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85
85화
따사로운 햇볕 아래에서 고운 빛깔을 자랑하며 피어 있어야 할 꽃이 고개를 처박고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간힘을 쓰며 아등바등 매달려 있던 꽃잎이 바닥에 나풀거리며 떨어졌다.
이 꽃, 저 꽃 사이를 옮겨 다니는 벌과 나비는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모두 죽어 버린 것일까.
무더운 여름 시원한 그늘막을 만들어 주던 아름드리나무의 잎사귀는 시커멓게 변색이 된 채 죽어 가고 있었다.
이름 모를 물고기가 헤엄치고 다니던 개천가는 어떤가?
허연 배를 뒤집어 까고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물고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지옥인가 싶었다.
마을 전체가 멈춰 버렸다.
수겸이 퇴원하기 하루 전 대대적인 조사가 이루어졌다.
조사 결과 탱크로리가 매달린 차량을 운전했던 운전자가 평소 앓고 있던 심근경색으로 인해 심정지가 발생했다고 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니 어쩔 수 있겠나.
단지 노후된 접합부를 미리 교체했더라면,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관리자가 현장에 배치가 되었더라면 작금의 상황까지 몰리진 않았을 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었다.
“그래서 언제 돌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최종 판단은 환경부의 몫.
그들이 지켜본 것은 사고 현장에서 추가 누출이 발생하고 있는지 여부와 대기 중 불산 가스 농도가 어떤지였다.
결과는 ‘정상’. 다시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저 나무들 좀 보십쇼. 밭에 심은 작물들은요? 이게 정상 맞습니까? 당신들 일 똑바로 한 게 맞나요?”
주민들은 울분을 토해 냈다.
사고 현장으로 파견 나온 사람들과 환경부 소속 담당자는 검사를 하고 검사 결과 보고서 한 장만 낸 후에는 다시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가면 그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불안함에 마을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그때 나타난 것이 수겸이었다. 수겸이 타고 온 트럭에는 박스가 한가득 실려 있었다.
“우선 테스트부터 하죠. 실제 현장은 처음이니까요.”
기관에서 마련해 준 보호복을 입은 수겸이 말라비틀어진 꽃 한 송이를 쳐다봤다.
수겸의 옆에 있는 건 민환과 이찬수 그리고 카메라를 들고 선 남자 한 명.
대한제약에서 고용한 촬영 전담 인력이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수겸과 파트너십을 맺은 대한제약으로서는 수겸의 업적이 널리 퍼지는 것이 이득이었다. 이보다 좋은 마케팅 효과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녹화가 시작됐다.
“사람이면 그냥 입에 넣고 꿀떡하면 될 텐데 무슨 방법이 좋을까요?”
수겸이 카메라를 쳐다보며 손에 든 디톡시를 입에 넣는 시늉을 했다.
“마침 대한제약에서 진행 중인 연구가 있습니다. 바로 제가 만든 시약을 추가 가공하는 것인데요, 연금술로 만들어진 상태를 원액이라고 치면 원액의 농도를 희석시킨다든가, 연고 형태로 만든다든가 하는 걸 뜻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대한제약의 제품 개발팀 이찬수 팀장이 직접 설명해 주신다고 합니다.”
수겸은 TV쇼에서 사회자가 게스트를 소개하는 것처럼 정중하게 손을 내밀어 카메라가 이찬수를 향하도록 안내했다.
“아, 안녕하십니까. 대한제약 이찬수 팀장입니다. 강수겸 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현재 대한제약은 연금술이 다양한 형태로 일상생활에 녹아들도록 연구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발생한 불산 사고 해결을 위해 사회 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저희 연구 내용을 적극 활용하고자 합니다.”
“연구가 제대로만 된다면 가격도 당연히 저렴해지겠죠?”
수겸은 답이 하나뿐인 질문을 했다.
“그럼요. 그게 저희 대한제약의 목표입니다. 예를 들어서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우리 모두 집에 하나씩 상처 난 곳에 새살이 돋는다는 연고가 있지 않습니까? 현재는 기관에만 납품하고 있는 힐링 포션을 개량하여 연고 형태로 만들 겁니다. 먼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주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강수겸 님과 저희 대한제약의 첫 번째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찬수는 예상외로 카메라 체질이었는지 하고자 하는 멘트를 빠뜨리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이건 일종의 PPL인 셈으로 수겸은 어차피 함께하기로 한 것, 제대로 대한제약을 밀어주기로 마음먹고 진행하는 일이었다.
