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03
103화
수겸은 정인섭의 눈을 쳐다 봤다.
말로는 수겸을 의심했지만, 정인섭의 눈빛은 단단했다.
그만큼 수겸을 믿는 것이었다.
“그 날 경찰이 추적할 때 저도 같이 따라갔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저는 미행에 성공해 보시는 것처럼 놈들의 본거지에 들어갈 수 있었죠.”
“경찰도 실패했는데 끝까지 따라간 것부터 놀랍네요.”
“저는 연금술사니까요.”
수겸이 한 마디로 정인섭을 납득시키고 말을 이었다.
“안에 들어가니까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과 많은 수의 신도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무장을 한 채로 말이죠.”
“음.”
정인섭은 수겸의 말에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예상 외의 발언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는 다음 희생양으로 뽑힌 소녀가 있었고, 저는 그 모습에 이성을 잃고 현장에 있던 모두를 죽였습니다. 당연히 흔적은 없앴구요.”
수겸은 담담했다.
“예? 죽였다는 말씀이십니까?”
정인섭이 여유롭던 아까와는 달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되물었다.
“하하. 의원님도 참. 농담이에요, 농담.”
수겸은 손사레를 쳤다.
“…….”
정인섭은 생각했다.
과연 이게 진짜 농담일까? 아니면 본인을 떠보기 위해 거짓을 가장하여 진실을 던져본 것일까.
“제가 무슨 힘으로 사람을 죽입니까. 게다가 인생 망칠 일 있어요?”
수겸은 웃는 듯 웃지 않는 듯 파악하기 힘든 표정을 지었다.
“그, 그렇죠?”
“근데 말이에요. 의원님.”
“네?”
“만약에, 진짜 만약에. 제가 그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들을 전부 죽였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상황에 제가 살인범으로 잡혀 가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이대로 뿔뿔이 흩어져서 행방불명 처리 되는 것이 좋을까요?”
“그게 무슨……?”
“저 스스로에게, 의원님에게 그리고 우리나라에게도 행방불명이 더 이득이지 않을까요? 아! 물론 가정입니다. 밸런스게임 같은 거에요.”
수겸의 질문은 잘못된 것이었다.
밸런스게임이란 고르기 힘든 두 가지 선택안 중 하나를 고르는 것이지 지금처럼 외통수인 질문에는 어울리지 않는 표현.
애초에 정인섭에게는 한 가지 선택밖에 없었다.
“재밌네요. 모든 것이 재미삼아 하는 이야기지만, 당연히 후자 아니겠습니까? 행방불명.”
정인섭이 당혹스러운 감정을 숨기고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그렇죠. 제 생각에도 그래요.”
수겸이 미소지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사람 백 명이 죽어나갔는데, 그걸 덮는 방법은 이것 뿐이야.’
수겸은 협박까지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애써 합리화시켰다.
“제가 무너지고, 연금술이 악이 된다면 의원님 앞 날에도 지장이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거꾸로 제가 점점 입지를 넓혀나가면 의원님께서 대통령이 되는 것도 그리 불가능하지도 않지요.”
둘은 운명공동체인 셈이었다.
물론 수겸은 수겸의 갈 길을 가는 것 뿐이지만, 정인섭에게 수겸의 행보는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럼요. 그러니까 제가 항상 수겸씨를 챙기는 것 아닙니까. 예전에 연금술을 공인하기 위해 애썼던 날을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고생했어요.”
“맞아요. 그래서 제가 의원님을 믿어요. 그러면 저는 다시 연금술 제품 생산 준비를 하면 될까요?”
수겸은 마치 자신이 악당이 된 기분을 느꼈다.
총구를 입에 물리고 어서 대답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느낌.
“예. 연금술을 기다리는 국민들이 많습니다. 계속해서 좋은 제품들을 공급해주셔야죠.”
정인섭은 수겸에게 악수를 청했다.
수겸은 정인섭의 손을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수겸이 말하고.
“저 역시도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정인섭이 답했다.
* * *
수겸은 쉬지 않고 움직였다.
잠깐이라도 편히 쉬려고 하면 불현듯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
아직까지도 사람이 흔적도 없어지는 광경은 방금 전에 본 것처럼 생생했다.
‘일을 덮으라며 의원님을 찾아갔으면서 죄책감까지 느끼다니. 나란 새끼, 존나 역겹네.’
