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
11화
판매 루트가 문제였다.
처음 금을 만들었을 때는 A부터 Z까지 낯설어서 헤맸지만, 지금은 다르다.
재료 준비부터 연금술 실행까지 완벽하게 해냈기 때문이다.
물론 금 손실이 발생한 건 논외의 이야기지만.
그리고 천진 자원의 이기백과 산에서 만난 김동현 덕분에 재료 걱정도 아마도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한 번 금 연성을 할 때마다 적어도 오늘과 같은 5천만원에서 많게는 8천만원 상당의 금이 나온다는 건데, 이 물량을 판매하는 것이 문제였다.
처음 한 돈을 팔 때처럼 ‘주웠다, 발견했다’ 정도로 둘러 댈 수 있는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겸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쉽게 끝나질 않는구나.”
지금까지 살면서 단 한 순간도 인생이 쉽게 풀린 적이 없는 수겸에게는 이럴 때 쓰는 해결책이 하나 있었다.
“일단 시작해보자. 어떻게든 되겠지.”
바로 눈 가리고 무작정 뛰기 전략이었다.
말 그대로 앞, 뒤 사정을 생각하지 않고 망설이지 말고 시작하면 어떻게든 일은 풀린다는 것이 수겸이 가진 인생 전략이었다.
수겸은 휴대폰을 켜 ‘금 매입’을 검색해 금은방의 위치를 확인했다.
***
“사장님. 몸은 좀 괜찮으세요?”
편의점에 들어서자 낮타임 근무자인 최영지가 걱정어린 눈빛으로 수겸을 맞이했다.
“어어. 어제는 미안. 많이 기다렸지?”
“아니에요. 다행히 민환 오빠가 생각나서 가게 문 닫는 일은 없었어요.”
“그러게. 근데 최민환이랑은 도대체 언제 번호 교환을 한거니? 걔가 내 대타로 일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잖아?”
“아아. 그쵸. 맨날 오며 가며 고개만 까딱하며 인사하는 사이였는데, 어제 말고 그 전에 사장님 대신 민환 오빠가 근무했을 때 처음으로 서로 말했어요.”
최민환에게 감자탕을 먹인 날인 듯 했다.
“그랬구나∙∙∙. 근데 난 사장님이고 내 친구인 최민환은 오빠인거니?”
수겸은 무슨 뜻은 절대 없었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를 꼬집어 물었다.
그렇지만 최영지는 똑부러지는 친구였다.
“그럼요. 공과 사는 구분해야죠. 저한테 월급 주시는 분한테 오빠라뇨. 민환 오빠는 그냥 한번씩 대신 나오는 대타니까 괜찮죠.”
“그래∙∙∙∙∙∙. 이제 들어가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수겸은 씁쓸한 기분이 들었지만, 농담조로 최영지를 퇴근시켰다.
“하하. 왜 그러세요. 일단 오늘도 파이팅입니다! 내일 뵈요!”
편의점 밖의 수겸은 금을 만들어서 일확천금을 얻어 보겠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지랄발광을 하고 다니는데, 편의점 안의 수겸은 일상의 평온 그 자체였다.
지금까지 그를 힘들게 한 주 원인이었던 편의점이건만, 오히려 이 곳만이 그에게 평온을 주는 기분이었다.
아무래도 요 몇일 너무 무리하고 있긴 한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가자 수겸은 화들짝 놀라며 찰싹 소리가 나도록 볼을 쳤다.
고개까지 세차게 저으며 혼잣말을 지껄였다.
“네가 아주 미쳤구나. 이제는 편의점에 정이 들어? 이러다 계약기간이 끝나도 본사 찾아가서 연장 하겠다고 빌기라도 하겠는걸? 하하하.”
실성한 듯 웃음을 흘리며 수겸은 편의점 매대를 살폈다.
어디 한 곳 빈 부분 없이 빼곡하게 채워진 상품들과 열심히 청소한 티가 나는 바닥.
시키지도 않는 데 자기 가게처럼 열심히 일해주는 최영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중에 보너스를 좀 주던지 해야겠다.’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 한 명 들어오지 않는 한적한 밤이었다.
늘 그랬든 너튜브 영상을 보며 카운터에 앉아 있다 보니,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몇일 전부터 잠도 제대로 안자고, 심지어 어제는 야간 산행을 하느라 거의 밤잠을 안 잤으니 몸이 버틸 리 만무했다.
수겸이 꾸벅 꾸벅 졸고 있을 때 편의점 문이 열렸다.
띠링-
벨소리가 들렸는데도 수겸은 쉽게 잠에서 깨질 못했다.
똑똑.
손님이 카운터를 노크를 하듯 두들겨서 수겸을 깨웠다.
