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6
96화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입니다. 비단 대한제약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연금술을 발굴해서 정치권의 떠오르는 스타가 된 정인섭이 목에 핏대를 세워 가며 연설을 했다.
본인의 정치 커리어 중 가장 윗줄에 쓰여 있는 것이 연금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연금술의 명성이 무너질 일을 만들 순 없었다.
정인섭이 걱정하는 건 국민들이 연금술을 꺼려하게 되는 것.
“앞으로 연금술을 이용한 모든 제품에 대해서는 이중, 삼중으로 검사를 하게 되며 운송 중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관련 조치를 모두 취한 상태입니다.”
정인섭은 TV 화면에 띄워진 자료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요는 이랬다.
생산 공장에는 사각지대가 없도록 전방위 CCTV가 설치되고, 감시역도 항시 배치하기로 한다.
그렇게 생산된 제품을 이송할 때에는 대한제약 직원과 경비 업체 직원이 한 조를 이루어 함께 움직이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역할인 셈이었다.
“우리 국회는 일방적인 의무만을 강요할 때 생기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하고자 특별 예산을 편성하기로 했습니다.”
국회 및 관계 부처의 요구에 따르는 조건으로 대한제약에는 일종의 지원이 나가게 된 것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해 두 번 다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피해를 입으신 분들께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전하며, 특별 브리핑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인섭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며 방송은 끝이 났다.
“이제 이걸로 된 겁니까?”
수겸의 옆에서 TV를 보던 조태규가 물었다.
“일단은요. 사실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어요. 국가에서 제품 생산을 직접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것도 그렇죠. 대한제약 입장에서도 죽 쒀서 개 주는 상황은 용납하지 않을 테죠.”
“근데 너무 관리가 타이트해지는 것 아니에요? 저는 대한제약 말고 사장님이 걱정이에요.”
최영지가 말했다.
“영지야.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이 자식이 제일 건강할 거다. 몸에 좋은 건 다 챙겨 먹더라.”
“민환 오빠. 아무리 좋은 걸 챙겨 먹어도 사람은 쉬어야 해요. 과로사가 괜히 사인 중에 있는 줄 아세요?”
최영지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며 민환의 등짝을 시원하게 때렸다.
“아! 따가워. 네가 잊었나 본데 수겸이가 움직이면 같이 움직이는 게 나거든?”
“하는 일도 똑같아요?!”
민환은 반박을 하려다 말고 입을 꾹 다물었다.
옆에서 주거니 받거니 떠드는 와중에도 수겸은 미동도 하지 않고 고민에 빠졌다.
‘유서 내용은 일단 보안 유지가 되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공개되면 오늘 발표한 내용만으로는 무리가 있을 거야.’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민환이 수겸의 눈앞에 손을 펼쳐 위아래로 흔들면서 말했다.
“아니야. 아 참. 세무사님이 해 주셔야 할 일이 또 있습니다. 민환이는 계속 저랑 다녀야 해서 부탁할 사람이 없네요.”
조태규의 역할은 지난번과 다름없이 어웨이큰 매장을 관리하는 것.
요새는 제법 정리가 되어 이전과는 다르게 여유가 있는 편이었다.
“예. 말씀하세요. 이제 세무사라고 불리는 것도 좀 그렇네요. 그렇다고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는 것도 없지만.”
“하하. 저도 입에 붙어서 세무사님이라 부르는 게 편하네요. 다른 건 아니고 새로운 작업실을 구하려 합니다.”
“지난번에 땅 고르는 것과 비슷한 일이네요.”
“맞아요. 그래도 다행인 건 일차적으로는 대한제약에서 부지를 좀 알아봐 주기로 했어요.”
“그러면 제가 할 일은?”
“대한제약 쪽에는 제가 생각한 걸 상세히 말해 주기가 어려워서요. 대한제약에서 구해 준 목록에서 제가 말씀드린 조건에 맞는 걸로 골라 주시면 좋겠어요.”
“그래도 직접 보시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괜찮아요. 세무사님이면 믿을 수 있어요.”
