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got the world tree in my phone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방에는 검은 로브를 두른 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브로치들로 자신들이 누구인지를 나타냈다.
가슴께에 달린 브로치들은 각각 해골, 개미, 버섯 모양이다.
그중 해골 브로치를 단 사람이 가죽 소파에서 일어났다.
맞은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몸을 움찔거린다.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둘의 시선은 전체가 유리로 된 벽으로 걸어가는 해골을 따라 움직였다.
유리 바깥으로는 한낮의 서울 강남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백도운에게 보낸 바눔이 사로잡혔다?”
유리창 앞에 서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버섯 브로치를 단 사람이 상체 전체를 푹 숙여 보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짓을 했습니다…!”
“멍청한 놈,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을 짓을 해서 일을 크게 만들어!”
“…….”
개미 브로치를 단 사람이 이때다 싶은지 버섯을 나무랐다.
버섯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앉아 개미가 나무라는 소릴 가만히 들었다.
그러나 무릎 위에 놓인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서 감정을 자제하는 것이 그대로 드러났다.
개미는 그 꼴을 보고 마음에 들었는지 입꼬리를 쭉 올렸다.
해골이 몸을 돌려 상체를 숙이고 있는 버섯을 바라봤다.
“잘 보이고 싶어서 그런 것임을 잘 알거늘, 내 어찌 자네를 나무랄 수 있겠나.”
“네? 하지만-”
개미는 해골의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말이 나와 당황했다.
따지고 싶은 듯 다급하게 입을 열지만, 말을 내뱉지도 못하고 다물어야 했다.
해골이 손을 뻗어 입을 다물라는 제스쳐를 취했기 때문이다.
명령에 따라 입을 다물었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잘못을 저질렀으면 응당 벌을 받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겠나.”
“…네, 맞습니다.”
“자네는 앞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말도록.”
“네? 잠깐만요! 그 말씀은, 저를 간부에서 자르시는 겁니까?”
“음? 바눔 따위가 뭐라고 자네를 간부에서 자르겠나. 그냥, 회의에 참석하지 말라는 거네.”
‘꼴도 보기 싫으니.’
다물고 있는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 것만 같았다.
당황하며 상체를 들어 올렸던 버섯은 다시 축 늘어뜨렸다. 반면 옆에 앉은 개미는 꼴 좋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백도운은….”
해골이 말을 하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두 개로 된 방문 앞에서 마나가 요동쳐서다.
요동치던 마나는 곧 순간 이동진이 되었다.
순간 이동진에서는 로브를 쓴 두 사람이 나타났다.
둥근 원과 ‘늑대 머리’ 모양 브로치가 달려 있다.
그들을 보자마자 해골이 물었다. 묻는 목소리엔 날이 서 있다.
“여긴 웬일이지?”
“벌 때문에 찾아왔다.”
“벌? 그녀는 왜?”
그리 물으면서 해골은 시간을 확인했다.
벽에 붙은 괘종시계는 시침과 초침이 10시 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그 보육원의 원장 수녀를 죽였겠군.”
“아니, 그러지 못했다.”
못했다?
해골은 영문을 알 수 없어 원을 쳐다봤다.
“그러지 않았다”라고 말했더라면 차라리 이해가 갔을 거다.
벌은 제멋대로 구는 걸 좋아하는 여자였으니까.
그러나 원은 “그러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원장 수녀를 죽이기 위해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는 뜻이다.
“이걸 보게.”
원은 오른팔을 앞으로 내밀었다.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에서 곧바로 홀로그램이 튀어나왔다.
세 사람은 홀로그램을 들여다봤다.
동영상에는 웬 나무들만 잔뜩 찍혀 있었다.
“나무만 잔뜩 찍혀 있습니다만?”
“자세히 봐라.”
“……?”
개미가 영문을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동영상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듯 해골이 침음을 흘렸다.
동시에 개미의 옆에 서 있던 버섯도 헉 소릴 냈다.
마지막으로 영상에 숨겨진 비밀을 뒤늦게 발견한 개미가 눈을 찌푸렸다.
“설마… 저게 벌이란 말인가?”
해골이 묻자, 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개미와 버섯이 해골이 그랬던 것처럼 침음을 흘렸다.
영상 속에는 나무들이 잔뜩 있다.
다만, 나무의 뿌리에 웬 인간 형태의 무언가가 깔린 채였다.
그것은 모든 정기가 빨린 듯 핼쑥한 모습이다.
얼핏 보면 말라비틀어진 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어찌하여 벌이 저런 모습으로 죽어 있는단 말인가?”
“아니, 죽지 않았네. 살아 있더군.”
“…뭐?”
원의 말에 해골은 다시 영상을 들여다봤다.
개미와 버섯도 마찬가지였다.
영상 속 벌을 자세히 쳐다본다.
다시 보니 벌은 나무뿌리에 파묻힌 게 아니었다.
