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7
97화
트럭에 옆구리를 허용한 이송 차량은 처참하게 구겨진 채 건물 벽에 박혀 있었다.
이미 자동차로서의 기능은 상실한 상태였다.
“크윽.”
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비 요원이 쏟아지는 통증에 머리를 부여 잡으며 차 문을 열고 나오려 했다.
끼익―
차체가 구겨지는 바람에 몸으로 밀어서 열어야 하는 정도였다.
쾅!
그렇지만 헬멧을 쓴 괴한이 그걸 보고만 있을리 없었다.
“형제님. 더 이상의 저항은 무의미합니다. 포기하시고 가만히 계셔 주시기 바랍니다.”
과격한 행동과 정중하고 예의바른 말투였다.
괴한의 모습을 옆에서 보고 있던 시민들은 행동과 말의 온도 차에 되게 공포감을 느꼈다.
문을 발로 찬 괴한은 훌쩍 차 위로 뛰어 올라가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철컥.
그리고 그 때 트럭에 타고 있던 또 다른 괴한 역시 차에서 내렸다.
“형제자매님들. 갑작스레 많이 놀라셨지요? 잠시 저희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괴한의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목소리가 같아.”
“내가 헷갈린건가?”
그 이유는 두 사람의 목소리가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었다.
소름끼치는 장면이었다.
“여러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좋은 말씀을 가져왔습니다.”
괴한은 사람들의 반응에 아랑곳 하지 않고 준비한 멘트를 시작했다.
부우웅― 끼익!
앞서 나갔던 호송 차량이 이제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너희들 뭐냐?”
차에서 뛰어 내리듯 내린 요원들이 삼단봉을 차라락 펼치며 괴한들을 향해 걸어갔다.
“이러지들 마십시오.”
괴한은 손바닥을 앞으로 내밀어 접근을 막으며 말했다.
“이 지랄을 내놓고 이러지 말라고? 개소리도 정도껏 해야지.”
휘익―
요원 한 명이 한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체중을 실어 힘껏 삼단봉을 내리쳤다.
몸의 어디라도 맞게 되면 골절은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일격.
이러지 말라며 저항 의사가 없어 보이던 괴한은 그대로 몸을 비틀어 간단하게 일격을 피했다.
회피 후 몸을 좀 더 움직여 요원의 뒤를 점했다.
괴한은 요원의 뒷쪽 발을 걷어 차 무게 중심을 무너뜨렸다.
“허억.”
그대로 당할 생각이 없는 요원은 넘어지던 방향 그대로 몸을 날려 앞으로 데구르르 굴렀다.
“새끼, 믿는 구석은 있다 이거냐?”
요원은 삼단봉으로 횡으로, 종으로 휘두르며 타격을 시도했고, 괴한은 피하기에 급급했다.
이윽고 구석으로 몰린 괴한.
“흐흐. 항복은 하지 마라. 너 같은 새끼는 좀 쳐맞아야 하니까.”
독 안에 든 쥐를 바라보듯 요원은 한 번 피식 웃고는 마무리 일격을 위해 몸을 날렸다.
타악―
“어?!”
지금까지 피하기만 한 괴한이 회피를 포기하고 일격을 허용했지만, 들리는 소리는 요원의 예상과는 달랐다.
“제가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괴한은 흥분할 법도 하건만 고저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퍽! 파악!
일격을 내주고 삼단봉의 움직임을 제한한 괴한은 손으로 턱을 올려 친 후 요원의 얼굴을 힘껏 후려쳤다.
마찬가지로 함께 차에서 내린 요원 역시 또 다른 괴한에 의해서 제압된 상태.
이제 현장에서 두 괴한을 말릴 사람은 없었다.
두 괴한은 의식을 잃은 요원을 벽에 처박힌 트럭 앞에다 던져둔 후 대중들을 쳐다봤다.
“형제자매님들. 잠시 지체가 되었지만, 저희가 좋은 말씀 가져왔으니 모두들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잠시. 거기 계신 분.”
괴한이 앞에서 몰래 휴대폰으로 촬영하고 있던 남자를 가리켰다.
“예, 예? 저요?”
대담하게 영상을 찍던 남자는 겁을 집어 먹고는 조금씩 뒷걸음질을 쳤다.
“휴대폰 가지고 이리로 와 주시겠습니까?”
