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81
20화 독고십삼검 (2)
검명(劍鳴)은 검의 울음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독고현의 검명은 구슬프면서도 맑은 음색을 가지고 있었다.
스르르릉-!
진동하는 검 끝이 노을빛을 머금으며 천천히 치켜세워졌다.
“지금부터 내게 무기를 겨누는 자는 주저하지 않고 벨 것이다.”
“…….”
다소 잔혹할지라도 본격적으로 살검을 펼치겠다는 선언이었다.
그의 성명절기(成名絕技)인 독고십삼검을 제대로 펼치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독고현과 마주한 무림맹의 무사들은 손에 땀을 쥐었다.
숨 막히는 긴장감이 흐르길 잠시 후.
그의 신형이 수백 개의 잔상을 만들어내며, 엄청난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타앗-!!
독고십삼검 일 초식 월화광섬(月華光殲).
눈 깜짝할 사이 그는 적진의 중심을 정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흡사 어둠 속을 가르는 한 줄기 빛무리와도 같아 보였다.
파파파파팟-!!
무려 한 호흡에 삼십여 장을 전진하고 나서야 독고현의 움직임이 ‘뚝’ 멈추었다.
“……?”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대다수가 영문도 모른 채 두 눈만 끔뻑거렸다. 그의 움직임이 너무나도 빨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호흡이 더 지났을 때였다.
모두의 눈앞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 펼쳐졌다.
털썩-! 털썩-!!
그가 지나친 경로 부근에 있었던 무사들이 쓰러지는 소리였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된 이십여 구의 시체들. 그리고 그 위에는 단 세 명만이 창백히 질린 얼굴로 멀뚱멀뚱 서 있었다.
그들이 살아남은 이유는, 독고현에게 무기를 겨누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공스러운 검술에 모두가 경악할 무렵.
무림맹주의 고함이 무사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포위를 유지하라! 놈은 이미 다쳤으니, 얼마 버티지 못할 것이다!!”
맹주 황보성의 바람과는 달리 독고현의 칼춤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잠시 호흡을 고른 그는 이미 다음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독고십삼검 이 초식 광풍진격(狂風進擊).
검을 움켜쥔 그의 신형이 폭풍처럼 회전하며 나아갔다.
휘리리리릭-!!!
초식의 이름처럼 마치 미친 바람이 휘몰아치는 듯했다.
그가 지나가는 자리로는 어김없이 붉은 액체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큭!”
“카악!”
“컥!”
무림맹의 무사들이 내지르는 단말마가 끊이질 않고 메아리쳤다.
또다시 수십 명을 쓰러트린 그는 자세를 낮추며, 검을 어깨 뒤로 잡아당겼다.
“수어난무(水魚亂舞).”
독고십삼검의 삼 초식이었다.
그의 검 끝이 엄청난 속도로 허공을 난자하자, 백여 개의 빛살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모습이 흡사 먹잇감을 향해 흩어지는 물고기 떼와 비슷해 보였다.
콰쾅-!! 콰콰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또다시 삼십여 명의 무사들이 쓰러졌다.
그야말로 극한의 살상력을 지닌 검법이 아닐 수가 없었다.
단 세 번의 초식을 펼친 것에 불과하거늘, 벌써 포위망에 큰 구멍이 생겨 버릴 정도였다.
독고현은 생각할 것도 없이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를 가로막는 무림맹의 무사들은 어김없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써컥-! 푸욱-! 촤아악-!! 써컹-!!
순식간에 피를 뒤집어쓴 그의 모습은 공포스러울 정도였다.
정파의 원로들은 그 모습에 혀를 차며 뒤쫓았다.
“괴물 같은 놈…….”
“저건 사람이 아니라 악귀로구나.”
“동시에 덮칩시다.”
천라지망의 균열이 생기는 곳으로 무림맹의 고수들이 집중적으로 보강되기 시작했다.
독고현의 등 뒤로도 절대고수들이 따라붙고 있었다.
위태로운 상황이었지만, 지금까지와 달리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가 포위되지 않도록 유연풍의 방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어딜!!”
장창의 긴 사정거리는 그 누구도 독고현의 후미로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휘리릭-! 휘리리릭-!!
창끝이 만들어내는 강풍에는 매서운 강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무림맹의 절대고수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유연풍의 창술이 아니었다.
“어서 비키거라, 이놈!”
“음양쌍괴를 믿고 날뛴다고 우리가 봐줄 줄 아느냐!”
“이런 싸가지 없는 녀석!”
그러나 말과는 달리 그들은 유연풍을 공격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그가 잘못될 경우에 발생할 후환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지켜만 보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독고현을 잡으려면 포위밖에는 방법이 없었으니까.
급기야 무림맹주가 원로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
“저 아이는 내가 잡을 테니, 잠시 비켜주시오.”
바람처럼 나타난 그는 쥐고 있던 검을 앞으로 날려 보냈다.
휘리리릭-!!
곡선을 그리며 날아드는 검은 맹주의 내공을 가득 머금고 있었다.
