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licious Memb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65)
악성 멤버가 돌아왔다! 165화
* * *
하루 하고도 반나절.
머리 속을 괴롭히던 생각들을 잠시 접어 두고 멤버들과의 휴식에 집중한 사이, 나는 드디어 마지막 상대인 재하 형과 조우한 상태로 숙소 주변 놀이터 그네에 걸터앉게 되었다.
“허….”
돌아와서 바로 서바이벌 참여를 감행하고, 데뷔 준비를 하면서 노을 같은 걸 볼 시간 같은 건 거의 없었는데.
숙소 아파트 옆으로 뉘엿뉘엿 기우는 해를 보고 있자니, 온갖 감상이 다 들었다.
하도 놀아서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기분은 확실히 좋고.
이걸 뭐라고 정의하면 좋을지 모르겠는 상태라고 해야 할까.
“하하….”
아리송한 내 얼굴을 잠시 바라보던 재하 형은, 짧은 웃음과 함께 내게 이온 음료를 건넸다.
“생각이 많아 보이네, 춘용이.”
“아, 네. 뭐….”
나는 차가운 물방울이 송골솔골 맺혀 있는 음료수를 건네받으며, 멋쩍은 웃음과 함께 눈동자를 굴렸다.
“그냥, 오늘 좀 신기했다 싶어서요.”
“음? 어떤 게 그랬는데?”
그 질문을 듣고 나니, 하루 내내 있었던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을 짧게 싹 스쳐 지나갔다.
…어떤 게 신기했냐니.
그것에 대한 대답은 당연히, ‘예상과 달랐던 부분’이었다.
아무래도, 멤버들이 나와 함께 노는 시간을 따로 준비했다는 말을 들으면 대강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이 있었다.
8년의 세월을 함께 보내면서 지켜본 모습이 있었고, 서바이벌을 통해서 ‘실은 얘가 이런 성격이구나’ 싶었던 게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활발하게 액티비티 위주로 노는 쪽은 유찬 형과 화성이, 로건.
그리고, 재하 형과 시우는 앞선 사람들에 비하면 좀 더 차분하겠거니 싶지.
이건 두말할 것도 없이, 멤버들이 숙소에서 보여 주는 모습만 봐도 나오는 답이었다.
“…로건. 그거 제 시리얼 아니에요? 아, 어쩐지 자꾸 줄어든다 싶더라! 빨간 집게가 제 거고, 파란 집게가 로건 거라고 말했잖아요!”
“What? 이거, 제 거인데요. 봐요. 화성은 오리지널이죠? 저는 그래놀라란 말이에요. 게다가, 화성의 물건을 제가 막 사용할 리가 없잖아요? 오해예요!”
“아니, 그럼 시리얼 먹는 사람이 지금 숙소에서 로건이랑 저뿐인데, 대체 누가 그걸 먹는다는….”
“크흠, 얘들아. 누가 먹었는지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싸우지는 마. 그리고 그것보다도, 냉장고에 우유 떨어졌으니까. 그것부터 사는 게 좋을걸?”
“Huh? Wait. 유찬 형. 형, 식단 때문에 회사에서 따로 보내주는 밥을 먹지 않나요? 그런데, 어떻게 우유가 떨어진 걸 알죠? …화성의 시리얼을 유찬 형이 먹었군요! 그래서 우유가 떨어진 걸 아는 거예요!”
“…에라이.”
“와, 씨! 로건 진짜 예리하네요!? 그리고 유찬 형! 튀지 마요!”
“아니, 닭가슴살만 먹으면 입에서 비린내 난다니까… 미안해, 미안!”
활발한 세 명이 목소리를 높이고.
“…시우, 밥 먹을래? 아직 냉장고에 반찬 남아 있더라.”
“네에… 레토르트 밥 돌릴게요.”
“응, 그래. 아, 춘용이 것도 같이 돌리자. 지금 막 방에서 나온 거 같아서.”
그 사이에 껴서, 두 명이 차분하고 평화롭게 대화를 하고.
“…그거 유찬 형이랑 나랑 같이 먹었는데.”
