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live as a civil servant in Moorim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처음에는 당황했던 연우혁이었지만, 천기수사는 생각보다 진지한 태도로 걱정해주고 있었다.
“광증이라니. 마두들을 붙잡아 포쾌로 부리는 게 어째서 광증입니까?”
‘광증이지 이 잡놈아.’
‘저 호로자식.’
마두들은 울컥해서 속으로 생각했다. 긴 무림 역사 중에서도 연우혁처럼 마두들을 붙잡아서 포쾌로 부려먹는 놈은 없었다.
“물론 네가 주화입마에 빠지거나 하지는 않았겠지. 하지만 혈마 또한 경지에 오르고 나서 이상해지지 않았더냐?”
허탈함은 아무리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초인이라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었다. 당장 초인이라 하더라도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닫고 천지를 개벽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당장 혈마가 저런 경우였다. 영생을 꿈꾸고 경지에 도달했는데 결국 피와 살로 이뤄진 육신은 천천히 늙어가길 멈추지 않으니 온갖 사술에 빠져들게 되었다.
천기수사가 보기에는 연우혁도 조금 위험해보였다.
혈마처럼 영생을 탐내지는 않았지만, 연우혁은 원래 관리로 사명감을 꽤 투철하게 갖고 있지 않았던가.
경지에 오르고 권력도 쥐었다지만 원래 세상은 일도양단하듯이 바꿀 수 없는 법. 허탈함을 느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런가?’
연우혁은 천기수사의 진지한 태도에 감화되어 본인도 깊이 생각에 잠겼다.
내가 사람이 달라졌단 말인가?
‘확실히… 혼례를 준비하면서 고관들 욕을 좀 하긴 했다.’
관직에, 권세에, 친분까지 있었던 만큼 연우혁은 조정의 고관들과 어울릴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은혜를 베풀어 준 젊은 부마를 매우 기꺼워하며 환영했다.
하지만 연우혁 입장에서는 이 관리들이 얼마나 해먹는지 눈에 안 보일 수가 없었다. 조정의 고관들이 받아먹는 뇌물과 비교하면 한경 관리들은 정말 청백리라고 해도 됐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해결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탐관오리가 한 명 있으면 모를까, 일단 기본적으로 조정에 올라온 관리들은 크고 적음의 차이가 있을 뿐 축재와 청탁에 재주가 뛰어났다. 애초에 그러지 않으면 올라오질 못했다.
한 명 잘라내면 대신 할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그 사람도 비슷비슷한 수준이니…
‘그런가? 내가 그런 허탈함 때문에 마두들을 포쾌로 만드는 일에 집착하게 된 것인가?’
“검존께 여쭤보는 건 어떠냐?”
“서신은 보냈습니다만 워낙 떠돌아다니는 분이셔서 아직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으음. 그도 그럴 법하군.”
“일단 포쾌들을 풀어주고 고민해볼까요?”
연우혁의 질문에 포쾌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러나 천기수사는 고개를 저었다.
“에이. 이미 잡은 놈들을 뭐하러 풀어준단 말이냐? 사람 찌르고 베는 무림인이 할 수 있는 덕업 중에 이만한 것도 드물 것이다.”
“하하. 감사합니다.”
“……”
포쾌들은 천기수사의 조상까지 속으로 욕했다.
* * *
‘혈마라.’
저 멀리 태수(泰水)가 보이고, 인근에 제갈세가의 깃발을 걸고 돌아다니는 표국들이 늘어났지만 연우혁의 생각은 다른 곳에 가있었다.
싸울 때는 그렇게 치열하게 죽일 방법만 생각했었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새삼 남의 일이 아니었다.
혈마처럼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태극검존께서는 원래 저런 사람이었다고 들은 것 같군.’
혈마와 비교한다면 태극검존은 초심을 정말 잘 유지한 경우라고 봐야 했다. 젊은 시절부터 중년까지 계속해서 싸움을 찾아 돌아다녔고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지금도 그건 달라지지 않았다.
태극검존은 어떻게 그리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인가?
‘역시 강함에 목표를 둬야 한단 말인가?’
혈마와 태극검존의 차이는 수십 가지가 넘을 것이다. 당장 익힌 무공부터가 마공과 정종무공으로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가장 그럴듯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서로가 가진 의(意)의 차이였다. 벽을 넘을 때 연우혁 본인 또한 그걸 느꼈었다.
패도적이고 파괴적인 무공을 익히며 살아온 혈마가 영생에 집착한 것 자체가 모순일 터. 그런 혼탁함이 결국 혈마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다면 연우혁은?
