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84
84화
회사원이 무엇 때문에 일을 하는가.
회사원이 스스로 가장 인정을 받는다고 생각할 때가 언제일까.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은 ‘돈’이었다.
그렇다면 대한제약에서 제일 인정을 받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건 이찬수였다.
나라에서 인정한 연금술사, 강수겸의 가치를 먼저 알아보고 누구보다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그의 입지는 하루가 다르게 탄탄해지고 있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요즘만 같으면 세상 살맛 나겠다.’
이찬수는 자리에 앉아서 잠금 화면으로 바뀐 모니터를 보고서도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위잉― 위잉―
‘이번엔 누구시지?’
최근 며칠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들은 휘황찬란했다. 대한제약의 회장, 부회장은 당연히 포함되고 경쟁사인, 아니 경쟁사였던 일성제약의 이사 등등.
[강수겸]발신인을 보며 이찬수는 여러 단어를 떠올렸다.
인생의 귀인, 평생을 함께할 사람, 내 사람.
– 바쁘세요?
전화를 받자마자 대뜸 수겸이 질문을 했다.
간단하게라도 안부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이 예의일진대 그런 것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찬수는 버럭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찬수에게 수겸은 특별한 사람. 이 정도는 당연히 이해할 수 있다.
“아닙니다. 제가 바쁠 게 있나요. 그런데 무슨 일로?”
– 부탁 좀 드릴까 하는데 조금 번거로울 수 있어요.
“말만 하시죠. 할 수만 있다면 뭐든 도와드릴게요.”
– 전에 제가 일차적으로 재료는 직접 구하겠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러니 도움 안 주셔도 된다고.
“그랬죠? 아, 혹시 마음이 바뀌신 거라면 문제없습니다. 그 정도는 쉬운 문제니까요.”
– 지금 당장 그런 건 아니에요. 혹시 제가 재료가 필요하다고 하면 구해 주실 생각이셨겠네요?
“당연하죠. 그건 호의가 아니고 사업 파트너로서 당연한 일이죠. 비즈니스니까요.”
– 혹시 그 당연한 일을 테스트 삼아 한번 해 보시는 건 어떠세요?
“예?”
수겸이 부탁한 건 사고가 일어난 김천 현장에서 바로 시약들을 찍어 낼 수 있도록 재료를 공급해 달란 것이었다.
“충분히 가능하죠. 손발을 맞춰 보려면 당연히 연습이 필요하니까요. 필요하신 양이랑 언제까지 필요하신지 말씀해 주시겠어요?”
– 최대한 많이, 가능한 즉시 필요합니다.
“예?”
이찬수가 또다시 물음표를 던졌다.
– 부탁 좀 드립니다. 제가 부탁할 곳이라곤 팀장님밖에 없어서 그렇습니다.
‘팀장님밖에라고 했다. 나밖에 없다고.’
이찬수의 마음을 간질간질하게 만드는 마법의 단어였다.
“맡겨만 주십쇼! 뭐든 해내겠습니다.”
군기가 바짝 든 신병의 자세였다.
* * *
수십 명의 취재진이 병원 출입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
“어떻게 알고 김천을 찾아갔답니까?”
“그러게요. 까딱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거길 들어간 걸 보면 보통 사람은 아니에요. 그쵸?”
의견을 나누는 건 기자와 카메라맨이었다.
“관종이야. 관종. 지금 봐. 결국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취재를 오게 만들었잖아.”
수겸을 아니꼽게 보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들렸다.
그때 회전문을 밀면서 수겸이 나타났다.
“김천 사고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직접 가서 도움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가 있습니까?”
수겸의 처음 계획은 기자들의 질문을 전부 무시하려는 것이었다.
처음엔 그랬는데, 수겸의 발이 뚝 멈췄다.
“짧게만 말씀드리고 가겠습니다. 나머지는 나중에 하시죠. 지금도 현장으로 가려고 하는 거라 시간이 없어서요. 아까 어느 분께서 이유를 여쭤보셨나요?”
“수겸아. 일단 나가자.”
민환은 수겸을 제지했지만 이미 결심을 한 수겸을 말릴 수 없었다.
기자 한 명이 손을 들어 본인이 했음을 알렸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게 첫째입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100% 이타적인 마음으로 움직였냐? 라고 여쭤본다면 그건 아니에요. 저는 성인군자는 아니거든요.”
“그러면 왜?”
