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67
67화
개갑처리, 인삼 재배를 할 때 개갑이란 종자를 후숙시켜, 씨눈으 성장시키면서 씨 껍질을 벌어지게 하는 과정이다. 7월 하순부터 8월 상순에 시작하는 것이 보통이며 100일 정도의 시일이 소요된다.
개갑 시기가 늦어질수록 개갑률을 떨어지기 때문에 인삼 재배에 있어서 시기를 지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런 일반적인 상식으로 미루어보아 수겸과 박동현의 인삼재배는 시작부터 틀린 것이었다.
늦게 잡아도 8월 상순부터 3개월동안 11월 상순까지 끝마쳐야 하는데 , 8월도 아닌 9월에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 꼴을 누군가 보았다면, 멍청한 작자라고 욕할 것이고 돈은 돈대로 날릴 것이 뻔한 상황이었다.
연금술이 없었다면 말이다.
연금술로 만든 생장 촉진제를 활용한다면 100일에 걸쳐 할 개갑 처리를 빠르면 50일, 늦어도 70일내에 마칠 수 있으니 9월에 시작해도 그리 늦은 것이 아닌 셈이 되었다.
덕분에 큰 돈을 들여 설치한 재배 시설안에서 인삼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게다가 생장이 빠르다는 건 만 2년을 채우고 3년차에 수확하는 일반적인 인삼과는 다르게 2년차에 수확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다.
“농사가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천직을 찾은 박동현은 오늘도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밭을 둘러봤다.
***
쌀쌀한 바람이 되레 상쾌하게 느껴지는, 산책하기 좋은 날이었다.
햇빛마저 따사롭게 내리쬐는 정오 무렵.
홍연 경찰서 담벼락을 따라 걷는 남자가 있었다.
좌, 우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고 도로 건너편 상가에 붙은 CCTV 위치까지 한번 둘러 보는 것이 여간 수상한 게 아니었다.
게다가 가장 눈에 띄는 건 부자연스러운 발걸음.
다름이 아닌 수겸이었다.
‘하긴 나같아도 경찰서로 익명으로 보내는 퀵은 안하려고 하겠다.’
수겸이 지금 경찰서 담벼락을 따라 정문을 지나치면서까지 산책 겸 정찰을 하는 이유.
그건 지금까지처럼 월간 아르케 제품을 보내려고 한 곳이 경찰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지껏 한번도 겪지 못한 퀵 업체의 배송 거절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씹으라는 말처럼, 이번엔 수겸이 직접 배송을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첫 정찰을 나왔다.
‘내가 하면 하루가 뭐야, 3시간 안에 잡히겠네.’
수겸은 상상이라도 했는지 인상을 팍 썼다.
“그러면 여긴 나가리이고, 이걸 어쩐다.”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지만, 혼자만의 약속이 매달 1일에는 새로운 연금술 제품을 공개하는 것이었는데 이러다가는 다 어그러질 판이었다.
수겸은 자연스럽게 경찰서 담벼락을 지나쳐 발걸음을 옮겼다.
삑-삑-
대형 덤프트럭이 후진을 하며 경적 소리를 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차량 지나가고 통행 부탁드립니다.”
공사현장 안내원까지 나와 있는 걸 보니 꽤나 큰 공사현장인 것 같았다.
수겸이 공사현장을 가려놓는 임시 벽에 붙은 안내판을 보니 아파트를 짓는 곳 같았다.
수겸이 덤프트럭이 들어가려고 열린 문틈 사이를 쳐다 보니 안쪽에는 여러 문구들이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안.전.제.일
부주의한 순간 방심. 돌아오는 평생후회.
안전 표어를 보니 일전에 본 공사현장 사고 소식이 떠올랐다.
“여기도 괜찮겠네.”
수겸이 꽤 만족스러운 생각이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수겸의 말소리에 수겸과 마찬가지로 덤프트럭이 진입이 끝나길 기다리던 한 남자가 되물었지만, 수겸은 손을 흔들어 아무것도 아니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이내 통행이 가능해지자, 수겸은 바삐 자리를 떠났다.
길을 걸으면서도 큰 규모의 공사현장을 타겟으로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확신이 들었다.
수겸이 이번 시약을 완성한 것은 바로 전 날.
수겸은 손을 녹이러 들어간 카페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
수겸의 작업실.
수겸은 회백색의 시약을 컵에 조금 담았다.
“으. 내가 만들긴 했지만 먹으면 바로 배탈날 것 같은데.”
