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4
114화
“사실 저도 이런 중독 증상을 보는 건 처음입니다.”
숙소로 돌아온 수겸이 데이비드를 보며 고백했다.
“아무래도 그럴 수밖에 없겠죠. 한국은 미국처럼 마약 문제가 심각하지 않으니까요.”
“그건 아니야. 한국도 이제는 조금 덜 부각이 됐을 뿐, 마약이 꽤 퍼져 있다고.”
미국의 민낯이 들어난 것 같아 찰리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으며 반박했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래도 실험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수겸! 무슨 실험 말하는 거지?”
“제가 만든 시약이 효과가 없을 리는 없지만, 만에 하나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는 건 중독자를 대상으로 수겸 씨가 만든 약물이 효과가 있는지 테스트해보겠다는 말씀이시죠?”
“네, 맞습니다. 두 분도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좋지 않으세요?”
수겸의 말은 지금 당장 누구라도 중독자 한 명을 데리고 오라는 뜻과 다르지 않았다.
“찰리?”
“별수 없지.”
찰리는 어깨를 으쓱하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최고 좋은 건 중독 증상이 약한 사람부터 완전히 찌든 사람까지 여럿 데리고 오는 겁니다. 그래야 더 정확한 실험이 될 수 있어요.”
찰리가 입술을 삐죽 내민 표정에서 한층 더 나아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수겸은 짐작은 갔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다.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괜히 문제를 삼지말라는 식이었다.
“그게…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것이 말처럼 쉬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겸! 마약을 한 번이나 두 번 정도 한 사람은 쉽다. 데려오기. 중독자 치료 모임에만 가도 진짜 많기 때문.”
찰리가 설명을 하려던 데이비드를 향해 손을 뻗어 만류한 후에 서툰 한국어로 설명을 시작했다.
“약에 절어 버린 쪽이 문제라는거죠?”
“맞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가족마저 버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족?”
“그런 약쟁이들이 곁에 있으면 가족 모두가 지옥. 돈 문제만 이야기하는 것 아니다. 여기, 마음이 너무 아파서 가족은 매일 괴롭다.”
찰리는 자기 가슴을 문지르며 설명했다.
“처음엔 어떻게든 낫게 해서 다시 잘살아보자는 마음이지만, 결국은 이러다 모두가 죽겠구나라고 생각이 드는 순간이 오죠.”
찰리의 설명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데이비드가 끼어들어 부연 설명을 시작했다.
“뛰쳐나가려면 붙잡아야 하고, 있는 돈은 전부 약을 사려고 끌어 쓰겠네요. 노름꾼이랑 어째 비슷한 것 같기도 하네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노름꾼이 갬블러를 말한 거면 수겸 말이 맞다.”
“보통 정신병원에서도 사람을 강제 입원시키려면 최소한 가족의 동의를 얻어서 진행하죠. 지금 수겸이 말한 것도 강제 입원과 똑같아요.”
“그런데 동의해 줄 가족을 찾을 수 없군요. 거기다가 약 기운에 제대로 대화가 힘들 테니 본인의 동의를 구하는 것도 안 된다 이거죠?”
수겸은 모든 걸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물리력을 행사해야 하니 이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안된다는 말씀이신가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수겸이 대뜸 톤을 바꾸며 물었다.
“아니요. 그게 아니라, 조금 시간이 더 걸릴 수도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예. 이해는 했습니다. 그래도 저는 꼭 테스트를 해야겠습니다. 어차피 저도 디톡시를 만들 시간이 필요하니 내일 치료를 할 사람들을 모시고 오기로 하죠.”
수겸은 그 말을 끝으로 대화 종료를 선언했다.
‘지금 상황을 움직이는 건 나야.’
수겸이 사실 급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둘을 압박하는 이유는 주도권 때문이었다.
“그러면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드르륵.
수겸이 말을 하는 동시에 의자를 뒤로 쭉 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쩝. 알겠습니다. 그러면 내일 뵙죠.”
탐탁치 않은 표정의 찰리와 데이비드는 수겸을 한 번 뒤돌아보고는 수겸의 숙소에서 빠져나갔다.
수겸은 미국에 도착한 이래로 묘하게 저들이 세팅한 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실은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이 일을 의뢰한 건 미국이었으니까.
