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30
30화
명동. 마라탕 냄새가 진동하는 사무실.
조태규가 수겸과의 전화 통화를 마치고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며 궁시렁거렸다.
“하여간 겁은 진짜 많다니까. 어휴. 내가 돈만 아니면 저런 쫄보는 상대를 안할텐데. 돈이 원수지. 원수야.”
그 말에 수겸의 맞은편 소파에 앉아 있던 사내, 동철이 답했다.
새까만 왼팔이 눈에 띄는 사내였다. 아무 무늬 없이 그저 까맣게 칠하는 타투였다.
“또 강수겸입니까 형님?”
“어. 맞아. 몇 번 만난 건 아니지만 알 수가 없어.”
조태규가 소파에 몸을 파묻은 채 천장을 쳐다 보며 답했다.
그러다 허리에 반동을 주며 몸을 일으켰다. 사실상 거의 배치기 수준의 반동.
그리고 동철쪽으로 얼굴을 들이댔다.
“전에 뒷조사 한번 했을 때 이상한 점 없었던 것 맞지?”
“네. 집, 편의점, 민환이라는 친구, 할머니. 이 네 개면 강수겸 그 양반 인생이 설명이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확실해?”
조태규가 동철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확실합니다. 진짜입니다.”
동철은 자신을 믿지 못하는 조태규에게 억울하다는 듯 몸을 배배 꼬며 답했다. 문신과 덩치 값은 잘 못하는 것 같았다.
“그래. 내가 널 믿지 누굴 믿겠냐.”
조태규의 말대로 조태규와 동철은 1, 2년 정도를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었다.
조태규가 이쪽 업무, 그러니까 암흑가 사람들의 해결사로 나선지가 햇수로 벌써 10년째니까 동철과 함께 한 지도 10년째였다.
처음 몇 년은 마무리를 깔끔하게 마무리를 못 짓는 바람에 사단이 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조태규를 구해준 건 동철이었다.
반대로 조태규는 금전적으로 동철을 지원했다. 생계를 위한 돈이나 가족 병원비 등 돈이 필요한 것이라면 전적으로 동철은 조태규에게 의지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형적으로 돈으로 신뢰를 쌓은 관계.
돈만큼 배신 생각 안하고, 믿을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조태규로서는 동철만한 사람이 또 없었다.
“강사장, 그 양반이 원체 특이한 사람이긴 해. 종잡을 수도 없고.”
조태규가 소파 팔걸이에 팔꿈치를 댄 채 턱을 괸 자세로 읊조리 듯 말했다.
“특이합니까? 그냥 평생 범죄랑 엮일 줄 모르고 산 사람인 줄 알았는데 말이지요. 오히려 그쪽이 평범하고, 저희가 특이하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아, 그건 맞지. 근데 도대체 금이 어디서 나는거야? 혹시나 선조가 남겨 준 유산인가 싶었는데 최소한 증조부까지는 많은 금을 쟁여둘만큼 부자는 없었어.”
조태규가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말을 마치고, 동철이 이어서 말을 받았다.
“제가 아는 동생들한테 ‘부탁’을 좀 했는데, 동생들이 쓰는 전산에서도 특이한 건 없더라구요. 몇 번을 체크했어도 말입니다.”
동철이 말하는 아는 동생은 경찰이고, 전산은 경찰에서 쓰고 있는 신원 조회 프로그램이었다.
둘은 가능성을 하나씩 제거해가면서 수겸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해외는 어때? 해외에서 어떻게든 밀반입을 했을 수는 있잖아. 가능성이 희박하긴 하겠지만.”
“요새 해외는 진짜 빡셉니다. 아니면 본인이 넘어가서 사왔을 수도 있는데, 해외는 아직 한번도 안나간 것 같더라구요. 거기다가 그런 쪽으로 겁이 많은 건 연기도 아니고 진짜 같던데요. 그런 사람이 밀반입을 할 수나 있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내가 왠만한 나쁜 놈들은 딱 보면 수법을 아는데, 강사장은 진짜 모르겠어. 내 생각엔 얜 그냥 겁만 없었으면 그냥 세금 내면서 금 팔아도 되긴 해. 출처를 밝히는 문제가 있긴 하겠지만.”
“무슨 겁을 그렇게 낸답니까. 멍청한 사람이네요.”
동철은 습관적으로 손목을 빙빙 돌린 후 손마디를 구부러 우두둑 소리를 냈다.
“생각이 많아서 그래. 그리고 사람 속마음이야 알 길 없다지만, 복권 같은 거 1등 말고 2등만 당첨되도 손 벌벌 떨면서 은행 찾아갈 사람이 수두룩 빽빽인 거 보면 조금 알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리고 절름발이라고 안 했습니까? 몸이 약하니까 더 겁이 많기도 하겠네요.”
