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76
76화
멀리 갈 것도 없었다.
들어오면서는 놓쳤던 것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으니까.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마자 보이는 마당 풍경.
건조 과정을 위해 가지런히 놓여 있는 뿌리를 보고 있노라면 말문이 턱하고 막힐 정도였다.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마땅한 표현을 찾이 못한 수겸이 민환에게 도움 요청을 했다.
“크다라고 하면 너무 섭섭하지?”
괜히 친구가 아닌 듯 민환 역시 마땅한 답을 찾지 못했다.
“어. 그건 너무 섭섭하지. 이건 진짜 괴랄하네.”
수겸은 지금까지 꽤 많은 수의 약초를 납품받아 연금술 가공을 했지만, 이렇게 생긴 건 처음이었다.
“이 약초 이름이 뭐에요?”
“그거 황기잖아. 황기는 나도 많이 가져다 줘서 익숙할텐데?”
“아∙∙∙ 걔가 얘구나. 그랬구나. 정도를 벗어나니까 알던 것도 낯서네요.”
“하하. 그런가? 우리 밭도 한번 가보자.”
박동현이 기대에 찬 눈빛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10분 정도를 걸어 도착한 밭은 확실히 원래 수겸이 알던 곳은 아니었다.
“밭 수준을 넘어서서 이건 이러다 숲이 될 기세네요.”
수겸은 손가락만한 굵기의 식물 줄기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그러게. 그걸로 사람 묶으면 못 풀겠다. 수겸아, 난 좀 무섭다. 여기가.”
“나도. 내 예상이랑 좀 다르네.”
“수겸아. 이 쪽은 황기, 저쪽이 당기야. 그리고 저기 구석에 있는 것들이 당백초랑 백작약이고. 설명 들으니까 기억나지?”
낯설어하는 수겸을 위해 박동현은 들고 온 손전등으로 비추어서 친절하게도 설명했다.
“네. 분명히 심었을 때 힘들었던 것도 기억나고, 위치도 기억나긴 해요. 이번엔 인삼도 보여주세요.”
수겸이 인삼 재배시설 쪽으로 걸어갔다.
“인삼도 작황이 좋아. 지금 1년이 좀 안됐는데, 크기로 보면 얼추 2년은 다 채운 애들이랑 비슷한 정도야.”
박동현의 표현을 듣다보니 ‘우리 애가 좀 크긴 하죠?’ 라며 발육 상태가 좋은 자녀를 자랑하는 아버지의 모습과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있으면 상업적으로도 쓸 수 있겠네요?”
곁다리로 들은 게 있는 지 민환이 물었다.
“그렇지. 최소 3년은 채워야 쳐주니까. 이게 진짜 말도 안되는거야. 수겸아 전에 그랬지.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조금씩 나눠줘도 된다고.”
“네, 제가 그랬죠. 어차피 시약은 만들면 그만이니까.”
일종의 월간 아르케의 일환이었다.
농작물에 사용하는 시약을 퍼뜨리는 것도 우리나라에서는 꽤 큰 효과를 미칠 것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내일 해가 뜨면 마을 한 바퀴 같이 돌자. 다들 널 엄청 보고 싶어하시거든.”
“제가 TV에 나온 연금술사인 건 아시는거죠?”
“이제는 아시지. 그래서 더 궁금해하시더라. 우리 마을에 오면 꼭 좀 찾아와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셔서 말이지.”
박동현은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럼. 일단 지금은 들어가고 내일 다시 나와보죠.”
울창한 숲의 초입이 떠오르는 밭을 뒤로 한 채 수겸 일행은 다시 박동현의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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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푸드 (Super Food)
보통 슈퍼 푸드라는 단어는 건강한 신체를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식물을 가르키는 말이다.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슈퍼 푸드이긴 한데.’
다음 날 박동현이 말한 마을 주민의 밭을 보면서 수겸이 생각했다.
“슈퍼 배추, 슈퍼 당근, 슈퍼 고추. 진짜 이게 맞아?”
수겸의 손 끝이 향한 모든 채소들은 말 그대로 슈퍼 사이즈였다.
“아니, 이거 안 맞아. 수겸아. 너 무슨 짓을 한거니?”
“하하∙∙∙하하∙∙∙∙∙∙.”
수겸이 멋쩍게 웃었다.
“이 총각이 그 총각인가?”
그 때 칠순은 넘었을 것 같은 어르신 한 분이 걸어오며 함께 속도를 맞춰 걷고 있는 박동현에게 물었다.
“네, 어르신. 제가 드린 시약 있지요? 그거 만든 총각이 저 총각이에요.”
박동현이 수겸을 가르키며 말했다.