실제로는 무미, 무향의 시약이지만 왠지 매캐한 냄새까지 나는 것 같았다.
한 손으로는 코를 틀어막고, 눈까지 찡긋하며 들이켰다.
“켁. 아무 맛도 안나는게 더 이상하네.”
수겸은 양 팔을 들어 이리저리 살펴봤다.
“겉으로는 변화가 없고.”
성능 테스트를 위해서는 위험한 짓을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수겸은 마법진이 화려하게 새겨진 작업실 바닥을 밟으며 공구함이 있는 서랍장으로 걸어갔다.
드르륵.
서랍을 여니 망치며, 니퍼며 온갖 잡다한 공구가 쓸려 나왔다.
내부 인테리어를 하면서 하나씩 모은 공구들이었다.
“흐음.”
수겸은 한숨을 내쉬며 망치를 집어들었다.
실수로 발 등 위로 떨어지면 최소한 발가락 뼈에 금이 갈 것 같은 비주얼의 망치.
수겸은 오른손에 망치를 쥐고, 왼손은 탁자 위에 올렸다.
톡.
처음엔 인정사정 없이 내려쳐 테스트를 한번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 자기 손을 찍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주 살짝 망치로 손가락을 쳤다.
계산 착오로 무언가 잘못되더라도 한번 아프고 말 정도의 충격.
턱-
사람 손가락에서 날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수겸은 신기한 지 왼손을 들어 이리저리 살폈다.
“괜찮겠는데?”
수겸은 믿음을 가지고 이번엔 아예 망치를 왼손 위에 올려 정조준을 했다.
“후욱. 후욱. 이게 왜 긴장이 되냐.”
수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쿵!
실수인 척 오른손에 힘을 풀어 망치를 떨어뜨렸다.
“서, 성공이다!”
망치가 손 위로 수직낙하를 했는데도 손이 멀쩡했다.
수겸이 만든 시약, 피부 경화 시약은 성공적이었다.
망치를 떨어뜨려도 멀쩡하고, 날카로운 칼날로 푹 찔러도 작은 생채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움직임이 둔해지거나 하는 부작용은 없었다.
“이번엔 이걸로 확정.”
얼마나 효율적으로 활용하냐는 이제 받는 쪽에 달린 문제였다.
숙취해소제를 받은 기업들은 당연하겠지만 상업적으로 활용하려고 했고,
힐링 포션을 받은 소방서쪽은 위급 상황에 선택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하긴 숙취해소제로 소개하지 않고, 해독제로 했으면 이야기가 달라졌을지도.’
어찌됐든 수겸의 목표는 연금술로 만든 시약이 조금씩 사람들 인식 속에 들어가는 것.
그다지 효과가 크지 않다면 바로 다음 달을 준비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 이제 포장만 하면 되나.”
수겸은 피부 경화 시약, 스토니를 서둘러 포장하기 시작했다.
***
대한제약의 신사업전략실의 최한영 실장은 조바심이 났다.
“도대체가 왜 배포자를 못 찾는거지? 어?”
최한영 실장이 아니꼬운 눈빛으로 노려보고 있는 남자는 제품개발팀의 이찬수 팀장이었다.
“죄송합니다. 처음 배송 온 퀵 기사도 찾고, 확인할 수 있는 CCTV는 모두 찾아 확인했지만 신원 특정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묻는 건 뭘 했는지가 아니고, 왜 누군지 알아내질 못했냐 이겁니다.”
“악을 쓰고 본인 정체를 숨기고 있는 듯 합니다. 경찰에서도 범죄 사실과 연관된 것이 아니면 수사 인력 배치가 힘들다고 하고∙∙∙∙∙∙.”
“이 답답한 사람아. 그럼 물건은요?”
“그건 그래도 다행히 추가 확보 성공했습니다. 원하는대로 너튜브 영상을 찍어서 올렸더니 바로는 아니지만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물건을 보내왔습니다.”
이찬수는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팀원에게 손짓으로 추가로 확보한 숙취해소제를 가져오라는 사인을 보냈다.
“여기. 총 100회 분량이고 이번에도 역시 메모가 들어 있었습니다.”
“내용은 뭐에요? 우리 계약 이야기도 있어요?”
최한영이 다리를 꼬고 앉아 손가락으로 연신 책상을 딱딱 치며 물었다.
“아닙니다. 계약 내용은 일체 없고, 이름 짓는 걸 깜빡했다고.”
“하. 이 새끼 장난치나. 이름이 뭐가 중요하다고. 우리가 돈방석에 앉혀주겠다는데도 계약 이야기를 안해? 어디 이름 들어나봅시다.”