“대한제약 연구진분들 총동원해서 만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수겸은 분사기가 달린 스프레이였다. 투명한 색의 유리병 안에는 회백색의 액체가 있었다.
“이건 제가 만든 디톡시를 액체화하여 스프레이 통에 넣은 겁니다. 이걸 이제 방금 보신 죽어 가는 꽃에 분사하려 합니다. 결과를 한번 보죠.”
치익― 치익―
두 번의 펌프질.
반응은 즉각적이었으나, 수겸의 예상보다는 드라마틱하지 않았다.
스프레이로 디톡시를 뿌린 직후 금방이라도 땅에 닿을 듯 고개를 숙이고 있던 잎사귀가 살며시 고개를 드는 것이 보였다.
작디작은 꽃도 생명이었다.
이제 조금은 살겠다며, 살 수 있겠다며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미 죽어 버린 꽃잎이 되살아나진 못했다.
이미 변색이 되어 버린 꽃잎이 톡 하고 떨어졌다.
그렇지만 수겸은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다시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성공이네. 이걸로 되겠어.’
수겸은 미소를 지었다.
수겸이 알고 있는 연금술 지식에 과연 디톡시를 액체로 만드는 방법이 없었을까?
당연히 아니다. 방법은 존재했다.
다만, 그 방법 역시 마나를 다룰 수 있어야 할 수 있을 뿐.
‘그러면 대량으로 제작해서 세상에 퍼뜨릴 순 없었겠지. 여전히 나 혼자 해야 하는 방법이니까.’
그래서 수겸은 방법이 있다는 사실부터 알리지 않았다.
가능성이 있을 것이라며 연구를 지지했을 뿐.
늘 그랬듯 방법은 존재했다.
최하나를 비롯한 대한제약의 연구원들은 방법을 찾아내었고, 그 결과 현대 인류의 기술로 연금술로 만든 시약을 가공해 낼 수 있었다.
“디톡시를 대량 살포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땅으로 스며들고, 하천으로 흘러들어 갈 겁니다. 당연히 곳곳에 녹아 있는 불산 성분을 모두 분해할 수 있겠지요.”
수겸은 장갑을 낀 손으로 오염되어 버린 땅을 만졌다.
“대한제약 연구원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저 혼자라면 절대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수겸의 인사로 첫 인트로 촬영이 끝났다.
수겸은 촬영 현장을 멀찍이서 보고 있는 재난 대책 본부 소속 공무원을 바라보았다.
“무책임한 놈들. 어떻게 이런 땅을 두고 괜찮다고, 정상이라고 할 수가 있지?”
그럼에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으로는 엄지 척을 했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박수를 치는 것이 보였다.
“욕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마무리부터 합시다. 길어지면 주민분들이 고생이시니까요.”
수겸이 트럭에 올라탔다.
* * *
이제 정말 수겸의 역할은 끝이 났다.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고, 이제 남은 건 제대로 진행되는지 지켜보는 것뿐.
혹자는 담당 공무원도 아닌 사람이 너무한 것이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적어도 여기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A부터 Z까지 수겸의 도움이 없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불산 가스가 퍼진 범위는 반경 5km 내외였지만, 이미 토양에 흡수되고 개천을 따라 흘러 버린 걸 생각하면 그 두 배 범위는 잡아서 디톡시 살포 작업을 하기로 했다.
위잉―
농약 살포용 기계가 디톡시를 싣고 하늘 위를 날아다녔다.
쏴아악.
드론이 날아가기 힘든 곳은 사람이 메꿔야 했다.
반경 10km 범위가 그리 넓은 것 같지 않아도, 빠진 곳이 있으면 안 되는 작업이기에 하루 만에 끝내기에는 무리인 범위.
작업은 이틀에 걸쳐 끝이 나고, 다시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후에야 주민들이 돌아왔다.
사고 현장이 일단락되자 수겸은 더 이상 김천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이제 다시 서울로 돌아갈 때였다.
수겸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선언했다.
