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82
82화
투두두둑.
천막 위로 비가 줄기차게 쏟아졌다.
형광색 우비를 뒤집어 쓴 경찰관은 통제를 위해 수신호를 반복하며 호루라기를 불었다.
중앙지휘부 안에서는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현재 반경 1.5Km 내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대피령을 10km로 반경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그건 무리가 있습니다. 범위 내에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킨다고 해도 대피처도 마땅치가 않습니다.”
구조대 대장인 박인호의 제안을 김천 경찰서장이 단칼에 거절했다.
“상황이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바람이 휘몰아쳐서 확산 방향을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노출이 된다면 치명적이에요.”
“그러면 주민들이 밖으로 나와야 한다는건데 이동은 어떻게 할겁니까? 조금만 노출되도 위험하다면서요? 걸어서 움직이는 사람이 있으면 안된다는건데 차량 지원은 방법이 있나요?”
경찰서장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이미 대피할 사람은 대피했고, 태풍이 현재 상황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지만 덕분에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기도 했다.
“그것보다도 일단 근본적인 원인부터 제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방 계획은 어떻습니까? 제가 알기론 아직 사고 발생 현장에 접근조차 못하셨다던데.”
경찰서장의 질책성 발언에 박인호가 입을 꾹 다물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화학 물질 노출 사고에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장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하∙∙∙∙∙∙.”
경찰서장이 관자놀이를 꾹 누르면 신음소리를 냈다.
현장에서 대응하기엔 지원이 턱없이 부족했다.
“강수겸씨한테서는 그 뒤로 전달 받은 내용 있습니까?”
경찰서장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듯 박인호에 물었다.
“아직∙∙∙∙∙∙. 곧 완성된다고 했으니 일단 기다려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둘의 시선이 건너편 천막을 향했다.
사고 발생 5시간째.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수겸은 한 시도 쉬지 않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수겸아. 이제 가지고 있는 재료는 전부 다 털었어.”
민환이 재료가 가득 담겨 있던 상자를 닫았다.
“응. 나만 빨리 하면 되겠다. 미리 이거 만들어서 진짜 다행이다.”
수겸이 가리킨 것은 마법진이 새겨진 스크롤이었다.
그런데 예전에 쓰던 스크롤과 다른 점은 이건 진짜 양의 가죽으로 만든 양피지라는 점.
가로, 세로 모두 1m 길이의 양피지에다가 영구적으로 보존되는 시약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그러게. 연구소에 가서 쓴다고 만들어 두더니 제대로 써먹네.”
민환이 엄지 손가락을 척 들었다.
‘남의 건물 바닥에 마법진을 그릴 수가 없으니까 만든건데 운이 좋았어.’
한 가지 아쉬운 건 크기였다.
“조금만 더 컸으면 속도가 더 났을텐데.”
“그건 어쩔 수 없지. 이게 어디야.”
둘이 정신없이 움직여서 만든 건 힐링 포션 250병 분량과 디톡시 100개였다.
“양이 충분할 지 걱정이네. 일단 나가자. 전해드려야지. 민환아, 여기는 나 혼자 들어가고 너는 페인트 같은 거 좀 구해줄 수 있냐?”
“페인트는 왜?”
“나중에 시약을 대량으로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우리 작업실이면 내가 만들겠는데, 여기는 그게 좀 힘드니까. 페인트로 마법진이라도 그릴까 싶어서.”
“일단 알겠어. 차 타고 나갔다 오면 금방이니까.”
민환은 바로 밖으로 향했고, 수겸은 중앙지휘부로 향했다.
“아! 혹시 다 되신겁니까?”
박인호가 수겸의 등장에 반색하며 물었다.
그 사이 경찰서장은 주민 대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리를 뜬 상황이었다.
“예. 힐링 포션과 해독 효과가 있는 디톡시를 만들었습니다. 테스트를 해봐야겠지만 어느 정도는 효과가 있을 겁니다.”
수겸은 본인이 만든 시약에 자신감이 있었다.
“오! 기다렸습니다. 일단 대원들한테 써야겠습니다. 초기에 노출된 대원들이 있어서요.”
박인호는 손짓으로 가리켜 수겸이 들고 온 시약들을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도움이 되셔야 할텐데. 괜히 찾아와서 민폐만 끼치는 게 아닌가 걱정 됩니다.”
