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95
95화
아주 자그마한 불씨에도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처럼.
부작용 기사 하나로 지금까지 쌓아 온 이미지가 흔들리고 있었다.
“혹시 내가 산 제품이 불량품이면 어떡해? 우리 아기한테 쓸 수도 있는데.”
“돈 주고 산 제품인데 뽑기를 해야 하는 게 맞는 건가요?”
마음속 불신이 싹트기 시작한 사람들의 목소리는 차츰 커져 갔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고무적인 사실은 대한제약 내부의 분열 사태는 차츰 진정세라는 점이었다.
“그래, 우리가 믿고 선택한 파트너인데.”
수겸이 참석한 회의에서 버럭 화를 냈던 생산팀 팀장 역시 마음이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혹시나 누군가 일부러 그런 짓을 했다면 어느 지점에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요?”
이찬수가 모두에게 질문을 했다.
“원재료 1차 배합부터 소포장 직전 단계까지는 전부 자동화 설비를 이용하기 때문에 사람이 접근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오히려 누군가가 접근을 한다면 그게 더 눈에 띄었을 겁니다.”
생산팀의 발언이었다.
“잠깐만요. 그렇다고 해도 현장에 감독 역할로 한 사람은 남아 있지 않나요?”
“말씀드린 것과 같이 생산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계 설비 관리 차원에서 사람이 있을 뿐이죠.”
“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번 체크해 보시죠. 그리고 물류 쪽은 어떻습니까?”
“저희는 사실 일단 창고에서 나가면 배송 기사가 온전히 책임지는 형태라 감시가 어렵긴 합니다. 다만, GPS로 위치 추적이 되기도 하고 완전 밀봉 상태로 포장이 되는지라 틈이 없긴 합니다.”
“그래도 이번에 문제가 된 제품들의 구매처를 중심으로 배송 시 특이 사항이 있었는지 확인해 주세요.”
이찬수는 이제야 뭔가 제대로 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 * *
모든 인력이 동원되고, 당연히 퇴근 시간 따위 고려되지 않는 상황이기 때문에 모든 걸 확인 하는 데에는 하루의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 결과.
“여기 좀 봐주세요.”
이찬수가 어젯밤 찾은 결과물을 모두에게 보여 주었다.
제조도, 배송도 아니었다.
이찬수가 보여 준 CCTV 영상 속에서 한 남자가 약국에 상품 진열을 하고 있었다.
애초에 제약사 영업 직원은 담당 약국의 직원처럼 일을 하는 존재.
발주한 물건만 딱 가져다주는 것에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상품 진열까지 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주변을 한 번 살펴보다가 이내 작은 주삿바늘을 꺼내는 장면이었다.
“여기. 그리고 여기.”
이찬수는 미리 준비한 시간대를 찍어 가며 현장 영상을 보여 주었다.
“이거 완전 개X끼네. 이거 누구예요?”
모두가 같은 목소리로 영상 속 인물들을 욕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저희 직원이었기 때문에 신상 정보는 알고 있습니다만, 현재 소재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에서도 저희 쪽 신고 내용을 확인 후 추적 중입니다.”
이찬수가 침전된 모습으로 말했다.
“그 사람 혼자 한 일입니까? 부작용 발생 지역이 꽤 다양했던 것 같은데.”
수겸이 질문했다.
“맞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CCTV 영상 기준으로 공범은 최소 셋입니다. 마찬가지로 모두 연락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당연히 연락이 안 되겠지요. 본인이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테니까요. 그런데 셋이나 가담했다는 건… 집단이 있다는 건데.”
수겸의 말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세 사람을 묶은 배후가 있다는 말씀이시지요?”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한 번에 일망타진이 가능할까요?”
최하나가 끼어들어 본인의 생각을 말했다.
“아마도 힘들겠죠.”
수겸은 어제 만난일성제약의 조상호의 낯짝을 떠올렸다.
* * *
‘아마도 일성의 이름을 듣기는 힘들겠지.’
수겸은 차에서 내린 후 다급하게 걸으면서 생각했다.
지금 수겸이 있는 곳은 종로 경찰서.
“한 3일쯤 걸렸나?”
“아마도 그럴걸. 대한제약에서 신원 특정해서 넘기고 3일이니까 그렇게 빠른 건 아닌 것 같아.”
