 사람을 제외하고.
해골의 정반대 편에 앉은 원이 천천히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해질 것인가….”
“그래, 바로 그것이다.”
“불안함이 느껴지는군, 해골. 설마 우리만큼 강해질까 봐 무섭나?”
그 말에 원탁에 모인 이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그럴 리 없어.”
“불가능해!”
“이 힘을 얻기 위해 포기한 게 얼만데….”
따위로 비참함이 느껴지는 말들이었다.
해골과 원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이 말했다.
“저 능력이 대단한 건 사실이지만, 내 눈엔 보인다. 어찌할 수 없는 약점이.”
그제야 중얼거림이 잦아들었다.
안심했는지 한숨을 내쉬는 이들도 있었다.
원은 만족스러운 듯 말을 이어 나갔다.
“저건 아무 때나 쓸 수 있는 스킬이 아니야. 어떤 대가를 치러야만 쓸 수 있는 종류의 것이다.”
“그래, 자네 말이 옳다. 그분께서 심기를 불편해하셔서 내가 흥분한 것 같군.”
“……!”
“내 자네들에게 사과하지.”
“그분께서 심기를 불편해하셨다?”
원은 질문을 던지며 화면을 들여다봤다.
백도운이 김무연의 뒤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러고는 왼쪽 팔을 내뻗는다.
“저번에도 그러셨다고 하지 않았나? 대체 저놈이 뭐기에?”
“말씀해주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하인 된 도리로서 주인의 뜻을 헤아려야겠군.”
원의 오른쪽에 앉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열렬히 동의의 뜻을 담은 말을 던지기도 했다.
“맞습니다. 지금이라도 우선으로 처리할지 말지를 결정합시다.”
“그래요.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죽일 수 있지 않습니까?”
“그분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이태천과 백도희 때문이라면, 저희가 사건을 만들어 눈을 돌리겠습니다.”
그들이 얼마간 떠들어 댔을까.
해골과 원이 조용히 서로를 쳐다보고 있자, 조금씩 입을 다물었다.
그때, 한 명이 손을 들어 올렸다.
원탁에 가장 늦게 앉았던 버섯이었다.
“저기, 제가 일을 처리하다 늦었다고 했잖습니까?”
“그런데?”
“이 일 때문이었습니다.”
그 말에 모두 버섯을 쳐다본다.
시선이 모인 게 좋았던 걸까?
버섯은 씩 웃으며 말했다.
“제가 백도운에게 ‘바눔’을 보냈습니다.”
***
푸르스름한 메시지창을 읽으며 몸을 일으켰다.
새싹의 말대로, 몸은 아직 회복이 필요한 듯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게 고통스러워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한 번 썼다고 이 꼴이라니.
광합성 모드는 도희 말대로 웬만해선 쓰지 말아야겠다.
뭐, 어차피 쓰려면 빛 에너지란 것이 모여야 했지만.
근데 그건 어떻게 모아야 하지?
도희한테 계속 빛 좀 쏴 달라고 해야 하나?
“오, 드디어 일어났구먼?”
태천의 목소리가 들려와 고개를 돌렸다.
녀석은 고급 소파에 거의 드러눕듯이 앉아 있었다.
아무래도 VIP 병실을 빌린 모양이다.
이것들이 돈이 썩어 나나.
“나 얼마 만에 깬 거?”
“사흘. 지금 수요일 밤이야.”
“켁. 도희가 걱정했겠네.”
“당연하지. 너 쓰러지고 나서 계속 네 옆에 달라붙어 있었어. 가기 싫다는 거 억지로 집에 돌려보냈다.”
“도희 화내겠는걸?”
“내 말이. 두 시간만 더 빨리 깨지 그랬냐.”
태천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소파에서 일어나 내 옆으로 와 앉는다.
그러고는 메모지와 여러 물건을 건넸다.
과일주스, 고급 과일 세트, 힐링 포션 등등.
“이게 다 뭐야?”
“사흘 동안 너 병문안 온 사람들이 갖다 놓은 거.”
“병문안?”
메모지를 보니 눈에 익은 이름들이 있었다.
유재이, 김지연, 심윤진, 우채연, 오주한, ‘최 클라우디아’, 이성훈, 최기우.
최 클라우디아는 우리가 보낸 보육원의 원장 수녀님이다.
최기우야 헌터 협회 팀장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사람들은 나 쓰러진 건 어떻게 알고 찾아왔대?
“아줌마 오셨었어?”
“너 걱정 엄청나게 하고 가셨어. 꼭 연락 드려라.”
“음, 찾아봬야겠네. 근데 어떻게 알고 오신 거야? 네가 연락드렸어?”
