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43
143화
모두가 잠자고 있는 야심한 밤 누군가 인화초등학교 운동장에 들어섰다.
거리의 가로등의 불빛이 간신히 시야를 밝힐 정도로 어둑하건만 인영은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데 마다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오늘 처음 이곳을 방문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발걸음을 멈춘 곳은 수겸이 만들어둔 마법진 앞.
목적은 분명해 보였다.
그림자가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대고 앉아 허리를 숙였다.
마법진을 향해 쭉 내뻗은 손.
“흐읍.”
좀처럼 마음대로 되지 않는 듯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잠깐 몸을 일으키더니 다시 자리를 잡는다.
이번엔 반대쪽 손으로 도전해볼 모양이었다.
“제발.”
무심코 나온 말소리를 들어보니 어린 소년의 목소리였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원래 마음대로 되던가.
소년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마법진은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소년은 아예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두 마법진 위에 올려두었다.
변화가 시작된 건 그때였다.
조금씩 흔들리는 소년의 머리카락.
그와 함께 마법진에서 푸른빛이 나기 시작했고, 소년의 얼굴을 비추었다.
목소리처럼 앳된 소년이었다.
마법진이 가동된 건 불과 수초에 불과했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소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의 손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됐다! 역시 될 줄 알았어!”
소년은 마법진으로 시선을 잠시 돌렸다 이내 그 자리를 떠났다.
* * *
“이제 세팅 끝났습니다.”
김철수가 마나 스트림 설치를 마치며 말했다.
지금 설치한 곳은 이제는 공사가 다 끝난 종로 타워의 1층 전시관이었다.
“제가 혼자 해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하하. 부담 갖지 말고 바로 전화 주셔도 된다니까요.”
“과욕이었죠, 뭐. 설계를 전부 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마음대로 되는 것 없어서 바로 포기했습니다. 사실 혼자 해보려고 한 건 해봐야 5분 될까요? 하하.”
수겸이 너스레를 떨었다.
“저한텐 이게 돈벌이니까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그리고 전에 이야기하신 걸 들어보니까 이번 기기가 엄청 중요한 것 같던데요?”
“중요하다기보다는 아무래도 대중에 공개가 되는 거라 신경이 쓰이네요.”
“그러면 신청을 받아서 오면 무료 체험도 해보고 하는 건가요?”
“맞아요. 처음엔 그냥 하루종일 개방해두고 누구나 와서 이용할 수 있도록 할까 했는데 생각해보니 한 번에 최대 8명이니 줄을 서게 되면 끝도 없겠다 싶더라구요.”
“것도 그렇죠. 일단 처음엔 엄청 몰려들겠죠.”
그렇게 말하는 김철수의 얼굴엔 내심 자부심이 있었다.
“궁금하잖아요. 뉴스엔 나오지, 병원 쪽에 가서 해보자니 그건 진짜로 아픈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용된다고 하지. 아마 당분간은 엄청 붐빌 것 같아요.”
“그래도 이것 한 대라도 설치한 게 용하네요.”
“네. 운 좋게도 재료가 구해져서요.”
물론 수겸이 피와 땀을 흘려 미국에서 벌어온 최상급 재료들 덕분이었다.
그걸로 만든 마나 흡입체 중 하나는 인삼 재배시설에 있던 것을 대체해 설치했고 남은 하나로 지금의 마나 스트림을 만든 것이었다.
‘용량이 가득찬 마나 흡입체는 없어졌지만, 그건 그것대로 결과가 좋았으니까.’
수겸은 김철수와 대화를 하면서 호문쿨루스, 십억이를 떠올렸다.
지금쯤 지하에 있는 수겸의 작업실을 탐색하기 위해 열심히 꿀렁이고 있으리라.
‘밭에 두고 올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밭에 두고 떠날 때까지는 수겸이 명령한 대로 작물들 사이를 열심히 오갔는데 100미터쯤 멀어지니 움직임이 완전히 멈춰버렸었다.
‘와이파이 신호가 멀어져 통신이 끊긴 휴대폰과 같았달까?’
