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5
115화
수겸은 바닥에서 끙끙 앓는 남자를 살폈다.
‘눈빛부터가 아까와는 달라.’
디톡시의 효과가 아예 없었냐라고 하면 그 대답은 ‘노’였다.
‘그런데 왜?’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정답은 금방 나왔다.
그때 두 번째로 수겸이 치료했던 칼리아가 수겸의 옆으로 걸어오더니 남자의 턱을 쥐어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러고는 손도 만져보고, 다리도 손으로 꾹 눌러보는 행동을 했다.
“다들 멍청한 거야? 약도 안 해본 놈들이 무슨 치료를 한다고. 쯧쯧.”
칼리아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둥이 안 닥쳐?”
찰리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칼리아를 노려봤다.
“아니, 나는 너무 간단한 문제인데 심각하게 쳐다보고 있길래 그랬지.”
“알겠으니까 네 생각은 어떻지?”
옆에서 흘려듣고 있던 데이비드가 끼어들어 물었다.
“선을 넘어도 제대로 넘은 거지. 근데 진짜로 마약은 한 번도 안 해본 건 맞는 거야? 설마?”
칼리는 한 번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입 밖으로 내뱉어야 하는 듯했다.
“네 스스로 주둥이를 닫지 못했겠으면 말해. 내가 턱을 빼서라도 닫게 해줄 테니까.”
“찰리 화났어요?”
수겸은 평소보다 훨씬 더 날카로운 찰리의 말투에 놀라 물었다.
확실히 평소라면 누가 본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더라도 윽박을 지르거나 협박을 하는 캐릭터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저기 턱을 빼면 입이 더 열릴 텐데…….”
찰리가 자기에게 다가오기 시작하자 칼리아는 입을 꾹 닫았다.
물론 지금까지의 대화는 수겸은 눈치껏 알아들었지만, 영어라서 전부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
“됐으니까 하려던 말이 뭐야?”
데이비드가 상황 정리를 시작하며 다시 본래의 주제를 물었다.
“마약 문제를 다루겠다는 사람들이 이렇게 최신 트랜드를 몰라서 되겠어? 지금 저놈은 ‘뫼비우스’를 해서 그렇다고.”
데이비드는 이번엔 수겸 역시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통역해주기 시작했다.
“뫼비우스? 그런 건 처음 듣는데.”
수겸은 뫼비우스의 띠라고 불리는 모양을 떠올렸지만, 그것이 답이 될 순 없었다.
“뫼비우스? 그런 건 보고서에도 못 봤다. 우리 정보망에도 없는 걸 네가 안다고?”
“너희는 모를 수밖에 없지. 미국 땅에 넘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거든.”
“그런 걸 네가 안다고? 약쟁이가?”
찰리는 금방이라도 칼리아를 후려칠 것처럼 노려봤다.
좀 전보다도 더 험악해진 분위기에 순간 침묵이 흘렀다.
정적을 깬 건 처음 치료를 했던 존이었다.
“주식을 하는 사람들이 최신 뉴스도 찾아보고, 증권가 소식을 듣는 것처럼 우리도 소식을 전해 듣거든요. 우리도 있어요, 걸어 다니는 잡지가. 마약 소식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거든요.”
“하하. 이 꼬마는 역시 좀 똑똑하네. 이래서 약을 한 번이라도 해봐야… 크흠. 하여튼 마약 소식을 제일 빨리 접하는 사람은 약에 완전히 빠져 버린 놈들이지. 저 꼬맹이나 나나 이 사람처럼.”
칼리아는 한 사람씩 돌아가며 손가락으로 콕콕 가리켰다.
“서론 한번 길다. 데이비드, 아까 말한 뫼비우스라는 게 먼지나 좀 말하라고 해줘요.”
“저도 이제 참기 힘들군요. 또 말이 새면 로우킥이라도 차버려야겠어요.”
수겸과 데이비드의 의견일치를 눈치껏 알아챈 칼리아는 슬며시 뒤로 물러나며 이어서 설명을 시작했다.
