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02
102화
다음 날 수겸이 눈을 떴을 때 세상은 다시 한 번 뒤집어져 있었다.
“야! 빨리 일어나 봐. 속보 떴어.”
민환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수겸을 흔들었다.
“무슨 일인데?”
수겸은 짐짓 모르는 척을 하며 되물었다.
“걔네 싹 잠수탔대.”
“걔네? 누구?”
“누구긴 누구야, 테러리스트들이지. 아! 또 TV에 나오네. 한 번 봐.”
– 현장에 알 수 없는 흔적들로 가득합니다.
현장 리포터가 박살이 난 벽을 지목하며 말했다.
‘저건 내가 짓눌리면서 벽에 처 박혔을 때 생긴 흔적 같고.’
– 조금만 건드려도 돌가루가 떨어지는 걸로 봐서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벽입니다. 여기 바닥도 마찬가지입니다. 망치 같은 것으로 내리친 것만 같습니다.
‘저건 내가 왠 뚱땡이를 엎어 메치면서 생겼던 것 같은데?’
수겸은 리포터의 시선을 따라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 결정적으로 지금은 치워졌으면 어느 누구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옷가지들인데요. 현장에는 이렇게 생긴 옷들만이 있을 뿐 어디에도 사람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리포터가 손에 쥔 건 테러리스트, 천강교의 교도들이 입고 있던 옷이었다.
– 아직까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경찰 수사도 난황을 겪을 것으로 보입니다.
‘일단 저 현장이 테러리스트랑 연관이 있다는 것까지는 알아낸 것 같은데. 어디서 알아챘을까? 미행은 분명 놓쳤을텐데.’
뉴스 화면은 돌아갔지만 수겸의 시선은 여전히 TV를 향하고 있었다.
“야, 왜 멍때리냐?”
“아니야. 배고프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아직 세수도 하지 않은 수겸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 하루 바쁘게 움직여야겠다.’
* * *
민환과 아침 겸 점심을 때우고 수겸은 곧바로 행동에 돌입했다.
수겸이 첫 번째로 만난 사람은 대한 제약의 이찬수.
“팀장님. 회사 내 분위기는 어때요?”
수겸은 연금술에만 매달리고 있던 이찬수가 걱정되어 물었다.
“좋지는 않습니다. 대한 제약은 정말로 수겸씨의 연금술에 회사의 미래를 걸었거든요.”
“그렇죠. 저도 마음이 무겁네요. 그래서 말인데요.”
수겸은 조금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다시 일을 시작해볼까 합니다. 어차피 사태는 진정이 될 테니 지금부터 생산을 시작했으면 합니다.”
“예? 너무 시기상조가 아닐까요. 아직 범인들을 잡지도 못했는데.”
이찬수는 회의적이었다.
“오늘 기사는 보셨죠?”
수겸은 아침에 민환과 함께 본 뉴스를 떠올리며 말했다.
“예. 저희 쪽에서 짐작하길 무슨 일이 생기긴 한 것 같다 정도입니다. 현장 상황 사진을 어떻게 받아서 보긴 했는데 스토리가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 생각엔 내부 분열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그 호텔 안에서 싸움이 일어났고, 싸움의 결과로 모두가 잠적해버린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수겸은 자기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태연하게 이야기했다.
“그것도 말이 되죠. 어차피 신분 노출도 안 됐으니 잠수를 타버리면 그만이니까요.”
“네, 맞아요. 제 말이 그겁니다.”
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그 상황이면 위험이 없어진 건 아니지 않습니까. 무턱대고 생산을 시작했다가 이전과 똑같은 일이 생기면 그 때는 저희 대한 제약에도 책임이 뒤따를 겁니다.”
‘차라리 제사장 시체는 남겨둘 걸 그랬어. 그랬다면 조직이 없어진 것으로 알아서 이야기가 흘러 갔을텐데.’
수겸은 못내 아쉬웠다.
그러면서도 사이코패스처럼 본인의 잇속만 챙기는 모습에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구심점이 없어진 건 맞지 않을까요?”
“일리는 있습니다만…….”
“예. 팀장님 입장도 이해합니다. 국민 정서가 또 한 번의 스트라이크는 용서해주지 않겠죠. 바로 아웃 선고를 하겠지.”
