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rior Grandpa and Grandmaster Daughter RAW novel - Chapter 480
19화 독고십삼검 (1)
독고현과 유연풍은 철암산의 산길을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목적지는 정상 부근의 암자.
그곳에서 현 무림의 실세인 무림맹주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거의 다 온 것 같구나. 너는 이쯤에서 돌아가거라.”
“왜요? 무림맹주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한데, 얼굴만 보고 갈게요.”
독고현의 요청에도 유연풍은 고집을 부렸다.
이곳까지 쫓아와서 그냥 돌아가기에는 너무 아쉬웠기 때문이다.
“그분도 철암산의 입구까지만 배웅을 허락하셨을 텐데?”
유설이 했던 말을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이미 둘의 발걸음은 입구가 아니라 산의 중턱을 지나고 있었다.
“원래 저희 가문 사람들은 마음먹은 게 있으면, 꼭 해야만 직성이 풀립니다.”
“그 녀석 참. 대신 방금 그 말을 꼭 지켜야 한다.”
마지못해 수락한 독고현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유연풍은 얼굴이 금세 밝아졌다.
“그럼요! 당연히 대결이 시작되기 전에 떠나야죠. 그런데 맹주는 어떤 사람이에요? 강하겠죠?”
“오 년 전에 그를 직접 본 적이 한 번 있었다. 쉬운 상대는 아니야.”
“하지만 이길 자신이 있으신 거죠?”
독고현의 한쪽 입꼬리가 미세하게 치켜 올라갔다.
“자신이 없었으면 오늘 이곳에 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마세요. 제 작은아버지가 말씀하시길 능구렁이 같은 자라고 했어요.”
“작은아버지가 누군데?”
“패도문의 문주이십니다. 만나신 적 있으시죠?”
기억을 더듬어보던 그가 이내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기억이 나는구나. 그자는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는 사나이였다.”
“그래서 살려 주신 거예요?”
“그저 죽여야 할 이유가 없었던 거지.”
가는 곳마다 피의 안개를 몰고 다닌다고 하여, 홍연의 검귀라는 예명까지 붙여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소문과는 달리 냉혹한 살인귀는 절대 아닌 듯했다.
잠시 후, 유연풍이 정상을 향해 검지를 내뻗으며 말했다.
“검귀 아저씨, 저기 암자가 보입니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러나 독고현은 그곳이 아닌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암자는 보이고, 무림맹주는 안 보이느냐.”
“……?”
의식하고 나서야 유연풍의 눈에도 그의 모습이 잡히기 시작했다.
암자에서 좌측으로 십여 장이 떨어진 공터.
그곳에 봉황이 수놓아진 붉은 장포 차림의 중년인이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현 무림의 최강자 중 한 명이라 평가받는 맹주 황보성이 틀림없으리라.
“직접 보니 어때?”
“아저씨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중압감이 저 사람한테서도 느껴지네요. 정말 괜찮겠습니까?”
“부딪쳐봐야지, 뭐.”
독고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그때 정상에서 황보성의 무거운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검귀 독고현. 그동안 혼자서 그렇게나 무림을 들쑤시고 다니더니, 이제는 제자까지 대동하고 다니는 것인가?”
거리가 상당했지만, 바로 옆에서 들려온 것처럼 목소리가 웅장했다.
맹주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조차 안 갈 정도였다.
적대감이 서린 그의 목소리에 독고현의 기세도 차갑게 변했다.
“비록 내 제자는 아니다만, 네가 상관할 바도 아니지. 나 이외에는 신경 쓸 필요 없다.”
“아니. 무림공적과 연관된 자는 모두 죽는다.”
독고현의 한쪽 입꼬리가 슬쩍 치켜 올라갔다.
“무림공적? 웃기는군. 나를 그렇게 몰아간 것 또한 네 작품이잖은가.”
놀랍게도 무림맹주는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독고현을 비웃으며 도발을 이어갔다.
“모두 네가 자초한 일이다. 미쳐 날뛰는 망아지는 호되게 당해봐야 정신을 차리거든.”
더 이상의 말다툼은 무의미할 터.
왼손으로 검집을 움켜쥔 독고현이 유연풍을 향해 눈짓을 보냈다.
“이제 너는 돌아가거라.”
