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66
66화
매일 아침이 되면 줄을 서 있던 모습이 사라졌다.
어웨이큰 판매 수량 증가로 인한 효과였다.
처음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오픈 시간에 맞춰서 오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몇 일이 지나자 이제는 필요할 때 오면 왠만하면 살 수 있다라는 확신이 생긴 모양이었다.
오늘도 역시나 앉아서 쉴까하면 손님이 오고, 또 앉아서 쉴까하면 손님이 오는 바람에 도통 쉴 틈이 없었다.
그 때 한 대가 부웅 소리를 내며 편의점 앞에 주차하는 모습이 보였다.
“누구지?”
수겸은 건물 2층의 아르케 사무실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었다.
타악-
거칠게 차량 문을 닫고 걸어오는 이는 CV리테일 본사 직원 이승준 대리였다.
“저 양반이 왠일이지?”
이제는 이승준에 대한 감정이 많이 희석된 수겸.
이승준의 낯짝을 봐도 그리 화가 나진 않았다.
‘오늘은 저 양반이 화가 났는데?’
무슨 일이 있는 건 확실하기에 수겸은 서둘러 1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띠링-
“오랜만이시네요. 잘 지내셨어요?”
“강 사장님은요?”
한 두번 본 사이도 아닌데, 이승준은 최영지의 인사를 가볍게 무시하고 제 할 말만 하고는 지나쳤다.
“왜 우리 알바생 인사를 씹고 그래요?”
때마침 내려온 수겸이 이승준에게 말했다.
“그랬나요. 미안합니다. 마음이 급해서 그만.”
“도통 보이질 않던 양반이 왠 일인가요?”
수겸은 내심 짐작했지만, 짐짓 모른 척 이승준에게 물었다.
“아니, 왠 일이요? 그게 지금 하실 말입니까?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줄 아세요? 하아.”
이승준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사람 면전에 두고, 한숨 그만 쉬시고 말씀을 하세요.”
“좋아요. 말해달라고 하니까 말씀드리죠. 지난주에 저희 본사로 제보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편의점에서 이상한 물건을 팔고 있는데 그게 편의점 정식 상품이 맞냐고.”
‘올 게 왔네.’
누군가의 제보 혹은 자연스럽게 이런 사단이 날 것이라고 예상 못한 건 아니었다.
다만, 정리할 타이밍을 놓쳤을 뿐.
‘세무사님 말도 한 몫 하긴 했지.’
수겸은 어웨이큰을 공식 판매하기 시작했을 때를 떠올렸다.
“처음 어웨이큰을 구매하러 온 사람들은 어떤 심리적 저항이 있을 겁니다. 약처럼 생기긴 했는데, 정식 처방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약국에서 사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죠. 근데 어차피 후기를 보고 오는거라 망설이진 않을 것 같은데요?”
“대부분은 그렇죠. 90퍼센트 사람은 어디에서 팔든 문제가 없어요. 그러면 나머지 10퍼센트는요? 결국 어웨이큰의 이미지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대다수가 아닌 이걸 신경쓰는 소수의 사람들이 만드는겁니다.”
“이미지라∙∙∙.”
수겸은 턱을 매만지며 조태규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가 어디 음산한데 처박혀서 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장을 얻어서 하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편의점은 누구한테나 익숙한 곳이죠. 그리고 야간에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는 편의점으로 대피하라고 할 정도로 안전한 곳이라는 이미지도 있어요.”
“그건 그렇죠. 저희도 안심 귀가길 스티커 붙어 있어요.”
수겸은 한쪽 벽에 붙어 있는 포돌이 마크를 슬쩍 쳐다봤다.
“그러니까 안전한 편의점에서 거래하니까 망설이지 말고 와. 이런 메세지인거죠. 이것도 초기에만 신경쓰면 될 겁니다. 나중에는 이딴 것 없어도 우리를 찾는 사람이 줄을 설테니까요.”
조태규는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말했다.
“알겠어요. 일단 그렇게 하고 혹시나 문제가 생기면 어째요? 이거 등록 상품이 아니라서 문제가 되긴 할텐데요.”
수겸은 과거에 자신이 했던 생각을 떠올리며, 눈 앞의 이승준을 쳐다봤다.
“아시겠어요? 이건 명백히 계약 위반이고, 사장님 사유로 계약 파기할 정도의 사안이에요!”
“알겠어요. 그러면 위약금 물고 끝내죠.”
“어떻게 하실 생각이었어요, 도대체! 이거 위약금까지 생각하셔∙∙∙∙∙∙. 예? 방금 뭐라고 하셨죠?”
흥분해서 자기가 할 말만 지껄어다가 이승준이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물었다.