마치 벌의 몸에서부터 나무들이 자라난 듯한 모습이었다.
그때, 오른쪽 눈동자가 움직여 카메라를 쳐다봤다. 왼쪽 눈은 나무뿌리에 파묻혀 있었다.
[죽여, 제발 죽여줘.] [악마. 그놈은 악마야….]영상 속 벌이 애원을 해 왔다.
그 모습을 보고 개미와 버섯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해골은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그놈…? 놈이라?”
놈.
나무에 관련한 능력.
…나무?
그의 머릿속에 커다란 솔잎을 하늘로 던져 대던 남자가 떠올랐다.
“설마… 백도운?”
“확실하다. 저 근처에 백도운이 있었다는 게 확인됐거든.”
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침착하게 상황을 판단하던 해골이 팔을 휘둘렀다.
그의 손에는 어느새 온갖 뼈로 만들어진 긴 지팡이가 들려 있었다.
긴 지팡이가 유리창을 꽝 때렸다.
제법 세게 맞았음에도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다. 대신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백도운!”
“진정하게, 친우여.”
“지금 진정하게 생겼나! 대체 그놈에게 몇 명이…!”
해골의 분개는 금방 잦아들었다.
두 개의 커다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와서다.
노크 소리는 정중했다.
“들어오게.”
문이 열리며 검은 로브를 두른 사람이 들어온다.
그 사람의 가슴께엔 ‘풍뎅이 브로치’가 달려 있다.
“저….”
“뭔가, 이번엔 천칭 길드가 나대고 있기라도 하나?”
“네? 아니요. 그가 왔습니다.”
풍뎅이가 당황해선 고개를 다급히 저으며 공손히 대답했다.
“그?”
“아이가이온의 최동훈이 찾아왔습니다.”
“아, 아아. 오늘이었나.”
“네, 지금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래, 우선 손님부터 맞이하도록 하지.”
해골의 손에서 지팡이가 사라졌다.
“백도운은 차차 생각하도록 하고.”
그러면서 그는 방을 나섰다.
다른 이들도 그를 따라 방을 나갔다.
최동훈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방에는 버섯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백도운….”
버섯은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
[가지치기가 종료되었습니다.]가지치기를 끝냈다.
터져 나간 팔과 다리에서는 예상대로 나무들이 생성됐다.
산에서 진행했기 때문에 저번처럼 던전을 정화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무만 더욱더 울창하게 자란 산이 됐을 뿐 그 전과 별다른 차이도 없었다.
세계수의 정결한 에너지가 뿜어져 산림욕으로 유명한 산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하지만.
그것 말고 한 가지 차이점을 굳이 꼽자면,
“아, 악마….”
모든 힘을 잃어버린 벌 인간이 끼어 있다는 거다.
급속도로 성장한 나무들과 한 몸이 된 상태를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녀석이 이렇게 된 건 내가 떨어져 나간 팔다리를 몸에 가까이 갖다 대서다.
팔다리에서 싹을 틔운 온갖 식물들이 녀석의 몸을 파고들었고, 녀석의 힘을 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렇게 벌 인간은 나무들과 하나가 되었다.
[퀘스트 알림!]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마족의 권속과 싸워 승리했습니다. (4/10명)] [현재 완료 보상 – 전대 세계수의 수액.]“애걔, 수액?”
보상이 전대 세계수의 수액이라니.
아르카르 또 만들 것도 아니니, 지금 상황에선 필요하지 않았다.
다른 방어구를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겠으나….
나무껍질 덕분에 유재이가 준 갑옷만으로도 충분하다.
“뭐, 안 받을 거니 아무래도 상관없긴 하지.”
알림 메시지를 껐다.
전대 세계수의 수액은 중간 보상이었다.
앞으로 6마리만 더 잡으면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었다.
10마리를 사냥했을 때 얻게 될 보상이 무엇일지 궁금하다.
“죽여줘, 제발….”
그것이 내게 애원해 왔다.
메시지창을 껐던 손을 그쪽으로 뻗는다.
해맑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뺨을 쓰다듬어 주었다.
부드러운 나무껍질을 만지는 듯했다.
“벌써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 계속 그러고 살아야 하는데.”
“아, 안 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후회를 하도록 해. 네가 죽인 아이들한테 사죄하는 것까진 바라지도 않으니까.”
“제발, 제발!”
죽여달라고 사정하는 그것을 무시했다.
아르카를 인벤토리에 넣고 하산하려는데, 풀숲에 떨어진 벌침 하나가 눈에 띄었다.
색깔이 검은색에서 은색으로 변해 있었지만, 팔 만한 길이를 보니 저것의 오른팔에서 잘라 냈던 것이 분명했다.
정화되어서 사라졌을 줄 알았는데?
“이건 왜 멀쩡한 거지?”
새싹이가 메시지를 보내 왔다.
