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63
제63화
벌들을 베어 가며 산을 오른다.
새싹이가 가르쳐 준 바에 따르면 크라우드 놈은 산 중턱에 있었다.
크라우드 놈은 내가 다가가는 것을 저지하고 싶은 듯 계속해서 벌떼를 보냈다.
벌떼를 향해 아르카를 휘두른다.
히든 퀘스트로 칼의 콧노래를 얻었기 때문일까?
아르카에 담긴 비밀을 깨달았다.
아파트 3층 높이의 푸른 칼날은 횡으로 휘둘러지면서도 산에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
푸른 칼날로는 베고 싶은 것만 베어 낼 수 있었다.
산의 나무나 바위는 베지 않고, 오로지 벌떼만 베어 내는 게 가능했다.
[세계수 어린나무는 또다시 벌떼가 날아오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아까보다 더 강한 개체라고 전합니다.]새싹이의 경고를 읽자마자 까만 벌떼가 나타났다.
더 강한 개체라는 말대로 그것들은 흉포해 보였다.
방금까지 나타났던 것들이 평범한 일벌이나 정찰 담당 벌이었다면, 이번에 나타난 건 전투에 특화된 벌들 같았다.
크기가 1.5배는 더 커졌고 집게 같은 주둥이도 그만큼 더 커졌다.
가장 커진 건 역시 엉덩이 끝에 달린 독침이다.
내 팔뚝만 한 침을 침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후우!”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아르카를 뒤로 당긴다.
그러고는 곧바로 횡으로 빠르게 휘둘렀다.
울창하게 자란 나무들은 베지 않고, 오로지 벌떼들만 베어 냈다.
이렇게 베고 싶은 것만 벨 수 있는 건, 아르카의 칼날이 세계수의 마나로 구성됐기 때문이었다.
따스한 손길과 같은 거다.
그것도 몬스터를 향하면 머리를 깨부수는 공격이었지만, 새싹이를 향하면 마나를 넘겨주는 행위가 되지 않았던가.
즉, 어떻게 쓰는가, 그 의지에 따라 다르게 결정되는 것이었다.
“더 강한 개체라고 해도 말이지….”
가상의 존재였지만, 사이클롭스까지 베어 냈던 아르카다.
고작 크기가 클 뿐인 장수말벌 놈들이 살아남을 수 있을 리 없었다.
반으로 동강 난 벌떼가 우수수 쏟아졌다.
물론 수가 많았기에 아직 살아남아 달려드는 녀석들이 있었다.
그렇게 내 앞까지 온 녀석들은 왼손의 따스한 손길로 대가리를 얻어맞고 죽었다.
[어린나무가 바로 앞에서 혐오스러운 기운이 느껴진다고 전합니다.] [마나가 요동치는 것이 느껴집니다.] [앞서 2번 경험한 적 있는 흐름입니다.] [어린나무는 적이 ‘변태’하는 것이 분명하다며, 조심하라고 전합니다.]“고마워!”
새싹의 걱정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아르카를 휘둘렀다.
끊임없이 나타나는 벌떼들이 손쉽게 죽어 나갔다.
놈도 이 벌들로 날 막아 세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다.
변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을 벌려고 보낸 것이겠지.
뭐, 아무래도 좋다.
나도 칼의 콧노래 덕분에 점점 아르카에 익숙해지고 있는 참이다. 놈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나도 더욱더 강해졌다.
곧 벌들이 나는 소리가 사라졌다.
날 덮친 벌들을 전부 죽인 것이다.
“세계수 휘두르기.”
손에서부터 마나가 아르카로 흘러들어 간다.
그렇게 흘러간 마나는 아르카의 푸른 칼날을 덮는다.
그때,
[어린나무는 요동치던 마나가 잠잠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요동치던 마나가 잠잠해졌다.
그게 뜻하는 바는 하나밖에 없었다.
“변태가 끝난 건가?”
[어린나무는 관리인의 말에 긍정합니다.] [이어 혐오스러운 기운이 세차게 다가오고 있다고 전합니다.]“그럴 것 같더라.”
박쥐로 변태했던 김정철.
모기면서 지네라고 우기던 용두식.
지금까지 상대한 크라우드 간부는 그 2명이 전부였지만, 놈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압도적인 힘이 어쩌고저쩌고하면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는 점이다.
이따위 짓을 벌인 놈도 그럴 것 같았다.
앞서 상대했던 놈들처럼 힘에 취해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할 거다.
술기운에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용감해져서는 무턱대고 돌진해 올 터였다.
세계수 휘두르기를 쓴 것도 그걸 짐작해서였다.
