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83
83화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인해 사고가 난 모양이었다.
이유를 묻고 싶지만 이미 현장에 있던 사람은 모두 사망.
‘아마도 운전자의 신변에 이상이 생겼겠지.’
최초 진입 시에 유출부 처리는 하지 못하고, 겨우 시신만 수습해 나왔다.
그러다 차량 보닛에서 스파크가 튄 것이다.
– 불길이 옮겨 가기 전 조치가 필요합니다. 대장님 지시를.
무전 속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완전 중심부까지는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가스 농도는 아까보다 분명 낮아졌을 겁니다. 잠깐이라면 버틸 수 있어요!”
수겸이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해서 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가스가 조금씩이라도 새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중심부는 해당되지 않지만, 분명 주변부는 가스 농도가 내려가고 있었다.
농도는 내려가고, 확산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상황.
‘디톡시는 대량 30분 정도 효과가 유지된다. 그 시간 안에 그걸 해낼 수만 있다면.’
“소방복 가져와. 그리고 혹시 함께 현장에 들어갈 지원자 있나?”
박인호가 결심한 듯 지시를 내렸다.
“제가 가겠습니다.”
손을 번쩍 든 소방대원의 이름은 이한.
“위험한 상황인 건 알고 있겠지?”
“예. 인지하고 있습니다.”
박인호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자원했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었다.
수겸은 이한과 함께 현장으로 이동을 시작했다.
특임대와 마찬가지로 시야에 보일 때까지는 차량으로 이동하다가 도보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여기까지 걸린 시간은 화재 발생 시점으로부터 10분 내외.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어디까지 갈까요?”
이한은 처음 이야기와는 다르게 계속 접근하는 것이 걱정스러운지 수겸에게 물었다.
“이제부터는 여기 계셔도 됩니다. 걸어갈게요.”
수겸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차에서 내리면서 민환이 미리 구해 둔 페인트 한 통을 챙겼다.
‘이걸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하긴 어제까지만 해도 내가 이런 사고 현장에 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으니까.’
“수겸 씨!”
이한이 수겸을 불러 세웠다.
“같이 갑시다. 수겸 씨 혼자 보내면 우리 소방관 체면이 뭐가 됩니까?”
이한은 수겸 옆에 서서 보폭을 맞추었다.
잠시 후 소방차 사이렌 소리를 들은 특임대 세 명이 수겸 쪽으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때마침 오셨네요. 제가 생각한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명의 소방관이 수겸을 동시에 쳐다봤다.
“저는 일단 현장까지 진입을 할 겁니다.”
“안 됩니다. 반대입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민간인이 위험 지역에 출입하는 걸 허용할 수는 없습니다.”
소방관들은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수겸의 의견에 반대했다.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구조대 대장님께 허가를 받았습니다. 게다가 지금 네 분은 마땅한 계획이 있습니까?”
“아까는 없던 소방차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부터라도 살수한다면 화재 진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세요?”
수겸은 좀 전보다도 더 몸집을 키운 화마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또라이라고 생각해도 되고, 미친놈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지금 저를 제압하시는 게 아니라면 속행하겠습니다.”
“…….”
이한은 침묵으로써 대답을 대신했다.
“제가 어떤 수를 쓰면 한순간 불길이 제압될 겁니다. 분명히요. 그때 여러분께서는 곧장 화재 원인 제거 및 가스 누출에 관해 조치를 취해 주세요.”
말은 참 쉬웠다.
“쉽게 보실 일이 아닙니다. 맹독성 가스가 가득 찬 상황에서 지금 입고 계신 장비도 이제 곧 가스가 스며들 거예요.”
수겸이 입고 있는 건 특수 보호복이 아닌 일반 소방복. 그나마 별도의 조치를 취해 주었다지만 한계가 있는 건 당연한 일.
“그러니까 빨리 시작하죠. 여러분은 우선 소방차에 시동 거시고 대기해 주세요. 이제부터는 저 혼자 움직입니다.”
수겸은 마치 현장 구조대장처럼 움직임을 지시했다.
수겸이 달리기 시작했다.
‘복잡한 수식이 아니니까 조금은 투박해도 될 거야.’
다행히 아직 디톡시의 효과로 이상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다.
수겸은 벽에 처박힌 탱크로리 차량을 무시하고 넓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창고 안에 있는 기계는 벽에 붙여 진열되어 있어 가운데는 뻥 뚫린 구조였다.