“아, 죄송합니다. 계산할까요?”
수겸은 잠이 덜 깬 상태로 앞도 안보고 늘상 하던대로 멘트를 날렸다.
“강수겸 사장님?”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군지 확인하는 수겸.
잠이 확 깨는 정도가 아니라, 갑자기 심장에서 펌프질을 세차게 시작해서 피가 고속으로 온 몸으로 퍼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 사람은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 수겸의 마음 속에 항상 있는 사람.
수겸의 원수.
본사의 이승준 대리였다.
“이 새끼가?”
강아지는 멍멍 짓고, 고양이는 야옹 하듯이 수겸은 이승준 대리를 보면 욕을 한다.
“왜 그러십니까. 하하.”
“네가 여길 와? 여기 이 꼴을 보고도.”
보통의 경우라면 본사 직원을 막 대하는 편의점 사장이 있다? 이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우리의 수겸, 승준의 관계는 보통을 넘어선 관계이기에 가능했다.
“무슨 낯짝으로 왔어? 말해.”
“저만큼 사장님 생각하는 사람이 어딨다고 그러십니까. 다른 건 아니고, 본사에서 서비스 품질 조사 시켜서 나온겁니다.”
“품질 조사?”
“매년 하는 그거 있지 않습니까. 이미지 제고 어쩌고 저쩌고. 낮에 일하는 그 친구야 몇 년째 잘해 주고 있으니까 볼 것도 없고. 사장님이랑 말이라도 몇 마디 하려고 이 시간까지 기다렸다가 밤에 온 것 아닙니까.”
“은근히 돌려 까는 것 같다? 낮에 영지는 잘 하는데, 밤에 일하는 사장 놈이 문제다. 거기다가 만나려면 참 힘든 놈이다. 이 이야기지?”
“에이. 왜 이렇게 꼬아 들으십니까.”
“야, 이번 달 수익이 백만원이더라. 백만원. 이게 뭐가 문제인지 아냐?”
이승준은 굳이 질문에 대답을 해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려는 듯 했다.
“내가 알려줄께. 문제는 말이야. 네가 말하는 그 친절한 알바생이 나보다 더 많이 돈을 벌었다는 점이야. 하하. 안 웃기냐? 나만 웃겨?”
평소에는 침착하고 상대방을 배려해가며 말하려고 노력하는 수겸이지만, 이승준 대리만 만나면 꼭지가 확 돌아버려 생각없이 말을 지껄이곤 했다.
“이런 달도 있고, 저런 달도 있지 않습니까. 다음 달에는 또 매상 잘 나오겠죠.”
“그 이야기만 지금 몇 년째야? 이성적으로 말이야. 이 동네에 더 이상의 유동 인구가 나올까? 나는 참 모르겠다. 우리 똑똑한 이승준 대리가 대신 답을 좀 내주면 좋겠는데.”
이승준 대리는 말을 받아주다가 지쳤는지 멋쩍은 웃음만 지으며 냉장고로 걸어서 음료수 하나를 집었다.
“그러지 마시고 이거나 계산해주십쇼. 아 참, 이건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아까처럼 막 졸고 계시면 안돼요. 저니까 그냥 지나가지 다른 담당자가 보면 경고에요.”
“알겠어. 고맙습니다. 대리님. 제 사정 많이 봐주시네요.”
삑-
수겸은 끝없이 비꼬면서도 계산은 계산이었다.
이승준 대리는 카드 리더기에 셀프로 카드를 꽂으며 말했다.
“저 갑니다. 그럼 아마도 다다음달? 그 때 뵙겠습니다.”
“그러던지 말던지.”
수겸은 끝까지 퉁명스럽게 대하며 이승준 대리를 보냈다.
***
퇴근 후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시계를 보니 2시.
“금 팔기 딱 좋은 날씨구나.”
전날 미리 팔기 좋게 1돈 크기에 얼추 맞도록 분해 해둔 금뭉치를 가방에 넣고 집을 나섰다.
수겸은 바로 종로, 강남으로 향하지 않고 우선 동네부터 돌기로 정했다.
일종의 워밍업인 셈.
당연히 두 번이나 거래했던 순금 나라가 1 순위 후보였지만, 거길 또 가기엔 주기가 너무 짧았다.
수겸은 속으로 다짐했다.
‘제발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필요한 말만 하자. 그냥 물건 보여 주고, 돈 받고. 이것만 하면 돼.’
첫번째 금은방이 눈 앞에 보였다.
인자한 표정에 최소 업력 30년 이상으로 되어 보이는 할아버지가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어서오세요.”
“안녕하세요. 금을 좀 팔려고 합니다.”
“네. 반지에요?”
“그건 아니고, 이런 거라.”