‘천기수사 님의 말에 일리가 있다. 나는 생각보다 의(義)를 신경 쓰고 있다.’
한경에서 일할 때부터 의협이란 말을 들으면 무슨 소리냐고 질색했었지만, 이 자리까지 오르니 이제 어느 정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봤을 때 연우혁 본인은 어느 정도 의협심이 강한 게 맞았다.
이 의협심 때문에 지금 허탈함에 빠져 마두들을 포쾌로 붙잡아 가두고 있다니. 그렇게 생각하니 어이가 없었다. 차라리 태극검존처럼 강자존 하나에 빠져서 살았다면 잡념이 없었을 것 아닌가.
‘웃기는 일이군. 나는 내가 생존이나 하다 못해 전생이나 후생에 집착하게 될 줄 알았는데.’
목숨이나 부귀영화, 그도 아니면 전생이나 후생의 깨달음을 얻기 위해 도가 쪽 술법이나 무공에 집착하게 되면 모를까 의협심이라니.
“잠깐 좀 걷겠다.”
연우혁의 말에 포쾌들은 혹시 또 새로운 마두들을 잡아오려나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양양의 마두들한테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잘 된 일이었다.
“모시겠습니다.”
“됐다. 혼자 걷고 오마.”
따라오겠다는 포쾌들을 말리고 연우혁은 혼자서 저잣거리를 걸었다. 한경처럼 번화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제법 큰 곳이라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으리, 귀찮게 좀 하지 마십시오!”
“자네가 똑바로 말 안 해주니까 이러는 것 아닌가!”
“말할 건 다 말했습니다! 자꾸 이러시면 포두님께 말할 겁니다!”
“이 사람이 정말!”
옆에서 시끄럽게 다투는 모습에 연우혁은 흥미로워하며 시선을 던졌다.
포쾌와 상인이 다투고 있었다. 물론 이 포쾌는 연우혁이 데리고 다니는 마쾌가 아닌 여기 지역의 포쾌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흥미가 생겼다.
“무슨 일인가?”
“!”
성질이 나서 다투던 둘은 불쑥 끼어드는 젊은 놈에게 화를 내려다가 멈칫했다. 복색을 보니 꽤 부유한 가문 출신 같았고, 이러면 한량이라 하더라도 멋대로 대하기 힘들었다.
“어… 그. 별 거 아닙니다. 공자.”
“왜 그러나. 말해보게. 어쩌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어슬렁거리는 젊은 공자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만은, 조 포쾌는 쓴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다점에서 촉대가 사라져서 말입니다.”
“촉대가?”
“예.”
등잔을 올리는 촉대(燭臺)는 제법 비싼 게 많은 만큼 다점에서 일하는 사람이 탐을 낼 만한 물건이었다. 당연히 다점에서 찾아내라고 포쾌들을 들들 볶아도 이상하지 않았다.
연우혁은 갑자기 옛 추억이 떠올랐다. 한경에 떨어졌을 때도 촉대를 해결하지 않았던가.
‘비슷할 가능성이 높겠군.’
“혹시 남아있는 등잔에 물기가 있었는가?”
“예?”
“등잔 말일세. 등잔.”
뜬금없는 질문에 상인은 웬 미친놈인가 싶었다. 그러나 조 포쾌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입을 열었다.
“물기는…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걸 기억하다니. 세심히 조사했군.”
“여기 나으리가 참 성실합니다.”
상인은 아까 도와주지 못한 게 미안했는지 조 포쾌를 거들어줬다. 조 포쾌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면 좀 말해줘도 되지 않나. 촉대를 빼돌린 놈이 있으면 소문이 안 돌 수가 없을 텐데.”
“아, 모른다고 했지 않습니까! 제발 저 좀 봐주십시오!”
보아하니 조 포쾌는 상인을 설득해 주변에 촉대를 빼돌린 놈이 있는지 알아내려는 것 같았다. 이런 장물은 몰래 팔더라도 소문이 안 퍼질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상인 입장에서는 얻는 건 없고 손해만 보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했다. 자칫하다가는 보복만 당할 수 있었다.
“촉대가 사라진 날 아침에 등잔을 관리했던 사람도 누군지 아나?”
“예? 예…”
“그게 누군가?”
조 포쾌는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아침에 등잔을 관리했던 사람은 막기라는 하인으로서, 낭인 무리와 어울리는 품성이 좋지 않은 자였다.