‘되겠어.’
탕! 데구르르.
수겸은 거칠게 페인트 통을 열고 아무렇게나 뚜껑을 집어 던졌다.
‘최대한 넓게.’
마법진을 이루는 가장 바깥의 원을 가능한 한 크게 그리고 갖가지 수식을 품고 있는 룬어를 그리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그리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수도 없이 마법진을 그린 경험 덕분이었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수겸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쳐다봤다.
‘물이 필요한데. 천장을 뚫을 순 없겠지.’
수겸이 의도한 건 마법진 위에 물을 최대한 많이 뿌리는 것이었다. 그러기엔 여태 쏟아지고 있는 빗줄기가 최적이지만 아쉽게도 창고는 천장으로 막혀 있었다.
수겸이 무전기를 들었다.
“혹시 창고 안으로 물을 뿌려 주실 수 있나요?”
– 화재 진압 때 사용해야 해서 많이 사용할 순 없지만 가능합니다. 바로 이동하겠습니다.
무전이 끝나자마자 소방차가 공장으로 다가와 살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방에 물이 나오는 관창을 잡은 소방대원 하나, 바로 그 뒤에 서서 함께 힘을 보태는 소방대원 하나, 중간에 호스가 꼬이지 않도록 하는 소방대원 하나.
특임대 세 명이 자리를 잡고 섰다.
– 수겸 씨. 옆으로 비키세요. 수압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강합니다.
이한의 무전이었다.
“잠깐이면 됩니다. 여기 제가 그린 곳 위에 물이 흥건해지도록 하는 게 목적이에요.”
5초, 4초, 3초, 2초, 1초.
수겸이 물이 뿌려지는 걸 보며 속으로 시간을 재다가 다시 무전기를 들었다.
“됐습니다. 이제 탱크 쪽 봐주세요. 바로 시작합니다.”
수겸은 소방 장갑을 과감하게 벗었다.
– 헉! 안 됩니다!
– 안 돼요!
수겸의 돌발 행동에 모두가 당황하여 소리쳤다.
수겸은 곧바로 준비한 힐링 포션을 손 위에 붓고, 디톡시도 으깨서 손에 발랐다.
“제발 버텨라.”
수겸은 마법진 위에 손을 올렸다.
어둠이 자리 잡은 공간을 푸른빛이 채우기 시작했다.
이 순간 수겸은 리카르도에게서 처음 연금술을 배운 때가 떠올랐다.
“여기 보게나. 마법진 위에 있던 물들이 어디로 갔겠나?”
인자한 리카르도의 목소리가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그러게요. 진짜 신기하네요.”
“지금 내가 그린 마법진은 물을 분해해서 산소만을 추출한 것이라네. 그 외 성분은 모두 분해가 된 거이지.”
“하하. 그러면 건조기가 필요 없겠네요? 빨래를 안에 두고 물기 날리면 바싹 마르지 않을까요?”
“자네는 어쩜 그런 생각을 하나? 재밌군. 허허.”
리카르도가 어린아이처럼 손뼉을 치며 웃었다.
수겸은 회상을 멈추고, 현재에 집중했다.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지만 말이야.’
화아악―
일순 돌풍이 불었다.
창고 안에서 시작된 바람은 모든 걸 싣고 밖을 향해 내달렸다.
‘산소까지 말이지.’
마법진 위에서 새하얀 연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마치 드라이아이스를 활용해 무대 연출을 할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푸쉬식.
창고 외벽에 붙은 불이 사그라들더니 이내 하얀 연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완전히 꺼진 것이었다.
수겸이 그린 마법진은 처음 리카르도에게서 배운 것처럼 마법진 위의 물을 매개체로 한 것이었다.
그때에는 산소만 남기는 추출 과정이었다면, 이번엔 이산화탄소가 목표였다.
‘한꺼번에 이산화탄소를 내뿜을 수만 있으면 그게 바로 소화기지.’
작전 성공을 직감한 수겸이 소방대원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척 내보였다.
물론 그들 입장에서 수겸은 하얀 연기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이한을 포함해 소방대원 네 명은 움직여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는 베테랑들이었다.
일사불란한 움직임.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생각했던 대로 작전을 수행하는 모습이었다.
“와, 진짜 대단들 하시네. 소름이 다 끼쳐.”