“예…….”
남자는 오늘이 제삿날이구나 생각하며 앞으로 나갔다.
“그쪽에서 찍으면 역광 아닙니까? 이쪽, 저희 정면에서 서서 촬영을 해주십시오. 그리고 어디로든 퍼뜨려 주세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그분의 뜻을 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괴한은 복장과는 어울리지도 않게 양 손을 모아 기도하는 자세롤 취했다.
“다른 분들 역시 촬영은 자유입니다. 원하신다면 조금 더 가까이 와주셔도 좋습니다.”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말씀 전하겠습니다.”
기도를 하던 괴한이 차 위에 올라서서 손을 가리런하게 모으며 말했다.
“들으라. 신의 권능에 도전하는 자여.”
괴한은 한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께서 창조하신 것. 모든 존재는 본디 각각의 존재 이유가 있으며, 그에 맞는 쓰임새가 있다. 이는 누구도, 어느 무엇도 거스를 수 없다.”
괴한은 내민 손을 꼭 쥐어 주먹을 쥐었다.
“연금술이라는 이름으로 창조의 권능을 흉내내는 자, 파멸할지어다. 연금술이라는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자, 죽음으로 잘못을 늬우치라.”
너무나도 엄숙한 말투에 모두가 빠져들듯 괴한을 쳐다보고 있었다.
“연금술은 악마가 지상에 올려보낸 악의 꽃. 연금술을 받아들인다면 신의 뜻을 거스른 대가로 인류는 멸망의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를 위해 신의 사자가 되었습니다.”
괴한은 양 팔을 하늘로 뻗었다. 마치 이것은 신에게 보내는 메세지라는 듯.
“우리는 연금술을 신의 이름을 빌려 처단할 것입니다. 연금술을 행하는 자, 연금술의 유혹에 넘어간 자 모두 신의 철퇴를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일은 단지 경고에 불과합니다.”
신의 사자를 자처한 괴한은 발을 힘껏 굴렀다.
“언제 어디서든 우리는 당신들을 찾아가 처단할 것입니다. 당신들, 아니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오직 두려움에 떠는 것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으십시오.”
차 밑에서 대기하고 있던 괴한은 운송 트럭의 주유구를 연 후 헝겊을 쑤셔 넣었다.
“어어.”
그 모습을 본 시민들은 놀라서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기름에 닿인 헝겊은 이내 축축히 젖어서 짙은 색으로 변했고, 그걸 본 괴한은 라이터를 꺼냈다.
“사제님. 준비됐습니다.”
“예.”
어느새 차에서 내려온 괴한은 여전히 자신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응시하며 답했다.
“행하십시오.”
치익.
라이터에서 헝겊으로 불씨가 옮겨 붙고, 자비 없는 불씨는 헝겊을 따라 타들어갔다.
이미 시민들은 모두 물러난 상태.
두 괴한 역시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범위까지 물러났고, 트럭 근천에는 운송기사와 쓰러진 3명의 요원들 뿐이었다.
“안 돼. 저 사람들이!”
누군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네 사람을 가리켰다.
“형제님. 가만히 계십시오. 저들은 악마와 접촉한 자들입니다. 죽어 마땅합니다.”
괴한이 말 한마디로 달려나가려던 사람의 행동을 저지했다.
쾅! 콰쾅!
트럭의 폭발음에 모두가 바닥에 바짝 엎드리고 귀를 부여잡았다.
괴한은 여전히 촬영 중인 카메라를 뺏어들고 직접 본인을 찍기 시작했다.
“우리는 이미 메세지를 보냈고, 그걸 무시하고 알리지 않은 건 강수겸 당신이다. 저기서 불에 타 죽은 네 명은 당신이 죽인거야. 역시 너는 악마가 틀림없군.”
그 말을 끝으로 두 괴한은 현장에서 빠져나갔다.
“119 불러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119를 불렀고, 충격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들은 그저 멍하니 멀어지고 있는 괴한들을 쳐다보기만 했다.
* * *
가장 무서운 사실은 이와 같은 일이 부산에서만 일어난 것이 아니란 점이었다.
“부산, 목포, 대구 그리고 수원. 총 4군데에서 동시에 벌어졌다고 합니다.”
앞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정인섭이 수겸에게 말했다.
“혹시 다른 곳에서도 돌아가신 분이 계신가요?”