“말하지 않는 걸 보니 좀 의심이 갔던 모양이군. 잘 의심했네. 촉대를 가져간 사람은 바로 그 자일 테니까.”
“예?!”
처음 보는 공자가 속마음을 읽는 것도 놀라웠지만 범인까지 알아내자 조 포쾌는 더더욱 놀랐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십니까?”
“다점에서는 밤에도 찻잎을 찌느라 일을 하지 않나. 불빛이 있는데 촉대를 훔치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지. 심지어 등잔도 엎지 않고 말이야.”
“그건… 그것도 그렇긴 합니다.”
“찬물을 빼놓고 기름의 양을 줄여놓으면 등잔이 뜨거워져서 불이 빨리 꺼지지. 그러면 촉대를 가져가기 쉬워지고. 이런 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침에 등잔을 관리한 하인이지 않겠나.”
등잔은 기름을 채운 잔 밑에 찬물이 담긴 잔을 하나 더 넣어 온도를 조절하곤 했다. 당연히 몰래 훔칠 때 넘어뜨리기 쉬웠다.
“아니, 막기 그 놈이! 우 노파가 그리 잘 대해줬는데!”
옆에서 듣던 상인은 노해서 외쳤다. 막기라는 자 때문에 밤에 찻잎 찌던 우 노파만 곤란하게 된 것이다.
“…막기를 만나러 가봐야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 아니. 포쾌 나으리. 다시 생각해보십시오. 막기 그 놈이 낭인 무리와 어울리지 않습니까. 지금도 낭인 놈들과 같이 있을 겁니다.”
상인은 방금 분통을 터뜨린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포쾌를 말리려고 했다. 낭인들과 어울리고 있을 텐데 포쾌 혼자 가봤자 좋은 꼴을 못 볼 터였다.
“싸울 생각은… 없다. 잘 말해서 넘겨받아야지.”
조 포쾌는 우물대며 말했다. 자신도 조금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연우혁은 갑자기 궁금해져서 물었다.
“그냥 위에 보고만 해도 되지 않소?”
“그것도 그렇긴 한데… 그러면 그 할멈이 곤란하게 되어서 말입니다…”
이번에 하인 대신 누명을 쓴 우 노파는 조 포쾌한테 몇 번 차를 대접해준 적이 있었다. 물론 싸구려에 버리기 직전의 찻잎으로 만든 차였지만 대접은 대접인 것이다.
차마 발이 떨어지지 않았는지 조 포쾌는 몇 번이고 머뭇거리다가 작게 욕설을 내뱉고는 드디어 발걸음을 내딛었다.
“염병할 놈 같으니. 촉대는 왜 손을…”
“……”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 들고 있던 묵곤도 괜히 휘두르며 걸어가는 포쾌의 뒷모습을, 연우혁은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어쩌면 너무 거창하게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군.’
처음 포쾌가 되었을 때부터 연우혁은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난관들과 맞서며 의(義)를 펼쳐야 했다.
그 때도 딱히 절망하거나 허탈해하지는 않았다.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내갔을 뿐.
지금은 그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위가 존귀해지고 무공이 고강해졌는데 허탈해하거나 심마에 빠질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제야 확신이 들었다. 자신은 미친 게 아니었다.
연우혁은 자신이 의협심이 강하다는 걸 인정한 것처럼 지금 당장 모든 걸 바꿀 수 없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러므로 허탈해 할 필요도 없었다. 저 앞의 포쾌처럼 다시 하나씩 해나가면 그만이었다.
“같이 가도록 하지. 안내하게.”
“예? 공자. 지금 가는 곳은 낭인 패거리들이…”
“알고서 하는 말이다. 새 포쾌가 더 필요하거든.”
“???”
포쾌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혹스러워했지만 연우혁은 개의치 않고 크게 웃었다. 이 주변의 마두들을 깡그리 치워버리는 것도 혼례가 시작되기 전 괜찮은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대인, 대인!”
저 멀리서 환관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붓과 종이를 챙겨서 달려오는 모습에 연우혁은 의아해했다.
“왜 따라왔느냐?”
“대인께서 남몰래 사건을 해결하시면 빠뜨리지 말고 기록해오라고 하셨습니다.”
방금 사건을 하나 해결했지만 연우혁은 모르는 척 짐짓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그러도록 해라.”
환관은 무언가 수상쩍음을 느꼈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단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수행했다.
‘나중에 백성들도 읽을 수 있도록 기록하라고 하셨지?’
고민하던 환관은 붓을 들고 첫 줄을 적어내려갔다. 아무래도 이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았다.
-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