당사자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 채로 대결을 관전하는 것은 결례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유연풍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음번에 만날 때는 독고십삼검의 위력을 꼭 보여 주셔야 합니다.”
“그래, 약속하마.”
“꼭 이기세요, 검귀 아저씨.”
독고현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무릎을 슬쩍 굽혔다.
그리고 한 호흡이 더 지난 뒤.
그의 신형이 용수철처럼 솟구쳐 오르며 무림맹주를 향해 돌진했다.
타앗-!!
곧이어 왼손에 붙들린 그의 검이 검집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차앙-!!
격돌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지만, 유연풍은 이미 등을 돌려 하산하고 있었다.
‘궁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뭐.’
걸음을 옮긴 지 오래되지 않아 뒤쪽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콰앙-!! 콰쾅-!! 콰콰쾅-!!!
산 전체가 흔들리며, 곳곳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있었다.
조카와 싸울 때보다 훨씬 격렬했음에도 잠잠해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둘의 실력 차이가 크지 않기 때문이리라.
‘검귀 아저씨가 부상만 없었으면 확실히 이길 수 있었겠지? 아쉽다.’
안타깝지만 어쩌겠는가. 조카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런두런 생각에 잠긴 채로 하산하고 있을 때였다.
산의 초입에 가까워지고 있던 찰나.
돌연 그의 발걸음이 ‘뚝’ 정지하고야 말았다.
“……?”
맞은편에서 무수히 많은 인기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느껴지는 기세가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뭐지? 갑자기 이 많은 사람이 어디에서 올라오는 거야?’
영문을 알지 못한 유연풍은 나무 뒤에 숨어서 사태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이어 듣게 된 그들의 외침에 황당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오늘이야말로 무림공적 독고현을 반드시 처단해야 한다!”
“쥐새끼 하나 빠져나갈 수 없도록 천라지망을 유지하라!!”
천라지망(天羅地網).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다는 그물 같은 포위망이었다.
어이없게도 무림맹에서 독고현을 대상으로 함정을 파놓았던 모양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결심을 굳힌 유연풍이 모습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시는 겁니까!”
난데없는 유연풍의 고함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잠시 후 무림맹의 원로로 보이는 자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노부는 공동파의 태을진인이라 하네. 자네는 누구고, 어찌하여 그쪽에서 내려오는 겐가.”
“그게 중요합니까? 지금 저 위에서 무림맹주와 검귀 아저씨가 승부를 겨루고 있습니다. 그 틈을 이용해 비겁하게 기습하는 것은 도의가 아니지 않습니까!”
“도의라. 수많은 악행을 저질러 온 악인 앞에서 무슨 도의를 따진다는 말인가.”
“그분은 그런 사람이 아니…….”
유연풍은 독고현에 대하여 변론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누군가가 앞으로 나서며 고함을 질렀다.
“바로 저 새끼입니다! 저 사악한 놈의 뱀 같은 혀를 조심하십시오!!”
꾀죄죄한 얼굴에 거적때기를 걸친 낯익은 인물.
철암산의 입구 근처에서 주먹밥을 받아 갔던 거지였다.
아마도 독고현이 철암산으로 오는 것을 감시하던 자들 중 하나였던 모양이었다.
유연풍은 기가 막힌 나머지 할 말을 잃고야 말았다.
그때 자신을 태을진인이라 소개했던 자가 검지를 내뻗으며 외쳤다.
“저 녀석도 무림공적과 한패다! 잡아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수백여 명의 무림인이 썰물처럼 달려들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아니, 뭐 이런…….”
황당함이 끝이 없었다.
유연풍은 생각할 것도 없이 가장 앞서서 달려오는 자의 앞가슴을 걷어찼다.
콰직-!!
“크윽!”
이윽고 그의 양손이 교차하며, 좌우에서 다가오는 자들을 동시에 후려쳤다.
콰쾅-!!
“크악!”
“컥!”
순식간에 세 명을 쓰러트렸지만, 밀려드는 적들의 숫자에 비교하면 빙산의 일각도 되지 않는다.
설상가상 그 수는 계속해서 불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포위망이 겹겹이 구축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산의 반대편에서도 적들이 쫙 깔려 있을 터.
‘검귀 아저씨한테 먼저 이 사실을 알려야겠다.’
결심을 굳히고 있을 찰나. 날카로운 창끝 하나가 인후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유연풍은 상체를 비틀어 공격을 흘려보내는 한편, 왼손으로 창날을 움켜쥐었다.