“나 이제 며칠만 잠수 탄다. 진짜 힘들어서 뒤질 것 같아.”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고, 민환과 단둘이라면 어느 때보다 편안한 수겸이었다.
“또 다른 사람 됐네. 나랑만 있으면 그냥 애새끼인데.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더니, 필요할 때는 완전 다른 사람이 된단 말이지.”
수겸을 집까지 바래다준 민환은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고생했다. 좀 멋있긴 했어.”
“야야. 소름 돋으니까 이제 좀 가라. 잠 좀 자자.”
민환의 말에 수겸은 팔을 비비며 말했다.
“그래, 간다. 쉬어~”
* * *
이번 불산 가스 누출 사고 처리에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당연히 수겸이었다.
그렇다면 수겸 이외에 득을 본 사람은 누구인가.
정인섭과 이찬수였다.
[일 잘하는 정인섭.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 연금술을 발견한 정인섭]정인섭이 밀고 있는 타이틀이었다.
게다가 이번 불산 사고를 가장 먼저 캐치한 국회의원이었으며, 강수겸이 활약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 준 것도 정인섭이었다.
홍보할 것이 너무 많아서 문제.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다.
– 의원님. 이러다가 대선 후보까지 되시는 것 아닙니까?
정인섭이 받는 전화 중 절반은 비슷한 내용이었다.
강수겸을 만나기 전 정인섭은 전화를 거는 쪽이었지만, 이제는 전화를 받는 사람이 되어 버린 것.
“역시 수겸 씨를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야.”
정인섭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여기 또 정인섭과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대한제약의 이찬수였다.
이찬수는 오랜만에 복귀한 사무실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위로 향하는 모양의 새빨간 색의 화살표.
주식 거래를 해 본 사람이라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상한가 표시였다.
대한제약의 최근 주가를 검색하면 상한가의 연속.
랠리가 시작된 건 강수겸과의 계약 사실을 뉴스로 내보냈을 때부터였다.
기관, 개미들 할 것 없이 아예 돈다발을 대한제약을 향해 집어 던지는 형식이었다.
시장에 있는 돈을 진공청소기로 빨아들이며 대한제약의 주가는 신고가를 갱신했다.
“이찬수 팀장. 이제 오로지 강수겸 씨 서포트만 해. 다른 업무 할 것도 없어. 그것만 한 신사업이 없으니까. 알겠지?”
이찬수의 제품 개발팀이 속한 신사업 전략실의 최한영 실장이었다.
수겸이 월간 아르케의 일환으로 너튜브로만 대한제약에 접근했을 때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최한영은 이제 아예 강수겸 바라기가 되어 버린 상황.
“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로 두둑한 성과금까지 받은 이찬수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수겸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구소에서 연락받았는데 곧 힐링 포션을 활용한 연고가 완성된다고 합니다.”
“좋았어. 정식으로 식약처에 승인도 받아야 하니까 이 부분 잘 챙기고, 강수겸 씨 관련해서는 사소한 거도 좋으니까 전부 보고하도록.”
* * *
“우리 제품 저격한 것 맞지?”
“예, 맞습니다.”
그들이 보고 있는 건 불산 사고 현장에서 촬영한 수겸과 이찬수의 영상이었다.
영상 초반에 이찬수의 멘트가 그들이 심기를 건드렸다.
새살이 돋는 연고.
이찬수 역시 다분히 의도를 가지고 고른 단어였다.
그건 대한제약의 경쟁사인, 이제는 확실한 2등이 되어 버린 일성제약의 대표 연고가 쓰고 있는 광고 문구였다.
안 그래도 수겸과의 계약이 어그러져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찰나에 이제 실제로 판매량에 영향을 미칠 만한 상품이 나온다는 소식.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회사의 대표 상품이 미끄러진다면 2등 자리에서도 미끄러질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래서 계획은?”
일성제약의 부회장 김재동이 물었다.
“준비 중입니다.”
대답을 한 건 기획 조정실 조상호 실장.
“알겠지만, 자네가 무슨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든 간에 회장님은 모르시는 일이네. 알겠나.”
“예. 물론입니다.”
예기치 못한 인연이 기회를 가져오지만, 때론 기회는 위기를 몰고 오기도 하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