“위약금 물겠다고요. 그러면 되는 것 아닌가요? 저희가 딱히 브랜드 평판을 떨어뜨린 것도 아니고, 이걸로 피해를 입은 사실도 없으실테니까. 계약 파기에 따른 위약금만 물겠다고요.”
“그, 그건 그렇습니다만.”
이승준이 당황한 건 수겸의 편의점이 보통 편의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약금은 최소로만 하고, 허튼 짓 못하게만 하고 오라고 하셨는데∙∙∙∙∙∙.’
이승준은 사무실을 출발할 때 받은 지침을 떠올렸다.
조태규의 작업이 끝난지 오래지만 수겸의 편의점의 매출은 여전히 잘나오는 편이었다.
아니, 잘나오는 정도가 아니고 여전히 지역 1위, 2위를 다루는 정도.
이유는 하루에도 수백 명의 사람이 무조건 편의점을 방문하기 때문이었다.
기다리면서 담배를 사도 수겸의 편의점에서 사고, 목이 말라 물을 사도 수겸의 편의점에서 사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매출이 잘 나올 수 밖에.
계약파기까지 생각하지 않았던 이승준으로서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강 사장님이 잘했다는 건 아니지만, 저희로서도 위약금을 줄여줄 용의도 있습니다. 그간 워낙 잘해주셨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극단적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아닙니다. 더 질질 끄면 오히려 끝이 안좋겠다 싶네요. 본사로 들어가셔서 정식으로 문서 보내주세요. 왠만하면 받아들이고 빠른 시간 내에 정리하겠습니다.”
위약금이 나와봐야 얼마나 나오겠나.
1억이 나와도 하루에 어웨이큰을 팔아서 버는 현금이 최대 5억인 수겸이다.
‘그깟 돈.’
어느새 수겸은 금전 문제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져 있었다.
‘왠지 제보를 한 군데에만 했을 것 같진 않은데.’
수겸에겐 지금 이렇게 이승준에게 뺏기는 1분 1초가 더 아까운 상황이었다.
“그러면 정리되신 걸로 알고 있겠습니다. 연락주세요.”
수겸은 이승준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고, 음료 하나를 내주지도 않고 이만 나가는 뜻을 내비쳤다.
“강 사장님. 아직 시간이 있으니 혹시 생각이 바뀌시면 말씀해주세요. 제가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아까는 화나서 어쩌지를 못하더니 이제 최선을 다한다니. 웃기네요. 멀리 안나갑니다.”
수겸은 이승준의 태도를 비웃으며 문을 열었다.
어서 나가라는 뜻이었다.
“전화 드릴게요. 꼭 통화 한번은 더 하셔야 합니다.”
이승준은 마지못해 밖으로 나가면서도 휴대폰을 흔들며 전화 통화를 강조했다.
그렇게 이승준이 나가고 최영지가 심각한 얼굴로 수겸 곁으로 다가왔다.
“사장님 어떻게 해요?”
“뭘 어떻게 해. 그냥 하는거지. 10억이라도 내고 빨리 터는게 맞아. 물건들은 어차피 내가 사는 걸로 될테니까 우리가 다 먹고 쓰면 되고. 이 건물도 내꺼니까 그냥 쓰면 되지. 그 뿐이야.”
“그래도요.”
최영지가 잔뜩 주눅든 강아지 마냥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답했다.
“영지야,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너는 네 할 일만 해주면 돼. 알겠지?”
“네에∙∙∙∙∙∙”
수겸은 그 길로 작업실로 올라왔다.
‘서둘러야 해. 곧 문제가 터질거니까 조금이라도 더 대비해야지 일이 쉬워진다.’
때마침 곧 다음 달 1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겸은 다음 월간 아르케 아이템을 선정하는데 박차를 가했다.
***
경기도 이천.
오며 가며 만나는 사람들 얼굴을 전부 알 정도로 그리 크지 않은 농촌 마을에 한 가지 소문이 돌고 있었다.
기존의 마을 주민들이 셋 이상 모이면 그 날의 대화 주제가 되는 소문이었다.
그건 바로.
귀농을 해서 농사를 시작한 지 반년도 채 안된 총각네 밭의 작물들이 너무 잘 자란다는 것.
오늘도 어김없이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 온 마을 주민들이 수겸의 밭을 찾아왔다.
“오셨어요?”
잡초를 뽑고 있던 박동현이 허리를 쭉 피며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진짜 안올려고 했네만, 이 놈들이 내 말을 도통 안믿어서 말이야.”
마을 이장은 옆으로 쪼르르 붙어 경작물들을 살펴보고 있는 마을 주민 3명을 가르키며 말했다.
출석 도장 찍듯 매일 찾아오는 마을 이장이 귀찮을 법도 한데 박동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오늘도 질문하실거죠?”
“암. 그래야지 내가 거짓말쟁이가 안되지.”