“음. 일단 해 보지요. 생각하시는 조건은요?”
조태규가 메모를 위해 노트를 펼쳤다.
“조금 표현이 유치할 수는 있습니다만, 소설에 나오는 던전을 만들어 보려고요.”
“예?”
생각지도 못한 단어의 등장에 조태규는 노트 사이에 볼펜을 끼워 놓고 탁 하고 노트를 덮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래? 신박하긴 하네.”
민환이 모두를 대표해서 수겸에게 추가 설명을 요구했다.
“소설이나 영화 보면 왜 마법사들이 던전이나 마탑에 처박혀서 연구를 하겠어?”
수겸이 조태규, 최영지 그리고 민환을 한 번씩 쳐다보며 질문을 던졌다.
“방해를 받고 싶지 않아서?”
“뺏길 것이 많아서?”
제각기 답을 내놓자 수겸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 다 맞아.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래. 나는 연금술에 몰두하고 싶은 마음도 크지만 내가 만든 시약이 검증되지 않은 채로 밖으로 나가는 것도 원하지 않거든.”
“그럴 수 있지.”
민환이 수긍하는 듯 대답했다.
“앞에 설명이 길었지만 무엇보다 세상에 미친 놈이 너무 많기 때문이기도 해.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겠거든.”
“맞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동철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동철이 그렇게 생각한 건 지난번 중국에서의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단순하게 시약 몇 병 훔치고, 어웨이큰 몇 알을 주머니에 넣는 잡범을 걱정하는 게 아니야. 막말로 그 정도는 얼마든지 당해도 상관없어. 뭐, 그럴 일도 없겠지만 말이야.”
“그러면요?”
오직 최영지만이 해맑게 되물었다.
조태규는 동철에게 중국에서의 일을 전해 들었고, 민환 역시 수겸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음… 이제 우리가 노는 판이 글로벌하다는 것 정도로 하자. 상대해야 하는 놈들도 그만큼 늘어났으니까. 하여튼 내가 생각하는 건 들어오기도 쉽지 않지만, 들어오면 다시 빠져나가는 것도 힘든 공간이야.”
“그러면서 작업을 할 수 있어야 하니까 면적은 꽤 넓어야겠네.”
민환이 덧붙여 말했다.
“맞아. 이왕이면 제일 최고는 지하 공간도 있고, 위로도 몇 개 층이 있는 경우. 여차하면 지하만 있어도 좋고.”
수겸이 손을 켜켜이 쌓으며 말했다.
“대한제약에서 여기에 맞는 장소를 찾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도 제 선에서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한번 만들어 봅시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모두가 잠들었을 늦은 밤.
수겸은 홀로 소파에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허공에 떠 있는 글씨를 읽고 있었다.
[근력 강화제] [- 평상시 대비 1.5배까지 근력을 끌어올리는 시약.– 1회 복용 기준치는 50mL이며, 동시에 여러 병을 복용할 경우 효과가 중첩된다.
– 중첩 사용할 경우 영구적인 근육 손상이 있을 수 있다.
– 약효 유지시간 : 한 시간]
“이게 바로 도핑인가.”
수겸이 계획한 두 번째.
스스로를 강하게 무장시키는 것이었다.
새로 구한 작업실을 안전한 공간으로 만드는 건 보금자리를 만드는 측면이라면 근력 강화제를 포함해 스스로를 강하게 하는 건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쫄아서 방구석에만 있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
항상 수겸의 곁에는 동철이 있고, 여차하면 경찰이나 정부 요원도 함께하겠지만 제일 확실한 건 스스로가 강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도핑.
‘이건 외부에 배포하지 않기로 했지.’
수겸은 당시에 민환과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야, 내가 만약에 절대로 도핑 테스트에 걸리지 않는 약을 발명했어. 그러면 어떨 것 같냐?”
“뭐가 어떨 것 같다는 거야? 그걸 어떻게 쓸 건지?”
아직 민환은 수겸이 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아니, 이걸 써서 우리나라가 올림픽 우승, 월드컵 우승, 아시안 게임 우승. 이런 걸 하면 국뽕이 너무 심할 것 같냐는 말이지.”
