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49
49화
시작은 단순했다.
일전에 수겸이 윤상준과 만난 후 재미삼아 만들어본 식물 시약이 계기가 되었다.
연금술로 할 수 있는 건 끝을 모를 정도로 많은데, 정작 본인은 어웨이큰 하나만 찍어내면서 만족해한다는 사실이 그에게 연금술을 가르쳐준 리카르도에게 미안했다.
‘연금술을 이 세계에 남겨놓은 이유가 분명히 있을텐데.’
리카르도의 진짜 의중은 지금 중요한 사안은 아니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기 떄문이었다.
아니, 미안한 감정은 차치하고서라도 연금술로 새로운 시약을 만들고 세상에 내놓는 걸 상상하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편의점을 열고 아둥바둥 하루를 살아내던 수겸이었다.
연금술을 세상에 선보이는 것.
상상만으로 심장이 두근거렸을 때부터 마치 마법에 걸린 것처럼 수겸에게 꼭 이뤄내야만 하는 과업이 되어버린 듯 했다.
꼭 하고 싶고, 반드시 이뤄내야하는 일.
그래서 수겸은 급발진, 아니 뇌절, 아무튼 조금 더 과감해지기로 했다.
***
이튿날부터 수겸은 바쁘게 움직였다.
광고효과를 극대화하려면 그 전에 해야할 일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제일 시급한 건 판매창구였다.
홍보는 기가 막히게 했고, 당장 팔 재고도 충분했지만 어떻게 팔건지가 아직 불분명했다.
그래도 구관이 명관이라는 생각에 수겸은 조태규가 먼저 생각났다.
수겸은 조태규의 사무실이 있는 명동.
대한민국에서 손에 꼽히는 관광지, 대한민국에서 땅 값이 제일 비싼 곳.
그런 명동의 골목, 들어가려다가도 한번은 ‘이 길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법한 어두운 뒷골목에 조태규의 사무실이 있었다.
수겸은 골목으로 들어가지 않고, 골목으로 향하는 대로변에 서서 조태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강수겸입니다.”
『알죠. 알다마다요. 너튜브 방송은 잘 봤습니다. 나름 머리를 쓰시긴 했던데, 제 생각엔 좀 뇌절을 하신 것 같습니다만?』
“하하. 뒷수습 못하면 뇌절이겠죠. 저는 그 뒤를 생각하고 있는거구요.”
『그래서 수습은 어찌 하시려구요? 이제 수면 위로 떠오르기 직전일텐데요.』
수겸은 직접 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소파에 기댄 채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는 조태규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러는 조 사장님은 어찌 하실래요? 이제 결정하세요.”
수겸이 단호한 말투로 조태규에게 물었다.
『무슨 선택을 말씀하시는거죠? 전 지금 발 빼면 그만인데요.』
“계속 마라탕 냄새가 진동하는 사무실에 계실거에요? 언제까지 쉬쉬 하면서 숨죽이며 사실거에요? 이제 그 썩어가는 골목에서 나와서 여기 제 옆으로 나오세요.”
수겸은 골목의 끝에 있을 조태규를 상상하며 골목 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전 이대로도 좋습니다만.』
“저 지금 골목 앞이에요. 여기는 냄새도 안나고, 사람들도 많고, 햇볕도 따뜻해요. 이제 나와서 저와 함께 하시죠.”
수겸이 조태규와 동업을 시작한 건 사실 한참 전이지만, 지금과 그 때는 상황이 많이 달랐다.
예전엔 알게 모르게 수겸이 조태규에게 도움을 청하는 입장이었지만, 이제는 수겸이 조태규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이제 나를 온전히 믿고 따라오라고.
여기 내 손을 잡으라고.
『흐음. 지금 그 손을 안잡으면 저희 관계는 끝입니까?』
수겸은 모르겠지만, 언제든지 수겸을 버릴 생각을 하던 조태규였다.
돈이 될 때까지만 빨아먹다가 버리는 카드였던 수겸이 조태규에게 손을 내밀었다.
조태규가 거듭 고민을 했다.
사실 뒷골목에서 쳐주는 조태규의 경력도 물경력은 아니지만 그래봤자 잔잔바리 수준이었다.
야구로 치면 메이저리그도 아니고, 마이너리그인 수준.
최근 수겸을 만나 돈벌이가 좋아졌지, 그 전에도 좋았다면 왜 마라탕 냄새가 진동하는 사무실을 못 벗어났겠는가.
다만, 연줄을 많이 대놓은 덕에 여기 저기서 많이 챙겨준 결과 조태규라는 이름이 퍼진 것이지, 이대로라면 늙어 죽을 때까지 이 수준을 벗어나진 못할 것이었다.
