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17
117화
“이게 납치랑 뭐가 달라요!”
숨을 가쁘게 내쉬게 칼리아를 태운 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가운데 정신이 번쩍 든 수겸이 외쳤다.
팩트만 놓고 보자.
이야기의 주인공은 인사불성이 되어 본인이 어디에 누워 있는지도 모를 한 남자.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약에 취해 쓰러져 잠들었는데, 누군가 와서 그를 찾았다.
상대는 일면식도 없는 남자였고, 대뜸 그를 인형뽑기를 하듯이 집어서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그를 건장한 체격의 3명이 기다리고 있는 검은 벤에 채우고 도주까지 한다면?
“당신들 정부 요원 맞아요? 이게 뭐야, 그냥 납치범이잖아요.”
수겸은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나지 않았다.
“수겸 씨, 걱정 말아요. 적어도 수겸 씨는 우리가 납치하진 않았잖아요?”
데이비드가 운전하다 말고 뒤를 돌아보며 험악한 얼굴로 수겸을 압박했다.
“예?”
“하하. 농담이에요. 사실 우리한테 시간이 많지 않아요. 짧은 시간 내에 성과를 내어야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절차상 생략’을 간간이 하고 있죠.”
“아니, 그래도 저 사람이 나중에 소송이라도 걸면 어떻게 해요?”
“사실을 알고 나면 그렇지 못할걸요?”
“왜요?”
“수겸, 지금 다른 팀이 아까 그 집. 습격해서 전부 체포했다. 이 사람은 우리가 구해준 거다.”
찰리가 데이비드 대신 답변했다.
“아. 그렇구나.”
수겸에겐 그냥 공권력으로 밀어붙인다는 것으로 들렸지만, 굳이 더는 설명을 듣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전혀 타당하지 않은 설명이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아예 병원으로 갈 생각입니다. 수겸 씨 실력은 저희가 알고 있지만, 상부에서는 확실한 수치를 요구하셔서요.”
“예. 바로 가시죠.”
* * *
『주립 마약 중독 치료 센터』
수겸은 당연히 영어로 적힌 치료 시설 출입구에 적힌 글씨를 읽었다.
수능을 공부한 한국인답게 회화는 되지 않더라도 이 정도 해석은 가뿐한 수준.
‘애초에 여기로 오면 되지 않았나? 개똥같은 납치극은 할 필요 없이.’
“그냥 마약 중독자면 바로 여기로 왔을 겁니다. 문제는 신종 마약인 뫼비우스였어요.”
가만히 서서 간판을 보고 있는 수겸의 마음을 짐작했는지 데이비드가 옆으로 다가와 설명했다.
“그렇군요.”
“우리가 무언가를 준비해 모든 치료가 가능하다고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신종 마약에 대한 것도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게다가 이번 기회에 마약 판매상들이 마련한 가옥도 하나 날릴 수 있었구요.”
“날린다는 표현이 마치 박멸 느낌은 아니군요.”
“네, 하나를 없애면 둘이 생기는 것이 미국의 현실이거든요. 최대한 접점을 늘려야 마약이 많이 퍼지니까요.”
“이해했습니다. 이제 들어가실까요?”
찰리가 주머니 속에서 꺼낸 신분증으로 남자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테인. 뫼비우스의 부작용으로 하반신 기능이 마비된 남자의 이름이었다.
“치료 시작 전 혈액을 먼저 채취할게요.”
치료 전, 후 혈액을 모두 채취해서 검사할 계획이었다.
“끄응.”
바늘을 꽂으면서 테인의 의식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까보다 정신이 든 것 같은데요?”
“그러게요. 조금만 두면 의식이 돌아올 테니 간호사한테만 말하고 커피 한 잔만 사 올까요?”
“너무 좋죠.”
찰리와 칼리아의 몫까지 커피 4잔을 캐리어에 담아 치료 센터에 들어오니 칼리아가 고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 싫다고. 내가 왜 검사를 해야 하는데.”
“닥쳐. 내가 하라면 넌 해야지. 약쟁이 새끼가 구해줬으면 고맙다고 못 할망정 어디서 반항이야.”
하도 크게 소리를 질러서 바로 옆에서 말하는 것 같았다.
“칼리아도 검사를 해야하나 보죠?”
수겸이 빵을 들고 있던 데이비드에게 물었다.
“예. 직감적으로 치료가 한 번에 됐다는 걸 알지만 이게 검사 결과 유무가 크긴 하니까요. 칼리아가 우리를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분류상 칼리아나 테인이나 같습니다.”