“뫼비우스란 건 지금까지 나온 약 중에 제일 효과가 강력하지. 나도 직접 해본 건 아니지만, 후기를 들어보면 차원 이동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하더군.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감각. 게다가 더욱 대단한 점은 할 때마다 느껴지는 것이 달라서 항상 처음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설명을 전해 들은 수겸은 소름이 돋았다.
‘저 말이 진짜라고 하면 너무 무섭다. 이제 퍼지기 시작했다지만 이게 더욱 유행하게 된다면.’
수겸은 발아래 바닥에서 여전히 일어서지 못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이런 사람이 천 명이고 만 명이고 생길 거야.’
“물론 그만큼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어야지. 그게 무엇이냐! 하면 일단은 중독성이지. 이건 자의로는 절대 못 끊어. 한번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가족이고 친구고 없어지지.”
칼리아는 단언했다.
“그리고?”
데이비드가 칼리아를 재촉했다.
“약 성분이 중추신경에 파고들어서 사람이 움직일 수 없게 돼.”
“그건 전에 설명해 준 약이랑 똑같은 부작용 아닌가요? 뫼비우스라는 게 그 약이랑 이름만 다른 건가?”
수겸은 어제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 봤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굳어 있는 남자도 그때 봤던 남자이기도 했다.
“저 동양인도 어지간히 성질이 급하네. 알아듣지는 못해도 딱 보니 이제는 구시대 유물이 된 약 이야기를 하는 거겠지? 그거랑 다른 거라고.”
계속 약에 취해있었던 칼리아는 말을 하다 보니 힘에 부친 지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그들이 서 있던 방의 주인, 바닥에서 일어서지 못하는 남자의 바로 앞이었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전신의 근육은 비명을 지르겠지만 아무 일 없이 약 기운이 깼다고 해도 그다음부터가 문제야. 이게 겁나게 아프거든. 약을 하지 않으면 버티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또 약을 찾나? 네가 말한 특별한 점은 아닌 것 같은데?”
찰리였다.
“진짜 부작용은 이제부터야. 그렇게 뫼비우스의 띠처럼 아파서 약하고, 약해서 아픈 것을 반복하다 보면 결국 중추신경을 파괴해버리거든. 여기서 특이한 점. 이건 상반신은 조금씩 회복되지만, 하반신만은 마비를 시켜버려. 다시는 걸을 수 없다고.”
“이건 좀 충격적인데요. 너무 지독하네요.”
이야기를 듣던 수겸이 심각해진 표정으로 찰리와 데이비드를 쳐다봤다.
“그래서 아까 네가 이 방에 와서 저 사람의 팔이랑 다리를 만져본 건가?”
“맞아. 손이랑 팔은 눌러보니까 조금 반응이 있던데 다리는 아무리 세게 눌러도 꿈쩍도 하지 않았어. 아예 느낌이 없는 것 같달까? 그래서 내가 알아챌 수 있었던 거지!”
칼리아는 칭찬해달라는 학생같이 손을 탁! 하고 튕겼다.
“데이비드, 제가 왜 무서운지 아세요?”
수겸은 서툰 한국말로 대화하기엔 찰리의 기분이 최악인 것 같아 데이비드에게만 말을 걸었다.
“어떤 거죠?”
데이비드 역시 수겸의 생각을 어느 정도는 읽은 상황.
“약에 중독된 사람이 다리까지 못 움직이게 되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요?”
“또다시 약밖에는 할 게 없죠.”
“네. 그래서 이름이 뫼비우스인 것 같아요. 죽을 때까지 돌아도 벗어나지 못하는 뫼비우스의 띠인 거죠.”
지독하고, 악랄했다.
“지금 칼리아라는 사람이 아는 걸 보면 부작용까지도 이미 어느 정도 퍼졌다는 건데 이게 더 유행하게 될까요? 무시하기엔 너무 치명적인 부작용이네요.”
“약쟁이들은 불에 뛰어드는 나방과 다를 것이 없죠. 설사 내일 지옥이 찾아온대도 오늘의 쾌락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들이에요.”
“그러게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상황이 심각하군요. 그러면 어제 보았던 사람들은 전부 뫼비우스에 취한 사람들일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석상처럼 사람이 굳어버리는 종류의 마약은 뫼비우스 말고도 더 있으니까요.”