수겸이 괜히 앞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채 3분도 지나지 않았을 때 밖에서 반응이 왔다.
“중독 증상 사라졌습니다. 힐링 포션으로 피부에 입은 화상도 치료되고 있습니다!”
다행이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 구조계획을 짜볼 수 있겠군요.”
박인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 이제요?”
수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사고가 난 지 수시간이 지났는데 왜 구조를 안하고 넋놓고 있었단 말인가?
수겸은 그제서야 천막 밖에 있는 소방대원들의 복장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 왜 일반 소방복을 입고 계신거에요?”
“∙∙∙∙∙∙.”
박인호는 인상만 찌푸릴 뿐 대답이 없었다.
“설마 없는 겁니까?”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화학물질 보호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대원은 현재 3명입니다. 그 외에는 접근 시도조차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오늘은 진짜 사람을 잡겠네.’
그 때 경찰서장이 다시 돌아왔다.
“군 병력 지원요청은 연락이 왔습니까?”
박인호가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연락이 오긴 했는데∙∙∙∙∙∙. 출동 불가하답니다.”
“네?”
예상하지 못한 답변에 박인호는 당황했다.
“군 병력이 출동하는 건 화학 테러일 경우에 한정된다고 합니다. 지금 이건 사고지, 테러는 아니라고 절대 불가라고 하네요. 나 원 참.”
쾅!
박인호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간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쳤다.
“젠장! 그러면 우리끼리 해결하라는 건가? 사람들 다 죽으라는 것도 아니고! 하∙∙∙∙∙∙. 씨발.”
외부인인 수겸도 있고, 부하직원도 있는 상황에 욕을 내뱉었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에 박인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혹시 대구나 주변 소방서에서 지원오지는 않나요?”
수겸이 박인호에게 물었다.
“휴우. 그것도 폭우 때문에 여의치가 않는 것 같습니다. 관할을 벗어나 타지역으로 출동가는 건 생각보다 과정이 복잡해서요.”
“군대도 군대지만, 소방 쪽도 지금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거네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것도 아니고 수겸이 굳이 소방본부의 판단을 콕 집어 말했다.
“그것도 그렇군요. 제가 화를 낼 때가 아니었네요.”
“아, 아닙니다. 제가 실언을 했네요.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수겸이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아닙니다. 덕분에 흥분이 좀 가라앉긴 하네요. 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여기 있는 인력만으로 구조 계획을 짜보죠.”
지금 상황은 이랬다.
첫째. 불산 가스가 누출되기 시작한 곳에는 아직 접근조차 못했다. 때문에 현재도 계속해서 가스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둘째. 제대로 된 보호복을 입은 소방 대원은 모두 셋. 외부의 도움 없이 단 세 명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셋째. 대피령을 내리고 경찰 인력이 계속해서 지역 통제를 하고 있지만, 가스에 노출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어렵네요.”
수겸은 고개를 내저었다.
사실 시약을 전해 준 시점에서 수겸의 역할은 모두 끝이 났지만, 현장에 도착한 이래로 수겸은 관계자가 되었다는 생각에 알게 모르게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으니 우선 보호복을 입은 3명을 특임대로 지정하고, 현장으로 보내겠습니다.”
박인호가 말했다.
“어차피 이럴 거였으면 애진작에 현장 진입을 시도해볼 걸 그랬습니다.”
경찰서장의 말에 박인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한 번 화학 물질에 노출된 장비를 바로 재활용하는 것도 힘드니 신중할 수 밖에 없지요. 그래서 지원을 기다렸는데∙∙∙∙∙∙.”
박인호의 말대로 만약 진입을 시도했다가 실패해서 되돌아오는 상황이 생긴다면, 임무를 맡은 대원이 임무 수행이 힘든 상황이 온다면 장비를 벗은 후 누군가 다시 재사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작업이 필요했다.
아주 조금의 불산이라도 장비 내부에 묻어난다면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
그런 일이 생길 바엔 차라리 신중을 기해서 단 한 번의 도전에 끝내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진입하시기 전에 제가 드리는 디톡시를 드시고 진입하세요. 혹시나 생길 수 있는 노출에 대비할 수 있을 겁니다.”
수겸이 말했다.
“그게 불산 가스의 독성을 해독하면 일반 대원도 똑같이 출동하면 되지 않을까요?”
경찰서장이 의문을 제기했다.