이런 상황을 미루어 짐작컨데 소문은 자연스럽게 난 것이 아니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마을 이장이 퍼뜨린 것 같았다.
“하하. 후딱 하시죠! 오늘 작업이 다 안 끝나서요.”
“그려그려. 자네 여기 당귀를 키운지 얼마나 됐나?”
마을 이장이 푸른 잎사귀가 무성한 당귀를 가르켰다.
“그건 4개월쯤 되었고, 옆에 황기는 3개월이 조금 지났네요.”
“이장님 이거 몰래카메라에요? 놀리는 것 같은디.”
이장 옆에서 붙어 있다가 조금 떨어져 나와 잎사귀를 만져보던 주민 한 명이 물었다.
“하하. 아닙니다. 그러면 이것도 보여드려야겠네요. 여기 보세요.”
박동현이 장갑을 벗어 던지고 휴대폰을 켜서 사진 하나를 보여줬다.
“거기 보시면 날짜 보이시죠? 딱 봐도 여기인데, 아직 싹도 안 올라온게 보이시죠? 정말이라니까요.”
박동현은 자식 자랑하는 부모마냥 땀흘려 키운 작물들을 자랑하기 바빴다.
‘이렇게까지 효과가 좋을 줄이야.’
수겸이 전해준 두 종류의 시약은 효과가 좋아도 너무 좋았다.
말이 안되는 수준이었다.
‘1년은 키워야 약초로써 사용할 수 있는 식물들인데,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약재상에 내다 팔아도 될 정도니까.’
평생을 약초만 만진 박동현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최소 상등급이고, 잘만 하면 최상등급도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이지.’
“에헤이. 이 사람들이 말이야. 속고만 살았나! 내가 말했잖나. 거봐, 이제 내 말 믿지?”
나이가 들면 되레 어려진다는 게 이런걸까.
박동현은 유치한 말을 하는 이장을 보며 피식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법이 뭐야?”
또 다른 주민이 박동현 옆에 찰싹 붙어 물었다.
“그건 죽어도 안 알려줘. 자네도 그냥 포기혀. 내가 매일같이 물어보는데 아직도 못 들었어. 에잉.”
지금까지 박동현을 같은 편 취급을 한 이장이 냅다 태세 전환을 했다.
비법 공유를 해주지 않는 사람은 내 편일 수 없다는 태도였다.
“그렇게들 궁금하세요? 말을 해드려도 못믿으실 것 같은데.”
박동현은 원래라면 오늘도 역시나 말을 해주지 않을 작정이었다.
어젯밤 수겸이 박동현에게 전화를 하기 전까진.
“동현이형. 이제 촉진제랑 유도제 둘 다 마을 사람들이 물어보면 은근슬쩍 흘려주세요. 시약들을 달라고 하면 많이는 말고 조금만 주세요. 맛만 좀 보게.”
열매가 맺히는 타이밍에 맞춰야 효과가 극대화 되는 과생장유도제와는 달리 생장촉진제는 어느 타이밍에 쓰더라도 눈에 띄게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지금 타이밍에 배포해서 작물에 쓰더라도 효과를 바로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이거 비밀로 하는것 아니었어? 그리고 우리야 자체적으로 소화하니까 괜찮은데, 벼 같은 농작물에 잘못썼다간 1년 농사 다 망칠텐데. 못 팔지도 모르거든.”
“그래서 나눠주더라도 조금만 나눠주세요. 이런 시약이 있다 정도만 알 수 있게요.”
“흐음∙∙∙∙∙∙. 일단 알겠어.”
박동현은 어젯밤 통화 내용을 회상하고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있는 이장과 주민 3명에게 말했다.
“새로 나온 비약 같은 거라고 보시면 돼요. 근데 이게 아직 정식 허가 제품이 아니라서 권해드릴 수가 없네요.”
수겸에게 일단 대답은 했지만, 내심 찝찝했던 박동현은 미리 이야기를 깔기 시작했다.
“그래도 몸에는 이상없는 것이니까 자네가 쓰는거 아닌가?”
이장이 물었다.
“그쵸. 저야 방울토마토도 재배해서 먹고 했죠. 어디 파는 게 아니시라면 조금 나눠드릴게요.”
“그러면 나도 좀 나눠주게나.”
“총각, 나도 좀 줄 수 있을까?”
박동현의 제안을 모두가 반겼다.
“그러면 사용법은 제가 적어드릴테니까 그대로 해보시고, 제가 드린 비료 쓴 작물은 절대 파시면 안돼요. 큰일나요!”
“알겠다니까.”
다시 한번 확답을 들은 뒤에야 박동현이 시약들을 조금씩 덜어 나눠주었다.
경기도 이천 작은 농촌에도 연금술이 스며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