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87
287화
형이 무언가 더 생각난 듯 말했다.
“아. 그리고 말인데… 그… 하얀 머리에 주황색 눈.”
“여성형? 남성형?”
“남성형.”
“어어. 왜?”
“그… 왕처럼 보이던 존재가 우리를 몰래 지켜봤었어.”
“사람들이랑 기억을 전달하던걸?”
“어.”
“…….”
그래서, 그런 이변이 났던 거였나.
‘그런 황당한 이유가 이변의 시작이었다니.’
뭐. 차라리 났나. 이전 회차에서 형이 소설이라고 말했던 것도 까먹었었으니까. 그리고 이번 회차에 형이 기억하고 있더라고 해도, 바뀌는 건 없었을 테니까.
‘여기까지 올 수 있던 게 어쩌면, 그 자식이 형을 따라 한 게 가장 컸던 거잖아.’
어떻게 얘기가 이렇게 엉킬 수가 있냐.
지화연 씨가 다가와 물었다.
“되게 진지하게 말하고 있어서 가만히 있었는데요. 여긴 어디예요? 애초에 그게 먼저 아니에요?”
“아 여긴…….”
“굳이 설명을 안 해도 대강 어딘지는 기억하는데 말이죠. 왜 여기 있느냐가 의문이에요.”
그 말에 나는 슬며시 주변을 살폈다. 길게 깔린 레드카펫. 그 끝에 있는 거대한 왕좌.
‘왕이 있던 곳.’
하나, 왕이 존재하진 않았다. 당연하겠지, 애초에 여긴 만들어진 공간일 테고. 무엇보다 왕은 이미 죽어 없어졌으니.
‘그나저나.’
지금 생각해 보면, 이전 회차에 형이 소설 속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없었던 건 탑의 영향인 걸까. 내가 아닌 다른 허락되지 않은 존재가 건드려서.
‘…어찌 됐건 기억해 냈으니 상관은 없지만.’
더 궁금하진 않다. 결과는 좋았으니까.
그러니까, 네 결과도 좋으면, 나쁠 거 없잖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곧 하얀 천을 두른 녀석이 나타날 거예요.”
내 말에 유주한이 말했다.
“아 그! 엄청 강했던 미지의 존재요?”
“어. 그러니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나 고민이 들 무렵. 번뜩. 유주한이 왕좌로 고개를 돌렸다. 곧이어 승현 헌터도 맨 앞에 서서 왕좌를 바라봤다.
지직. 직. 종이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허공에 균열이 생겨나고, 그 사이로 하얀 가면을 쓴 녀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천은 그림자 한 점 없어, 홀로 다른 물체 같았고. 나보다 조금 큰 체구에 걸쳐진 두루마기는 형과 같았다. 손에 쥔 건 역시. 그 모습을 본 유아한 씨가 조용히 말했다.
“한지운 씨였어요. 저거?”
“아뇨 한지운 헌터보다는 체구가 조금 작습니다.”
승현 헌터가 말을 끝내고 조용히 로프 다트를 움켜쥐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제 무기를 쥐곤 살기인지 아닌지 모를 거대한 힘에 눌려 조용히 침만 삼켰다. 그 사이에서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눈에 감정이 너무 담겨있잖아.’
하얀 가면 너머로 보이는 저 두 눈이, 그리움에 사무쳐 빛나는 눈빛이었다. 한 명 한 명 바라보는 저 시선이. 저 녀석이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었는지 증명하는 듯 보였다.
녀석이 말했다.
“…나는.”
0회차의 내가 새까만 검을 꾹 쥐며 말했다.
“나는 이 이야기의 작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별처럼 빛나는 하얀 천이 넘실거렸다.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의.”
말의 끝맺음에 약간의 울음이 섞였다.
“끝을 맺기 위해 왔어.”
스윽. 0회차의 내가 검을 들자 그 끝에 강한 살기가 느껴졌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느꼈는지, 검이 휘둘러지기 직전부터 몸을 던져 피해냈다.
콰과광! 푸른 불이 바닥을 가로지르며 나아갔다가 금세 사그라들었다.
유주한이 말했다.
“저건… 내 능력이잖아.”
황당해하는 유주한 앞으로, 검 끝이 다가왔다. 쾅! 가까스로 피해낸 유주한이 큰 숨을 내뱉었다.
“…….”
직후 뒤로 달려든 류천화 씨의 주먹을 간단하게 막아 던졌다. 던져진 류천화 씨가 제 주먹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다 무언갈 이상한 것을 눈치채고 중얼거렸다.
“우리들의 능력을 더 강하게 갖추고 있는 건가.”
그 말에 형이 화들짝 놀라며 물었다.
“저희 힘을 더 강하게 갖추고 있다고요?”
“왜 그러지 한지운 헌터?”
“…….”
형이 나를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였다. 형이 생각하는 거 맞아.
촥! 지화연 씨의 공격에 0회차에 내가 상처를 입었다. 그러자 상처에서 흐르는 피가 단숨에 거대해져, 지화연 씨를 공격했다. 지화연 씨가 황급히 물러나며 말했다.
“류천화 씨 말이 맞나본대요?”
유아한 씨가 말했다.
“그러게요. 내 능력으로 치료하네.”
승현 헌터가 조심스럽게 물로 이루어진 물고기 무리를 0회차인 나에게 쏟아냈다. 그러자 0회차에 나는 화답하듯 물로 된 거대한 뱀으로 물고기를 삼켜 없앴다. 곧이어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는 0회차의 나를 바라보며. 나는 낫을 천천히 쥐고, 녀석에게 몸을 날렸다.
