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이 타이밍에?”
수겸이 전화를 끊으며 작은 소리로 읊조렸다.
“무슨 일이야?”
박동현이 마나 스트림에서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별일은 아니고, 형 이제 외롭지는 않겠는데요?”
영문을 알 리가 없는 박동현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다시 마나 스트림에 몸을 눕혔다.
“형, 여기까지만 하고 같이 아르케 사무실로 가시죠.”
“그래? 알겠어.”
수겸이 박동현에게 손을 내밀자 박동현이 그 손을 맞잡아 다시 몸을 일으켰다.
얼마 하지도 못한 첫 번째 훈련의 끝이었다.
* * *
30여 분이 걸려 도착한 아르케 사무실에는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있었다.
“어, 오셨다.”
어색함을 못 이기고 창문에 붙어서 밖만 보던 이은호의 말에 모두의 눈동자가 문을 향했다.
“다들 모여 있었네.”
수겸이 먼저 들어오고 뒤따라 박동현이 들어왔다.
“어딨어?”
수겸은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회의실에 있어요.”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한 최영지가 수겸의 질문에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켰다.
“아, 고마워. 민환이는?”
“안에 같이요.”
“너희도 혹시 무슨 일인지 들었어?”
“네, 들었어요.”
“마침 저도 막 도착했을 때 저희를 찾아온 터라 저도 같이 봤습니다.”
최영지와 조태규였다.
조태규마저 같이 봤다면 의심의 여지가 없긴 했다.
“세무사님까지 보셨다니 그러면 진짜겠군요.”
“일단은 그렇습니다. 다만, 어두운 밤에 혼자 촬영한 거라 화질이 그닥입니다. 영상 전문가를 찾아가서 조작 여부를 확인할 수 있지만 굳이 그럴 것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요.”
어차피 영상의 주목적은 마법진을 가동시켰냐는 것이었다.
그걸 위해서 무엇보다 확실한 방법은 영상의 조작 여부를 확인할 것이 아니고 직접 시켜보면 될 일이었다.
이 사실을 찾아온 소년도 바보는 아닐 터였다.
‘거짓말이면 찾아오질 않았겠지. 관심이 목적이었다면 그대로 너튜브에 업로드하면 될 일이고.’
수겸이 진중한 눈빛으로 회의실 안에 있는 소년을 바라봤다.
앉아 있는 위치가 입구를 등을 지고 있어 얼굴이 보이진 않았지만 앉아 있는 자세만 봐서는 위축되어있는 느낌이었다.
“근데 다들 왜 이렇게 긴장해 있었어? 분위기가 이상하던데?”
“뭔가 잘하면 사장님 후계자 같은 것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괜히 불편해졌어요.”
최영지가 모두를 대표해 속마음을 이야기했다.
“그럴 것 없어. 그러니까 다들 편하게 있어. 이제 난 들어가 볼게.”
“그러면 난?”
아직 수겸은 모두에게 박동현에 관한 계획을 밝히지 않은 상태, 그것을 이제 말하겠노라고 택시를 타고 오면서 박동현에게 말해둔 참이었다.
“형 그건 조금만 있다가요. 계속 기다렸다고 하니 이야기 먼저 하고 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죄송할 건 아니고. 나도 여기서 커피 한 잔이나 하고 올게. 사무실에 온 지 진짜 오래된 것 같아.”
“그러면 제가 커피 한 잔 타오겠습니다.”
박동현의 말에 희한하게도 동철이 먼저 나섰다.
“아, 고마워요.”
박동현이 자리에 앉는 것을 보고 수겸은 회의실 문 손잡이를 잡고 1초 정도 멈췄다가 문을 열었다.
“수겸아 왔냐?”
민환이 손을 들어 수겸에게 인사했다.
민환의 말에 의자에 앉아 있던 소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소년은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수겸아. 너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를 안 한 건 아닌데 그냥 네가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난 다들 데리고 밥이라도 먹고 올 테니까 편히 이야기해.”
민환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이럴 때는 미우나 고우나 그래도 수겸의 속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친구였다.
“고맙다.”
“됐어.”
