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39
제139화
34. 행차 (1)
“난공불락의 수호신을 두고 내가 왜 도망쳐? 뭐가 잘못되더라도 다 수습해 주시겠지. 안 그래, 윤수호 헌터?”
“…….”
온라인상에서 떠드는 그의 별명을 입에 올리자 윤수호가 딱딱하게 표정을 굳혔다.
‘오랜만에 보니까 좀 웃기네.’
하여간 이상한 데서 고장 나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남들이 보기엔 그냥 무표정이겠지만 내 눈엔 훤히 보였다. 윤수호 쟤 지금 완전히 얼빠졌다.
녀석에 대한 사감과는 별개로 방금 한 말은 진심이었다.
매번 안전 문제로 실랑이하느라 실감하지 못했지만, 능력만 보자면 윤수호보다 든든한 아군을 찾기도 어려웠다. 하늘의 별보다도 귀하다는 S급 방어계. 머리 굴리는 일도 곧잘 하는 데다 책임감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놈이고.
‘이렇게 생각하니 괜히 얄미워지는데.’
뭐, 윤수호가 나보다 잘난 게 하루 이틀이냐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젓자 윤수호가 볼을 씰룩였다. 그런 녀석의 가슴팍을 한 번 더 두드리곤 주먹을 떼어 냈다.
“내 책임은 내가 질 테니까 넌 네 일이나 잘해.”
작전에 대해선 더 당부하지 않아도 되겠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윤수호를 뒤로 하고, 해랑을 데리고 복사나무 위로 이동했다.
등 뒤에서 차태양과 도깨비가 키득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다. 하지만 나는 뒤 대신, 위를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 여전히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요괴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새 방패의 원리를 깨달았는지 무모하게 돌진하는 놈의 수가 크게 줄었다,
‘쓸데없이 머리만 좋아선.’
예상보다 이르긴 했지만, 그래도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타이밍이었다.
호숫가를 따라 간격을 두고 선 일행을 살폈다. 저 멀리 호수 반대편에 선 차태양이 손가락으로 둥글게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사로뫼도, 윤수호도 자기 자리에 잘 섰고. 좋아.
“자, 지금부터 몰이사냥 시작이다.”
휘이이-! 휘파람을 불자, 여태껏 우리의 머리 위를 지키던 방벽이 스르륵 녹아내렸다.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요괴들이 아래쪽을 두리번댔다. 그들은 이내 자신들을 가로막던 이상한 벽이 사라졌음을 깨달았다.
고민은 짧았다. 화구호 인근은 물론이요, 이 산 전체를 뒤덮은 혼나비가 그들에겐 진미나 다름없으니. 무리를 이룬 요괴들이 침을 줄줄 흘리며 달려들었다. 몇몇은 의심하는 듯, 무리에 섞이지 않았으나 말 그대로 몇몇일 뿐이었다.
“무섭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결계가 해제된 좁은 틈바구니로 마구 밀려드는 요괴들의 무리는 숫제 거대한 뱀처럼도 보였다.
– 큐!
한편, 나와 달리 해랑은 마냥 해맑았다. 덩치와 다르게 대범한 이 꼬마는 요괴고 뭐고 알 바 아니란 듯, 마력 화살을 우물거리기 바빴다.
천도 하나로는 모자랐는지 어린 고래는 쫄래쫄래 날 따라오면서 연신 입맛을 다셨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꾸 내 활과 옷자락을 씹어 대는 게 아닌가.
건량이라도 좀 줄까 싶다가도 생사부를 뜯어먹는 해랑의 모습이 눈앞에 스쳤다.
“배고픈 건지, 이갈이를 하는 건지. 그게 아님 그냥 다 입에 넣고 보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어찌나 끈질긴지 아무리 떼어 내도 조금만 빈틈을 보이면 해랑은 다시금 달려들었다.
‘중요한 순간에도 이러면 곤란한데.’
혹시나 싶은 마음에 마력으로 화살을 만들어 내밀었고, 다행히 효과가 있었다. 해랑은 눈을 반짝이며 단번에 관심을 옮겼다.
“그게 그렇게 마음에 들어?”
– 큣!
“얌전히 있어 준다면 몇 개든 줄 테니까. 제발, 제발 저승에서처럼 사람 심장 떨어지게 하지만 마. 알았지?”
하는 짓을 보면 말을 알아듣는 것 같긴 한데. 내가 너무 큰 걸 바란 걸까? 얌전히 있으란 말에 유독 노골적으로 딴청을 부리는 해랑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그렇고. 허, 저것들 좀 봐라.”
잠시 해랑과 실랑이를 하는 사이, 요괴들은 전열을 가다듬었다. 나름대로 열을 맞춘 것이 마구 산개하여 하강했던 처음과는 달랐다. 그리고 그 주범은.
캬아악!
가만 보니 낯익은 요괴 하나가 선두에서 지휘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까 정찰을 왔던 그놈 같았다. 호숫가 어느 변에 착지하면 좋을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녀석을 보며 혀를 찼다. 하나하나 놓고 봐도 귀찮은 놈들이 협력이라니.
“평소라면 기겁했겠지만…….”
