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살짝 벌어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달빛이 전부였다.
수겸은 조명도 켜지 않고 침대에 기대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마지막 중독자까지 힐링 포션을 사용해서 회복을 시킨 후 호텔에 돌아온 뒤 줄곧 내내.
‘힐링 포션으로 치료가 되긴 해서 다행이야. 혹시나 안되면 어쩌지 싶었는데.’
수겸이 양팔을 쭉 뻗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흐업!”
짝!
집중하자는 의미에서 힘껏 자기 볼을 친 수겸은 바로 앞에 놓인 양피지 스크롤을 집었다.
이전에 만들어둔 버전보다 훨씬 큰 버전의 양피지였다.
촤르륵
특별히 신경을 써서 고른 양피지였다.
완벽하게 가공이 된 덕에 미국에 오면서부터 줄곧 말려있던 양피지가 반듯하게 펴졌다.
“그다음은 잉크.”
어디 한 군데도 말려 올라가지 않은 양피지 옆에는 중세 시대 귀족들이 썼을 것만 같은 고풍스러운 잉크 병이 놓여 있었다.
중고 거래를 하는 어플에서 어렵게 찾아서 구한 병이었다.
“폼도 중요하니까.”
마지막으로 잉크를 찍어서 마법진을 그릴 때 사용할 붓까지 굵기별로 나열하고 나서야 준비가 끝났다.
‘마법진까지는 메뉴얼이니까. 하던 대로 하자.’
조금 전까지 유난을 떨면서 준비했던 건 잊은 모양인지 수겸은 담담한 눈빛이었다.
마침 달빛이 절묘한 각도로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와 양피지 위에 내려앉았다.
수겸이 붓을 집고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그려야 할 마법진은 무려 5중이었다.
처음 마법진을 그리고 그 위에 겹쳐서 그리는 걸 총 4번을 반복해야 총 5개의 마법진이 완성되는 셈이었다.
수겸의 손은 거침없었다.
‘머뭇거리면 오히려 선은 매끄럽지 못하니까.’
이렇게 가공된 양피지 위에 마법 잉크를 사용해서 마법진을 그리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을 터, 시간을 들이더라도 실수 없이 완벽하게 그리는 편이 훨씬 나았다.
“휘유.”
잠시 후 마법진 작업이 끝나고 수겸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순간엔 너무 집중해서 숨 쉬는 것까지 잊을 정도였다.
“일단은 5:5 정도로 해볼까?”
핵심 재료는 당연히 힐링 포션과 디톡시였다.
수겸이 마나를 불어 넣자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창밖에서 보면 조명 색깔이 특이할 뿐이지 그냥 전등을 켰구나 생각할 정도였다.
물론 수겸의 방은 지상 11층이라 밖에서 보일 걱정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이번 마법진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진행됐다.
푸른 빛이 점점 진해지더니 얇은 막이 되기 시작했다.
둥근 모양의 마법진 테두리를 따라 만들어진 막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원통형처럼 보였는데, 수겸은 그 안으로 힐링 포션과 디톡시를 부었다.
주르륵 흘러 떨어지던 시약들은 갑자기 중력이 없어지기라도 한 듯 낙하운동을 멈추고 공중에 둥둥 뜬 상태가 되었다.
“호오.”
계속해서 마법진에 손을 댄 채로 상황을 지켜보던 수겸이 작은 탄성을 내다가 더욱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이제는 두 시약이 마나 원통 안에서 회전하다가 종래에는 조금씩 섞이는 것이 보였다.
‘진짜 새로운 시약을 창조하는 거구나.’
새로운 생명체의 탄생까지는 아니었지만 세상에 없던 무언가를 제 손으로 만드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수겸은 경이로운 순간을 만끽하다가 빈 병을 손에 쥔 채 마나막을 뚫고 안으로 집어넣었다.
쏴아악.
합성이 끝난 시약은 거짓말처럼 수겸의 손에 있는 병 안으로 깔끔하게 들어갔다.
‘이래서 병을 쥐고 마나를 불어넣으라고 한 거구나.’
제작자의 마나에 시약이 반응한 것이었다.
“끝났다.”
창조의 밤이 지나가고 다음 날 수겸은 곧장 찰리와 데이비드를 호출했다.
“수겸! 잘 잤어?”