기자가 녹음기를 수겸의 앞으로 가져다 대며 물었다.
“연금술은 확실히 우리 삶에 도움이 된다는 걸 계속해서 알리고 싶습니다.”
수겸의 눈이 빛났다.
“연금술로 만든 약들의 안정성 의혹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자들 무리의 제일 끝, 잘 보이지도 않는 곳에서 질문이 들렸다.
“현재까지도 동물 실험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건 법안 통과 전에 몇 개월에 걸쳐서 실험한 사항이고요. 본의 아니게 확실한 안정성 테스트 전에 유통을 하게 됐는데, 아직까지 부작용이 발견된 사례도 없습니다. 누가 안정성에 대해 의혹을 제기했다는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수겸의 어투에 삐딱선이 묻어 나왔다.
연금술을 알리기 위해 행동했고, 의견을 밝히고 있는 상황에 의혹에 대해 해명하라니.
불쾌할 수밖에 없는 상황.
수겸이 한마디 더 하려던 찰나 나타난 건 대한제약의 이찬수였다.
“자, 인터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자세한 건 공식 보도를 내보낼 테니 확인해 주세요.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이찬수가 양팔을 쫙 벌려 기자들과 수겸 사이의 바리케이드가 되었다.
그사이 민환이 수겸을 데리고 이동했다.
“하시려던 말씀은 계속하셔야죠!”
“네, 여기까지만 할게요.”
끈질긴 누군가의 질문도 가뿐히 넘긴 이찬수는 수겸을 미리 대기시킨 차량으로 안내했다.
“조금 늦었네요. 시간 맞추려고 대기하려다 잠깐 한눈을 판 사이에.”
이찬수가 머리를 긁적였다.
“팀장님 와 주셔서 감사해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민환이 고개를 가볍게 숙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당연히 와야죠. 누구 일인데요.”
대화는 민환과 하면서 이찬수의 눈은 수겸을 향했다.
“아, 감사합니다. 팀장님 없으셨으면 저도 모르게 살짝 욱했을 것 같아요. 쓸데없는 소리라도 했으면 곤란할 뻔했습니다.”
“하하. 기자들 상대하는 건 항상 어렵죠. 저도 경험이 많지는 않아 조언을 해 드리기 뭐하군요.”
“저… 그런데 어제 부탁드린 건 혹시?”
“아! 일단 확보한다고 했는데 충분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회사에도 보고를 해 놨으니 이번에 들고 온 약초들 기준으로 컨펌하시면 같은 품질로 계속 공급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재료들은 전부 현장에 있나요?”
수겸이 고개를 돌려 차량 안을 살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아! 제가 민환 씨한테 전해 듣기로는 당일에는 천막 안에서 작업하셨다고. 그게 아무래도 불편하실 터라 창고 하나를 섭외해 놨습니다. 현장 근처면 더 좋았을 수도 있는데 현재는 완전 출입 금지가 되어서 나중에는 이동을 조금 하셔야 해요. 괜찮으시죠?”
“와. 진짜 신경 많이 써 주셨네요. 너무 좋습니다. 저야 아무래도 따로 공간이 있는 편이 훨씬 좋죠.”
* * *
정말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었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는 기계가 방치된 것도 아니고, 공간을 구분하는 가벽이 있는 것도 아닌 정말로 텅 빈 공간.
“완벽하네요.”
소리를 막는 어떤 것도 없다 보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수겸의 말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뿌듯하네요. 재료를 실은 트럭도 바로 도착할 겁니다. 일정 내내 저도 옆에서 도와드릴 예정이니 필요하신 게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근데 팀원분들도 몇 분 계시던데 왜 팀장님이 직접……?”
줄곧 이상하게 생각하던 민환이 참아 왔던 질문을 던졌다.
“그게 말입니다. 이게 업무 성격이 조금 애매해서 말이죠. 요새 왜 MZ세대니 뭐니 유행하지 않습니까? 저희 팀원들이 딱 그거라서요.”
“아…….”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으면 불편해요. 하기 싫어요. 이걸 왜 제가 하죠. 이 세 가지 질문이 꼭 나옵니다. 제가 그 꼴을 보느니 직접 하고 말죠.”
이찬수는 마침내 대나무 숲을 찾은 것처럼 속에 있던 말을 내뱉었다.
“그러시구나. 힘드시겠어요.”
“휴우. 그래서 팀원들은 원래 하던 일이나 시키고 제가 현장 나온 거죠. 사실 수겸 씨 돕는 일은 재밌기도 하지만요.”