수겸과 너무 멀어지면 의지가 전해지지 않아 그대로 행동을 멈춘다는 걸 그때 알게 되었다.
‘그래도 곧 여기에도 재배 시설이 완성되니까 써먹으면 되겠지.’
다행히 층간 이동 정도로는 행동이 멈추지 않았기에 그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여기는 언제부터 정식으로 사용하시는 겁니까?”
김철수가 물었다.
“일단 제 작업실은 이제 사용하기 시작했고, 다른 층은 2주 내로? 길어도 3주 내에는 전체 사용할 것 같아요.”
“생각보다 빠르네요.”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아서요. 저야 그분들이 해주시는 대로 왔다 갔다 하는 거죠.”
“근데 듣자 하니 철수 씨도 엄청 바쁘신 것 같던데요?”
“마나 스트림 덕분이죠. 병원 쪽에서도 지속적으로 관리를 해주길 바라셔서 일주일에 서너 번씩 오가며 점검도 하고… 틈틈이 연구도 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강의도 부탁을 하시더라구요.”
“무슨 강의요?”
“아무래도 연금술의 영역과 기술이 접목된 첫 번째 케이스이다 보니 그것과 연계해서 요청이 들어옵니다.”
“와, 너무 멋져요. 개척자 느낌이 나서 멋집니다.”
“너무 띄우지 마세요. 하하. 저 뜬금없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시간 한번 내주실 수 있으세요?”
“왜요?”
“제가 몇 가지 생각한 것들이 있는데 아이디어가 어떤지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서요.”
“좋아요. 하면서 저도 필요한 것들이 있었는데 같이 말씀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혹시 오늘은 어떨까 했는데 손님이 오셨군요.”
김철수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 나왔다.
수겸이 뒤를 돌아보자 회전문을 통과하고 있는 박동현이 보였다.
“동현이 형!”
“어, 수겸아.”
박동현 역시 수겸을 보고는 손을 들어 인사하며 뛰어왔다.
“여긴 마나 스트림을 개발한 김철수 씨, 여긴 아르케 주축 멤버이시자 제가 필요로 하는 모든 약초를 관리해주시는 박동현 씨입니다.”
수겸이 가운데서 서로를 소개하자 둘은 악수를 나누며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저야말로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마나 스트림은 뉴스로도 많이 나오더라구요. 이게 그거죠?”
박동현이 바로 앞에 보이는 마나 스트림을 보며 말했다.
“네, 맞습니다.”
“형은 이제 저 기계랑 많이 친해져야 할 거예요. 여기 종로 타워에 설치된 마나 스트림의 첫 번째 사용자이자 최다 사용자가 될 예정이거든요.”
“내가?”
“네. 제가 생각한 첫 번째 방법이 마나 스트림이거든요.”
“무슨 방법이요?”
대화를 듣던 김철수가 눈썹을 위로 들썩이며 물었다.
“아! 이건 저도 말씀드리고 싶긴 한데, 이제 시도하려는 것이라… 죄송하지만 조금만 더 있다가 말씀드릴게요.”
“아, 네네. 그러면 두 분 말씀 나누시고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이코. 알겠습니다. 철수 씨 그러면 다음에 봬요.”
“철수 씨 저희 다음에 또 봐요.”
그렇게 김철수가 자리를 떠나고 종로 타워에는 수겸과 박동현 둘이 남았다.
“제 계획은 마나 스트림을 통해서 최대한 많은 양의 마나를 몸으로 느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그게 될까? 네 말대로라면 지금 마나 스트림으로 치료를 받는 분들 모두가 어쩌면 마나를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박동현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했다.
아직 본인에 대한 믿음조차 부족한 모양이었다.
“형, 생각해봐요.”
수겸이 설명을 시작했다.
“숨 쉴 때 공기를 자각하세요?”
“아니, 그렇진 않지. 의식하면서 하진 않으니까.”
“맞아요. 의식한다는 것. 형이 말한대로 대부분의 사람들 아니, 마나 스트림으로 치료를 하는 사람들은 마나를 의식하지 않아요.”