유연풍의 얼굴에 처음으로 긴장감이 서렸다.
‘어검술(御劍術)?’
아버지가 펼치는 것을 몇 번 보았기에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어검술이 얼마나 무서운 기술인지도.
어지간한 힘으로는 쉽게 쳐낼 수가 없을 터.
유연풍이 움켜쥔 창의 날이 강기를 머금으며, 더욱 환하게 빛났다.
콰앙-!!
다가오는 검을 힘껏 쳐냈으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역시나 맹주의 검은 허공에서 다시 머리를 틀며 재차 돌진해 왔다.
쐐에에에엑-!!
한눈에 보아도 조금 전과는 어검술의 위력이 달라져 있었다.
두 배 이상 빨라진 속도와 묵직함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러나 궤도로 보면 자신을 죽이려는 목적이 아닌 듯했다.
‘창을 자르려는 건가?’
맹주의 노림수가 분명했지만, 피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미간을 좁힌 유연풍은 창에 내공을 끌어모아 강도를 강화했다.
이어서 비행하는 검을 정신없이 쳐내기 시작했다.
카앙-! 카캉-!! 카카캉-!!
맹주가 날려 보낸 검을 한 번씩 쳐낼 때마다, 손목이 떨어져 나갈 것처럼 욱신거렸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검술의 속도를 따라잡기가 어려워졌다.
그렇게 십여 합이 더 지났을 때였다.
써컹-!!
기어코 창대가 두 동강이 나버린 것이다.
그러나 놀라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반으로 잘린 창대 사이로 손 하나가 섬전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꾸욱-!
맹주에게 목을 붙잡힌 유연풍은 더는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엄청난 힘이 전신의 기운을 옭아맸기 때문이었다.
자신과는 차원이 다른 고수였다.
“크윽!”
“여기까지다, 꼬마야. 죽이기 전에 얌전히 있거라.”
유연풍은 힘겹게 눈동자를 돌려 독고현의 등 뒤를 응시했다.
이미 그와의 거리는 한참이나 벌어진 상태였다.
무림맹의 고수들이 포위를 시작하고 있음에도 도와줄 수가 없다니.
너무나도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비, 비겁한 자식들…….”
맹주 황보성은 유연풍의 도발을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단지 뒤에서 대기하던 두 명의 노인에게 눈짓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장로님들께서 잠시 이 녀석 좀 붙잡아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맹주님. 어서 저 악귀 같은 놈이나 처단해 주십시오.”
무림맹의 장로 두 명이 유연풍의 양쪽 어깨를 좌우에서 틀어쥐었다.
그 사이 맹주는 독고현을 향한 포위에 가세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 이거 놔!!”
“어린 녀석이 예의를 모르니, 오늘 혼 좀 나봐야겠구나.”
두 명의 장로가 발끝으로 유연풍의 무릎 뒤를 걷어찼다.
콰직-!!
“크윽!!”
그를 무릎 꿇린 두 노인은 각기 한 손으로 유연풍의 어깨를 찍어눌렀다.
움직일 수 없도록 완벽히 제압한 것이다.
“잘 봐두거라. 주제를 모르고 함부로 날뛴 자의 최후를…….”
유연풍의 두 눈에 핏대가 곤두섰다.
수많은 고수에게 둘러싸인 독고현의 모습엔 비장함이 가득했다.
크고 작은 상처들은 셀 수도 없었으며, 얼굴의 한쪽은 피로 덮인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지지 않겠다는 듯, 묵묵히 검만 휘둘러 대고 있었다.
저 상태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확실한 건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정파의 수법이 어찌 이렇게 잔혹한 겁니까! 모두 부끄럽지도 않으세요!?”
유연풍이 악을 써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돌아오는 것은 코웃음뿐이었다.
“수법이 잔혹하다고? 네가 뭘 안다고 떠드느냐.”
“그런 거라면 무림의 역사에서 음양쌍괴를 따를 자들이 없었지.”
그들의 말이 끝나는 순간, 거센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아앙-!!
무림맹주의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지치고 상처 입은 독고현으로선 그의 공격을 온전히 받아 낼 수가 없었다.
“크윽!”
주르륵 미끄러지고 있는 그의 뒤에서도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기회를 노리고 있던 그는 화산파의 제일 고수라 알려진 소천이였다.
촤아아악-!!
독고현의 왼쪽 다리에서 핏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아파할 틈 따위는 조금도 없었다.
이를 악다문 그는 전광석화처럼 반격을 이어갔다.
어지러이 움직이는 검 끝이 매화를 찢어발기며, 소천의 왼쪽 복부를 꿰뚫었다.
푸욱-!!
“컥!”
독고십삼검이 화산파가 자랑하는 매화검법을 제압한 것이다.
비록 급소를 찌르는 것까진 실패했지만, 아무려면 어떠한가.
그는 소천의 복부에 꽂아 넣은 검날을 비틀기 위해 손목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분명 뭔가가 이상했다.