“자네 정말 신기한 재주를 가졌더구먼.”
“안녕하세요. 여기가 어르신 밭인가요?”
“그려. 내 밭이니께 이리 왔지. 자네가 만든 영양제 덕에 이번 농사를 엄청나게 잘 됐네. 다른 노인네들도 나온다는 걸 내가 말렸네. 내가 마을을 대표해 감사인사를 전하네.”
“아닙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저도 본격적으로 농사에 써본 적은 없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만족하시는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
수겸은 일부러 말을 또박또박 천천히 말했다.
“맛도 좋고, 원래 작물들보다 훨씬 크니 얼마나 좋은지.”
노인은 수겸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혹시 다음 농사에도 쓰시고 싶으세요?”
제품의 가치를 판단할 때에는 실 사용자의 후기만한 게 없다.
수겸은 생장 촉진제 세트에 대한 평가를 물었다.
“그럼! 그렇고 말고. 자네가 팔아만 준다면야 우리는 대환영이지. 어떤감? 팔아주겠는가?”
이미 눈에 보이는 결과물만 봐도 대성공이었지만, 사용 후기까지 완벽하게 성공이었다.
‘조금 과할지도 모르겠지만?’
“제가 허가를 좀 받긴 해야하는데, 계속 가져다 드릴게요. 동현이형 통해서 드릴 것 같아요.”
“예, 어르신. 앞으로도 저한테 말씀해주세요. 아시겠죠?”
“동현이 자네가 있으면 안심이지. 자네들 모두 고맙네.”
노인은 감사 인사를 하고 밭에서 슈퍼 채소를 골고루 따서 건네 주고는 돌아갔다.
“다른 분들 경작지도 좀 볼 수 있을까요?”
연신 미소를 짓고 있던 수겸은 돌연 얼굴을 굳힌 채 물었다.
***
다시 박동현의 집.
“형. 근데 처음에 제가 알고 있던 수준이랑 달라진 것 같아요.”
어젯 밤과는 달리 돌연 걱정스런 얼굴의 수겸이 말했다.
“음∙∙∙ 맞아. 이걸 미리 이야기 했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네가 이런 것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을 것 같아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처음에 네가 내게 시약을 줬을 때 말했지. 많이 쳐줘도 50% 정도 효율일 거고, 대체 30%에서 40% 정도 효과일 거라고. 성장 속도나 식물의 성장 정도 측면에서 말이야.”
“네. 맞아요. 그건 저도 실험을 해봐야서 틀릴 리가 없었어요.”
직접 키운 방울 토마토에서도 확인한 내용이었고, 리카르도가 전해준 지식에서도 확인한 내용이었다.
“응. 분명 처음에 네 말이 맞았어. 지금 우리 밭에 있는 약초들은 아직 본격적으로 수확을 안했지만 마을 어르신들이 키우는 채소들만 봐도 정확했지.”
박동현은 수겸과 민환을 한 번 쳐다보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여기 사진 좀 볼래? 왼쪽이 처음이고, 오른쪽이 두번째로 키운거야.”
박동현이 휴대폰으로 보여준 사진에는 오이 두 개가 있었는데 둘 중 오른쪽 오이가 확연히 더 컸다. 검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더 길었고, 굵기도 더 굵어보였다.
“이 정도면 차이가 꽤 크지 않나요?”
민환이 휴대폰을 받아 들어 자세히 살폈다.
“연금술 효과가 바뀐 게 처음이네요. 이건 예상 못했던 문제인데. 생각하기 나름인데 어쩌면 심각한 상황일 수도 있겠어요.”
“제작자가 몰랐던 변수니까.”
박동현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일단 효과가 더 좋아진 것 아냐? 효과의 종류가 바뀐 게 아니고 효과가 증폭된거면 오히려 더 좋아진 것 아닌가?”
“지금 처음으로 예상 못한 변수가 있을 수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이런 변화가 항상 좋은 쪽으로만 일어나리란 보장이 없으니까 문제야.”
민환의 의문에 수겸이 답했다.
‘이러면 보통 설명이 튀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질 않네. 저쪽 차원에서는 발생한 적이 없는 일인걸까?’
수겸이 직접 알아내는 수 밖에 없었다.
“혹시 제 시약을 모든 주민분들이 받아가셨나요?”
“아냐. 내가 굳이 직접 들고가서 나눠준 건 아니라서 관심 있는 분들만 받아가셨지. 음∙∙∙ 대충 절반은 가져가신 것 같네.”