까칠했던 전날의 찰리는 어디론가 가고, 다시 장난기 많은 찰리가 등장했다.
“네, 덕분에요. 아침부터 불러서 죄송해요. 피곤하실 텐데.”
“아니야! 이거, 우리 일. 근데 무슨 일이야?”
수겸은 어젯밤의 결과물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짙은 붉은 색의 시약이 앰플 병 안에서 찰랑였다.
“이걸로 한 번 치료해보죠.”
“오! 그건 어제 사용한 것과는 다른 겁니까?”
데이비드의 눈썹이 위로 들썩였다.
“네. 힐링 포션과 디톡시를 합성해서 만든 거예요.”
“합성? MIX 말하는 거지? 섞다.”
“그냥 섞는 것과는 조금 다른 개념이에요, 찰리. 찰리가 말한 섞어서 만든 건 물에다가 흙을 부어서 흙탕물을 만드는 수준이에요. 근데 이건 마셔도 탈도 안 나고 맛까지 좋은 쥬스를 만든 수준이죠.”
“오!”
“게다가 각각의 효과까지 좋아졌어요. 여러모로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아요.”
수겸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 * *
“약쟁이 새끼들은 널리고 널렸는데, 우리한테 딱 필요한 놈은 안 보이네.”
수겸이 이번에 만든 합성 시약은 뫼비우스의 마지막 부작용이 나타난 사람에게 테스트를 해봐야 그 진가를 알 수 있었다.
그 말인즉 하반신 마비를 된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건데, 걷지도 못하는 사람이 길거리에 있겠는가.
“어제 그 사람을 데리고 온 것도 신기하네요, 이쯤 되니.”
“그러게요. 바닥에 누워 있었던 것이 하반신 마비 때문일 것이라곤 예상을 못 했습니다. 아니면 어제 칼리아 말이 마비 증상은 급속도로 나타나기 때문에 그전까지는 정상이었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어쨌거나 우리가 데려와서 치료를 할 때 그런 증상이 생겨서 새로운 시약을 만들었으니 행운의 여신이 저희를 지켜보고 있나 봐요.”
“수겸 말이 맞다. 우리 어제 그 사람 안 만났으면 뫼비우스, 아직 몰랐다.”
실제로 어젯밤 수겸이 연금술에 빠져있을 때 찰리와 데이비드는 새롭게 알게 된 정보를 상부에 보고했다.
“어제 이야기를 들어보니 뫼비우스에 대해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는 것이 맞더군요. 저희가 최초 보고자가 되었습니다.”
“좋은 건가요?”
“딱히 좋고 말고 할 건 없죠. 지금 저희는 수겸 씨와 함께 작전 수행 중이라 추가 조사는 아마도 다른 팀에서 할 것 같거든요.”
“아, 전 또 무슨 보너스라도 나오는 줄 알고. 하하.”
“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건 어차피 우리 내부의 일. 지금은 저 사람 치료만 하자.”
찰리는 더 이상 정보국 내부의 일을 말하는 것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알겠어요. 정 찾기가 힘들면 전문가를 또 섭외하시죠?”
“전문가? 수겸, 또 미국에 아는 사람이 있어?”
“있죠?”
“전에 말했다. 미국 처음이라고. 누구야?”
“두 분도 아실 텐데. 치즈버거 좋아하는 전문가.”
“아…….”
데이비드가 생각만 해도 골치가 아픈지 머리를 부여잡았다.
드르륵.
자동차 문이 열리고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칼리아가 차에 올라탔다.
“쉿. 아무 말도 하지 말고 닥치고 자리에 앉아.”
찰리가 살이 베일 것만 같은 날카로운 목소리로 칼리아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쩝. 얘는 왜 항상 날이 서 있냐. 재밌을 것 같아서 뛰어왔더니 김 다 빠졌네.”
“어제보다 더 좋아 보이네요?”
수겸의 말대로 칼리아는 복장뿐만 아니라 혈색, 몸의 움직임 등이 어제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뉘앙스는 알겠네. 네 덕분이야. 네가 내게 준 약은 미쳤어.”
“어때? 확실히 치료가 된 것 같나?”
수겸을 보고 박수를 치는 칼리아에게 데이비드가 물었다.
“치료가 된 것 같냐고? 장난해? 너희들 마약을 해보지도 않고 어제 바보 짓거리를 하더니 신이 만든 약도 먹어보지 않은 거야? 머저리들이네.”