“그래도 기분이 나쁘다 이거지. 일을 시작한 건 너희지만, 일을 어떻게 하는지는 내 마음이란다.”
좀 전에 켄싱턴 거리에서 본 사람들의 모습이 가여워서 최선을 다해 고치겠다는 마음을 먹은 건 진심이었지만, 모든 상황에 끌려가는 건 사절이었다.
수겸은 한국에서부터 가지고 온 캐리어를 쳐다봤다.
“나도 준비를 하긴 해볼까.”
* * *
모두가 각각의 사정으로 바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기껏 해봐야 20살이 겨우 됐을까?
아직 앳된 티가 역력히 나는 소년이 불안한 눈을 하고는 여기저기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여기 아무도 없나요?”
“닥쳐! 네 목소리가 머리에서 울려서 미칠 것 같으니까.”
소년의 말에 대꾸하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잔뜩 성이 난 것 같았다.
“오, 아저씨는 지금 옆 방에 있나요? 거기에 혼자 있어요?”
“시발, 몰라. 제발 좀 닥치라고!”
“저는 여기가 치료시설이라고 해서 따라오긴 했는데… 제가 잠든 사이에 절 데리고 온 동양계 남자는 없어졌어요.”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상황을 설명했다.
“…끄응.”
신경질을 내던 남자가 신음소리를 내며 끙끙거릴 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딸칵.
“수겸, 여기다. 말한 대로 별로 안 멀지? 복도를 따라가면 총 3개의 방이 있다. 방마다 1명씩 환자가 있다.”
“증상이 심한 순으로 있나요? 약에 취한 상태겠죠?”
어제와는 달리 다시 누그러진 말투로 수겸이 물었다.
주도권 싸움도 일종의 밀당이라는 것이 수겸의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제일 중독 증상이 약했던 첫 방의 남자는 맨정신일 겁니다. 제일 마지막 방의 남자는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수도 있죠.”
데이비드는 손으로 끝방으로 가리켰다.
“여기 나까지 3명이 있었군요.”
첫번째 방에 있던 소년이 말소리를 내자 수겸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때 데이비드가 수겸의 앞에 서며 말했다.
“지금부터 새롭게 개발된 약으로 중독 증상 치료를 할건데 예상치 못한 행동을 삼가하길 바란다. 이해했다면 답해라.”
“알겠어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거죠?”
이 정도는 수겸도 알아듣고 데이비드를 쳐다봤다.
고개를 끄덕이는 데이비드.
수겸이 문 손잡이를 돌려 문을 천천히 열었다.
“Hello.”
수겸은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인사만 하고 그 외의 말을 일부러 아꼈다.
수겸이 가방에서 꺼낸 건 원통형의 유리병.
그 안에는 콩알만 한 크기의 디톡시가 잔뜩 들어있었다.
수겸이 통에서 디톡시 한 알을 꺼내 손바닥 위에 올렸다.
“Eat.”
수겸이 입에 넣는 시늉을 하며 짧은 영어 실력을 뽑냈다.
한국에서라면 이미 연금술사로 얼굴을 알린 수겸이 건네주는 것이라면 양잿물이라도 의심 없이 마실 사람이 넘쳐나겠지만, 미국인에게는 수겸은 그저 평범한 동양인 남자일 뿐이다.
소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눈을 질끈 감고 수겸의 손 위에 있던 디톡시를 집어서 입에 톡하고 털어 넣었다.
순간 번쩍 뜨이는 소년의 눈.
“이게 무슨 약이죠? 약을 한 이후로는 항상 머리가 무겁고, 어디에도 집중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사나웠는데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상쾌한 기분이에요.”
“네가 먹은 건 디톡시라는 약이다. 몸의 중독 증상을 한 번에 날려버리는 약이지.”
만약을 대비하여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데이비드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 존이 수겸의 손을 붙잡았다.
“왜 이래? 약발에 감동이라도 했나?”
“맞아요. 약 기운이 날아가서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하네요. 그냥 한 번 손이라도 잡아주세요. 약 이제 하지 말라고도 해주시면 더 좋고요. 통역은 제가 할게요.”
“지금 기분이라면 약은 생각나지도 않을 것 같아요.”