수겸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물었다.
“사망자 16명. 약품 수송을 위해 동원된 인력 전원입니다.”
“아…….”
수겸은 얼굴을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당신이 죽인거야.’
지금 수겸의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반복 재생 되고 있는 건 괴한이 마지막으로 햇던 말이었다.
‘내가… 내가…….’
“수겸아. 이건 절대로 네 탓이 아니야.”
민환이 수겸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아니야. 내가 그때 그 편지를 숨기지만 않았어도. 그랬다면 죽는 사람이 없었지 않았을까?”
수겸으 괴로움에 몸서리를 치며 자책을 거듭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왜 피해자가 스스로 가해자를 지칭하시나요. 이건 놈들의 수에 놀아나는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함께 있던 조태규 역시 말을 보탰다.
“그런데 대중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군요.”
여론을 모니터링 하고 있던 정인섭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의원님.”
민환이 정인섭을 부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지금은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피하는 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기만 해요.”
정인섭은 민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말을 이었다.
“말씀해주세요. 사람들이 어떻길래요? 모두가 제 탓이라고 하나요.”
그제서야 수겸이 고개를 들어 정인섭이 보고 있는 화면을 쳐다봤다.
[이제 연금술 제품 쓰다가 불에 타서 죽은 거 아님?]– 방금 인터넷에 퍼진 동영상들 전부 구해서 보고 오는 길임. 미친놈들은 연금술과 관련된 사람들뿐만 아니라 제품을 쓰는 사람들까지도 대상으로 보고 쳐죽이겠다는 건데. 이거 무시할 수 있는 사람 있음? 일단 난 아님.
[연금술사가 죽였다라고 한 이유]– 방금 내가 찌라시 듣고 왔는데 며칠 전에 오늘 일 저지른 놈들이 보낸 편지 같은 걸 받았다고 함. 근데 그걸 경찰이랑 짜고 강수겸이 숨기기로 한 거임. 적어도 숨기지 말고 대응할 준비를 더 했으면 오늘 일이 벌어졌을까 싶네. 여튼, 그래서 강수겸이 사람들 죽였다고 했음. 믿거나 말거나.
“유서 이야기까지 퍼진 겁니까?”
인터넷에 올라온 글들을 읽고 난 후 수겸이 정인섭을 쳐다보며 물었다.
“워낙 큰 사건이라 경찰 쪽에서도 내부 통제가 잘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연금술과 관련되어서는 모든 정보를 전달받는 정인섭을 제외하고는 경찰과 수겸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는 정보였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게 되었다.
“혹시 범인들 중 하나라도 잡혔나요?”
민환이 물었다.
“경찰 모든 인력이 나서서 수사를 하고 있지만, 철두철미한 놈들입니다. CCTV로 도주 경로를 파악하려 했지만 교묘하게도 추적이 힘든 길만 따라서 이동했어요.”
“이런 일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다니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범인들을 못 잡는 게 말이 됩니까?”
민환은 답답한 듯 가슴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울분을 토했다.
“아무래도 저희 생각보다 큰 조직 같습니다. 이번에 현장에 나타난 놈들은 총 8명. 그런데 경찰 쪽 의견도 그렇고 제 의견도 그렇습니다만 절대로 8명 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정인섭은 수겸 일행을 만나러 오기 전 이미 경찰 쪽에서 1차 브리핑을 듣고 왔기 때문에 어느정도 상황 파악이 된 상태였다.
“그래서 저는 무엇을 하면 됩니까.”
아까보다는 정신을 차린 수겸이지만 여전히 동공이 반쯤 풀려 있었다.
“일단 연금술 제품 공급은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이대로 무시하고 진행하다가 또 다시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 때는 걷잡을 수 없을 겁니다.”
정인섭에게도 최악의 상황이었다.
연금술 하면 정인섭, 정인섭 하면 연금술 이라는 타이틀을 줄곧 밀어붙였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본인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기 때문이었다.
“예. 이해했습니다. 일단 멈춰야겠네요. 이제 좀 뭐가 되겠다 싶었는데 말이죠.”
수겸이 눈을 질끈 감았다.
“수겸아… 또 무슨 수가 나올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
민환이 수겸의 어깨를 다독였다.
“수는 내가 만들어내야지. 개새끼들을 족쳐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