터업-!
이윽고 그의 오른손이 상대의 복부에 쑤셔박혔다.
터엉-!!
“크헉!”
창 한 자루를 빼앗은 유연풍은 철암산의 정상을 향해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타타탓-!!
무리해서 쫓아오는 자들은 없었다.
이미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무림맹은 포위망을 강화하며, 정상을 향해 천천히 좁혀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움직임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정신없이 달리던 유연풍은 급한 마음에 고함부터 내질렀다.
“함정입니다!! 어서 피하세요!!”
이 정도의 외침이라면 독고현이 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기대가 무너지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먼 곳으로 보이는 정상 부근의 암자.
이미 독고현은 무림맹의 절대고수들에게 포위당한 모습이었다.
역시나 다른 방향에서도 고수들이 올라온 모양이었다.
‘이럴 수가…….’
독고현은 혼자서 무려 다섯 명을 상대로 버티고 있었다.
자신의 기준에선 한 명 한 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해 보이는 자들이었다.
카캉-! 캉-!! 카카카캉-!!
오 대 일의 싸움이었음에도 그는 성난 사자처럼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크고 작은 상처들로 인해 그리 오래 버티진 못할 터.
이를 악다문 유연풍은 그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허공을 가로지르던 그는 창과 하나가 된 채 몸을 가로로 세웠다.
촉수백팔타(觸鬚百八打). 음괴가 창안해낸 기술로, 현재 유연풍이 구사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초식이기도 했다.
백여덟 개로 갈라진 창끝이 촉수처럼 독고현의 주변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콰쾅-! 콰콰콰쾅-!!
갑작스러운 유연풍의 난입은 포위하던 자들의 정신을 잠시나마 분산시켰다.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된 독고현이 거친 호흡을 내쉬며 물었다.
“먼저 내려가기로 약조했잖으냐.”
“그러기엔 이미 입구가 다 막혔다고요.”
“저들이 노리는 건 나뿐이니, 너는 이곳에서 죽을 필요 없다.”
“하지만…….”
주변을 포위한 고수들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터.
정상적으로는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방법이 조금도 없었다.
독고현은 재차 공격해오려는 무림맹의 고수들에게 다급히 말했다.
“이 소년은 나와 관련이 없으니, 그냥 보내줘.”
그의 정면에 있던 무림맹주 황보성이 코웃음을 치며 대꾸했다.
“그 말을 지금 우리보고 믿으란 건가?”
“음양쌍괴의 후계자다.”
“……?”
그 순간, 황보성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단번에 증발해 버렸다.
다른 고수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어디서 그런 구차한 거짓말을……”
“거짓말? 조금 전의 창술은 유가장만이 가능한 초식인 것을 잘 알 텐데?”
음양쌍괴의 이름만 들어도 발작하는 무림맹이 아니던가.
그때 개방의 고수로 보이는 인물이 황보성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사실인 듯합니다. 음양쌍괴가 비록 금분세수를 마치고 은퇴한 자들이지만, 후계자를 죽이면 가만 있지 않을 겁니다.”
황보성은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들만큼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은 하나뿐.
그는 검 끝으로 유연풍을 겨누며 나직이 말했다.
“네가 왜 무림공적의 편을 드는지는 모르겠다만, 이대로 돌아간다면 보내주겠다.”
“저는 그렇게 의리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보다 못한 독고현도 어서 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어서 가거라! 너는 나랑 아무 관계도 없잖느냐.”
“관계가 없다니, 너무 하십니다.”
“……?”
“……친구잖아요.”
그 순간 독고현의 얼굴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익숙하지 않은 어색한 단어에 묘한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귓가로 유연풍의 전음이 들려왔다.
– 이자들은 저를 해칠 수 없습니다. 제가 뒤에서 받쳐줄 테니, 어서 도망치세요.
하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상황이 아니었다.
독고현도 잘 알고 있었다. 면죄부를 받은 유연풍이 돕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이미 수천 명의 무림인이 철암산을 수십 겹으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나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두 눈이 지그시 가라앉은 그는 사선으로 내리깔고 있던 검을 비틀어 쥐었다.
“독고십삼검의 위력이 궁금하다고 했지? 잘 봐둬. 지금부터 똑똑히 보여줄 테니까.”
외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