민환이 앉아 있던 자리에 수겸이 앉고 그제야 수겸은 소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인제 보니 어려도 너무 어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몇 학년이야?”
“6학년이요.”
갈라지는 목소리였다.
아마도 변성기를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어? 그런데 잠깐만.
수겸은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겸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부모님은? 혼자야?”
“네. 혼자 왔는데요.”
그러자 수겸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 하나.
‘설마 나처럼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던가. 그런 건 아니겠지?’
수겸의 눈꼬리가 쳐질랑 말랑 할 때 소년이 말했다.
“요새 누가 엄마랑 같이 다녀요. 놀림 받게.”
“아!”
‘내가 미쳤었네. 남들도 다 나같이 사연 하나는 달고 사는 줄 알지?’
수겸은 쓸데없이 생각에 몰입될 뻔한 자신을 책망했다.
부정적인 생각도 습관이었다.
“아아, 그래. 혹시 여기 온다고 말씀은 드렸니? 아니, 그 전에 너 이름은 뭐야?”
“아빠는 모르고, 엄마는 알아요. 아마도 이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죠. 그리고 제 이름은 최하늘이요.”
누가 사춘기 아니랄까 봐 몇 마디하고 나니 슬슬 퉁명스러운 말투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 아저씨가 혹시 네가 긴장했을까 봐 몇 가지 더 묻고 싶은데, 너무 궁금해서 더 이상 못 끌겠다. 일단 영상을 좀 볼까?”
“긴장 안 했어요.”
최하늘이 자기 핸드폰으로 영상을 재생했다.
영상의 거의 끝부분까지 최하늘의 얼굴은 제대로 노출되지 않았지만, 마법진은 확실하게 가동이 된 것 같았다.
‘이 영상이 가짜가 아니라면.’
그리고 마지막에 휴대폰 녹화를 끄러 다가오면서 비로소 최하늘의 얼굴이 제대로 화면에 잡혔다.
‘1차 확인은 됐고.’
수겸은 당연히 여기에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이 영상이 진짜니까 네가 찾아온 것이겠지?”
“네.”
“지금도 한 번 해볼 수 있겠니?”
“딱 한 번밖에 안 해봐서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해볼게요.”
최하늘의 눈빛엔 흔들림이 없었다.
수겸은 테이블 위에 올려진 다과와 음료를 치우고, 그 위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별다른 내용은 없고, 단순히 가동 여부만 확인할 수 있는 마법진이었다.
“우와!”
별 게 아닌 건 수겸에게만 해당이 될 뿐, 최하늘은 세상 무엇보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자, 봐. 아저씨처럼 하면 돼.”
수겸이 완성된 마법진 위에 손을 올리자 이내 황금빛으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빛의 색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딱 영상에서 보여준 정도면 돼.”
수겸은 자리를 비켜주고는 최하늘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최하늘은 수겸의 시선을 의식하며 마법진 위에 손을 올렸다.
“하아악!”
기합까지 질렀지만 마법진은 요지부동.
“왜 이러지.”
최하늘의 목소리에서 초조함이 묻어 나왔다.
“괜찮아. 시간은 얼마든지 줄 수 있어. 힘들면 쉬었다가 해도 되고, 안 되겠다 싶으면 그것도 편하게 말해.”
수겸은 여러 가능성을 모두 언급하며 최대한 최하늘을 배려했다.
배려가 된지는 모르겠지만.
“휴우.”
최하늘은 수겸의 말에는 일언반구도 않고 마법진만을 응시했다.
곧바로 다시 한번 시도할 것 같았지만,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있는 것이었다.
‘이제 몰입하기 시작했다.’
옆에서만 봐도 달라진 눈빛이 느껴질 정도였다.
회의실 안은 침묵만이 흐르고, 최하늘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마법진 위의 자기 손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야아아아!”
변성기 소년만의 탁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수겸은 무언가 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나의 유동이…….’
분명 수겸이 하는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이긴 했다.
만약 지금 여기에 리카르도가 있어서 소년을 평가한다면 이럴 것이었다.
– 마나를 느끼는 것만으로도 마나의 축복을 받은 것은 분명하네만 재능이 애매해. 절대 뛰어난 편은 아니니 대성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말게나.