말한 것도 그렇고 색깔이 변한 것도 그렇고, 정화가 된 건 확실했다.
나무껍질 뚫고 들어와 내 뺨을 긁었던 것이 떠오른다.
한 번 확인해 봐야겠다.
벌침을 집어 들고 손바닥을 살짝 긁는다. 긁은 부위에서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발동된 나무껍질이 무용지물이다.
“좋은 거 갖고 다녔네, 너?”
“아….”
그것이 벌침을 든 나를 쳐다봤다.
애원하는 얼굴을 보아하니, 그걸로 자기를 찔러 달라는 듯하다.
꿈도 야무지지.
벌침을 인벤토리에 넣고 바로 하산했다.
산에서 내려와 향한 곳은 당연히 방주 보육원이다.
사람들이 날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서둘러 돌아갔다.
보육원 앞에선 익숙한 얼굴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상철과 이재욱이다.
이젠 미행하는 척도 하지 않기로 한 건가?
“뭐 하는 거야?”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말을 놓게 됐다.
두 사람이 형 동생 사이가 되고 싶다며 부탁해 왔기 때문이다.
이젠 같은 길드원도 아니니 그러기로 했다.
계속 팀장님이라고 부르게 할 수도 없었고.
둘 중 김상철이 대답했다.
“뭐 하긴요, 형 대신 여기 지키고 있죠.”
“너희가, 여기를?”
보육원엔 도희의 보호 마법이 여러 겹으로 걸려 있다.
B급 헌터인 김상철과 이재욱이 지키는 것보다 더 안전하다.
둘도 그걸 잘 알아서 살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이재욱이 물었다.
“쳐들어온 놈은 잡으셨습니까?”
“지금쯤 여길 건드린 걸 후회하고 있을 거야. 저쪽 산 어디쯤에서.”
“역시 형님이십니다!”
뒤를 가리키며 말하자 이재욱이 엄지를 치켜세웠다.
형 소리는 들어 봤어도 형님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조금 어색했다.
김상철처럼 형이라고 불러 주면 편하겠는데.
“들어가 보세요. 원장 수녀님께서 형 기다리고 계세요.”
“아, 웬 꼬마도 함께 있었습니다. 수녀님 품에 안겨 울고 있더군요.”
강우혁이 분명하다.
품에 안겨 울었다?
아무래도 자기가 아줌마를 공격한 걸 기억하는 모양이다.
“…쯧, 너무 봐줬나.”
“네?”
“아무것도 아니야. 수고들 해.”
손을 휘휘 저으며 둘을 지나쳤다.
둘은 그런 내게 “고생하셨습니다”라고 인사를 전해 왔다.
고생은 무슨.
누가 보면 어려운 일 하고 온 줄 알겠다.
보육원 안으로 들어가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있는 아줌마가 보였다.
옆에는 울다 지쳐 잠이 든 강우혁이 아줌마의 손을 꼭 붙든 채로 앉아 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줌마가 입 모양으로만 ‘왔어?’하고 말했다.
강우혁이 깰까 봐 그런 것 같다.
“야, 일어나 봐.”
나는 그 노력을 간단하게 깨부쉈다.
아줌마가 사납게 눈을 부라리며 날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눈두덩을 비비는 강우혁만 바라봤다.
절대 겁먹어서 마주 보지 못한 게 아니다.
강우혁은 어깨를 흔들고 나서야 깨어났다.
“으응…?”
날 쳐다보는 눈꺼풀이 한 번 두 번 천천히 내려앉는다.
그러다가 확 떠졌다.
“아! 아저씨…!”
“…….”
“푸훕.”
아줌마가 웃음을 터뜨렸다.
눈을 치켜뜨며 쳐다보자 아줌마는 웃음을 참을 생각도 하지 않고 어깨만 으쓱여 보였다.
이제 겨우 26살밖에 안 됐는데 형도 아니고 아저씨라니….
형님 소리가 듣고 싶어지는구만.
“이거 보고 자라고.”
인벤토리에서 벌침을 꺼냈다.
그걸 본 강우혁이 깜짝 놀라며 옆에 앉은 아줌마 뒤로 숨었다.
색깔은 변했지만, 이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본 거다.
“뭔지 알겠냐?”
물어보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줌마 뒤에 숨어서.
그러나 두 눈은 벌침을 향한 채로.
지금 당장은 그 정도면 됐다.
“이걸 내가 갖고 있다는 게, 뭘 뜻하는 거 같냐?”
“…….”
“그 괴물, 이제 없다는 소리다.”
아이의 눈이 살짝 커진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로 묻는다.
“…정말?”
“그렇다니까.”
“정말로 정말?”
“정말로 정말.”
“우으….”
눈에 눈물이 맺힌다.
입술이 닫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열렸다.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지 못한 거다.
나는 그 모습이 가여워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수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