수겸은 겉과 속이 완전히 정반대인 자기의 모습에 환멸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수겸이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 별 수 있었을까?
평범하게 살던 사람이 엄청난 능력을 가지게 됐다고 해서 사람을 죽이고도 아무렇지 않게 되는 건 아니니까.
“후우… 계속 움직이자.”
결국 지금 수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하루, 이틀 바쁘게 보내면서 할 일을 하는 수 밖에.
그래서 선택한 것이 이천행이었다.
“잘 자랐겠지?”
수겸은 마나 흡입체의 보살핌 아래 잘 자라고 있을 인삼을 떠올렸다.
수겸은 박동현의 거처로 바로 가지 않고 밭으로 향했다.
빽빽하게 자라난 풀잎이 뿜어내는 상그러운 초록빛.
풍년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전경이었다.
“그런데 좀 많이 풍년인가?”
수겸은 하나 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황기, 당기, 백작약을 비롯한 약초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길가에 난 잡초까지 아기로 치면 초우량아 수준이었다.
“와. 이렇게까진 예상을 못했는데.”
수겸이 만든 시약의 영향도 분명히 있겠지만 시약의 효과로 자란 아이들은 이미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에 비하면 최소 10% 내지 20%는 더 큰 것 같아.”
거기다가 품고 있는 마나를 보니 이건 제일 적은 게 B등급 수준은 되는 듯 했다.
‘여기 약초들과 산에 있는 것들까지 합치면…….’
수겸은 팔에 닭살에 올라오는 걸 느끼고 손을 비볐다.
“대박이다.”
이제 대망의 하이라이트.
수겸은 기대감을 잔뜩 품고 인삼을 재배하고 있는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갔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코가 마비될 정도로 풍겨오는 짙은 인삼 향기.
“향기를 맡기만 했는데 건강해지는 기분이야. 이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팔아도 돈방석에 앉겠다.”
수겸은 하우스 천장에 설치된 마나 흡입체를 쳐다봤다.
완전히 밀폐되어 있지 않고 구멍이 숭숭 뚫린 상자 안에 보관되어 있는 마나 흡입체를 보면 수겸은 기상일기예보가 떠올랐다.
구름의 이동, 바람의 방향을 그림으로 보여주는 기상예보.
수겸의 눈에는 마나 흡입체로 흘러들어가는 마나의 흐름이 그것과 똑같은 형태로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찬찬히 빨아들이는 것이 아니고 이건 진공청소기와 비슷한 느낌이야.’
단 하나의 마나 흡입체는 주변의 마나 흐름에 전반적인 영향을 미쳐 비닐 하우스 안에 있는 인삼들만 뿐만 아니라 수겸의 밭 전체에 마나를 공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정도면 흡입체 하나당 커버할 수 있는 면적을 훨씬 넓게 잡아야겠는데?”
수겸이 생각하는 연금술 공장의 밑바탕에는 흡입체를 이용한 원재료 생산 시스템이 깔려 있었다.
무한정 공급되는 양질의 재료와 시스템으로 갖춰진 생산 설비.
이것이 수겸의 큰그림이었다.
그리고 그 때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삐익!
“엥?”
수겸이 소리의 발원지를 찾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거기! 누구야!”
당연히 수겸을 향해 소리를 친 사람은 박동현이었다.
“형! 저에요. 수겸이요!”
“수겸이? 목소리가 아닌데. 허튼 짓 하지 말고 거기서 당장 나와! 손 위로 올리고!”
박동현은 겁을 먹은 티가 역력했다.
“형, 진짜 저에요. 수겸이요.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형이 무슨 옷을 입고 있었는지 말을 하면 믿으시겠어요?”
수겸은 떠올리기 싫은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달빛마저 구름 뒤에 가린 그 날 박동현의 벌거벗은 몸을.
“그 때 형은 아마 옷을 아예…….”
“안돼! 거기까지. 수겸이었구나. 수겸이 맞았어. 다시 들으니 우리 수겸이 맞아.”
박동현은 도대체 몇 번이나 말하는지 연신 수겸의 이름을 말하며 입을 막으려 했다.
“헤헤. 어차피 듣는 사람도 없는데 뭘 그리 다급하게.”
수겸은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박동현의 앞으로 다가갔다.