“네?! 아니, 식단하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야, 지금! 왜 남의 거를 자꾸 먹어요, 자꾸! 우리 정산도 못 받아서 제 주머니가 탈탈 털리고 있다고요!”
“아, 그럼 춘용이 새벽에 시리얼 미리 먹은 거야? …춘용이 밥은 빼도 되겠다, 시우야. 하하.”
거기에다가 내가 조금 뒤늦게 나가서 다시 한번 제대로 떠들썩해지고.
뭐, 그러니까 따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여기서 크게 결이 다르지는 않겠다, 싶었다.
“…이게 마지막 곡이네요. 이렇게 한 시간 내내 노래만 한 건 처음인 거 같아요.”
“하하, 이 다음에는 화성이가 너랑 놀려고 아주 제대로 대기하고 있을걸? 이걸로 지치면 안 돼!”
“허어… 다섯 명이 전부 다 노래방 오겠다고 작정하고 있는 건 아니죠? 저 지금 목 나가기 직전인데.”
“무슨 그런 생각을 해! 아냐. 다들 계획이 달라. 기대해도 좋아, 춘용아. 아, 이제 노래 끝나겠다.”
“…유찬 형, 근데 왜 한 곡 더 예약해요?”
“음? 원래 노래방에서는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마지막 곡으로 불러줘야 하거든. 원래 1분 남았을 때 마지막 곡 취소한 다음에 그걸 바로 시작해야….”
“저는 그거 뒷부분 가사도 몰라요…!”
애당초 처음을 장식한 유찬 형이 화려하게 익스트림 노래방 가이드를 담당했고, 그 다음에 숙소에서 조우한 화성이는 나를 자기 방으로 끌고 가면서 ‘제가 다 캐리할게요’ 같은 말을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내 생각이 좀 틀렸더라고.
“아, 진짜 잘할 수 있었는데! 거기 잠복해 있을 줄 몰랐어요!”
“화성아. 내가 진짜 걱정돼서 물어보는 건데, 그… 너 점멸 키가 뭔지는 알고 있는 거지? 형이 정산 받고 너 ROR용 키캡 하나 사 줄까?”
“악! 그만 놀려요, 그만! 티어 가지고 놀리는 것도 그만해요! 점멸 누르는 방법 안다니까요! 흐엉… 그리고, 이건 형과 저의 둘만의 비밀로….”
“미안, 미안. 근데 내가 벌써 단체 메신저방에 너 게임 완전 못 한다고 다 올려놨다.”
“제바아알!”
캐리는 무슨, 장렬하게 두 판을 연달아 자신의 트롤짓으로 터뜨린 화성이가 머리를 잡고 좌절하는 가운데.
“이제 진짜… 제, 차례예요.”
나를 끌고 늦은 새벽의 전통 과자 시장으로 간 시우는 정말 단호한 얼굴이었다.
“힘이 들 때는, 단 게… 좋대요. 그래서, 여기 같이 오고, 싶었어요….”
“어어, 그건 나도 알지. 그럼, 여기서 몇 개 같이 사서 숙소로 가면 될….”
“아, 아니요! 먹, 먹고 들어가요!”
“여기서? 잠깐만, 그러면 막 시식도 하고 그래야 할 텐데. …처음 보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거, 힘들지 않아?”
“할, 할 수 있… 어요. 정말… 요. 저기 먼저 가 봐요, 형. 제가 인터넷에서 봤….”
“거기! 잘생긴 청년들? 와서 이것 좀 먹어 보고 가! 300g에 칠천 원. 응? 괜찮지? 싸게 줄게! 우리도 이거 다 팔고 집에 가야 돼!”
“으, 괘, 괜찮아요…!”
글쎄, 사람 대하는 걸 어려워하는 애가 새벽 떨이 장사에 눈이 돌아간 상가 사람들과 열심히 얘기하더라니까.
“시우가? …정말?”
“네. 중간중간에 좀 바가지 쓸 뻔하긴 했는데. 그래도 단호하더라고요. 그럴 줄 몰랐는데.”
“그러게. 나도 그 말 듣고 되게 놀랐어. …처음 봤을 때는 나한테도 말을 잘 못 걸었거든.”
