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집에서 두문불출한 지도 벌써 일주일이었다.
민환이 수시로 전화해 밖으로 불러내더라도, 조태규가 함께 결정할 것이 있다고 해도 수겸은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다.
“집이 최고인 걸 어떻게 해.”
거실에 누워 뒹굴거리던 수겸이 문득 창밖을 바라봤다.
“벌써 가을이 됐네.”
언제까지나 새파랄 것 같았던 푸른 나뭇잎이 알록달록 물들기 시작했다.
“이제 다시 움직여 볼까.”
수겸이 챙길 문제가 산재해 있었지만, 워낙 큰일을 겪고 돌아온 터라 애써 무시하고 있었다.
수겸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 * *
민환이 자동차 시동을 끄고 운전석 문을 열었다.
“고생했다. 고마워.”
그에 수겸도 마찬가지로 조수석 쪽 문을 열며 민환에게 말했다.
“뭘, 됐어. 내 일인데. 근데 여긴 왜? 잘 작동되어서 치료 시작했다는 기사는 나오던데.”
“이게 제일 궁금하더라고.”
수겸이 민환을 데리고 찾은 곳은 한국대학교 병원이었다.
미리 약속을 잡은 덕분에 병원장실로 바로 찾아가면 되는 터였다.
“하긴, 그럴 수 있겠네. 나도 너 출국하고 철수 씨 얼굴을 딱 한 번 봤어.”
민환이 방향을 잡아서 걸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아 그래?”
“어. 근데 많이 피곤하신지 얼굴색이 거무죽죽해서 말씀을 드렸지.”
“뭘?”
“지금 만지고 계신 마나 스트림에 들어가서 한숨 주무시라고.”
“크크. 잘했네. 전에 너도 해봤던가? 내가 처음에 시운전했을 때 그냥 누워 있기만 했는데 좋더라. 피로가 싹 풀리고 있다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져.”
“아 그래? 나중에 우리가 쓸 것도 하나 만들면 안 되냐?”
“나중에. 다른 건 사실 쭉쭉 만들어내면 그만인데 마나 흡입체가 문제라서 그래. 좀 여유가 생기면 우리 전용으로 쓸 것도 하나 만들긴 하자.”
“좋아. 느낌은 안마의자 업그레이드 버전 같다. 개인용으로 사용하는 치료, 휴식 시설 느낌이랄까.”
“야, 민환아. 그거 좀 고급져 보인다? 나중에 좀 고급지게 만들어서 팔아도 팔릴 것 같은데?”
“그러게. 그럴만한 여유가 있다면 말이지.”
“안 그래도 여기 한 번 둘러본 뒤에는 동현이 형한테도 가야 해.”
수겸이 은근슬쩍 다음 계획을 흘렸다.
“아아. 나 오늘 바쁘구나?”
“어, 너 오늘 바빠. 그래도 한 달 꿀 빨았으면 이제 일 해야지.”
“그럼. 해야지, 일.”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병원장실이 코 앞이었다.
똑똑―
수겸이 문을 공손히 두드렸다.
철컥―
그러자 병원장실 안쪽으로 문이 열리며 병원장이 수겸을 맞이한다.
“아이고. 오랜만에 뵙네요.”
“병원장님도 잘 지내셨죠?”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이리로 앉으시죠.”
그 사이 한국대병원 병원장은 귀빈 모시듯 인사를 하고서는 부리나케 달려가 수겸에게 자리를 권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죠. 설비 챙기랴, 매스컴 챙기랴. 처음으로 치료받을 환자 선정하랴.”
“아, 그래서 살이 좀 빠지신 건가요? 전에 뵀을 때보다 볼살이 좀 빠지신 것 같아요.”
“그런가요? 하긴 요새 밥도 잘 못 먹고 일하긴 했네요.”
“병원장님이나 되시는 분이 끼니도 못 챙겨 드시면 어떡합니까?”
“그만큼 중요한 일이니까요. 직접 다 챙기고 싶은 욕심이 생기네요. 아, 오늘 온다고 하신 이유는 마나 스트림을 보려고 오신 거죠?”