“그, 그게 디톡시라 합니다.”
“디톡시요? 작명 센스하고는. 그래서 다음 방안은요?”
최한영이 이찬수가 건넨 쪽지를 읽으며 물었다.
딱딱.
이찬수가 손가락을 튕겨 좀 전에 최한영에게 디톡시를 건네 준 직원을 불렀다.
이번엔 프리젠테이션 화면을 띄워놓은 노트북이었다.
“여기 보시면 현재 너튜브에 디톡시와 관련해 올라온 영상은 총 5군데입니다. 저희 경쟁사인 일성제약도 있고, 완전히 결이 다른 스타트업 회사도 있습니다.”
이찬수가 너튜브 화면을 캡쳐한 화면을 보며 설명한 후 다음 페이지로 넘겼다.
“저희는 왜 너튜브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왜 일까요. 그건 아마도 이걸 만든 사람이 단 사람, 개인이기 때문일 겁니다. 정식 판매 허가를 받기에는 절차가 복잡하고 어려우니 저희같은 회사를 통하고 싶었을 겁니다.”
“그래서요?”
“회사랑 계약은 하고 싶은데 무작정 찾아와서 계약을 요청하면 자기가 을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공개 구애. 내 제품을 원하면 회사 이름으로 효과가 좋다는 걸 인정해라. 이런 뜻으로 선택한 전략 같습니다.”
이찬수의 설명은 수겸의 의도를 전혀 맞추지 못했지만, 최한영에겐 그럴듯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결론은요?”
“이왕 이렇게 된 것 끝까지 가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누군지 몰라도 원하는대로 몸값을 제대로 올려주고 저희가 쟁취하는 게 좋다는 판단입니다. 상품성이야 이미 실장님께서도 아시는 바니까요.”
최한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디톡시의 효과는 가히 그럴 만 했다.
마치 원래부터 몸 안에 술기운이라곤 없었다는 듯 ‘증발’시키는 약이니까.
다만 마음에 걸리는 것은 이게 제품 허가를 받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연구소에서도 성분 분석에 실패했는데, 이걸 기관에서 받아줄 지.’
“어차피 계약의 형태는 제품 허가를 받은 후 대금 지급하는 것으로 하려 합니다. 그러면 저희가 지는 리스크는 전무합니다. 다만, 방금 말씀드린대로 몸값을 올릴 때 드는 비용이 들긴 하겠지만 저희가 매년 쓰는 광고비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입니다.”
이찬수는 최한영이 무엇을 고민하는 지 꿰뚫어 본 모양이었다.
이래 보여도 대한제약의 실세 중 하나이기에 그 정도 비용은 최한영의 이름 값으로도 충분히 커버할 수 있는 돈이었다.
“계약은 팀장님이 말씀하신대로 무조건 허가 후 지급하는 걸로 하시고, 우선은 그 쪽에서 원하는대로 거품 잔뜩 넣어보죠. 그 때도 우리한테 반응이 없는 지 한번 두고 봅시다.”
어차피 디톡시 말고도 대한 제약이 먹고살 길은 많았다.
‘그래도 안되면 버리자.’
최한영은 이찬수가 보여준 노트북 화면을 다시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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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대한제약 측에서 올린 영상은 회사명을 언급했지만 계정 자체는 처음 물건을 받았던 영업 1팀의 인턴의 것이었다.
그러니 파급력도 사실상 전무한 상태.
단지 메세지로서의 의미만 있었다.
‘이제부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간다. 네가 누군지 몰라도 원하는대로 한번 춤 춰 주마.’
최한영 앞이라 표현하지 않았지만, 이찬수 역시 약이 오를대로 오른 상태였다.
대한제약에서 일한 세월동안 항상 갑의 입장에서 일을 하다가 처음으로 을의 입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김대리는 지금부터 은근슬쩍 내용 흘려줄 너튜브 수집 좀 해봐. 정식 허가 제품은 아니니까 광고 형태로는 못 들어가고. 걸리지 않을 정도로만 디톡시 이름 노출시킬거야.”
이찬수가 팀원에게 지시를 내렸다.
“네! 혹시 구독자 수 기준은 어떻게 할까요?”
“최소 100만으로 봐. 그정도는 해야 이 새끼도 알아보지. 제대로 해서 계약 따야한다. 다음 실장님 보고까지 계약 완료하는게 목표야.”
“알겠습니다!”
이찬수의 진두지휘 하에 제품개발팀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