“맞습니다. 그래서 이전보다도 더 보수적인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다만?”
“생산은 어렵지만 공장 부지 선정부터 시작하는 건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죠. 저희가 아직 그것도 못 끝냈었죠?”
“어차피 외부 유통을 하기 힘든 상황이니 저는 그 사이에 환경 정비부터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야 너무 좋죠. 혹시 후보 지역이라도 정해졌나요?”
수겸의 말에 이찬수는 서류 가방에서 태블릿 PC를 꺼냈다.
“역시 흥미를 보이실 줄 알았어요. 자, 여기 보시겠어요?”
이찬수는 왠지 모르게 신이 나서 화면에 띄워진 우리나라 지도에 빨간 동그라미 세 개를 그렸다.
서울, 이천, 김천이었다.
“이천은 저희 밭이 있는 곳이니까 알겠고, 김천도 뭐 알겠습니다. 근데 서울에 저희가 원하는 면적의 부지를 얻을 수 있나요?”
수겸이 서울 위에 그려진 동그라미를 손으로 찍으며 물었다.
“맞습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서울 시청에서 시청 앞 광장을 내어주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더라고요. 그것도 아니면 광화문이라도 수겸씨한테 주던지.”
“에이.”
“그렇죠. 진짜로 말이 안되서 그냥 생각을 좀 바꿔봤습니다. 발상의 전환이랄까요.”
“어떻게요?”
“그냥 빌딩 전체를 연금술 공장으로 만들자는 생각이요.”
“그게 말이나 돼요?”
수겸은 택도 없는 소리를 하지 말라며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왜 안돼요? 어차피 우리나라에서 수겸 씨가 하는 연금술은 사실상 초법적인 존재. 애초에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기술을 위해 법을 제정했다는 것 자체부터 말이 안 돼요. 연금술로 재료를 가공하고, 시약을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한 장소 제약이 없어요.”
“예?”
“지금 법이 그래요. 그냥 수겸씨는 어디서든 원하는대로 연금술을 펼칠 수 있어요. 그리고 생각해보세요. 어차피 수겸씨가 그리는 마법진이 커봐야 100평 면적은 못 채우잖아요.”
“그건 그렇죠. 너무 크게 하면 제 몸이 버티질 못할테니까…….”
“서울에 있는 빌딩에 한 층에 100평 넘는 건물은 널리고 널렸어요. 거기에 추가로 필요한 건 컨베이어벨트처럼 가공된 재료를 위층이든 아래층이든 어디론가 옮겨줄 이동 설비뿐. 이 정도는 충분히 가능해요.”
이찬수는 마치 빌딩을 파는 부동산 중개업자처럼 보일 정도로 열정을 쏟아 설명했다.
“음… 듣고 보니 그것도 일리가 있네요. 사실 저는 좋기는 서울이 제일 좋긴 한데. 아마도 공장이 만들어지면 저도 거기서 숙식을 해결 할 것 같아서.”
“예.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수겸씨만을 위한 공간인데 거기에 거주 기능까지 들어가겠죠. 게다가 수겸씨는 이미 아르케 사무실이 있는 빌딩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앗. 그 쪽은 그렇게 넓지 않아요. 예전에 제가 한 층 전체를 편의점으로 운영했을 정도라서요.”
“그 주변 건물까지 전부 매입해서 부지를 통합시키면 충분합니다. 그런 건 저희 회사에서도 충분히 컨트롤 가능하구요.”
“한 번 생각해볼게요. 나머지 두 군데는요?”
“이천은 지금 농사를 지으시고 계신 곳 인근 밭들을 전부 매입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김천은 애초에 노는 땅이 많아서 위치만 지정하면 거의 바로 시작도 가능해요.”
분명 서로 장단점이 있었다.
‘이천으로 정하면 재료 공급에 있어서 이점이 있을텐데. 그런 측면에서는 김천은 의미만 있을 뿐 메리트는 부족한 것 같은데.’
연금술로 구한 도시, 연금술 공장이 있는 도시라는 이미지가 새겨지겠지만 그건 김천시에만 좋은 일일 뿐. 수겸에겐 메리트가 되지 않았다.
“서울 아니면 이천이 좋을 것 같은데. 이건 고민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오늘은 제가 좀 바빠서 이만 일어나야 할 것 같아서요.”