“절대 안 걸려?”
“응. 절대로. 왜냐하면 시간이 지나면서 효과도 없어지고, 몸 안에 남은 성분도 없어지기 때문이지.”
“그렇단 말이지.”
민환은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결정했다.”
“뭔데?”
“일단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반대야. 무조건 반대.”
“왜? 엄청 재밌을 텐데. 내가 그래도 승리 팀 맞히는 복권은 참았는데.”
“그걸 생각한 것 자체가 양아치지. 아무튼 국뽕은 진짜 엄청날 것 같은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
민환은 손을 수겸에게 내밀며 대답을 해 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음. 스포츠는 오락이잖아. 축제이기도 하고. 그런 축제에서 우리가 주인공이 된 적이 있어? 난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아직 만들지도 않은 시약에 관한 이야기였지만, 수겸은 제작자로서 시약을 옹호하기 위해 단어를 선택해서 말했다.
“스포츠가 오락이고, 축제인 건 맞는데. 그러기 전에 스포츠는 공정해야 의미가 생기는 거니까.”
“걸리지 않더라도 나쁜 짓은 맞으니까. 네가 말한 것도 결국은 도핑이잖아. 어찌 됐건 그건 약물이고, 약물의 도움을 받았다는 팩트는 바뀌지 않아. 설령 그게 연금술을 사용했던 것이라도.”
민환은 본인의 신념을 차분하게 피력했다.
“그것도 맞네.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트로피를 진열하면 의미가 없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러니까 네가 그런 약물을 만들게 되더라도 스포츠에는 쓰지 마.”
수겸은 민환의 당부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스포츠에는 안 쓰고, 나한테만 쓰면 문제없지.’
수겸은 연금술을 준비하면서 생각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시약이니 무슨 상황이 와도 변수가 될 수 있겠어.’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초인적인 힘을 발휘한다면 그것만큼 좋은 변수는 없기 때문이다.
수겸의 눈빛이 차츰 가라앉았다.
그리고 잠시 후 평소와는 다르게 푸른빛이 아닌 붉은빛이 수겸의 작업실을 가득 채웠다.
* * *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
현금 운송 차량처럼 경비 요원까지 대동한 대한제약의 약품 이송 차량이 부산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이송 차량 앞에는 계획된 루트대로 길을 인도하는 호송 차량까지 있었다.
치익―
– 여기는 5782. 1055 응답 바람. 오버.
무전 소리가 들리자 이송 차량에 탑승하고 있던 경비 요원이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여기는 1055. 용건 전달 바란다. 오버.”
요원이 무전을 끝내자 이내 또다시 답이 왔다.
– 전방 교통사고 발생하여 도로 정체가 예상된다. B루트로 변경한다. 오버.
무전을 듣고는 요원이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시야 끝쪽 도로를 쳐다봤다.
사전에 숙지한 내용에 따르면 루트를 바꿀 수 있는 건 곧 있을 사거리가 마지막.
여기를 지나친다면 꼼짝없이 도로에 갇힐 수밖에 없었다.
치익―
요원이 무전기를 들어 말하기 시작했다.
“루트 변경 확인 오케이. 오버.”
요원의 무전이 끝나자마자 호송 차량은 차선 변경을 하며 우회전을 준비했다.
호송 차량이 코너를 빠져나가고 곧이어 이송 차량의 운전자가 핸들을 돌리기 시작했다.
약품을 실은 이송 차량이 코너를 도는 순간, 반대편에서 트럭 한 대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우우웅― 쾅!
전속력으로 달려오는 차량이 이송 차량과 충돌하고 이내 고막이 찢어질 듯한 강한 충돌음이 도로에 울려 퍼졌다.
“꺄!”
깜짝 놀란 시민들의 비명 소리에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때 사고를 낸 트럭에서 두 사내가 내렸다.
바이크 헬멧을 뒤집어써서 신원은 전혀 알 수 없는 상태.
“시민 여러분. 잠시 주목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