정작 본인인 한 것에 대해 무감각한 수겸.
“아, 이제 어지럽다.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수겸은 조금씩 힘이 빠지는 다리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소방차를 향해 걸었다.
털썩―
소방차 타이어에 등을 대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하아. 힘들다. 버텨야 하는데……. 이대로 쓰러지면 안 되는데…….’
수겸은 안간힘을 써서 버티려 했지만, 이내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 * *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아주 지랄도 풍년이네.”
병상 침대 옆에서 뉴스를 보던 민환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으윽. 아오, 머리야.”
수겸이 눈을 간신히 뜨고는 양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어? 언제 일어났어? 잠깐만 움직이지 말고 있어 봐. 의사 선생님 모시고 올게.”
민환이 몸을 일으키려던 수겸을 지그시 눌러 침대에 다시 눕혔다.
민환이 데리고 온 의사의 간단한 진찰이 끝난 후에야 수겸은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야? 시간 감각이 없는데.”
“드라마였으면 한 일주일 지난 상황일 텐데, 네가 그 생난리를 친 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단다.”
“아 그래? 사고 수습은 끝났고?”
“어. 누가 아주 목숨을 내놓고 작전 수행을 해서 그 이후에 누출 부분은 막았지. 그뿐이지만.”
민환이 말끝을 흐렸다.
“왜? 네가 아까 욕하던 게 들리긴 했는데 그거 때문이냐?”
“내가 욕한 건 넌데? 미친 새끼야. 아주 뒤지려고 환장을 했지? 네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놈이냐? 어? 누가 보면 슈퍼히어로라도 된 줄 알겠어. 얼마 전까지 다리까지 절던 새끼가.”
민환이 중간에 쉼표 하나 없이 다다닥 말을 쏟아 냈다.
“뭐 하냐? 딕션 봐라. 너는 힙합은 안 되겠네.”
“어휴. 말하고 나니까 속이 다 후련하네. 너 진짜 위험했어. 알아?”
“지금 무사하니까 다행이지. 근데 지금 누워서 생각해 보니까 그때는 진짜 빙의라도 당한 것 같아. 내가 평소에 그렇게 겁이 없는 놈이 아닌데 말이지?”
수겸은 이불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내가 속이 터지지. 수겸아. 우리 생긴 대로 살자. 너 그렇게 살다가는 할머니보다도 먼저 간다. 그게 제일 불효야 임마.”
“그러게. 네 말이 맞네. 근데 진짜로 바깥 상황은 어떤데?”
수겸이 눈빛을 달리하고 재차 질문을 했다.
“네가 그렇게 사태 진정시키고 오늘 새벽인가 재난 대책 본부인가 무슨 본부를 구성했다고 하더라. 근데 말만 그러지 달라진 부분이 없어. 그냥 소방관들만 뺑이 치고 있어.”
“이제 기사도 좀 나고 했을 텐데?”
“어젯밤에 서울에서는 산사태가 나서 지금 기사가 분산이 되어 버렸어. 주목도 못 받으니 관계 기관에서도 뭉그적거리고 있는 형편이야. 들어 보니까 불산이 그 공장이 있는 마을 전체에 퍼져서 당분간 돌아갈 수도 없다고 하더라.”
“흐음. 그래?”
수겸이 창밖을 봤다.
누군가에게 어제까지 태풍이 몰아쳤다고 하면 거짓말이라고 할 것 같은 맑은 하늘이었다.
‘공기 중에 불산이 섞여 있지만 말이지.’
“그래도 이왕 시작했으니 마무리까지 확실히 해야 하지 않겠니?”
“응?”
“하나만 더 부탁하자. 이번엔 위험한 건 안 할 거야. 그냥 연금술만.”
“내가 널 말려서 뭘 하겠니. 내가 네 아빠도 아니고.”
“그건 맞지.”
수겸이 고개를 끄덕이자, 민환이 주먹으로 수겸의 옆구리를 후려쳤다.
“크윽. 여기 환자가 매 맞고 있어요!”
“닥쳐! 닥치라고!”
잠시 후.
“그래서 부탁할 게 뭔데? 작업실로 가게?”
“아니. 이번에 맺은 인맥 활용해야지. 해 보니까 좋더라.”
“뭐가?”
“현장 조달.”
수겸은 벌써부터 누굴 부려 먹을 생각에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