“미쳤냐? 걱정하실 텐데 그런 연락을 드리게?”
“그럼?”
“백문이 불여일견.”
태천은 같잖게 고사성어를 쓰더니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화면이 켜지자 바로 헌터 관련 채널들을 튼다.
그 채널에서는 남자 기자가 뒤를 가리키며 떠들어 댔다.
남자 기자가 가리킨 건 서울 월드컵 경기장이다.
형체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반파가 되어 버린.
[네, 보시다시피 지금 이곳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입니다.] [경기장은 모두 무너졌고, 울창하게 자랐던 나무들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것 같은 모습입니다.] [근데, 이 현상이 A급 헌터 네 명이 싸운 결과라면 믿으실 수 있겠습-]태천이 리모컨을 눌러 채널을 돌린다.
A급 헌터 네 명이라니, 나는 B급 헌터인데.
두 번째 채널에서는 여자 기자가 비슷한 장소에서 서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사망한 A급 헌터 김 모 씨는 하트 브레이크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 위력이 엄청나 수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었는데요.] [한 전문가가 그 수치를 측정해 냈다고 해 우리 방송국에서 그분을 직접 만나 보고-]또다시 채널을 돌린다.
세 번째 채널에서는 기자의 얼굴 대신 내 얼굴이 나왔다.
내가 왜 거기서 나와?
TV 화면엔 내 얼굴과 함께 ‘백도운, 그는 대체 누구인가?’라는 자막이 떠올랐다.
[백도운은 오늘로부터 5일 전 B급 헌터로 복귀했습니다.] [그동안 백운천의 어두운 면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보름 전에 있었던 ‘백운천 해체업자 암살 미수 사건’을 막아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2년 동안 수면 아래에 있던 그는 드디어-]태천이에게서 리모컨을 빼앗고 채널을 껐다.
낯부끄러워서 들어 줄 수가 없었다.
저게 대체 뭔 개소리인지….
내가 백운천에서 담당한 게 뭐라고?
어두운 면이 어째?
태천이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차라리 웃어라.
“이렇게 떠들어 대니 모르실 수가 없었겠지.”
“후우, 이게 다 무슨 일이야?”
“우리가 김무연 그놈이랑 싸우는 거 다 찍혔더라고. 그게 요즘 ‘왓쳐 캐스트’에서 난리야.”
“다? 전부?”
“어, 정확히는 도희가 빛의 성역을 쓴 직후? 아무래도 그게 주의를 끌었던 모양이더라.”
그럴 만도 하다.
빛의 성역은 밤의 어둠을 완전히 몰아낼 정도였다.
눈에 띄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도희가 빛의 성역을 쓴 후로 촬영됐다면, 내가 솔방울로 놈을 죽인 것도 찍혔으리라.
그럼….
“백운천은? 압박 안 들어왔어?”
“괜찮아, 자기들이 압박해 봤자지.”
“어, 세게 나온다?”
“그럴 능력이 되거든. 백도운 친구가.”
그러면서 태천이는 씩 웃어 보였다.
분명 이번 일로 여러 압박이 들어올 텐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이 기껍다.
그러면, 이제 나만 걱정하면 되는 건가?
이유야 어쨌든 사람을 죽이는 모습이 찍혔으니….
협회든 정부든 지랄 한 번 하겠군.
“아, 참. 네 검이랑 그 커다란 솔방울 못 챙겼다.”
“뭐? 왜?”
“못 들어서.”
“못 들었다고?”
“응. 너 쓰러지고 나서 급하게 챙기려 했는데, 안 들리더라. 그래서 그냥 내버려 뒀어.”
고개가 절로 갸웃거려지는 말이다.
태천이는 분명 아르카와 솔방울을 들었었다.
솔방울을 어깨에 짊어진 채로 다가왔었고, 아르카는 휘두르기까지 했었다.
갑자기 들리지 않게 된 이유가 뭘까?
그 의문을 새싹이가 해결해 줬다.
[새싹은 인벤토리에 도난 방지 시스템이 있기 때문이라고 전합니다.] [관리인이 절전 기능을 사용했을 때 타인이 가져가지 못하도록 시스템이 발동했다고 설명합니다.]오, 그런 거였구나?
그럼 퇴원하고 챙기러 가도 되겠는걸?
[새싹은 관리인은 아직 회복해야 한다며 다른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합니다.]새싹이는 내가 바로 움직일 거로 생각했는지 충고를 해왔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고통스러운데, 가기는 어딜 간단 말인가?
“…….”
미소가 씩 피어났다.
우리 새싹이는 누굴 닮아 이렇게 감이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