그리고 사실 조태규도 그 사실을 모르진 않았다.
일그러진 히피족처럼 법 망 밖에서 사는 자유로움을 위안 삼아 버티고 있었을 뿐.
그런데 갑자기 수겸이 떠나가면 다시 예전이 삶으로 돌아가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었다.
그래서 조태규는 섣불리 답할 수 없었다.
“제안을 거절하는 사람을 굳이 끌고 갈 이유도 없지요. 그동안 재밌게 잘 했고, 돈도 많이 벌었으니 여기서 끝을 내고 우리는 해피엔딩입니다. 본편보다 좋은 속편이 없다지만, 그거 한 번 해보려구요.”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누군가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노심초사로 살았던 지금까지가 1편이라면 세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스스로를 알리는 이후의 행보는 2편이었다.
『시즌 2네요.』
“그렇죠. 시즌 2죠. 마지막 시즌이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한번 가보겠습니다. 안그래도 마라탕 냄새에 토가 쏠려서 이사하려고 했거든요.”
조태규가 어두운 골목길 속에서 그림자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나오며 말했다.
“생각보다 결정이 빠르시네요.”
수겸이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좀 자존심 상하는데요?”
조태규가 연노랑 넥타이를 한번 매만지고는 답했다.
“하하. 좋은 뜻으로요. 잘 오셨어요.”
수겸이 손을 내밀고, 조태규가 손을 맞잡았다.
렉차가 저격 영상을 올릴 때만해도 이제 손절을 해야 하나 고민을 했던 조태규로서는 뜻하지 않은 결과였다.
***
수겸에게 꼭 필요한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바로 박동현이었다.
민환과의 실험을 통해서 박동현에게 기대지 않고서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여전히 수겸 혼자 재료들을 수급하는 건 벅찬 일이기 때문이었다.
수겸처럼 마나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박동현 역시 마나를 품은 양질의 식물을 감별할 수 있는 능력자.
어찌보면 조태규보다도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수겸은 조태규와 간단한 이야기를 나누고 곧장 약재시장으로 향했다.
가게에 들어서자 이내 박동현이 수겸을 알아보고는 밝게 웃으며 걸어 나왔다.
“수겸! 왠일이야. 필요한 게 있으면 연락을 하지.”
“아니에요 .드릴 말씀도 있고 해서 찾아왔어요. 출장 다녀오신 건 잘 마치셨나요?”
“아, 그거? 잘 됐지. 운이 좋게도 원하던 약재를 구해서 들어왔어. 마침 보여주고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잘 왔다. 여기 앉아.”
“네네. 형 혹시 너튜브도 좀 보세요?”
수겸은 평상에 앉으며 박동현에게 물었다.
“너튜브? 일하면서 심심할 때 챙겨보긴 하지. 무슨 일인데?”
“혹시 그러면 렉차라고 너튜버도 아실 수 있겠네요.”
수겸은 왠지 모르게 떨리는 기분으로 물었다.
만약 박동현이 렉차 영상을 알고, 이미 동영사을 통해 어웨이큰을 알고 있다면 어쩌면 그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알고보니 내가 마약 원재료 공급자? 이런 식으로 갈 수 있으니까.’
“응. 알지. 꽤 유명한 사람이잖아.”
당연히 아직 무슨 일인지 알리가 없는 박동현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그러면 어웨이큰이라고 이번에 라이브 방송도 보셨을 수도 있겠네요.”
“아아. 봤어. 어웨이큰 그거 나도 궁금하더라.”
진심이었는지 순간 박동현의 눈이 초롱초롱해진 것 같았다.
“그러면 잘 됐네요. 그게 이거에요.”
이미 공개하기로 마음 먹은 수겸은 직진남이었다. 품에서 꺼낸 어웨이큰 하나를 건네 주며 박동현에게 말했다.
“어? 진짜?”
예상 외의 대화 방향에 박동현은 당황했다.
“그리고 제가 어웨이큰을 만드는 사람이고요.”
“뭐어?!”
박동현이 깜짝 놀래 큰 소리로 외쳤다.
“잠깐 소리만 낮춰주세요. 하나 더 남았어요.”
원,투 펀치에 이은 스트레이트 차례였다.
“어웨이큰에 들어간 재료들 전부 형이 구해준 것들이에요.”
“허얼∙∙∙∙∙∙.”
항상 밝은 미소를 짓고 있는 박동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수겸은 잠시 생각 정리를 위해 말을 잇지 않았다.