“불산 원액은 독도 독이지만, 피부에 닿이면 심각한 화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일반 장비로는 모든 위험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말씀하신 방법은 제외하겠습니다.”
박인호의 대답이었다.
“알겠습니다. 저희 경찰은 혹시 대피령을 듣지 못한 분들이 있는지 수색하고 대피를 돕는 것에 집중하겠습니다.”
“노약자분들은 지금 중독 증상으로 위험한 분들이 분명 계실 겁니다. 경찰관분들은 출동하실 때 디톡시랑 힐링 포션을 챙겨 주세요. 도움이 될 겁니다.”
“네. 그럼 시작하시죠.”
작전이 시작됐다.
새까만 먹구름으로 가득 한 하늘, 줄기차게 쏟아지는 비, 보호복을 입은 소방 대원들과 그들을 바라보는 동료들.
‘세기말 같네.’
수겸은 현장의 모습을 지켜봤다.
“쓰읍. 왜 이렇게 눈이 따갑지.”
수겸은 얼핏 들린 말에 고개를 옆으로 돌려 누구의 목소리인지 찾았다.
그러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눈을 비비고 있는 경찰관이 보였다.
‘처음 여기 왔을 때 출입 통제를 했던 경찰관이다.’
수겸은 재빨리 달려가 디톡시를 하나 건네 주었다.
“이거 빨리 드시고, 이동할 준비 하세요.”
“네?”
경찰관은 바로 상황 파악이 안되는 모양이었다.
수겸은 다시 지휘본부로 뛰었다.
“통제선 더 뒤로 물리시죠. 지금 현장 사람들한테서 중독 증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변수는 바람.
태풍이 몰고오는 바람이 불산 가스를 몰고 오고 있었다.
.
.
.
지휘본부는 현장에서 더 멀리 떨어진 곳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특임대는 거꾸로 현장으로 향했다.
수겸 역시 지휘본부를 따라서 이동하면서 특임대의 무전을 박인호와 함께 듣고 있었다.
치익-
『사고 현장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1차 진입대 말대로 탱크 운반 차량이 공장 외벽에 부딪힌 것 같습니다. 차량 사고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겠으나, 탱크 로리 쪽에서 이상이 생긴 것으로 추정됩니다.』
『공장까지 앞으로 500m 가량 남았습니다. 도보 접근 중』
무전은 1분 단위로 이루어졌고, 긴밀한 소통으로 작전은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듯 했다.
『잠시 대기. 차량 엔지 후드에서 스파크가 튀고 있습니다.』
‘스파크? 불길한데.’
“일시적인 상황인가? 아니면 폭발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인가. 보고 바란다.”
박인호가 무전기를 꽉 쥐었다.
『계속해서 스파크 튀고 있습니다. 잠시만 대기하고 상황 보겠습니다.』
『뒤, 뒤로! 모두 뒤로 뛰어!』
긴박한 목소리가 들리고, 모두가 숨죽여 박인호의 손에 있는 무전기만 쳐다봤다.
콰앙!
불산 가스가 유출된 공장이 있는 방향이었다.
“상황 보고 바란다. 모두 무사한가!”
당장이라도 뛰쳐 나가고 싶지만 나간다한들 물리적으로 단숨에 닿을 수 없는 거리였다.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3명 다 무사합니다. 방금 전 폭발로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이대로 탱크 쪽으로 불길이 가면∙∙∙∙∙∙. 화재 진압을 신속히 해야 합니다.』
‘불은 꺼야 하는데, 진입할 수 있는 대원은 없다.’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어떡하냐.”
수겸의 옆에 서 있던 민환이 작게 속삭였다.
“대장님. 불이 얼마나 크게 난건지 물어봐 주시겠어요?”
수겸이 대뜸 박인호에게 요청을 했다.
“화재 크기는 어떤가?”
의아한 상황이지만, 박인호는 특임대에게 무전으로 물었다.
『평소라면 진압까지 30분에서 1시간 가량 소요될 정도입니다. 대피합니까?』
박인호는 차마 대답하지 못했다.
‘지금 빠지면 몇 시간은 더 늦춰지기 때문이겠지.’
“대장님. 제게 일반 소방복이라도 주실 수 있나요? 제가 현장에 들어가겠습니다.”
수겸이 말했다.
“야! 미쳤어? 낄 때 껴야지. 네가 가서 뭐하게?”
민환이 화들짝 놀라 수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제게 생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