쾅! 내 몸에 밀려 넘어진 녀석을 발로 짓밟아, 동시에 낫을 벽에 박았다.
나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연기 못한다 정말.”
“…….”
“너 하는 공격 전부 무딘 거 알아? ‘나 죽일 생각 없어요!’ 하는 거 티 난다고.”
“…….”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 그냥 같이 공존하면 안 되는 거야?”
“다 말했잖아. 나가면 죽어. 나는. 그렇다고 하얀 탑에 내가 있으면 넌 죽음을 맞이하지 못하고.”
“그렇긴 해도…….”
“그리고 어떻게 같은 인물이 공존해.”
“뭐 어때.”
“…그리고. 난 앞으로 몇 번의 경합을 더 하면 완벽하게 소멸해.”
“소멸한다는 건.”
“죽음…은 아마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내 영혼마저 바스러지는 게 느껴지니까.”
“뭐?”
“너무 많은 위반을 해서 그런가 봐. 자세한 건 나도 몰라. 그저 이렇게 될 운명이었던 걸지도 모르지. 그러니까. 다시 한번 더 부탁할게.”
쾅! 몸이 뒤로 밀려났다. 고통은 없었다. 밀리기 직전, 들렸던 말을 되뇌었다.
날 죽여줘. 내 마지막 소원이야.
밀려난 나에게 형이 물었다.
“지언아. 저 사람은…….”
“…형이 생각하는 그 사람 맞아.”
“그런데 어째서.”
“……마지막 소원이래.”
“뭐?”
그렇게 원하면. 해줘야지.
‘무엇보다, 영혼도 없이 소멸한다면.’
아마, 영영 만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니까.
쾅! 녀석과 날을 맞붙었다. 사방에서 능력이 솟아오르고, 막히기를 반복했다. 화려하지 않은 전투였다. 그저 능력이 닿기를 바라고. 날 끝이 닿기를 바라는 단출한 싸움이었다.
사람들은 의문을 모른 체 녀석에게 말을 걸기도 했지만. 끝까지 입을 다물고 싸웠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사람들이면서, 왜 말 한 번 하지 않을까.
‘…본인이 구한 게 아니기에. 라고 생각하겠지.’
웃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녀석의 마음에 동의할 수도 없었다.
저 녀석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테니까. 사람들은 이미 죽었을 테니까. 네가 계속 글을 썼기에 그 자리에서 홀로 묵묵히 있었기에. 끝내 욕심을 버리고 나를 믿었기에.
어쩌면 너와 내가 지킨 사람들인데도. 너는 결국 자신의 구하지 못했기에 마지막까지 참았다.
마지막은 마음대로 할 거라던 녀석이. 결국, 마음대로 하지 않는 거였다. 아니, 이것도 마음대로긴 한가?
낫 날의 끝은 닿을 듯하면서 닿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 손에 죽기를 희망하면서, 끝까지 멋지게 가고 싶은 거기라도 한 걸까.
‘아니.’
아마, 조금 더 보고 싶기에. 검을 맞대고 싶기에 그런 거겠지. 그러니까 이런 욕심 가득한 자신을 죽여달라고 하는 거겠지.
콱! 다른 사람들이 마침내 녀석을 붙잡았다. 나는 그 즉시 몸을 움직여, 낫 날을 높게 들고 그대로 녀석에 심장을 파고들었다. 별빛이 쏟아지는 것같이 녀석의 몸은 날에 심장이 뚫리자마자 피가 아닌 하얀 종이들이 나풀나풀 허공을 유영했다.
“…고맙네. 이거.”
“별말씀을.”
녀석이 점차 사라졌다. 대화할 시간은 없었다. 나는 곧장 입을 열어, 하고 싶었던 말을 꺼냈다.
“있잖아. 넌… 혼자가 아니야.”
“위로해 주는 거야?”
“…….”
위로가 아니었다. 진실이었다.
하지만 녀석에게는 다른 가정을 할 수가 없던 것인지. 내 말을 위로로 받아들였다. 녀석이 편안하게 눈을 감으며 말했다.
“고마워. 나 대신, 지켜줘서.”
“…같이 한 거지.”
“그럼 좋겠네. …잘 있어.”
정말 좋아했던 이야기.
툭. 마지막 종이 한 장만이 허공을 나풀거리다가 이내 사라졌다.
“끝났어요?”
지화연 씨가 물었다.
“끝난 거 같은데. 그나저나, 한지언 헌터. 저쪽이 말을 안 하기에 그냥 가만히 있었지만, 둘은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덤으로 한지운 헌터도.”
류천화 씨가 물었다. 나는 그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자면 좀 길어요.”
“뭐. 다 끝났으니 찬찬히 들어보자고.”
“아! 출구에요!”
유주한에 말에 모두가 뒤를 돌아보자, 레드카펫과 왕좌가 있던 공간은 사라지고. 이전처럼 도서관이 우리를 반겼다. 그리고 들어왔던 입구가, 우리를 환한 빛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더 볼 거 없죠?”
유아한 씨가 그리 묻고 성큼 출구로 향했다. 다른 사람들도 따라 출구로 향하던 찰나. 내가 급하게 소리쳤다.
“저 잠깐만! 다녀올 곳이 있어요!”
“어? 그럼 같이―”
“아냐. 금방 다녀올 게 걱정하지 마!”
그리고 나는 곧장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