따스한 손길 10번 분량을 채운 덕분에 마나가 아르카의 푸른 칼날을 덮었다.
“백도운!”
산 위에서 날 부르는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무들이 쿵쿵 쓰러지는 소리도 들려왔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찌푸리며 위를 올려다본다.
나무들을 쓰러뜨려 가며 내려오는 무언가가 보였다.
변태한 마족의 권속이 분명했다.
“역시 벌이네.”
예상했던 대로 그것은 벌 인간의 외형을 하고 있었다.
벌과 인간이 반반씩 섞인 모습으로 나를 향해 빠르게 날아왔다.
그 벌 인간에게 바로 세계수 휘두르기를 쓴다.
마치 왱왱거리는 모기에게 파리채를 휘두르듯이.
“……!”
평소처럼 초승달 모양 마나가 날아갈 줄 알았다.
그런 내 생각은 틀렸다.
전방으로 날아간 마나는 반달 크기였다.
반달 모양의 마나 덩어리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베어 냈다.
나무도, 바위도, 벌 인간의 한쪽 다리도.
노리고 있던 것은 벌 인간 하나였다. 나무나 바위를 벨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내 힘을 주체하지 못해서 저렇게 된 것 같다.
아르카에 담긴 마나를 전부 통제하지 못한 거다.
“끼야아악!”
왼쪽 다리가 베인 벌 인간은 고통에 울부짖으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오른팔에 달린 긴 독침을 내뻗은 채로 내게 질주해 온다.
그 검은 독침은 마치 말에 탄 기사가 랜스를 겨눈 듯 보였다.
나무껍질도 꿰뚫겠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을 때, 머릿속에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아르카를 잡아당겨 세워 독침을 막아내는 장면이었다.
칼의 콧노래 스킬이 발동한 게 분명하다.
이 상황에서 내가 ‘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최적의 행동을 가르쳐 준 것이다.
“……!”
“죽어라, 백도운!”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금세 내 앞까지 날아온 벌 인간이 독침을 찔렀다.
머릿속에 떠오른 장면처럼 횡으로 휘둘렀던 아르카를 잡아당겨 세웠다.
콰앙!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벌 인간은 오른팔의 독침을 막고도 멀쩡한 아르카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봤다.
믿을 수가 없는 듯했다.
“말도, 말도 안 돼…!”
“너흰 늘 그러더라. 언제까지 그렇게 반응할래?”
“헉!”
녀석을 향해 오른손을 뻗었다.
손아귀를 피하려 뒤늦게 날갯짓을 해 보지만, 내 손이 훨씬 빨랐다.
오른손으로 녀석이 도망치지 못하게 목을 꽉 붙든다.
손에서 벌레를 잡은 듯 부드러우면서도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이거, 놓지 못해!”
내 손을 뿌리치기 위해 오른팔을 휘두른다.
오른팔에 달린 독침이 내 뺨을 긁고 지나갔다.
나무껍질이 멀쩡히 발동돼 있는데도 말이다.
녀석이 말도 안 된다고 허망해하던 모습이 이해가 갔다.
나도 나무껍질이 없다는 듯 뺨을 긁은 걸 믿을 수 없었다.
검기를 두른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한 걸까.
“…그 팔부터 어떻게 해야겠는데.”
“흥! 네까짓 게-”
뭐라고 지껄여 댔지만 들어 주지 않았다.
오른손을 거칠게 휘둘러 녀석의 몸을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러고는 왼발로 녀석의 가슴팍을 팍 짓밟았다.
인간의 몸인지, 벌레의 몸인지 알 수 없는 감촉이 느껴졌다.
“아악!”
내 발에 짓밟혀 있으면서도 녀석은 날 노려본다.
노려보는 눈초리가 무척 사납다.
오른손을 뻗어 아르카를 집어 들었다.
독침을 잘라 내기 위해 아르카를 휘두르려는데,
펑!
오른팔이 폭발했다.
손에 쥐어져 있던 아르카가 떨어져 땅에 박혔다.
조금만 왼쪽에 박혔으면 벌 인간의 목을 잘라낼 뻔했다.
다행히 날개만 살짝 잘라 내고 말았다.
“…뭐야?”
갑작스러운 사태에 오른팔을 쳐다봤다.
깨나 처참한 모습이다.
폭발한 부위는 팔꿈치였는데,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은 상태였다.
살가죽에 간당간당 달려서는 자꾸만 달랑거린다.
벌 인간이 저지른 짓인가 싶어 내려다봤다.
“…….”
아니다.
녀석도 나처럼 당황해서 오른팔을 쳐다보고 있다.
그럼 대체 뭣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회복은 왜 평소처럼 되지 않는 거고.
