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verpowered Sword RAW novel - chapter 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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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의 균열〉에서 뿜어져나온 빛 이 레온을 튕겨냈다.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힘.
엘시드의 간섭이 분명했다.
“야! 엘시드 이 개같은 놈아!”
그곳에서 수십 미터 가까이 튕겨나 가고도 즉시 일어선 그가 제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때는,
이미.
“……엘시드.”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면서,
레온은 그저 침묵했다.
돌아오지 않는 그를 쫓아서 사람들 이 올 때까지,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그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타이탄 산맥에서 시작된 마왕토벌 은, 그렇게 끝이 났다.
사악룡 브리트라의 토벌.
그 역사적인 사건으로부터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결과적으로 전 대륙의 힘을 집결시 켰던 연합군은 승리했다. 구심점을 잃어버린 사악교단과 마물들은 곧바 로 전의를 잃어, 언제부터 서로 한편 이었냐는 듯한 태도로 좌충우돌하다
가 온 사방으로 흩어져버렸다.
유리하기는커녕 몇 수 불리했던 전 황을 역전시켜, 대대적인 승리를 거 둔 것은 틀림없이 기적이라고 할 만 한 결과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피해는 어마 어마했다.
제 국경을 수비하는데 급급했던 주 변국들과 달리 국가적인 역량을 총 동원했던 왕국, 유겐트는 근위병단의 8할과 비공선 대부분을 한 번의 전 투로 상실했다.
길드 측에서 파견했던 모험가들과
용병들 또한 명을 달리한 자가 많았 고, 살아남았어도 큰 부상으로 은퇴 하거나 장기간을 요양해야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누구보다도 치열한 기세로 참 전했던 신성교단이었다.
“…빈자리가 많아졌군요.”
이렉사나가 무겁게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모여있었던 때와 다르게 빈자리는 한둘이 아니었다. 수석추기경 라르크의 허허로운 미소
가 사라졌으며, 아직 침상에서 일어 나지 못한 도미닉은 올 수 없었다.
전사로서 용맹하면서도, 휴일에는 꽃을 돌보는 걸 좋아했던 크론도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었다.
방패와 함께 너덜너덜해진 베리드 의 시신은 유족에게 보일 만한 것이 아니라, 화장하고 남은 유해만을 가 지고 장례식을 진행해야했다.
“윌리엄, 그 귀쟁이놈은?”
두 눈을 잠시 감았던 아델라가 퉁 명스럽게 질문했다.
“엘프들의 숲에 가셨습니다.”
“뭐야, 탈주했어? 이래서 귀쟁이들 은…”
“설마요. 이번 기회에 타 종족과 담을 쌓고 살았던 엘프의 폐쇄정책 을 완화하고 싶으신 것 같습니다.”
“쯧, 그래도 한참 걸리겠네.”
장생종(長生種)의 시간관념은 인간 과 큰 차이가 있다.
인간에게 10년은 앞을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긴 시간이나, 엘프나 노 움 같은 종족으로서는 짧으면 짧았 지 길다고는 말할 수 없는 시간이었 다.
회의 한 번 진행하는데 반 년이 소 요되는 일도 흔하니, 그 성과를 도출 하려면 최소 10년이 걸릴 터.
제2추기경, 윌리엄은 당분간 공석 이나 마찬가지였다.
“뭐, 괜찮지 않을까요?”
안나 추기경이 희미한 미소를 띤 채로 반문했다.
“윌리엄 추기경께서도 잘 알고 계 셨을 거예요. 전투가 아닌 부분에서 는 스스로가 할 일이 많지 않다고.”
“그래서 엘프들을 설득하기로 한 거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아델라도 그 말을 들어보니 틀린 것 같지도 않아, 삐딱하게 기울어졌 던 고개를 세우면서 긴 한숨을 내쉬 었다.
“후, 이겼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 는 것은 아니라지만 일이 너무 많아 졌어. 성철쇄도 인원보충이 절실하 고.”
최종결전에서 성철쇄기사단은 문자 그대로 임전무퇴, 제 몸 하나를 불살 라서 열 마리 백 마리의 마물들을 때려 부쉈다.
안 그래도 한 명 한 명이 달인급인 데다, 신앙과 사명감으로 무장하고 나니 육체와 정신 모두가 강철과도 같았다.