“맞아요. 너무 궁금하긴 한데 혼자 찾아와서 보자니 그건 또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러시면 이럴 게 아니고 바로 일어나시죠. 가만 보자… 지금 시간이.”
“11시 20분입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민환이 재빨리 휴대폰 화면을 보고는 말했다.
“그러면 아마 치료가 시작됐을 겁니다. 나머지 이야기는 가시면서 나누시죠.”
병원장은 빠른 걸음으로 이동해 먼저 문을 열고 수겸을 안내했다.
“사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안 그래도 부족한 병원 공간을 쥐어짜서 한 달 만에 새로운 공간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게요. 갑자기 건물을 증축할 수도 없으니까 그렇겠네요.”
수겸은 맞장구를 쳐주었다.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만들었습니다. 다행히 수겸 씨가 만드신 마나 스트림이 수술실이나 MRI 촬영실처럼 특별한 시설이 필요한 게 아니라 가능했습니다.”
“그렇죠. 마나 스트림은 면적만 충분하고 전기만 있으면 되니까요.”
그렇게 도착한 마나 스트림 치료실 앞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와. 사람 진짜 많네요.”
“아무래도 그렇지요. 모르긴 몰라도 저 안에 기자들도 꽤 많이 있을 겁니다. 치료를 마치고 나온 환자들 대상으로 인터뷰를 하려고 대기 중인 기자들이요.”
“오늘이 첫날도 아닌데 그렇습니까?”
고개를 좌우로 연신 돌리던 민환이 물었다.
“당연하지요. 인간이 정복하지 못한 부분을 단번에 정복했으니까요. 저조차도 한 번에 믿기가 힘들 정도였지요. 심지어 다른 나라에서는 아직 연금술이라는 학문이라는 걸 받아들이지 못한 곳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아직도 그런가요? 최근에는 뉴스 챙겨볼 시간이 없어서 잘 몰랐네요.”
수겸이 머리를 긁적였다.
“이제 미국에서는 정식 법안으로 채택되었고, 호주와 영국에서도 법안 채택이 코앞이라고 들었는데 맞지요?”
수겸을 대신해서 민환이 나서서 대답했다.
“맞습니다. 소위 선진국들이 인정하고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니 곧 그 외에 나라에서도 수겸 씨의 연금술에 대해서 고민할 겁니다.”
“제가 처음 공식 석상에 나갔을 때는 이렇게 느리게 진행될 거라곤 생각 못했습니다. 아! 물론 우리나라만큼은 급속도로 퍼졌지만 말이에요.”
“자기네들은 가질 수 없는 기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솔직히 상상만 하던 일이라 눈앞에서 봐도 믿을까 말까인데 뉴스나 동영상만으로는 한계가 있죠. 그렇다고 수겸 씨한테 오라 가라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병원장은 은은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 방금 살짝 소름 돋았어요. 괜히 쾌감까지 느껴지는데요?”
민환 역시 씩 웃으면서 병원장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예전에는 올림픽에 나가서 금메달을 따오면 거기에서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느꼈는데 요새는 연금술이라는 학문 하나로 그걸 느낀다니까요, 글쎄. 하하. 나라에서는 인정도 하지 않은 일인데 벌써 해외 최정상급 병원에서 연락이 얼마나 오는지.”
신이 나서 점점 더 말이 많아지는 병원장이었지만 수겸은 그의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학문이라… 이걸 학문이라 부를 수 있을까요?”
수겸이 진지해진 표정으로 병원장을 쳐다봤다.
“당연하지요. 연금술이 학문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음…….”
“저는 학문이라는 건 배우고 익힐만한 지식이라 생각합니다. 널리 퍼뜨리고 후대에 전할만한 가치가 있는지 이런 측면 말이에요.”
“제가 고민한 이유도 같은 부분입니다.”
수겸은 다시 고개를 돌려 유리창 너머로 마나 스트림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길게 이야기하기도 어렵고 할 것도 없지만 저도 우연한 계기고 깨달은 것이 연금술입니다. 이걸 누군가에게 가르칠 수 있겠냐고 물으신다면 글쎄요.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불가능이에요.”
수겸은 말을 하면서도 생각했다.