수겸이 박동현의 눈을 응시했다.
“사실 의식할 것도 없죠. 마나라는 것 자체를 모르니까. 단어로만 알지, 실체를 느껴본 적이 없기 때문에 하고 싶어도 못하죠.”
“그런데 나는 아니다?”
“네. 형은 이미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요. 두루뭉실하게 말하자면 촉 같은 거 있잖아요. 약초를 볼 때도 그냥 이게 더 좋아 보이는 것처럼 그런 느낌이에요.”
“음…….”
박동현은 여전히 자신이 없는 것 같았다.
“아마도 형은 인지를 하고 있지 않지만, 몸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면 아예 대놓고 마나가 가득 차 있는 마나 스트림 안에서는 훨씬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요?”
수겸이 마나 스트림을 손으로 탁 치며 말했다.
“약초를 고를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떠올리면서 해보죠.”
“그래, 일단 해보자. 말로만 들어서는 10년이 걸려도 감을 못 잡을 거 같아.”
“절대로 멍때리면 안 돼요. 마나 스트림 안에서는 계속 마나가 일정하게 흐를 건데 그걸 느끼려고 노력해보세요.”
수겸이 챔버 하나를 열어 박동현을 눕혔다.
“아 참. 이거요.”
수겸이 무언가를 건넸다.
“이게 뭐야?”
“어웨이큰이에요. 아마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처음엔 15분씩만 해보죠. 약효가 있는 동안만.”
수겸이 챔버를 닫고 마나 스트림을 가동시켰다.
‘될까?’
확신에 차 박동현에게 설명하는 것과는 달리 사실 수겸 역시 의구심이 들었다.
‘누군가에게 마나에 대해 가르치거나, 연금술의 원리를 가르치는 건 전혀 다른 영역이야.’
말 그대로 지식을 이식받은 수겸으로서는 누군가를 가르치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게다가 원래라면 마나의 영역은 연금술이 아닌 마법적인 부분.
애초에 수겸의 머리 속에 이에 관한 지식 자체가 없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수겸이 알지 못하는 사실은 리카르도가 있는 세상에서는 마법이나 연금술을 시작하는 기준이 마나를 느낄 수 있는지 여부였다.
애초에 이것은 재능의 영역이라 스승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마나를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스승의 가르침을 받게 되는 구조였다.
그러니 어떻게 마나를 느낄 수 있나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애초에 있지도 않았다.
우리가 누군가에 어떻게 숨을 쉬는지 배우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숨을 쉬는 건 알듯이
마법 혹은 연금술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마나를 느낄 수 있는 사람이란 뜻이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수겸은 왜 그런 지식은 없는지 아쉬워하겠지만 말이다.
15분 뒤.
수겸은 기대감에 찬 눈으로 챔버를 열었다.
“모르겠는데?”
박동현은 챔버에 누워 멀뚱멀뚱 수겸을 쳐다볼 뿐 무언가 깨달은 것 같진 않았다.
“형, 누워만 있는 거니까 더 할 수 있죠? 15분만 더 해보죠. 여기 어웨이큰이요.”
수겸은 ‘거절은 거절한다’는 식으로 박동현이 대답할 시간은 주지 않고 할 말만 냉큼 해버리고 챔버를 닫았다.
마나 스트림이 다시 재가동되고 때마침 수겸의 휴대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어, 민환아. 무슨 일이야?”
– 너 어디냐? 지금 바빠?
“나 지금 종로지. 동현이 형이랑 있는데 조금은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아. 왜?”
– 아르케 사무실에 누가 찾아와서 말인데…….
이야기를 하는 민환이 말끝을 흐렸다.
“누군데? 질질 끌지 말고 말해.”
– 왠 꼬마야. 많이 쳐줘야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민환은 자리를 피해 찾아온 꼬마를 살피며 말하는 듯했다.
“근데? 아오, 답답해.”
– 얘가 마법진을 가동했다는데?
“뭐? 진짜야?”
– 응. 동영상도 찍어 왔어. 아무래도 네가 직접 와봐야겠다.
참으로 공교로운 타이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