[어린나무가 마나 과다증 때문이라고 전합니다.]영문을 몰라 하는데, 새싹이가 가르쳐 주었다.
마나 과다증 때문이라고?
아, 그런 거였구나.
이유를 알게 되자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 새싹이는 어쩜 이렇게 모르는 게 없을까.
고개를 끄덕이는데, 봐 버렸다.
벌 인간의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오르는 것을.
그 미소는 살아남을 수 있다는 희망이 담긴 미소였다.
“그래…!”
별안간 벌 인간이 의지를 내보인다.
살 수 있다는 희망의 의지를.
미친년.
“그런 강력한 스킬들을 연달아 썼는데 아무 페널티도 받지 않을 리 없지! 어서 자멸해! 이 멍청한 새끼야!”
그러더니 거나하게 웃기까지 한다.
누가 보면 발에 깔린 게 저가 아니라 나인 줄 알겠다.
가슴팍을 더 세게 짓밟았다.
웃음소리가 고통으로 뒤바뀐다.
“하하아아악!”
아무래도 의지를 꺾어 줄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에이 씨, 귀찮게.”
부러 과장되게 달랑거리는 오른팔을 붙잡고 확 뜯어냈다.
고통이 느껴졌지만, 스스로 한 것이어서 참을 만했다.
뜯어낸 오른팔로 녀석의 대가리를 후려쳤다.
“아악!”
고통스러워하는 녀석을 내려다봤다.
겨우 머리 한 대 얻어맞은 거로 아파하기는.
벌 인간의 까만 눈알에 내 얼굴이 비친다.
눈알에 비친 내 얼굴은 웃고 있었다.
달달 떠는 녀석의 입가와는 다르게.
“괴, 이 괴물 새끼…!”
“괴물? 야, 지금 누가 봐도 네가 괴물이거든?”
오른팔을 던져버리며 말했다.
왼손을 뻗어 아르카를 집어 든다.
원래 하려고 했던 대로 녀석의 오른팔을 베었다.
벌 인간이 비명을 지르며 자꾸 버둥거렸다.
“아픈 척하지 마.”
그리 말하자 벌 인간이 이를 악물며 날 노려본다.
고통 때문에 비명을 질러 댄 주제에 자존심은 남은 모양이다.
날 노려보는 눈이 표독스럽기 그지없다.
그 표독스러운 눈은 내게 아픈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 아프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너한테 죽은 아이들이 더 아프지 않았겠냐?”
“하! 그딴 애새끼들이랑 나랑 같아?”
“뭐?”
“나는-”
아르카로 뺨을 후려쳤다.
입을 열고 있던 탓인지 이빨 몇 개가 뽑혀 나갔다.
“대답하라고 물어본 거 아니야.”
“……!”
날 노려본다.
그래도 입을 열지는 않는다.
입을 열면 방금처럼 또 맞을 거라는 걸 안 거다.
“넌 실수를 하나 했어.”
아르카를 벌 인간의 몸 위에 내려놓았다.
세계수로 만든 검이 몸에 닿자 녀석이 축 늘어졌다.
얼굴을 보아하니, 제힘을 낼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럴 거다.
새싹이가 혐오스럽다고 표현할 정도로 부정한 기운을 지닌 녀석들이다.
세계수의 나뭇가지로 만든 아르카가 몸에 닿아서 멀쩡할 수 있을 리 없었다.
“……!”
아르카 위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넌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거든.”
“…웃겨. 네가 그런 존재라는 거야?”
“아니, 날 말하는 게 아니야.”
왼손을 뻗어 벌 인간의 뺨을 어루만졌다.
녀석은 내 손길이 소름이 끼친다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 클라우디아.”
“원장 수녀? 그까짓 년이 뭐라고 건드려선 안 돼?”
“내 사람.”
“뭐?”
“나는 내 사람 건드리는 거 못 참는 성미라서.”
“…웃, 기지 마!”
벌 인간이 소리를 빽 질렀다.
그게 대체 무슨 개소리냐는 듯 쳐다본다.
무척 익숙한 시선이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흔하게 봐왔기 때문이다.
“그러게 나만 건드리지 그랬어. 그럼 고통스럽지 않게 죽을 수 있었을 텐데.”
싱긋 웃어 주며 검지를 들었다.
벌 인간이 눈을 부릅뜬다.
이거로 벌들의 대가리를 쪼개던 걸 지켜봤을 테니, 제 머리도 그렇게 부서질 거로 생각했겠지.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건 너무 편하게 녀석을 죽여주는 방법이었으니까.
따스한 손길을 쓴 검지로 내 다리를 두드렸다.
“……??”
나는 가지치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