“그러면 시약을 전혀 쓰지 않은 밭 중에서 옆에 붙은 밭에서는 시약을 쓰고 있는 밭도 있겠네요?”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내가 모든 밭을 다 아는 건 아니라서. 잠깐만. 그건 이장님한테 물어보면 바로 알 수 있을거야. 이장님이 혹시 모른다고 시약 사용 현황을 파악한다고 하셨거든.”
“오! 그러면 좀 부탁드릴게요. 확인해볼 게 있어서요.”
수겸의 부탁에 박동현은 바로 마을 이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수겸의 요청대로 밭끼리의 경계에 맞춰 한 쪽은 시약을 사용하고 있었고, 한 쪽은 시약을 전혀 쓰고 있는 밭이었다.
“민환아, 어때? 이상한 게 보여?”
수겸이 물었다.
민환은 밭으로 내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고추를 하나 툭 땄다.
“동현이형! 여기 시약 안 쓴 것 맞죠?”
“응. 이장님한테도 확인했고, 여기 주인분은 나도 얼굴을 알아서 확실해.”
“음∙∙∙ 우리 시약이 농약은 아니지만 일단 유기농이란 말인데∙∙∙∙∙∙. 수겸아, 이건 딱 봐도 너무 이상하다.”
“뭔데?”
한 눈에 알아챈 수겸이 민환을 떠보듯 물었다.
“이 고추 크기를 봐. 혹시 오이고추인가 싶어서 쪼개서 냄새까지 맡았는데, 이거 엄청 매워. 매운 고추 주에 이 정도 크기면 절대 정상이 아냐.”
“맞아. 내 생각에도 시약을 안 썼다고 해도 이건 시약의 영향이라 봐야 해.”
수겸이 고개를 끄덕이며 박동현을 쳐다 봤다.
“형, 혹시 농가들이 유기농 인증 받고 유지하는 걸 왜 어려워하는지 아세요?”
“그게 자기만 잘한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라고 하더라. 아!”
박동현은 수겸의 질문에 무언가를 깨달은 듯 했다.
“제가 간과한 건 저는 화분에 담아 테스트를 해봤을 뿐 진짜 살아있는 땅에서는 안 해봤다는 거였어요.”
“응?”
수겸은 아직 감을 못 잡은 듯한 민환을 위해 부가설명을 시작했다.
“내가 만든 생장 촉진제랑 과생장 유도제는 전부 키우는 식물들한테 직접적으로 뿌리는거거든. 그래서 난 시약을 사용한 밭에만 효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었구나.”
“응. 내가 아까 유기농 인증 이야기 했지? 유기농 인증을 받으려면 그 마을 전체가 다같이 유기농 재배를 해야 한다고 들었거든. 왜냐면 내가 농약을 안썼다고 해도 바로 옆에 있는 밭에서 농약을뿌려 재끼면 그 영향을 안받는다고 할 수가 없거든.”
“우리 시약도 마찬가지구나. 효과가 퍼지기 시작한거였어. 그러니까 시약을 아예 쓰지 않은 밭의 고추가 이렇게 큰거고.”
“응. 식물이 자라는 토지에 시약의 효능이 섞이고 거기다가 자라면서도 시약을 쓰니까 시너지 효과가 일어난거야. 성장에 가속도가 붙어버리는거지.”
‘이건 부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아니라 평소처럼 글씨가 나타나지 않았구나. 그냥 원래 알고 있던 효과와 다름이 없으니까.’
“본의 아니게 이 마을 전체가 연금술로 만든 시약의 영향을 받아버린 셈이네.”
박동현의 목소리에 근심이 느껴졌다.
“맞아요. 시약을 써서 키운 작물 판매가 가능할 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시약을 써보겠다고 하신 분들은 몰라도 원하지 않은 분들에게는 엄청난 피해를 끼쳤네요.”
“무슨 수가 없을까?”
이미 마을 주민들과 돈독한 관계인 박동현의 입장에서는 난처한 문제였다.
“애매할 때는 정공법이 답이죠. 이 마을 주민들 밭에서 나는 작물은 전부 저희가 매입하죠.”
수겸은 시원시원한 답을 내놨다. 어차피 이제 돈이 부족한 수겸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민환아, 너는 정부 쪽에 담당자 알아내서 이 마을 전체에 대해서 시약 시험 농가로 허가해달라고 해주라.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효과 살려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형은 주민분들께 앞으로도 모든 농작물은 제가 다 매입한다고 말씀해주시겠어요? 금전적으로 피해는 없을테니까 괜찮지 않을까요?”
“어차피 돈벌이 수단이니까 네가 그렇게만 해준다면 오히려 좋아하실 수도 있어.”
박동현은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중에는 전부 제가 사용할 수 있는 약초로 농작물을 바꿀까 해요. 그것까지도 말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