“어이, 너희 둘. 내가 친절히 정보를 줬는데 뭐라도 줘야 하지 않아? 마침 내가 배가 고프니까 가서 치즈버거라도 사 오라고.”
칼리아는 마약으로 뇌 기능에 타격을 입은 것인지 자기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인식하는 능력이 굉장히 부족한 것 같았다.
“치즈버거? 지랄하고 있네.”
이번엔 직접 알아들은 수겸이 영어로 맞받아치고는 생각을 시작했다.
‘치료 방법은 어렵지 않아. 마나 스트림의 도움 없이 힐링 포션만으로도 어느 정도 기능은 돌아올 것 같으니까. 그다음은 재활치료를 통해서 회복하면 돼. 완치가 목적이 아니야.’
중증 환자 한 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수겸의 사고방식은 한국과는 달랐다.
‘한 명을 완벽하게 치료하는 것보다 백 명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만 치료하는 게 지금은 맞다.’
그렇다면 수겸이 걱정하고 있는 건 무엇일까.
‘디톡시와 힐링 포션 둘 다 필요하다는 점이 문제인데…….’
물론 비율로만 따지면 디톡시로도 충분히 해결이 되는 사람들이 훨씬 높다.
그렇지만 적다고 해서 무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않은가.
‘디톡시와 힐링 포션을 둘 다 만들기엔 약초와 수액 공급이 걱정인데. 그 외에 부가 재료는 각각 다르니까 아마 괜찮을 텐데.’
“하아. 여기 동현이 형이라도 있으면 약초라도 구해달라고 부탁하는 건데. 차라리 두 개를 합쳐서 한 번에 만들면 그나마 효율적일 텐데.”
지금 수겸과 함께 하는 조력자는 찰리와 데이비드뿐인 상황.
이 둘은 수겸이 알려준 부가 재료는 완벽하게 구해오겠지만 메인이 되는 약초와 수액은 도저히 구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렵네.”
“수겸 씨, 뭐가 어려워요? 같이 이야기해봐요.”
데이비드의 말을 못 들은 체한 수겸이 두 눈을 감고 머리를 헝클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리고 다시 수겸이 눈을 뜬 순간 깨달았다.
‘이건?’
해답지가 눈앞에 있다는 것을.
– 다른 성질의 시약을 합성하여 재창조하는 기술로 시약 제조 기술 중 최상위 기술 중 하나이다.
– 합성하고자 하는 시약의 종류와 비율 그리고 부가 재료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 시약 합성을 위한 마법진은 공통으로 전수되지만 레시피는 개인의 비기로 취급한다.
– 본인만의 고유 레시피가 많을수록 상급 연금술사로 평가된다.
“대박. 여기서 이게 나온다고?”
수겸은 새어 나오는 미소를 손으로 가렸다.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물론, 먼저 알려줬으면 고민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 더 좋아겠지만 말이다.
‘어차피 한 번에 외울 수도 없었을 테니까. 그러면 생각해보자.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잘만 하면 쉽게 해결될 것 같은데.”
수겸은 혼잣말을 속삭였다.
뜻하지 않게 정보를 얻은 수겸이 놀란 만큼 데이비드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조금 전까지 대화를 하고 있던 수겸의 상태가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수겸 씨. 저랑 이야기하다 말고 뭘 하고 계신 거예요? 어딜 보고 계신 거지?”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눈동자, 혼자 히죽이는 입꼬리.
그러다 이제는 작지만, 혼잣말도 시작했다.
“수겸 씨 괜찮아요?”
데이비드가 수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아아, 괜찮아요! 괜찮아! 이제 그만. 어지러워요.”
다시 눈동자 초점이 잡힌 수겸이 데이비드를 쳐다보며 말했다.
“생각을 좀 하느라요. 이제 어떻게 할지 각은 나왔어요.”
바닥에 있는 남자의 볼을 꼬집고 있던 존도,
치즈버거 타령을 하다가 아예 바닥에 드러누운 칼리아도,
그런 둘을 아니꼬운 눈빛으로 쳐다보는 찰리도,
여전히 수겸의 양팔을 붙잡고 있는 데이비드도,
들려오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돌려 수겸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