동철이 한 손으로 무릎을 탁탁 치며 말했다.
“맞아. 그것도 한 몫 할거야. 근데 우리로서는 좋지. 덕분에 고객 하나 제대로 문 거니까. 강사장 소개해준 금은방 쪽에도 소개비 쫌 떼준다고 해도 돈 좀 만질 것 같아.”
조태규가 걸리적거렸는지 노란색 넥타이를 셔츠 주머니에 구겨 넣고는 커피잔을 들었다.
“다 먹었네. 네 커피 좀 먹는다?”
조태규는 잔을 내려놓고는 동철에게 물었다. 그리고 그건 질문이 아니고 통보였다.
“네. 아직 한 모금도 안 마신 새겁니다. 얼마나 돈 준답니까?”
“아직 협상 전이야. 곧 해야지. 지금은 뭐랄까 계약 전 서비스 제공 기간이지. 우리는 겁쟁이 양반 겁도 주면서 계속 골수나 빨아먹자고. 오케이?”
커피 한 모금을 들이킨 조태규가 양 손을 비비면서 기대에 찬 눈을 했다.
“오케이입니다. 저는 당분간 강사장 쪽을 우선으로 챙기겠습니다.”
“응. 그게 좋을 거 같아. 진짜로 날파리 꼬이면 알까기 전에 미리 해충 박멸 해주고.”
“그럼요. 근데 벌레가 좀 꼬여야 해충박멸업자를 찾는 것 아니겠습니까?”
동철이 씨익 웃었다.
“그치. 아예 벌레가 없으면 누가 전문가를 찾겠어? 그러니 적당히 빈틈은 보이라고.”
조태규 역시 미소로 답했다.
앞으로 돈 벌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군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조태규는 동철의 커피를 시원하게 쭉 들이켰다.
***
수겸은 팔베개를 한 채 침대에 누워 눈동자가 이쪽 저쪽으로 바쁘게 굴리고 있었다.
‘우선은 근육 경직제와 수면제만 만들어둘까? 만들 수 있는 독을 있는대로 다 만들어봐야 쓸 일도 없을 것 같단 말이지.’
수겸의 의지에 따라 눈 앞에 텍스트가 떠올랐다.
[독 제조 : 근육 경직제]– 필수 재료 : C급 독성 물질, 마나 수액
– 부가 재료 : 조개 껍질 분말, 애벌레
– 시술자의 숙련도와 독의 품질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독 제조 : 수면제]– 필수 재료 : C급 독성 물질, 마나 수액
– 부가 재료 : 우유, 벌침, 꿀
– 시술자의 숙련도와 독의 품질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같은 등급 독이면 필수 재료는 똑같나 보네. 마법진이랑 부가재료에서 성질이 나뉘는 모양이야.’
지난번 치료제와 각성제를 만들면서 생각했던 이론이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렇다는건 한 번만 제대로 구하면 같은 등급의 시약을 만드는 건 훨씬 쉽다는 것. 이미 치료제를 만들 때 썼던 걸 각성제를 만들 때에도 쓴 것과 같은 이치였다.
수겸은 휴대폰을 켜서 검색하기 시작했다.
‘조개 껍질, 벌침, 애벌레 이런건 그냥 주문해도 되겠다. 문제는 독인가?’
아무래도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독을 아무렇게나 팔까 싶었다.
그러다 문득 재미로 읽은 기사 하나가 떠올랐다.
처음 들어본 내용이라 유독 자세히 읽었던 기사였다.
『생으로 먹으면 약이 되는 채소, 독이 되는 채소』
수겸음 곧바로 비슷한 키워드로 검색해서 무슨 채소가 독이 되는지 확인했다.
‘살다살다 건강식, 약이 되는 음식 말고 독이 되는 위험한 음식을 찾아보네.’
수겸이 찾던 답은 고사리였다. 기사 내용은 이랬다.
『∙∙∙데치고 말리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고사리는 두 가지 독성을 지니고 있다. 하나는 인류의 영원한 적인 암을 유발하는 물질이며, 또 다른 하나는 비체내 비타민B1을 파괴하는∙∙∙』
“이거다! C급 독성이니까 이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의외로 빨리 답을 구한 것 같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건 고사리는 1년 내내 구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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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이 지난 뒤 수겸은 작업실 가운데에 쌓아둔 택배상자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연금술은 인터넷과 택배로부터 시작한다는게 정설이지. 암.”
첫번째 박스는 조개껍질, 두번째는 곤충 먹이용 애벌레였다.
박스 해체 작업이 진행될수록 수겸의 작업실은 총체적 난국이 되고 있었다.
마지막엔 도대체 여기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본인은 무얼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지경.