“근데 내가 구해준 것들이 그런 재료들이 아닌데? 특별한 효능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구할 수 있는 약재들이었잖아. 그건 좀 이상하네.”
박동현이 팔짱을 한 채로 의문을 표했다.
“만든 사람이 특별하니까요.”
오그라드는 멘트를 수겸은 잘도 지껄였다.
“아, 그랬구나.”
“아니, 그렇게 끝내면 어떡해요. 형이 구해준 약재들은 하나같이 특별한 기운을 품고 있거든요. 처음 저희가 만났을 때 기억하세요?”
수겸이 처음 박동현의 나체를 본 날을 떠올리며 물었다.
“응. 기억하지. 너도 막 옷을 벗으려던 찰나에 날 만나서 좀 당황했었지.”
“네?”
아무래도 박동현의 기억 왜곡이 심각한 수준 같았다.
“그건 아니지만, 여튼 그 때 제가 수액 채취한다고 좋은 나무 골라야 한다고 했잖아요. 형은 그 때 나무를 골라주었구요.”
“맞아. 우리 거래는 그게 시작이었지.”
박동현 역시 과거를 회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튼 전 그 때 제가 찾고 있는 특별한 식물들이나 약재를 형은 고를 수 있단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계속 부탁드렸구요.”
“아∙∙∙. 근데 이걸 나한테 이야기 해도 돼?”
“어차피 너튜브에서 어웨이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많아요. 제가 형을 못 믿는 것도 아니구요.”
수겸이 박동현의 눈을 쳐다봤다.
“어차피 조카한테 총명탕 지어준다는 소리를 믿지도 않았지만, 위험한 것들도 아니라 난 이유가 중요하지도 않았어. 이렇게 설명 안했어도 네가 부탁하면 계속 구해다 줄 생각이었지.”
박동현은 헛헛하게 웃으며 말했다.
본인의 거짓말이 너무 엉성했다는 사실을 알게되자 수겸은 쑥스러웠다.
“이왕이면 저랑 같이 제대로 일했으면 해서 말씀드리는거에요.”
“제대로?”
“네. 완전히 저한테 필요한 물품만 구해주시는거요. 여기 약재 가게는 접구요. 어떠세요?”
아니면 말고 식도 아니었고, 제발 해주세요라며 매달리는 식의 제안도 아니었다.
“흐음. 그건 이렇게 말 한마디로 결정할 사안은 아니겠네.”
“맞죠. 여기 말고 안으로 자리를 옮기실까요?”
수겸이 가게 안 쪽을 가르켰다.
이것은 일종의 사업 설명회였다.
판매할 상품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앞으로의 비전 역시 제시할 수 있어야 했다.
“어웨이큰이 말이죠. 사실∙∙∙∙∙∙.”
수겸은 시간을 들여 차분히 어웨이큰에 대해 설명을 하고, 박동현을 이해시켰다.
4시를 가르키던 시곗바늘이 어느새 6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 사이 박동현을 직접 어웨이큰을 먹어보며 수겸의 이야기를 진정성있게 들었다.
“여기서 끝내지 않을 겁니다. 저는 세상에 없던 제품들을 계속해서 만들거에요. 여기 보세요. 이건 최근에 제가 만든 건데∙∙∙∙∙∙.”
“오? 이런 것도 만들 수 있어?”
박동현에게 제일 큰 반응이 온 건 의외로 식물 생장 촉진제였다.
“네. 이걸로 약재도 대량 생산하고, 농지 보급도 하면 어떤 일이 생길 것 같으세요? 심장이 두근거리지 않으신가요?”
조태규에게도 이렇게까지 비전을 밝히지 않았다.
그만큼 수겸에게는 박동현의 도움이 절실했다.
“그러게. 갑자기 온 몸이 간질거리는 것 같아졌어. 궁금하기도 하고.”
박동현이 어느새 땀이 베어나온 손바닥을 쳐다보며 말했다.
“근데 한 번은 더 고민해보자. 너한테는 돈도 안되고, 찾는 사람도 점점 죽어가는 일 같아도 나한테 약재상이라는 일이라게 정말 소중하거든. 이해해줄 수 있지?”
박동현은 혹여나 수겸이 기분나쁠까봐 조심스럽게 이야기 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전 거절당할 생각을 하고 왔는걸요. 물론 삼고초려의 자세로 계속 찾아오겠지만요.”
“하하. 알겠어. 잘 고민해보고 연락해줄게.”
최선을 다해 설명했으니 박동현의 일은 제쳐두고, 수겸이 해야할 일 중 첫번째가 끝났다.
사람을 모았으면 이제 무엇이 필요할까.
수겸은 곧바로 다음 계획을 진행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