적지 않은 내공을 사용했음에도 검이 꿈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하신공인가?’
자하신공(紫霞神功)은 화산파의 비전 무공이며, 사용 즉시 일시적으로 큰 힘을 발휘한다.
소천의 전신이 자줏빛으로 휩싸인 것으로 보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독고현은 하는 수 없이 검에서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맹주 황보성의 공격이 이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앙-!!
기습적인 황보성의 공격은 피해냈으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손아귀에 검이 없으니 독고십삼검을 펼칠 수도 없었다.
다급히 주변을 찾아보았으나, 빼앗을 만한 무기가 보이지 않았다.
설상가상 무기를 구할 수 없도록 무림맹의 원로들이 더 필사적으로 막아섰다.
“검을 뺏기지 않도록 주의하라!!”
“모두 뒤로 물러서!!!”
무공이 어중간한 무림맹의 무사들은 멀찍이 뒤로 빠져버렸다.
오직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절대강자들만이 주변으로 다가서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순순히 죽어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독고현은 손바닥으로 눈썹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닦아내었다.
“안 덤비고, 뭣들 하는 거야. 무기도 없는 상대에게 겁먹은 건 아니겠지?”
시선을 주고받은 무림맹의 원로고수들이 동시에 쏘아져 나갔다.
독고현도 그들 중 한 명을 택해 마주 뛰쳐나갔다.
하지만 무기조차 없는 상태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겠는가.
콰앙-! 쾅-!! 촤악-! 콰콰쾅-!! 촤아악-!!
죽기 살기로 맞서 보았지만, 어림도 없었다.
계속해서 늘어만 가는 상처들.
그리고 조금씩 무기력해지는 방어는 그의 생명이 경각에 달렸음을 의미했다.
마지막 공격은 맹주 황보성의 일격이었다.
유백색의 강기를 머금은 그의 왼손이 독고현의 단전을 강타했다.
쩌어어엉-!!!
지금의 황보성을 무림맹주로 만들어준 운룡신장(雲龍神掌)이었다.
결국, 독고현도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고야 말았다.
어깨를 힘없이 축 늘어트린 채, 무릎을 꿇어앉은 모습이었다.
잠시간의 정적이 흐른 뒤. 그의 입에서 쇳소리가 담긴 깊은숨이 운무처럼 토해져 나왔다.
“하아…….”
시야가 흐릿해지고 있었다.
힘겹게 움직이던 그의 고개가 이윽고 한 곳에 고정되었다.
그곳에서 한 소년이 양쪽 어깨를 붙잡힌 채 울부짖고 있었다.
“검, 검귀 아저씨!!”
유연풍을 바라보던 독고현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세상 모두가 적이지만, 내 편도 한 명 정도는 있군. 그렇게까지 덧없는 삶은 아니었던가?’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음괴가 만든 한량강호곡을 한 번 더 연주해 보고 싶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기회가 없었다.
조금 전 맹주에게 당한 운룡신장의 기운이 이미 생명을 갉아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남은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지 무림맹의 원로들도 더는 공격해오지 않았다.
독고현은 유연풍에게 전음을 보냈다.
– 억울해할 것 없다. 내가 죽는 이유는 더 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 아저씨…….”
– 분하면 강해지거라. 세상 누구보다 더 강해지거라.
“끄……. 크흑.”
유난히 마음이 여린 소년은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서 독고현의 마지막 전음이 진동했다.
– 고맙구나. 나도 즐거운 추억 하나쯤은 가지고 갈 수 있게 해줘서…….
힘없이 주저앉은 독고현은 눈꺼풀이 천천히 닫혔다.
이제는 영원히 다시 눈을 뜨지 못할 터.
그의 최후를 지켜보던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죽어 가던 그의 두 눈이 갑자기 번쩍 떠지기 전까지는.
“……?”
갑자기 독고현의 두 눈에는 전에 없던 생기가 가득 들어찼다.
회광반조(廻光返照). 태양이지는 순간 아주 잠시간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밝아지는 현상이었다.
지금 독고현의 상태가 그러했다.
‘나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언정, 너희들의 손에 죽어 줄 마음은 추호도 없다.’
주저앉아 있던 그의 신형이 어딘가를 향해 빛의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타타탓-!!
어찌나 빠른지 포위망이 속수무책으로 돌파당했을 정도였다.
마지막 기력을 다해 달리는 독고현은 천 길의 낭떠러지가 있는 절벽을 향하고 있었다.
가까스로 도착한 그는 주저하지 않고 마지막 도약을 개시했다.
타앗-!
허공에서 양팔을 벌리고 누운 독고현은 지그시 하늘을 바라보았다.
최후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그저 약간의 아쉬움이 전부였을 뿐. 오히려 홀가분한 심정이었다.
“아니, 저놈이!?”
“잡아!!”
근처의 무림맹원들이 달려왔지만, 이미 독고현은 까마득한 아래로 추락하고 있었다.
힘없이 떨어져 내리던 그는 이내 급류에 휩쓸려 자취를 감춰버렸다.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