“넌 어째 그 난리통에 연락 한 번 없다가 여기도 말도 없이 오냐?”
박동현의 목소리에는 아주 약간의 섭섭함이 섞여 있었다.
“죄송해요. 워낙 정신이 없어서요.”
수겸은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잘 왔다. 마침 엄청 걱정했었거든. 우리 마을은 완전히 비상사태야. 거의 전시 상황이랄까?”
박동현은 너스레를 떠느라 양 손을 살짝 들어 올리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멀리서 보던 사람 눈에는 항복처럼 보인 것일까?
“우리 동현 총각을! 전원 공격! 으아아악!”
나이도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소리를 지르고 그보다 조금 어린 중장년의 남자들이 앞뒤 재지 않고 수겸을 향해 돌격을 했다.
“어어어? 형?”
“잠시만요!”
이미 시작한 공격은 멈출 수 없는 것도 관성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을까.
멈추라는 소리를 지르며, 이미 수겸의 뒤에 도착한 전임 청년회장의 손에 들린 후추스프레이를 본 박동현이 떠올린 생각이었다.
치이익―
매콤하다 못해 화끈한 후추 스프레이가 반사적으로 뒤돌아본 수겸의 눈에 정확히 뿌려졌다.
“크아악!”
100명과의 싸움에서도 이렇게까지 처참하게 비명을 지르지 않은 수겸이었다.
상황이 진정되고 박동현의 집으로 이송이 된 수겸은 아직까지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누워서 입만 움직일 수 있는 상태.
“수겸 총각. 미안하이. 우리도 사정이 있었어.”
그 순간만큼은 빛보다도 빠르게 수겸을 향해 달렸던 전임 청년회장이 연신 수겸의 손을 매만지며 사과를 했다.
“이해합니다. 말씀하신 사정이 다 저 때문에 생긴 일일테니까요.”
수겸은 한참을 울었더니 아직까지 촉촉하게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수겸아. 네가 이해해. 우리 딴에는 혹시나 테러리스트들이 우리 마을에 쳐들어올까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데.”
박동현의 말대로 테러리스트들의 활동이 계속되면서 수겸의 약초마을은 교대로 순찰까지 할 정도로 비상상황이었다.
수겸이 공급한 시약을 활용해서 수겸이 필요로 하는 작물을 기르는 마을.
사실 다른 어느 곳보다 위험했던 곳이 이 마을이었다.
만약 불이라도 난 다음 전재산을 잃는 상황.
당연히 예민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었다.
수겸은 화끈한 경험을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다시 한 번 책임감을 느꼈다.
‘나를 위해 일을 해주는 사람들이다. 내가 책임져야 하는데 너무 소홀했어.’
그 사이 수겸이 한 것이라곤 마을이 아닌 본인의 밭을 지키기 위한 경비 시설뿐.
단 하나도 마을 사람들을 위해 한 것이 없었다.
물론, 섬세한 남자인 박동현은 마을 사람 모두의 사랑을 받을만큼 싹싹하게 행동했지만 그건 수겸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전혀 미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라도 똑같이 했을 것 같아요.”
수겸은 미안함에 자기 손을 놓지 못하고 있는 전임 청년회장의 손을 맞잡았다.
“그동안 제가 너무 무심했습니다. 앞으로는 마을의 발전을 위해 더욱 더 신경을 쓰겠습니다. 이런 꼴로 말씀드려 죄송해요.”
수겸은 속에서 나온 말을 무심코 뱉은 뒤 자기가 누워 있단 사실에 사과의 말까지 함께 했다.
“너 그 말 약속했다? 하하.”
박동현은 수겸의 속마음을 대번 알아듣고는 농담조로 웃으며 말했다.
반면 전임 청년회장은 어리둥절한 상황.
“잉? 갑자기 왜 그런 소리를 하는겨?”
수겸의 약초는 당연하게도 특수작물이다.
어떤 것보다도 돈이 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마을 사람들을 움직이는데 충분한 이유.
그들은 움직이는 원동력은 수겸을 위한 따뜻한 마음이 아닌 철저한 자본주의였다.
“아니에요. 그냥 감사해서요.”
반대로 수겸은 본인을 위해 일을 해주는 사람이라는 착각 중이었다.
박동현은 이 모든 것을 꿰뚫고 있지만, 굳이 그것을 정정해 줄 필요가 있을까 고민하며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