수겸은 불만이 섞인 목소리로 민환에게 말했다.
“그래도 찾은 게 어디냐.”
“야, 명색이 경찰인데 그것도 못 하면 접시 물에 코 박고 죽어야지.”
“여기 경찰서 안이야. 제발 좀 조용히 말해 줄래? 아니면 닥치든가.”
민환이 혹시나 누가 들었을까 봐 주위를 살폈다.
찾아오라던 2층 강력계에 찾아가자, 형사 하나가 곧바로 수겸을 알아보고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충희입니다.”
“예. 강수겸입니다.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최민환입니다.”
어차피 계속 볼 사이도 아니니 인사를 길게 할 것도 없었다.
“근데 왜 부르신 겁니까? 그놈들이 사용한 약물 확인 때문이라면 제약사에서 더 잘 알 텐데요. 국과수에 의뢰는 당연히 하실 테고. 아, 심문 과정에 참여하게 되는 건가요?”
수겸은 악수를 한 손을 놓자마자 목적을 물었다.
“네? 아, 이야기 전달이 다 안 된 모양입니다. 그 사람 죽었습니다.”
“예?”
“예?”
수겸과 민환은 누가 친구 아니라고 할까 봐 이구동성으로 반문했다.
“사망한 상태, 정확하게 말씀드리면 저희가 용의자 소재 파악을 하고 찾았을 때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사유는 자살로 추정됩니다.”
‘이렇게까지 한다고? 이건 스토리가 자살을 한 게 아니고, 자살을 당했다고 봐야 맞는데.’
수겸의 뇌리에 스쳐 지난 건 일성제약.
가장 유력한 후보이며, 이 일을 일으킬 동기가 분명한 집단이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선을 넘는 건 말이 안 되는데?’
아무리 밀려도 국내 2위였다.
근데 사람을 죽여 가면서 해 봐야 추후에 발목이 잡힐 것이 분명했다.
‘근데 왜 나를?’
“저희가 수겸 씨를 부른 것은 유서 때문입니다.”
의문을 풀어 준 건 박형사였다.
“유서요?”
“예. 자살한 사람 중 한 명이 유서를 남겼더군요.”
“그걸 왜 제게? 저한테 엎드려 사죄라도 한다고 합니까?”
“아, 저도 그런 내용이면 좋았겠지만 그쪽이랑은 전혀 다른 내용입니다. 제가 설명을 더 드릴 바엔 직접 보시는 것이 낫겠네요. 사본이긴 한데 이걸 한 번 보시죠.”
박 형사가 클리어 파일에 종이를 끼운 채로 수겸에게 전했다.
“크흡.”
수겸이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종이를 파일에서 꺼내 읽기 시작했다.
[우리는 연금술에 반대한다.] [연금술은 악의 축이다. 창조의 권능은 오로지 신께서만 가지고 계시며, 이를 흉내 낸 연금술은 인류를 타락시키고자 하는 악마의 농간이다. 우리는 인류를 구원하고자 한다.]“수겸아.”
옆에서 함께 글을 읽던 민환이 수겸을 쳐다봤다.
“일단 다 읽어 보자.”
수겸은 민환의 시선을 의식했지만, 여전히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끝에서부터 썩기 시작한 살이 손목으로, 팔꿈치로 종래엔 어깨까지 잡아먹는 것처럼 연금술은 조금씩 인류를 오염시킬 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미 썩어 버린 손을 도려내는 방법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연금술은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규명하며, 연금술에 물들어 버린 이들 역시 같은 존재이다.연금술에 미혹당한 자, 연금술로 파멸을 맞이할 것이다.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수겸은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다 읽으셨습니까?”
“예.”
“저희는 모종의 집단이 유서에 적힌 일종의 신념 때문에 이번 연금술 제품에 대한 테러를 감행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아무리 유서가 있다지만 너무 극단적인 내용 아닙니까.”
수겸이 의문을 제기했다.
“일단은 필체 조사는 마쳤고, 그간 행적을 조사해 보니 꽤 오랫동안 준비를 한 것 같습니다. 유서에 적힌 내용과 행적이 일치하기 때문에 추론이 어느 정도 타당하다는 결론입니다.”