백 명 남짓한 인원으로 연합군의 전선 하나를 담당한 것은, 브리트라 에게 이지를 빼앗긴 마물들조차 두 려움을 느낄 만큼 그들이 무시무시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대가로 절반 이상이 전장 에서 치료받을 틈도 없이 순교하고, 나머지도 중상을 입고 말았다지만.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이라면, 사악 교단의 피해가 회복할 수 없는 수준
이라는 것 정도군요.”
“그놈들이야 대주교만 없으면 결국 다 빈껍데기니까.”
이렉사나의 말에, 아델라가 간단히 수긍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해서 꽁무니를 뺀〈구마주교〉는 고작 둘, 그중에서 도 무리를 이끌기는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기가 힘든 놈들밖에 없어.”
“엘렉트라가 살아남았다면 조금 더 귀찮았겠지요.”
“그래서 내가 그년부터 때려잡았잖 아! 내 덕분이지!”
앳된 외모로 으스대는 모습과 달리 아델라는 거기까지 보고 엘렉트라를 토벌한 게 아니었으나, 그걸 잘 아는 추기경들도 암묵적인 합의로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서 그녀의 콤플렉스를 쿡 찔러봤자, 아델라가 왜〈맹진〉이라고 불리는지 알게 될 뿐이었으니.
이렉사나가 능숙하게 말을 돌렸다.
“그러한 이유로, 향후 5년간을 예 정해서 인원보충 및 교단 지부의 확장을 건의하겠습니다.”
“동의합니다.”
“나도 동의.”
“저 역시 동의합니다. 5년으로 부 족하다면, 10년이라도.”
추기경들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만장일치 했다.
이번 전쟁에서 신성교단의 피해는 실로 막대했으나, 그들의 주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악교단은 괴멸했다.
주교급이 두 명 살아남았어도 그 종적이 밝혀지면 곧 죽게 될 것이다. 사악교단은 대주교 한 명에 의존해 서 자라난 악의 세력이라, 브리트라 가 토벌된 시점부터 그들의 미래는
끝장난 거나 다름없었다.
“클라이드 제국의 황제로부터 전달 받은 사항이 있습니다.”
“ 뭔데?”
“여태까지 교단 지부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제국령에 진입을 허가하고, 백작령 이상의 영지에는 반드시 한 곳 이상의 교단 지부를 설립하겠답 니다. 건축에 들어가는 비용과 인적 자원도, 모두 클라이드에서 부담한다 고.”
하, 하고 실소한 아델라가 툴툴거 렸다.
“우리들을 방패로 쓸 생각이구만? 내가 듣기로 클라이드는 아직 주변 국들과의 협상이 원만하게 진행되지 않았다던데.”
“수백 년이나 된 원한이 몇 년만에 사라질 리가 없지요.”
“괘씸하다고 해서 이 기회를 놓칠 순 없습니다. 추가적으로 발발할지 모르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교 단은 클라이드와 협력해야합니다.”
“개만도 못한 새끼들! 그렇게 뻘짓 거리를 할 힘이 있었으면 연합군에 라도 가세할 것이지.”
클라이드 제국이 아니라 평화와 대 의를 위해서, 신성교단은 제국 내부 에서의 대대적인 확장에 동의했다.
국력이 많이 쇠했더라도 황제가 직 접 후원한다면 그 속도는 상당하리 라. 추기경급은 몰라도, 성철쇄기사 단의 결원은 10년 내로 보충할 수 있겠지.
이내 연례회의가 막바지에 이르렀 을 때, 아델라가 말했다.
“그러고보니 용사님은 뭐하고 있 어? 요즘 안 보이던데.”
“타이탄 산맥 인근에서 머무르신다
고 들었습니다.”
“엉? 거기서 뭐하는데? 이제 마경 도 없잖아.”
이렉사나가 옅은 미소와 함께 대답 했다.
“누군가를 기다리시고 있는 것 같 더군요.”
* * *
타이탄 산맥.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타이탄족과
재해급 마물들이 서식하고 있었던, 대륙 최악의 마경이라고 할 수 있었 던 땅은 고요하고 평화롭게 변해있 었다.