그래도 이제 필요한 재료를 전부 세팅했으니, 절반은 온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생 고사리에서 독성을 따로 추출해내야 했다.
말리지 않은 고사리에 독성이 있다는 걸 알아낸 건 과학이지만, 독성을 추출해내는 건 비과학적 과정을 거쳐야했다.
필요한 건 제대로 제작된 스크롤과 정교하게 그려진 마법진. 그리고 수겸의 집중력이었다.
스크롤 위에 마법진을 그리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독성을 추출해냈다.
필요한 부분만 남기고, 필요없는 부분은 전부 가루로 만들거나 산화시켰다.
아마도 리카르도의 세상에서 몇 백년간 연구가 되었을 연금술. 그걸 수겸은 그저 실수 없이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어느새 독성 추출의 과정은 막바지.
스크롤 위에 놓인 유리 병에 검은 색 물이 찰랑이고 있었다.
“어우. 냄새야. 콜록.”
수겸은 작업을 마치고 창문을 열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어지럼증을 느꼈다.
핑-
세상이 도는 듯 했다.
‘내 마나로 추출하면 독에 면역이 된다고 했는데.’
[독 면역]– 완성된 시약에 대한 면역을 가질 뿐, 연금술 과정에 다루는 독에 대해서는 면역이 되지 않는다. 시술자는 이에 대비하여 안전장비를 착용할 것으 권한다.
“이 새끼가 또?”
분명 인격이 없는 지식일 뿐인데, 나타나는 타이밍이 예술이었다.
아무튼 필수 재료를 만들고 나서 조개 껍질이나 애벌레 같은 부가 재료를 가공하는데 드는 시간이 총 5시간이었다.
“마법진 그리는건 아무리 해도 속도가 안난단 말이지. 이것만 좀 빨라져도 2배는 빨리 했겠다.”
수겸의 말대로 제일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것이 마법진을 그리는 일이었다.
중간에 선이 매끄럽지 않다던가, 보고 그려도 틀리게 그리는 경우 그 부분으로 인해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 지 몰라 여간 신경쓰이는게 아니었다.
이럴 땐 연금술 스승인 리카르도의 지도가 생각났다.
‘누가 봐주면 실력이 더 빨리 늘텐데.’
수겸은 상념을 하면서도 바삐 움직였다. 이왕 시작했으니, 오늘 작업을 마치고 싶었다.
그리고 잠시 후 수겸은 눈 앞에 결과물을 살펴 봤다.
곱게 다져진 회색 가루가 가득 담긴 반찬 통 하나와 순백의 액체가 담긴 1.5리터 짜리 페트병.
조합은 안 맞지만 시멘트 가루와 우유가 떠오르는 비주얼이랄까.
‘유리 병은 너무 클래식한 것 같아서 바꿨더니 폼이 안나네.’
아무래도 보관 용기는 좀 바꿔야 할 것 같았다.
이제 남은 건 효과 검증인데, 문제는 시술자인 수겸은 두 가지 독 모두 면역이라 먹어도 의미가 없었고 그렇다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한테 독을 뿌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걸 어디다가 테스트해본담.”
그 때 창 밖에서 소리가 들렸다.
푸드득- 푸드득-
반지하인 수겸의 작업실에서 보면 창 밖, 밖에서 보면 지상인 길가가 마치 제 집인냥 항상 있는 비둘기였다.
수겸은 부엌에 있던 먹다 남은 빵을 조금 뗀 후 수면제를 그 위에 살짝 뿌렸다.
이내 빵에 흡수되는 수면제.
창문을 열자 비둘기는 무섭지도 않은 지 제자리에서 수겸을 쳐다 봤다.
푸드득-
마치 ‘뭘 봐?’ 라고 말하는 것 같은 건 수겸의 착각일까.
수겸은 손을 쭉 뻗으면 곧장 비둘기가 달려들까봐 빵을 창틀에 놓고 손가락을 툭툭 밀며 비둘기에게 식사를 권했다.
“먹어 봐. 죽진 않을거야. 아마도.”
비둘기는 수겸의 말을 알아 듣기라도 한 건지 쫑쫑 뛰어 빵을 쪼기 시작했다.
왠지 모르게 수겸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동물한테 나쁜 짓 하는 것 같아서 그런가. 괜히 미안하네. 혹시 다치면 치료제도 부어줄게.’
마침내 비둘기가 수면제에 절어진 빵 부분을 쪼았다.
그리고 3초나 지났을까.
툭-
살면서 본 적이 없는 모양새로 비둘기가 옆으로 쓰러진 채 잠에 들었다.
수면제는 성공이었다.
“예스! 이제 이걸 주사기 같은데 넣어서 여차하면 무기로 써도 되겠다.”
어쩌면 평생 쓸 일이 없을지도 모르는 호신용 무기 개발에 성공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