내 말을 설명을 들은 상대의 얼굴에는 의외라는 놀라움과 함께, 부드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어쨌든. 그럼 시우랑 그 매장을 1시간 내내 걸어 다닌 거야? 춘용이 너, 좀 피곤하겠다.”
“아뇨, 뭐. 중간중간에 단 거 입에 넣으니까 슈가 하이 때문에 그렇게 피곤하진 않았어요. 게다가… 네. 로건도 의외였던지라.”
“으음, 맞아. 어쩐지, 로건이 너한테 기타 알려주겠다고 나가고서 좀 오래 있다가 오더라고. 그래서 화성이가 반칙 아니냐고 엄청 뭐라고 그랬었는데.”
“사실 기타 배우는 건 진짜 1시간밖에 안 하긴 했어요. 근데….”
시우와 함께 숙소로 돌아와서 쪽잠을 자고 일어나기 무섭게, 로건은 나를 데리고 AG 회사에서 멀지 않은 개인 연습실로 나를 인도했다.
“…이런 곳은 또 어디서 찾았어? 로건, 이제 네가 나보다 회사 주변 더 잘 알겠다.”
“Oh, Not really. 검색했어요, 검색! 여기, 한 번 빌리면 하루종일 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Come on. 가요.”
숙소에서도 할 수 있는 걸 굳이굳이 연습실까지 빌려서 알려주겠다고 하길래, 나는 로건이 가르쳐 주겠다는 게 일렉 기타라도 되는 줄 알았다니까.
아니, 그렇잖아.
뭔가 액티비티한 걸 할 것 같고, 내 이미지에도 통기타 같은 것보다는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은 일렉 기타가 더 어울리고.
그러나, 자기 기타를 품에 꼭 끌어안고 대형견스러움을 한껏 뽐낸 로건이 개인 연습실에 안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건….
“So, 일단 누워요.”
“어?”
“이게, 기타를 배우기 전에 좀 친해져야 하거든요. 그러려면, 누워서 얘한테 좀 말을 해야 해요. 잘 부탁한다고.”
“아니, 무슨… 너 항상 기타 칠 때 시우한테 자리 좀 비켜 달라고 그러더니, 이래서였어?”
“Whatever. 빨리요!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Inner peace. 그것부터 찾아야죠.”
별안간 기타랑 친해져야 한다면서, 기타를 베개 삼아 짧게 자는 거였다고.
“아니, 로건. 너 이러고 진짜 잠이 와? 이거 좀 불편한….”
“…….”
“와, 진짜 자네!”
“Shhh… 춘용 형, 기타에 목소리 울려요….”
별로 넓지도 않은 연습실에서 기타 하나를 베고 정장 둘이서 낮잠을 자다니.
목은 배기고, 조용한 와중에 로건이 ‘흐어’ 같은 소리를 해서 계속 웃음만 나오고.
다시 떠올려도 황당하고, 웃긴 상황이었다.
“아, 아하하! 와, 로건 정말… 같이 멤버가 되고 종종 독특하다는 생각을 하긴 했는데. 그런 면이 있는 줄은 또 몰랐네.”
“그러니까요. 저도 [타겟팅 스타> 내내 방을 같이 썼는데도 몰랐어요. 기타를 다른 곳에 두고 다녀서 그런가….”
“그래도, 표정 보니까 재밌었나 보다. 그치?”
“어….”
재하 형의 환한 미소에, 나는 뺨을 가볍게 뺨을 긁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내가 모르는 사이에 자기들끼리만 계획을 짜서 이런 일을 시작했다는 게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긴 했지만….
“이게 G코드라고? 이대로 치기만 하면 되는 거야?”
“Holy, 맞아요! 네, 네. 그대로 손톱으로 쓸어내리면….”
“윽, 이거 좀 아픈데?”
“처음이라 그래요. 그래도 소리 좋죠, right? 축하해요!”
두 시간가량 잠들었다가 깨어나서 로건에게서 평화롭게 기타를 배운 것도.
유찬 형에게 끌려나가서 익스트림 노래방 체험기를 한 것도, 좋아하는 것과는 별개로 실력 자체는 엉망인 화성이와 함께 ROR을 한 것도.