그렇지만 그건 리카드로가 속한 세상의 기준.
우리가, 수겸이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무려 수겸을 잇는 두 번째 마나 유저인 셈이었다.
수겸의 예상대로 마법진에서는 미약하지만 확실하게 푸른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렇지만 오래 유지하기도 힘이 든 듯 소년의 호흡이 거칠어지며 마법진의 빛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보, 보셨죠?”
최하늘은 행여나 못 봤을까 봐 곧바로 수겸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응, 봤어. 분명히.”
“그러면 저 합격인가요?”
“누가 대한민국 학생 아니랄까 봐 합격이라니. 그래, 합격이야. 근데 조건이 있어.”
“뭔데요?”
“부모님을 만나 뵈어야지. 그리고 두 분이 모두 동의하신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
“두 번째도 있어요?”
“학업도 포기하지 말 것. 난 학생의 본분을 지키는 것도 책임감이라고 생각해. 그리고 연금술을 배우려는 사람은 책임감이 높은 사람이어야만 하지.”
수겸이 단호한 말투로 말했다.
“알겠어요.”
사실 여기 올 때 이 정도도 예상을 못 했을까?
최하늘은 예상한 듯 곧바로 수긍하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바로 전화해도 되죠?”
“어, 어어. 난 집에는 가서 이야기할 줄 알았더니.”
최하늘은 쭈뼛거리던 처음 이미지와는 달리 굉장히 행동력 있는 학생이었다.
* * *
“그래서 어떻게 됐어?”
최하늘의 부모님과도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온 수겸에게 취조하듯 민환이 물었다.
“사장님 제자인 거예요?”
그 옆에서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최영지 역시 수겸에게 질문을 던졌다.
“잠깐, 잠깐만. 숨 좀 돌리자. 이것들이 진짜!”
수겸이 콩트를 하듯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입술을 질끈 깨물며 성질을 버럭 냈다.
“궁금하니까 그렇지.”
“휴우. 알겠으니까 다들 앉아 봐.”
그러자 박동현까지 포함한 아르케 전원이 둘러앉았다.
“일단 이름은 최하늘이고, 나이는 13살이야. 하늘이 부모님이랑 만나서 이야기한 건 일단 나이가 너무 어려서였어.”
“그건 그렇군요.”
“그래서 내년도 중학교 입학 후부터 나한테 연금술을 조금씩 배워보기로 했어. 물론 조건은 학교생활은 제대로 하는 거였고.”
“엄마랑 아빠는 좋아하셨겠네.”
민환이 피식 웃었다.
“응. 엄청 좋아하시더라. 아마 내게 대뜸 연금술을 배워보겠다고 공부고 뭐고 할 시간이 없을 줄 아셨나 봐. 근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사실 연금술을 배우면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요?”
최영지가 손을 들며 말했다. 나름대로 발언권을 얻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건 생각하기 나름인데, 난 기본이라 생각하거든. 내가 대학원을 가서 석사를 따오라고 하는 것도 아니잖아.”
“그건 맞지.”
“게다가 너무 어려서 연금술을 가르쳐 놓으면 무슨 짓을 할지 몰라. 그게 사실 첫 번째 이유야. 이상한 놈이면 학교에서도 분명 이상한 짓 하고 다닐 거라서 좀 걸러야지.”
“그리고 그다음은?”
민환이 물었다.
“새로운 것을 만드는 건 성인이 될 때까지는 하지 않을 생각이고, 조금씩 가르쳐 보려고. 재료를 보는 것, 가공하는 것,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것들을 생산하는 것까지.”
“꽤 오래 걸리겠다.”
“아마. 나도 삽질을 많이 했지만, 하늘이는 더 그렇지 않을까? 왜냐면 난 좋은 선생님은 아닐 거라서 말이야.”
“누군들 처음부터 좋은 선생님일까 봐.”
“그런가. 일단 한 번 해보자. 너희들도 같이 가르친다 생각하고 도와줘. 배워야 할 건 연금술뿐만 아니니까. 그래서 만들어보자. 제 2의 연금술사를.”
수겸이 그리던 미래가 조금은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