체했을 때 손을 따면 속이 편안해지듯 마음속 말을 내뱉은 이찬수의 안색은 한결 편안해진 것 같았다.
“하여튼 대한제약은 수겸 씨의 행보를 함께하기로 정한 상태입니다. 그래서 제게도 무제한 예산이 주어졌어요. 수겸 씨에 대한 일이라면요. 필요하신 건 말만 하십쇼. 하하.”
이찬수가 가슴을 탕탕 쳤다.
빠앙― 빵!
트럭 경적 소리였다. 타이밍 좋게 재료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민환아, 여기 우리 작업실 꾸민다 생각하고 전부 세팅할까 해. 독성분이 아무래도 공기 중으로도 퍼지고 물에도 녹았을 거라 광범위하게 제독 작업을 해야 할 거야.”
“너 없이도 다 할 수 있어. 너 지금 오지랖이야. 알아?”
“어, 맞아. 알고 있어. 근데 한번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지.”
“에효. 일개 직원이 말해서 뭐 하냐. 그러고 보니 이찬수 팀장네 팀원 마음이 이해가 되기도 하네.”
“힘든 건 이해하지만 후딱 끝내자. 오케이?”
“응. 오케이.”
민환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수겸이 이찬수에게 부탁한 재료는 다양했다.
“민환아, 일단 마법진부터 그려야 하니까 잉크부터 만들자. 그다음에는 힐링 포션 조금 만들고, 디톡시에 올인이야.”
“힐링 포션도 좀 부족하지 않아? 다친 사람들도 꽤 있을 텐데.”
“여기서 조금 보급하고 나머지는 지원 요청해서 받으라고 하면 돼. 디톡시는 어디로든 대량 배포된 적이 없어서 무조건 만들어야 하니까.”
수겸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 스트레칭을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재료가 제 생각보다 훨씬 많이 기상천외하네요.”
이찬수가 도축장에서 바로 가지고 온 소의 피가 담긴 통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하하. 생각도 못 하셨죠?”
민환은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웃었다.
이윽고 작업이 시작됐다.
마법진을 그리는 재료를 만들기 위한 마법진은 간소하게 그렸다.
그렇게 잉크가 완성되자 수겸은 널따란 창고 바닥을 보며 견적을 내기 시작했다.
‘너무 크면 마법진 가동할 때 드는 마나가 감당이 안 될 거야. 차라리 우리 작업실처럼 여러 공정별로 나눠서 그리자.’
분해하고, 다시 합성하고, 가공하는 마법진들이 완성됐다.
이찬수는 멀찍이 떨어져 작업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미스터리 서클 같네요.”
“밀밭 같은 데에 외계인이 그리고 갔다는 무늬요?”
수겸이 마지막으로 룬어들을 점검하며 이찬수의 말에 대꾸했다.
“네. 신기해요. 보고 있으니 빠져드는 것만 같네요. 정말로 지금 판타지 세상에 있는 것 같아요.”
이찬수는 어릴 적 소설책을 읽고 떠올리던 상상이 현실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다.
“저… 혹시 작업을 다 끝내시면 지금 그리신 마법진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생각해 본 적은 없는데, 말씀을 따로 안 하셨으면 전부 지우고 갔겠죠? 여기 창고가 저희 것도 아니니까요.”
수겸이 바닥에서 시선을 뗀 후 이찬수를 쳐다봤다.
“혹시 지우지 않고, 일반인에게 공개해도 될까요?”
이찬수가 조심스레 물었다.
“어차피 이게 있다고 해서 뭐가 되는 건 아니라서 전 상관없어요. 근데 무슨 의미가 있나요? 실제로 연금술을 펼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흥미가 있을까요?”
“어우, 이 자체로도 아마 사람들이 물밀듯이 올 겁니다. 누가 뭐래도 우리나라에서 제일 핫한 사람은 수겸 씨니까요.”
“그런가?”
수겸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재밌겠네. 팀장님 좋은 생각 같은데요? 수겸아. 한 번 해 봐. 어차피 그린 건데 놔둔다고 손해 볼 것도 없지 않아?”
민환이 이찬수를 거들자 이찬수가 수겸 몰래 민환에게 살포시 윙크를 했다.
“뭐. 너까지 그렇게 말하면. 좋습니다. 해 보죠. 최초의 마법진 전시가 되는 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