수겸은 휴대폰 화면 속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러시죠. 저희에게 시간이 부족한 건 아니니까요.”
* * *
수겸이 그 다음으로 향한 곳은 여의도였다.
‘이대로두면 수사가 마무리되고 정리되는 데까지 최소 한 달이다. 적당히 푸쉬를 할 필요가 있어.’
지금 수겸이 바라는 건 천강교 사태에 대한 수사가 최대한 빨리 마무리되고, 국민들이 느끼고 있는 공포심을 없애버리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의 힘이 필수였다.
“이제 우리는 공생 관계니까.”
지금까지 정인섭이 본인과 연금술을 팔아먹으며 정치적 입지를 다질 동안 단 한 마디도 나서지 않고, 침묵으로 동의를 해왔던 수겸이었다.
덕분에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왔으니 이제 수겸을 위해 일을 할 시간이었다.
‘얼마 전에도 써먹은 것 같지만, 그건 그거고.’
수겸은 며칠 전 한수명 심문을 했던 날을 잠시 떠올렸지만 고개를 세차게 흔들어 생각을 날려버렸다.
똑똑―
“의원님, 강수겸님 오셨습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비서가 극진히 정중한 말투로 묻고 안에서 답이 들렸다.
“그럼! 바로 모셔. 그리고 커피 2잔만 부탁해요.”
정인섭은 방긋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수겸을 맞이했다.
“요새 맘 고생 많이 하고 있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맞는 듯 했다.
“의원님은 점점 더 훤칠해지는 것 같습니다.”
수겸과 처음 만났을 때 꼬질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이제는 제법 잘생겨 보이기까지 했다.
수겸은 말 한 마디로 ‘내 덕에 잘 살고 있지?’라는 늬앙스를 풀풀 풍겼다.
“하하. 별 말씀을. 테러리스트들 이야기는 들었어요. 보니까 일단은 더 이상 횡포를 부리진 않겠던데요?”
정인섭은 다리를 꼬고 앉아 비서가 가져다 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예. 그래서 말인데요. 그거 빨리 정리 좀 안되겠습니까? 기사도 좀 내고. 사실 제 입장에서는 안팔아도 그만이긴 한데 그래도 기분이 나빠서 말이죠.”
말마따나 수겸의 입장에서는 연금술 제품의 판매량에 목을 매달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건데 그 새끼들 때문에 망했다는 이야기는 듣기 싫단 말이지.’
게다가 수겸의 마음 속에 있는 한 가지 목표.
‘리카르도 아저씨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연금술을 이 세상에 전파하는 것. 그걸 위해서라도 지금 상황은 해결해야 해.’
“돈 문제라기 보다는 연금술 자체에 대한 모독이랄까요? 그리고 연금술이 무너지면 의원님 입지도 그만큼 줄어드는 것 아닙니까?”
수겸의 목소리가 무거워졌다.
“그럼요. 그래서 연금술과 관련된 일이라면 만사를 다 제치고 먼저 알아보고 있지요. 저도 그래서 최대한 빨리 덮고 싶긴 한데, 한 가지 찝찝한 이야기를 들어서요.”
“무슨 이야기를?”
“제가 말씀드리는 것보다도 이걸 보시는 게 좋겠네요. 설명하려면 이야기가 길어서 말이죠.”
정인섭은 리모컨을 눌러 정면에 있는 TV를 켰다.
화면 속에 나오는 건 수겸.
정확히는 천강교가 머물고 있던 호텔 건물의 입구로 들어가는 수겸의 뒷모습이었다.
그리고 재생 속도를 높여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몹시 지친 듯 힘겹게 밖으로 나오는 수겸의 모습이 보였다.
“수겸씨. 우리나라에 CCTV가 없는 곳이 있을 것 같아요? 저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씀해보시겠어요?”
“아, 그거요? 설명 해드리죠.”
“지금 하시는 이야기에 따라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지 없는지가 판가름 납니다. 아시죠? 누구보다 수겸씨의 몰락을 바라지 않는 사람이 저라는 사실.”
‘몰락.’
정인섭은 굳이 몰락이라는 단어를 썼고, 수겸은 그걸 캐치했다.
“뭔가 알고 계신가본데, 생각하시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수겸은 커피로 목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