쾅! 쾅!
존은 벽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아저씨! 아저씨도 이분이 뭔가를 주시거든 의심하지 말고 곧바로 입에 털어 넣어버려요. 그러면 두통이 싹 없어질 거예요.”
“제, 제발 좀 닥치라고. 내 마음 같아선 너희들 전부 총으로 쏴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수겸은 건 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 같지만 애써 못들은 척 하고 옆으로 넘어갔다.
두번째 방에 있던 남자는 수겸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은 것 같았다.
‘그래도 해봐야 30대 중반?’
“데이비드. 혹시 이 사람 몇 살인지도 알아요? 알기가 좀 힘드려나요?”
“잠깐만.”
데이비드는 휴대폰에서 검색을 한 후 수겸에게 보여줬다.
[Age : 28]“헐… 마약이 무섭긴 하구나. 사람이 이렇게 늙네.”
35세로 보이는 28세의 남자, 칼리아는 참다 못해 바닥에서 일어나 앞으로 내달렸다.
몇 번을 닥치라고 했는데도, 게다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을 계속 지껄이는 동양인 남자가 짜증 났기 때문이었다.
“으악! 닥쳐! 닥쳐!”
팍!
수겸이 반응하기도 전에 데이비드가 앞으로 나서서 칼리아가 내뻗은 주먹을 붙잡았다.
“헤이. 발을 비틀기 전에 얌전히 무릎 꿇고 앉아. 경고는 마지막이야.”
“아씨. 깜짝이야. 젊은이, 이것 좀 드시게.”
수겸은 존에게 건넸을 때와 마찬가지로 손에 디톡시 한 알을 올려놓고는 앞으로 내밀었다.
그때 벽 너머에서 존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렸다.
“아저씨, 그 약을 어서 삼켜버리라고요!”
“제길. 저 녀석 면상이라도 한 대 치고 싶군.”
선택지가 없는 칼리아는 혼잣말을 하고는 디톡시를 꿀떡 삼켰다.
결과는 역시나였다.
‘분명 처음 저 소년보다는 심해 보였는데 이 정도는 괜찮고. 이제 마지막…….’
수겸은 마지막 방문을 열었다.
인기척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상황.
“수겸, 그 사람 데리고 오느라 땀을 삐질삐질 흘렸어. 정말 힘들었다고.”
벽에 기대어 흘러가는 상황을 구경하던 찰리가 앓는 소리를 했다.
“어제 봤던 사람이네요. 횡단보도에서.”
허리를 90도로 숙인 자세로 침을 질질 흘리던 남자는 이번에는 바닥에 턱을 붙인 자세로 엎드려 있었다.
정상인이라면 턱 관절이며, 목이며 허리까지 어디 한 군데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 자세이지만 남자는 아무렇지 않는 듯 했다.
“눈이라도 깜빡 거리니까 어제보다는 나은건가.”
수겸은 지체하지 않고 남자의 턱을 잡고 강제로 벌려 입 안에 디톡시를 넣었다.
어차피 대화를 못할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반응은 역시 즉각적이었다.
“끄읍.”
바닥에 붙어 있던 남자는 조금씩 신음소리를 내기 시작했지만 몸을 들썩이기만 할 뿐 제대로 일어서질 못했다.
“이상한데? 약 기운은 전부 날아갔을 텐데 왜 일어서질 못하지.”
남자는 마치 방금 태어난 망아지처럼 일어서고자 발버둥 쳤다.
발을 움찔거리고, 다리도 조금씩 흐느적거렸다.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팔이지만 바닥을 짚고 일어서기 위해 연신 움직였다.
그렇지만 결과는 아직도 바닥에 붙은 신세.
절대로 정상이니 상황은 아니었다.
“이거 실패 아니야? 저 사람은 전혀 낫질 않잖아. 그냥 아직도 약에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것 같잖아.”
데이비드보다도 더 연금술에 대한 믿음이 있던 찰리가 실패를 언급했다.
“그러기엔 눈동자는 돌아왔어요. 처음엔 목소리도 못 내더니 지금은 신음소리지만 끙끙 소리도 납니다.”
거꾸로 데이비드는 아직 섣불리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이었다.
“수겸 씨. 어떻게 된 것 같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