“그건 맞죠. 중독자 카테고리에서 빠져나온 건 아닐테니까요.”
“일단 가보죠. 제가 설명을 다시 해야겠군요.”
데이비드는 칼리아와 찰리 사이를 가로 질러 들어갔다.
“찰리는 저랑 커피나 한잔해요.”
타이밍 좋게 수겸이 찰리를 불러내어 데이비드가 칼리아와 단 둘이 대화를 할 수 있게 됐다.
“우리로서는 구호 활동을 했기 때문에 결과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찰리 본인에게도 검사를 하는 편이 더 좋아요. 혹시 마약 성분이 남았다면 그걸 치료하면 되니까요. 지금이 아니면 다시 또 중독 증상이 올라올 수 있어요.”
“그래도… 검사 결과를 나온 뒤에 나한테 약 성분이 있다면 바로 체포할 수도 있는 것 아냐?”
“지금은 아니에요. 우리 목적은 치료에만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 걱정 마시고 협조 부탁해요. 딱 한 번이면 됩니다.”
본의 아니게 착한 사람 역할이 되었기에 데이비드는 한층 더 친절한 목소리와 말투로 찰리를 설득했다.
“알겠어. 대신 이번이 마지막이야. 안 그래도 너희들이 내게 말도 하지 않고 아까 그 집을 습격하는 바람에 난 이제 밀고자 신세가 됐다고.”
칼리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점은 미안합니다. 불안하다면 계속 우리랑 다녀도 좋아요. 이번 작전이 끝나고 나면 보호 절차에 들어갈 수 있게 해줄게요.”
데이비드의 진짜 속마음은 칼리아의 안전보다는 실태를 아는 조력자를 구하는 것이었지만.
“좋아. 알겠어. 나도 함께 움직이는 조건으로 협조할게.”
어린아이 달래듯 데이비드가 칼리아를 다루는 동안 수겸은 찰리와 치료 센터 밖을 걷고 있었다.
“찰리. 왜 이렇게 날카로워요. 한국에서는 안 그랬잖아요?”
“…….”
찰리는 바닥을 보며 묵묵히 걷기만 했다.
수겸은 커피를 홀짝이며 찰리에게 시간을 주었다.
“수겸. 불편하게 해서 미안하다.”
“아니에요. 저는 불편하지 않아요.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해도 돼요. 우리가 하는 일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테니까요.”
찰리는 말을 하려다 말길 반복하다가 커피만 조금씩 마셨다.
“내 누나. 죽었다.”
“그게 무슨?”
“누나 남편이 죽였어. 그 사람 마약 중독이었다. 중독 치료를 3번이나 한.”
“…….”
수겸은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생각했지만 답을 찾을 수 없었다.
“마약 때문에 돈 빌렸다. 돈을 못 갚으니까 갱이 집으로 왔다. 돈 되는 걸 전부 뺏으러. 그리고 그날 누나 죽었다.”
“누나 남편은요?”
“지금도 어디선가 약을 하고 있겠지. 어쩌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찰리에겐 전혀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칼리아나 다른 중독자를 보면 누나 일이 떠올라서 화가 난 거예요?”
“맞다. 그러면 안 되지만 어쩔 수 없다.”
누군가 찰리의 일을 들으면 프로가 아니라고 욕을 할 수 있지만, 기관에서 일을 하는 찰리나 데이비드 같은 사람들 역시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겠어. 사람 마음을.’
“생각을 바꿔서 저 사람들을 돕기 위해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근데 막상 눈으로 보면 그게 안 돼.”
“나도 함께 도울게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요.”
“수겸이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잘되면. 성공한다. 마약 중독자 없애는 것.”
“그건 맞네요. 아예 박멸을 해버리죠.”
찰리는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풀린 듯 표정이 한결 좋아졌다.
다시 센터 안으로 들어가니 칼리아는 얌전히 침대에 누워서 피를 뽑고 있었다.
“칼리아. 잘했어요. 그러면 잠깐 쉬고 있어요. 우리는 테인쪽에 다녀 올게요.”
그새 정신을 차린 테인은 침대에 기대어 창밖을 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지? 왜 날 여기에 데리고 왔어.”
“우리는 정부에서 나왔고 너를 치료하려고 데리고 왔지. 의식은 완전히 돌아왔나?”
데이비드가 앞에 나서서 테인에게 답을 했다.