브리트라의 드래곤 피어에 조종당 한 마물들이 대부분 죽고. 살아남은 놈들도〈차원의 균열〉이 사라지면서 타이탄 산맥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 기 때문이었다.
타이탄족 또한 마경이 소실되면서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이 땅에 묶여 있어야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렇게 무주공산이 된 땅에. 레온 은 서있었다.
〈차원의 균열〉이 열려있었던 곳은 평범하기까지 한 분지로 변한 지 오 래였다. 엘시드가 그 안으로 사라지 고서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머릿 속에서 떠들어대던 목소리가 사라지 니 그 공백이 제법 사무친다.
레온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무 언가를 쓰다듬었다.
“…하카펠님.”
이곳에서 그나마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 구조물은 한복판에 세워진 비
석뿐이었다.
초대 수왕, 하카펠.
수명의 한계마저 뛰어넘어서 300 년을 더 살아온, 전설적인 영웅은 결 국 레온의 눈앞에서 숨을 거두었다. 단신으로 거인 흐림투르스를 쓰러트 리고, 폭주하는 브리트라의 손아귀로 부터 그를 구해준 남자의 마지막은,
—그런가. 릭 형님께선 먼저 가셨 나보군.
냉담하게 느껴질 정도로 무덤덤하 면서도, 그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옅 은 미소를 띤 얼굴이었다.
언제나 누구보다 몇 걸음 앞서 나 아갔다고.
이번에도 그와 나란히 설 수 없었 다고.
깊이 아쉬워하면서도 납득하고 있 는, 300년 전의 미련을 다 털어낸 얼굴이었다.
—나도 슬슬, 가봐야겠군. 여신님의 부름을, 너무…오랫동안, 외면하고… 있었…으니까
마지막으로 숨을 한 번 길게 내뱉 고, 그는 숙면에 빠지듯이 두 눈을 천천히 내리감았다.
그리고는 두 번 다시 뜨지 않았다.
하티는 그저 하카펠의 오른손을 제 손바닥으로 감싸쥔 채, 스스로의 최 후를 영광으로 장식한 증조부를 떠 나보냈다. 그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 었는지, 놀라지도 슬퍼하지도 않았 다.
“레온, 또 여기에 있었구나.”
때마침 그의 생각에 이끌리듯이 하 티가 다가왔다.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그 위로 솟아있는 귀가 호감을 표현 하듯이 쫑긋쫑긋 움직였다.
“하티.”
“ 응?”
레온은 저도 모르게 속마음을 털어 놓았다.
“너는 하카펠님이 돌아가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어?”
“증조부님?”
하티는 잠시 고민하듯이 제 고개를 기울였다가, 이윽고 씩 웃으면서 자 기 허리를 양손으로 짚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다행?”
“응. 증조부님은 수백 년 전부터 품고 계셨던 미련 때문에, 죽음마저 계속 거부하고 있었던 거잖아? 한 명의 전사로서도, 일족의 어르신으로 서도 추한 모습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고, 하고 운을 뗀 하티가 두 어깨를 으쓱거렸다.
“간신히 그 오랜 기다림을 보답받 으신 거니까. 여러모로 참 다행이라 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레온은 과연, 하고 고개를 끄덕거 렸다.
엘시드와는 좀 다른 경우였지만,
공통점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 었다. 어느 쪽이든지 스스로가 원한, 만족스럽게 자기 발로 걸어들어간 종착지였으니.
그럼에도 그가 이 공터를 떠나지 못한 것은, 엘시드가 당장 돌아오기 라도 할 것 같은 미련 때문이었으리 라.
“조금 더 서있다가 돌아와. 엘라가 밥 차린다더라.”
“응, 고마워.”
타이탄 산맥에서의 결전이 끝난 후, 하티는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레온 일행에 합류했다.
어째서인지 엘라한과 카렌은 제법 긍정적이었다.
두 사람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막 둥이처럼 그녀를 동생으로 귀여워했 고, 그에 반발한 하티가 서열정리를 시도했다가 금방 박살나면서 막내로 결정되고 말았다.
하티의 존재감이 빠른 속도로 멀어 지자, 레온은 늑골 안에 진득하게 고 여있었던 한숨을 토해냈다.
“ 히-아아아아-”
그때 였다.
“땅이라도 꺼트릴 생각이던가. 사 제?”