“허허. 이렇게 녹이다 만 건 또 처음 보네요.
수겸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아 네. 부친께서 보석 세공사셨는데, 가보를 직접 만들어 보시겠다고 하시다가 사고로 돌아가셔서요∙∙∙.”
능청스럽게 대답하며, 끝 말을 흐리는 것까지 계산된 말투였다.
‘좀 소름이다 이건. 아무래도 사기꾼인 것 같은데.’
금을 파는 것에는 당당했지만, 거짓말을 능청스럽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일말의 죄책감을 느끼며, 수겸은 금은방 사장에게 물었다.
“얼마쯤 할까요?”
“의미가 있는 물건인데 팔아도 되겠어요?”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말에 수겸은 순간 답을 못했다.
“괜찮아요. 당장을 살아야 하니까요.”
“그래요. 그럼. 32만원에 쳐줄게요.”
아무래도 동정심에 조금 더 쳐준 것 같았다.
수겸은 더 이상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현했다.
금은방 사장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현금을 세기 시작했다.
“여기 5만원 6장에, 만원짜리 2장. 맞지요?”
“네. 맞네요. 감사합니다.”
“소중한 물건이었으니까 그 돈도 소중한 곳에 쓰길 바래요.”
수겸은 마지막 말은 못 들은 척하며 지체없이 밖으로 나갔다.
‘모든 금은방 사장님이 저런 분이라면 미안해서라도 난 이거 못하겠다.’
수겸의 걱정과는 다르게 그 다음에 들린 금은방에서는 질문 하나 없이 금을 팔 수 있었다.
이제 6돈을 팔았는데 벌써 5시였다.
안그래도 걷는 속도가 느린 수겸에게 일일이 금은방을 찾아가는 일은 그 자체가 고역이었다.
너무 힘들어서 내일할까라는 고민을 하던 찰나에 수겸은 가방을 앞으로 매고 안쪽 주머니에 차곡 차곡 넣은 현금 뭉치를 봤다.
대충 계산해도 거의 200만원에 가까운 돈.
“힘들긴 뭐가 힘들어. 갑자기 너무 재밌는데?”
동네 한바퀴를 싹 돌고, 이후 행선지는 종로였다.
를 제외한 동선.
한 군데씩 들어 어떤 곳은 1돈, 어떤 곳은 2돈씩 금을 팔고 나왔다.
그렇게 편의점 출근시간까지 전부 돌아서 40돈. 현금으로 1,300만원어치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계산대로 되어서 가방에 금덩이는 1~2돈 정도만 남았다는 점이었다.
어깨에 들쳐 맨 가방에 현금이 채워질수록 수겸의 가슴에도 행복이 차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현금 부자인가. 현금도 무겁다더니 진짜네.’
수겸은 배가 너무 고팠지만 어디 식당에 들어가서 가방을 내려놓고 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치안이 좋기로 전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우리나라였지만, 만에 하나라는 건 10,000명 중 1명은 가방이 털린다는 거니까.
그래서 선택한 건 햄버거였다.
천만원이 넘는 현금이 있지만 기껏 먹는 건 햄버거인 남자가 바로 수겸이다.
그것도 자리에 앉지도 않고 길을 걸으며 먹은 게 킬링 포인트랄까.
하여튼 식사까지 마치고 수겸은 조금 일찍 편의점으로 향하기로 했다.
***
“오늘은 먼저 들어가. 근무는 다 끝낸 걸로 칠거니까. 이건 전에 내가 잠수탔을 때 연장했으니까 보상이야.”
“에이. 안그러셔도 되는데. 그 때 진짜로 몇 분 있지도 않았다니까요.”
말은 그래도 최영지의 입꼬리는 이미 광대뼈에 도달한 상태였다.
“해봐야 2시간인데. 가랄 때 가세요. 알바님.”
“넵! 그러면 이 알바생. 사장님 말씀대로 이만 퇴근해보겠습니다.”
“그럼 내일 봐.”
최영지를 나간 후 수겸은 거의 10분에 한번씩 가방을 들여다보고 웃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돈이 이렇게 무섭다. 금도 무섭다.
오늘도 역시나 어제와 마찬가지로 손님이 없는 무료한 저녁이었다.
그래도 자기 가게라고 가방을 안쪽 구석에 박아 두었더니, 수겸은 한결 마음이 편해져서 매장 청소도 하고 물건 진열 등 루틴 업무들을 하기 시작했다.
한창 청소에 집중하고 있는 찰나
수겸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에 찍힌 이름이었다.
수겸은 생각했다.
‘금은방에서 손님한테 전화를 할 일이 있나? 그것도 이 시각에?’
수겸은 무언가 일이 벌어졌다는 예상을 하며 통화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