“말 조심히 해.”
“크흡. 내 몸이니까 확실히 알 것 같아. 지금 내 몸 안에는 마약 성분이 단 1g도 없다는 사실을. 난 어제 네 덕분에 새롭게 태어났다고. 하하하.”
운전을 하던 데이비드가 신호에 걸리자 뒤돌아보며 칼리아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한번 살폈다.
“다행이네. 그러니까 협조 좀 부탁하자. 우리가 어제처럼 뫼비우스에 쩔어버린 사람을 찾고 있거든. 어디 좋은 곳 있어?”
“음. 당연하지. 너희들 진짜 멍청한데 이거 하나만큼은 잘했네. 이 방면에서는 내가 최고거든. 저기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부터 해. 내가 안내할 테니까.”
칼리아가 안내한 곳은 새하얀 외벽에 초록색 집이 인상적인 집이었다.
“밖에서 봐선 전혀 모르겠네요.”
수겸이 마당에 있는 잔디까지 정리가 된 집을 살펴보며 말했다.
“칼리아 말로는 뫼비우스를 공급하는 놈들이 이런 집을 계속 공급한다고 합니다. 관리까지 직접 하구요.”
“왜죠?”
“지금 저희처럼 밖에서는 알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죠. 그리고 부작용을 생각해보면… 자기들이 공급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게 되면 아마 죽을 때까지 약을 팔아먹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악마가 따로 없네요. 직관적으로 다시는 걸어 나갈 수 없는 곳이군요.”
“그렇죠.”
“어이, 여기서 잘 지켜보라고. 너희들은 여기에 들어가기엔 너무 안 어울리니까 내가 가서 적당한 놈 데리고 올게.”
칼리아는 생각보다도 더 협조적이었다.
“고마워요.”
칼리아가 손짓으로 자기가 갔다 온다는 식의 제스쳐를 취한 덕에 수겸이 알아듣고는 감사 인사를 전했다.
잠시 후 우당탕탕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칼리아가 문을 쾅 하고 열더니 신원미상의 남자를 부축해가며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시동 걸어!”
데이비드가 다급하게 운전석으로 달려가고, 수겸 역시 차로 뛰어 들어가 칼리아가 타기 쉽게 제일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때 분명히 보았다.
뛰어오는 칼리아를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는 찰리의 표정을.
“시발, 약쟁이 새끼들.”
악의가 가득한 말은 욕설을 넘어서 저주에 가까웠다.
‘왜 이렇게 적대적이지. 그런데도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것도 의외고.’
수겸은 의아했지만 거기까지는 자기가 신경 쓸 일이 아니기에 금세 관심을 끄고 칼리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쾅!
남자를 구겨 넣고, 칼리아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문을 부술 듯 거칠게 닫았다.
다행히 차까지 추적할 생각은 없는 듯 뒤따라오는 차는 없었는데, 조금 잠잠해지자 데이비드가 칼리아에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자신만만하게 가더니. 그럴 거였으면 그냥 우리가 가는 게 낫지 않았나?”
“아니, 시발. 내가 그럴 줄 알았냐고.”
“그러니까 무슨 일인데?”
“처음에 입구를 통과하고 현관까지 들어가는 건 좋았거든? 거기서 딱 봐도 상태가 제일 안 좋은 놈을 데리고 오려고 살펴보는 것도 괜찮았는데.”
“근데?”
“내가 완전 약에 빠져 살 때 약값이 없어서 돈을 좀 빌렸거든. 근데 그 새끼가 이번엔 저기서 약을 하고 있네? 처음엔 예상도 못 했지. 너희들보다도 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 놈이거든.”
통역을 들은 수겸은 조금 전 칼리아의 말 한마디가 무섭게 들렸다.
“진짜 걷잡을 수가 없겠네.”
“근데 약 기운이 올랐는지 무섭게 쳐다보다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겁나게 뛰어오기 시작하더라고. 그제야 나도 그놈이구나 싶어서 도망친 거고. 와, 잡혔으면 진짜 죽을 뻔했네. 하하.”
수겸에겐 칼리아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남자였다.
‘이 상황에 웃는 걸 보면 아직 약이 덜 빠진 거 같은데. 디톡시가 안 먹히는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