‘만약 그게 맞다고 하면 앞으로도 계속 무슨 짓을 하겠다는 뜻인데. 무슨 수를 써서 막아야 하는 거지.’
수겸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아직은 실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이었다.
지금 눈앞에서 확인한 건 세 명의 자살한 사람과 유서뿐.
수겸은 막막한 심정을 잠시 접어 두고 박 형사를 쳐다봤다.
“음… 혹시나 여쭙습니다만, 이거 외부에 아직 안 나갔죠?”
수겸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당연하죠. 내부에서도 몇 명밖에 모르는 정보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죠?”
수겸의 눈빛이 흔들렸다.
* * *
어찌 됐든 범인을 찾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일이었다.
설령 범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고 하더라도.
“우선 공장은 다시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수겸을 찾아온 이찬수가 설명했다.
“다행이네요. 다시 판매량이 올라오겠습니까?”
아직 수겸은 경찰에서 본 유서는 밝히지 않은 상태.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시죠. 사려고 줄을 섰으니까요. 이제는 해외 수출을 대해 논의해야 하죠.”
“해외요?”
“예. 국내에서만 인기가 있게요? 절대 아니죠. 다만, 문제는 우리처럼 발 빠르게 연금술을 받아들인 나라가 없었던 것이죠.”
“이제는 달라졌나요?”
“미국, 영국이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사실 영국까지도 필요 없고, 미국에서 이미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점차 모든 나라에서 수겸 씨의 연금술에 대해 공론화시킬 겁니다.”
이찬수는 마치 자기 일인 것처럼 자랑스러워했다.
“이거 생산량이 문제겠는데요? 국내 보급도 힘든 마당에.”
“그래서 말입니다만.”
이찬수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하고자 하는 대화로 수겸을 이끌었다.
“예?”
“이제 이 건물은 추억 속에 두시고, 새로운 공장을 하나 만드는 게 어떻습니까? 큰 그림 한번 그려야죠.”
“마침 그 이야기를 전에 민환이랑 한 적이 있긴 해요.”
“아! 그러면 잘됐네요.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하시니 바로 진행할까요?”
이찬수가 주먹으로 손을 치며 신을 냈다.
“전부를 부탁하기는 그러니까 적당히 큰 부지만 좀 찾아 주세요. 비용은 전부 제가 마련할 테니까요.”
“저희가 준비해 드려야죠. 수겸 씨가 마련하다뇨. 저희 회장님께서도 수겸 씨가 필요로 하는 건 무엇이든지 구하라 하셨습니다.”
“괜찮습니다. 회장님껜 마음만 감사히 받겠다고 해 주시겠어요?”
“전혀 부담 가질 필요가 없으신데. 그러지 말고 다시 한 번만 생각을.”
“아닙니다. 그래도 구분 짓는 것이 피차 좋겠다는 생각이어서요. 그렇다고 제가 대한제약이랑 관계를 끊겠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하하.”
“흐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니 더는 권하지 않겠습니다만, 혹시 생각이 바뀌시면 말씀해 주세요.”
“네. 이번 기회에 꿈 한번 펼쳐 보려고요.”
“무슨?”
수겸의 생각을 알 리가 없는 이찬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 * *
한참을 뭉그적거리던 이찬수가 떠나고 수겸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었다.
‘그놈들을 어찌 해야 하지.’
수겸은 시도 때도 없이 빈틈만 나면 연금술에 반대하고, 없애 버리겠다던 정체불명의 단체에 대해 생각했다.
‘막말로 누군지만 알면 쥐도 새도 모르게 가서 처리할 수도 있을 텐데.’
수겸의 등에 순식간에 소름이 쫙 끼쳤다.
“내가 미쳤나. 무슨 생각을.”
제일 무서운 점은 그들을 죽이겠다고 생각한 것이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점이었다.
‘요새 너무 일이 많았나. 과몰입이 심각한데.’
세차게 고개를 내저은 수겸은 책 더미를 책상 위에 툭 올려 뒀다.
며칠 전 인터넷으로 구매한 책이었다.
『조형물 제작의 이론과 실제』
『금속 공예 기법의 모든 것』
‘일단은 빈집털이부터 막고 시작하자.’
수겸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책의 첫 장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