“춘용, 형… 이건, 제가 따로… 산 거예요.”
“음? 이게 뭐인… 아, 식혜?”
“…네에. 이거 통으로도… 팔길래.”
함께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시우가 내 품 한가득 식혜를 안겨준 것도.
전부 좋고, 재밌고, 즐거웠다.
엑스의 연락을 안 본 지 하루 가까이 되어가고, 이 다음에 할 일이 정말 많다는 걸 잠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네. 진짜 재밌었어요.”
“…….”
내 뒤늦은 대답에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던 재하 형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확히는, 자기가 앉아있던 그네 자리에서.
“춘용아. 네가 전에 나한테 생각이 너무 많다고 했던 거 기억해?”
“음… 잊을 수가 없긴 하죠. 그때 형 많이 당황했잖아요.”
내 능청스러운 대답에, 재하 형은 탄산 기포 같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나도 잊을 수가 없었어. 그런 적은 또 처음이었거든. 그래서… 너한테 좀 좋은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었어.”
주섬주섬 말을 이으며 내 뒤로 다가온 재하 형은, 내가 앉아있는 그네를 부드럽게 밀며 내 등을 두드렸다.
“다른 멤버들은 내가 너랑 뭘 하려고 하는지 몰라. 내가 그냥 비밀이라고 얼버무려서 말이야.”
“허어… 다 큰 아이돌 그룹 동생 그네 밀어주는 게 얘기하기 좀 그런 일이긴 하죠.”
“아니, 다른 멤버들이 알면 너한테 말할 것 같았거든.”
“음? 뭘 말한다는 거예요?”
“…글쎄.”
그리고 그때.
재하 형이 내 등을 미는 손에 힘이 약간 들어가며, 앞뒤로 조금씩만 흔들리던 그네가 위로 붕 떠올랐다.
“서프라이즈는 중요하잖아. 그렇지?”
“…네?”
“하하, 난 다시 올라갈게. 얘기 잘해.”
나는 두 눈을 커다랗게 뜨며, 내 등을 한 번 마지막으로 한 번 크게 밀고는 천천히 자리를 뜨는 재하 형을 빤히 바라봤다.
“형이 마지막이네요, 그럼? 재하 형도 뭐, 거창하게 계획한 거 있어요?”
“으음. 나는 뭐, 별로 할 게 없어. 그냥 너랑 놀이터 가서 얘기나 좀 할까 싶은데, 어때?”
“…괜찮죠. 모자 쓰고 올게요. 같이 내려가요.”
나는 재하 형이 나를 놀이터로 불러낸 이유가, 당연히 이전에 우리 둘이 대화한 장소가 여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맞지 않나?
앞서서 이것저것 일을 많이 했으니, 마지막은 평화롭게 대화하면서 마무리하는 게 자연스럽잖아.
겸사겸사 그때 고생 많았다, 같은 덕담도 주고받고.
짧은 휴가를 마무리하는 겸해서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 대화도 주고받고.
그러나, 내가 놓친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때, 내가 놀이터로 재하 형을 불러냈을 때.
“…제가 따로 연락도 안 했는데, 몰래 따라 나온 저기 저 화성이랑 얘기 좀 하시고요.”
몰래 따라 나온 손님이 하나 있었다는 거.
“와, 미친. 김춘용 뭐임? 그 등치에 어린애들 그네를 타고 있냐?”
“어머, 어머… 머리통 꼴 좀 봐라, 야! 인사 제대로 안 해? 엄마랑 아빠가 그러라고 그랬냐? 누나가 먼 길 왔는데 진짜….”
“…하, 하하.”
나는 어느새 놀이터 가까이 다가온 이들의 익숙한 목소리를 듣고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려야만 했다.
글쎄.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번 휴가는 내게 제대로 리프레시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서.
휴가의 마지막을 장식해 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잠깐, 김춘용은 타면 안 되지만 나는 그네 좀 타도 되지 않나, 언니?”
“너도 제발 정신 차려라, 진짜….”
다름 아닌 우리 엄마 딸들이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