레온의 초감각조차 관통해서 등 뒤 에 나타난 기척, 카심이 크고 긴 그 림자를 늘어트리면서 말했다.
쓴웃음과 함께 뒤를 돌아본 레온이 대답했다.
“사형이야말로 제 간을 떨어트리고 싶습니까? 저도 모르게 검을 휘두를 뻔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말대로였다.
레온의 손아귀에서 뭉쳐졌던 별빛 이 다시 흩어져, 여름밤의 반딧불처
럼 잘게 사그라졌다.
그 모습을 본 카심이 흐뭇하게 미 소지었다.
“이 세상에 나를 위협할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사제분이네. 마음이 정 리되면 대련이라도 한 판 해보세.”
“그러지요.”
“아직도 마음정리가 안 되었는가?”
카심은 대륙공용어로 ‘하카펠’이 적 힌 비석을 바라보았다.
“망할 놈, 나보다 먼저 로드릭을 쫓아가버리다니.”
“로드릭을…?”
“여신님이라면 분명히 하카펠의 혼 을 거두셨을테니, 언젠가 놈이 돌아 온다면 천상에서 만날 수 있겠지. 그 분의 고명하신 성품이라면 틀림없이 은혜를 베푸셨을 거다.”
어떻게 보면 레온보다 더 로드릭을 신뢰하는 발언이었다.
‘유명곡’의 건너편에 있었던〈타르 타로스〉이상으로 위험한 곳이 차원 의 바깥일진대, 카심은 한 치의 의심 도 없이 귀환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레온은 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꼈다.
“•••그렇군요. 언젠가 돌아오겠지요, 그 망할 놈은.”
“물론. 뻔뻔스러운 낯짝으로 제 자 랑을 늘어놓으면서, 실실 웃는 얼굴 로 우리들을 조롱하겠지.”
“음, 생각만 했는데도 열받는데요?”
“그러니까 그날이 올 때까지 힘을 쌓아야겠지. 그 재수없는 상판에 한 방 먹여주려면.”
어느샌가 두 사람은 일치단결해서 이를 갈아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농땡이를 칠 시간이 없습니다, 사형. 한 판 붙어 봅시다.”
“저쪽으로 30킬로미터쯤 가면 황 무지가 있더군.”
“좋습니다.”
두 사람은 그대로 땅을 박차면서 도약해, 음속의 벽을 즉시 쳐부수면 서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그들의 떠나버린 빈자리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아니, 남아있었다.
〈차원의 균열〉때문인지 잡초 한
포기도 자라날 수 없었던 땅에, 이름 모를 들풀의 싹이 올라왔다. 개미 한 마리도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 겠지만, 명확한 생명력의 태동.
몇 년이 걸릴지, 몇십 년이 걸릴지 는 모른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 분지에, 비석을 둘러 싸듯이 들꽃이 필 것이다.
검빨로 레벨입 (302)
마경 (魔境).
사전적인 의미로 해석하자면 •악마 가 있는 곳’, 세간에 흔히 통용되는 의미로 해석하자면 ‘접근해선 안 되 는 곳’이라 말할 수 있는 위험지역의 명칭이었다.
이름이 안 붙을 정도로 수준 낮은 마경조차도 베테랑 용병, 모험가를
집어삼킬 수 있다.
오죽했으면 A랭크 미만의 길드원 은 마경탐사에 반드시 팀을 구성하 고, A랭크급을 따로 고용해서라도 팀장으로 삼아야한단 규칙이 생겨났 겠는가.
한 지역에서 나름대로 이름을 떨 친, B랭크급이 진입자격도 될 수 없 는 구역이 바로 마경이었다.
단순히 위험도가 좀 높다고 마경으 로 불리는 것도 아니다.
차원경계가 타 공간보다 허술하여, 이계의 힘이나 괴물들이 흘러들어오
는 땅. 그로 인해서 생태계가 오염되 거나 변질되어, 기존의 상식이 전혀 통용되지 않을 수 있는 곳.
그중에서도 국가 단위의 봉쇄선이 필수적이면서, 공략조차 불가능한 마 경 네 곳을 ‘4대 마경’이라고 통칭한 다.
마경,〈울부짖는 솥〉도 그 안에 속 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