“시발. 누가 도와달랬어? 그냥 내버려 두라고. 어차피 헛수고야. 이렇게 풀어줘도 난 또 마약을 하러 가겠지. 아니지, 이제 못가려나? 다리 병신이 되어서. 하하하.”
테인의 눈빛엔 광기가 맴돌고 있었다.
“차라리 그냥 뒀으면 거기서 죽을 때까지 약에 취할 수 있었을 텐데. 어때? 헛수고 하지 말고 얌전히 날 그곳으로 데려다주는 게.”
“우리가 부작용도 없애고 완전히 약 기운을 없애준다면 어떨 것 같아?”
“다리 병신이 됐는데 그걸 치료할 수 있다고? 할 수 있다면 해봐.”
어떠한 기대감도 없는 말투였다.
오히려 말과는 다르게 모든 걸 포기한 사람이었다.
“새 인생을 잘살아보라고.”
데이비드가 수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합성 시약을 건내달라는 뜻이었다.
진하디 진한 붉은 색의 시약을 보자 테인이 피식 웃었다.
“흡혈귀라도 되라는 거야?”
“그만 떠들고 마시기나 해. 흡혈귀가 되는지 새로운 사람이 되는지 바로 알 테니까.”
데이비드에겐 일말의 의심이 없었다.
수겸이 준 시약은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
“제발. 효과가 있길.”
지금 약의 목적은 중독 증상을 전부 없애고 손상된 하반신 신경까지 회복해 다리를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것.
수겸은 눈에 힘을 주어 테인에게 집중했다.
테인의 확장되었던 눈동자가 줄어드는 것이 보이고, 시커멓던 혈색도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러면 다리는?’
발을 쳐다봤다.
꼼지락.
발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됐다!”
“수겸!”
침대 끝에 서 있던 찰리가 수겸을 부르며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올렸다.
“당신들 무슨 짓을 한거야?”
테인의 탁한 목소리마저 부작용이었던 것 같았다.
“무슨 짓을 하다니. 네가 새 인생을 준 거지. 이번엔 기회를 버리지 말라고.”
* * *
“이제 남은 건 잔뜩 만들어내는 일뿐이네요.”
치료 센터를 나와 모처에 마련된 사무실에 들어와 수겸과 일행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칼리아는 며칠 동안은 센터에 있기로 한 상태이기 때문에 일행이라 해봐야 수겸, 찰리, 데이비드 셋이었다.
“여기는 다른 요원분이 계시네요?”
수겸의 말대로 이번에 이동한 곳에는 몇몇 요원이 바쁘게 전화 통화를 하고 있거나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맞아요. 근데 저 사람들은 우리랑 같은 소속은 아니에요.”
“CIA가 아니면 어디에요?”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건 엄밀히 따지면 CIA와 DEA의 합동 작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앞에서 행동하는 건 우리 CIA고 백업은 DEA에서 하고 있어요. 저 사람들은 거기 소속이에요.”
“아아. 전에 한 번 이야기 해준 적 있는 것 같은데 잊었나 봐요.”
“그럴 수 있죠. 아무래도 생소한 기관들이니까요.”
“그러게요. 하여튼 오늘 치료로 확실하게 됐으니 정리해서 말씀드릴게요.”
수겸은 설명을 시작했다.
“원래라면 뫼비우스 중독자 한 사람을 치료하기 위해서 힐링 포션 1병, 디톡시 1병이 필요했어요. 근데 제가 새로 만든 시약은 그 둘을 사용해서 총 2.5병의 양이 나와요.”
“오늘 사용한 건 새로운 시약 1병입니까?”
“아니에요. 저도 나름 실험을 해보느라 더 적게 사용했어요. 부족하면 더 쓰면 되니까. 오늘은 0.5병만큼 썼는데 효과는 아시죠?”
단순히 효과를 합친 것이 아니었다.
시약 자체가 가진 효능에도 상승 작용을 한 모양이었다.
‘이러니까 레시피는 공개를 안 하는 것이겠지. 효과가 엄청나니까.’
“그 정도면 충분하죠. 최소한 신경만 되살리면 재활은 하면 되니까요. 더 이상 해줄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데이비드 말에 동의. 딱 오늘 정도면 충분하다.”
“네, 그러면 1명을 치료할 양이 5명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재료가 너무 부족해요. 미국에 치료가 필요한 중독자가 한 100명 정도만 있으면 문제가 없을 텐데 그건 아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