‘마나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고, 마법진은 뭐라고 말하겠어. 이 세상에 없는 개념뿐인데 이걸 가르칠 수 있을까?’
수겸은 회의적이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수겸 씨가 보여준 연금술이라는 것이 저를 비롯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아예 불가능한 일이었죠. 그런데 그게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거짓이었습니까?”
병원장은 단 한 번 마나 스트림 설치에 관해 협의할 때 만난 것이 전부인 수겸을 진심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와 우리 병원이 이렇게 인정받은 적이 없었어. 그리고 연금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두 번 다시는 지금의 위상을 가질 수는 없을 테니.’
병원장은 대뜸 수겸의 손을 양손으로 꼭 붙잡았다.
“그러니 수겸 씨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말아 주세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가능하게 되는 것, 눈앞에 마나 스트림을 보세요. 우리는 이미 그러한 일을 겪었습니다. 그러니까 수겸 씨도 안된다고만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경험을 이미 했을지도 모릅니다.”
병원장의 말에 수겸의 눈이 점점 더 깊어졌다.
‘그럴 리가… 잠깐, 있다! 그것도 최근에.’
그 순간 수겸의 뇌리를 스쳐 지나간 것은 잭의 얼굴, 그리고 바다였다.
‘처음 바다에 빠지게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이제 죽었구나 싶었는데 결국 살아남았지. 그것도 생각지도 못한 깨달음을 얻어서 말이야.’
수겸의 표정이 조금씩 밝아졌다.
“뭔가 생각이 나신 것 같군요.”
병원장은 뒷짐을 진 자세로 수겸을 보고 있었다.
“예. 덕분에 크게 배웠습니다. 저도 또다시 도전을 해봐야겠습니다. 제가 아는 것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가 고민되긴 하지만요. 하하.”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말씀을 드려도 될까요? 이건 제가 잘났다기보다는 인생의 선배로서 말해주고 싶네요.”
“예. 부탁드립니다.”
수겸이 병원장을 쳐다보고 옆에 있던 민환 역시 진중한 자세로 경청했다.
“연금술이라는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는 수겸 씨입니다. 누가 뭐래도 이건 맞지요. 그러니 누가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하게 생각하면 어쩌지? 이런 생각은 집어치우고 수겸 씨만의 생각으로 스스로 정의를 내리세요. 그게 맞습니다.”
수겸은 순간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마나는 그냥 마나라고 하면 되지. 그걸 뭐라고 하겠어. 있는 그대로 이야기하면 되는 거지. 마법진도 내가 아는 대로 이야기할 뿐, 처음 들어서 생소하다는 둥 현실적인 표현이 아니라고 할까 봐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리고 나라고 원래 알았던가?’
리카르도가 처음 연금술에 대해 가르쳐 주던 때가 떠올랐다.
‘마나가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인간이 숨을 쉴 때 공기가 필요한 것처럼, 물고기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깨끗한 물이 필요한 것처럼 마나는 온 세상 모든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라네.’
‘어디에나 있는 건가요? 공기는 항상 우리 주변에 있는 것처럼요?’
‘그렇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이 아주 고맙게도 내뿜어 주는 것이라네.’
‘우리가 숨 쉴 때 공기를 이용하는 것처럼 연금술을 할 때는 마나를 이용하는 것뿐이겠네요.’
‘나도 그저 있는 그대로 가르쳐 주자. 마나를 느끼고 깨닫게 하는 것? 그냥 해보는 거야. 누군가는 거기서 깨달음을 얻고 배울 수 있지 않을까?’
수겸은 소극적으로만 생각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생각의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눈빛을 보니 마음을 바꿔 먹은 것 같군요.”
“맞습니다. 덕분에 제가 할 일을 명확하게 깨달았어요.”
“덕분에 저분들과 같은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습니다.”
병원장은 마나 스트림에서 치료를 마치고 나와 가족들과 포옹을 하고 있는 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들은 하나 같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똑같았지. 할머니가 나았다는 건 눈으로만 봐도 알았으니까. 다시 희망을 찾았는데 어떻게 눈물이 나지 않겠어.’
“저도 그러면 좋겠네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연금술로 행복을 줄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