인간의 모습을 한 놈은 없지만 누가 알아들을지 또 모르는 법이니 말을 줄였다. 말하지 않아도 저는 안다는 듯 짧게 운 해랑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무리를 이뤘으나, 요괴들은 쉽사리 착지할 곳을 정하지 못하고 공중에서 뱅뱅 맴돌았다. 복사나무와 천화강의 근원인 화구호에서 흐르는 상제의 기운 때문인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요괴 무리에게 매서운 경고가 떨어졌다.
“인화권(燐火拳)!”
시작은 호수 서편의 차태양이었다. 야무지게 쥔 주먹에서 푸른빛이 화르륵 일어났다. 이어진 춤 같기도, 품새 같기도 한 일련의 동작 끝에 불꽃이 용오름처럼 치솟았다.
검은 하늘을 올곧게 가르는 푸른 빛에 요괴 무리가 파드득 몸을 떨었다. 저것이 부정을 용서치 않는 파마의 불꽃임을 알아본 것이다. 상극이나 다름없는 힘을 피해 요괴들이 흩어졌다.
하지만 곧 그들은 쉽사리 물러날 수 없음을 깨달았다. 두 강자가 푸른 불꽃의 양쪽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멋모르고 제게 날아온 요괴들을 보며 사로뫼가 크게 울부짖었다. 그러자 바람도 없건만 복사꽃이 마구 휘날렸다. 몰아치는 화우(花雨) 사이 몸을 숨긴 맹수가 발톱을 세웠다.
“쇠하였다고 하나, 너희 같은 잔챙이에게 당할 성싶더냐!”
허공에 날카로운 발톱 자국이 새겨질 때마다 영문도 모르고 찢어 발겨진 요괴들이 꽃잎과 함께 우수수 추락했다. 언뜻언뜻 비치는 황색 눈동자가 전에 본 적 없이 매서웠다.
그의 반대편도 수라장이 되긴 마찬가지였다.
“기울어진 대지.”
양발을 단단히 디딜 수 있는 대지야말로 윤수호의 무대. 비로소 알맞은 무대를 찾은 그는 가벼운 발 구름조차도 지천을 흔드는 파동으로 만들었다. 당연하게 모두를 지탱하던 땅과 공기가 갈라지며 적들을 무저갱으로 이끌었다.
평소 과시하는 법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이 순간만큼은 가리는 것 없이 제 송곳니를 드러냈다.
형태는 달랐으나, 전달하고자 하는 바는 하나였다.
“절대 너희는 천산 땅을 밟을 수 없다.”
단호한 경고 앞에 요괴들은 기를 펴지 못했다. 생각을 뛰어넘은 위력에 나까지 놀랄 정도였으니까. 아마도 산중신곡 덕분이겠지. 이대로 내버려 두어도 여기 있는 요괴들을 모조리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작전을 따라야지.”
이제 요괴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뿐이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무리를 이끌고 호수 중앙에 높게 날아오른 지휘관 요괴와 눈이 마주쳤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건만 요괴들의 눈빛이 흉흉했다.
저놈들도 알 거다. 내가 저 셋에 비해 터무니없이 약하단 걸.
성벽 밖에서 이강토와 토벌 임무를 했을 때, 요괴들은 유독 내게만 달려들었다. 인간의 혼을 탐내면서도 귀신같이 누가 만만한 상대인지를 알아본 것이다.
“제게 화풀이라도 하고 싶은 거겠죠?”
그랬으면 위치 선정을 잘했어야지. 호숫가에서 덮쳐드는 위협을 피해, 호수 정중앙에 모인 요괴들을 보며 입꼬리를 비틀었다. 동시에 미리 당겨 두었던 시위를 놓았다.
[스킬 ‘인챈트(S)’가 활성화됩니다.– 1번 슬롯 : 변형 (잔여 횟수 4)
– 5번 슬롯 : 연쇄 (잔여 횟수 6)]
두 가지 속성이 부여된 화살이, 아니 부메랑이 가장자리의 요괴 여럿을 스치고 지나갔다. 같은 효과를 부여한 화살을 연이어 발사했다.
요괴들은 내가 무언가를 한다는 걸 알면서도 전열을 흐트러뜨리지 않았다.
호숫가엔 강적들이 지천, 그렇다고 여기 착지하기엔 상서로운 기운이 넘치는 나무가 있다. 그렇다고 달아났다간 언제 또 두터운 방벽이 생길지 모르니까.
‘타격감 없는 공격 같은 건 무시하고 버티는 게 낫다고 여기는 거겠지.’
아무리 내 일행들이 강하다고 해도, 하룻밤 내내 저렇게 힘을 분출할 수는 없었다. 요괴 무리는 이들의 기운이 빠지기만을 기다리는 듯했다. 어쩌면 원군을 기다리는 걸 수도 있고.
“그래, 마음껏 방심해라. 그게 족쇄가 될 테니까.”
이쯤 되면 내 등급에 감사했다. 적들의 방심으로 잡은 기회가 몇 번이란 말인가. 웃음을 흘리며 시동어를 내뱉었다.
“릴리즈.”
동시에 그간 그어진 부메랑의 궤적을 따라 마력의 실이 나타났다. 무리 바깥에 선 요괴들을 이은 실은 점점 안쪽으로 조여들었다.
나와 달리 탐색자의 눈이 없는 요괴들은 갑자기 가운데로 몰려 들어오는 아군을 보며 당혹을 금치 못했다. 그러든 말든 빈틈없이 몇 번이고 겹쳐 그은 포위망은 바깥에서 안으로, 묵묵히 치고 들어왔다.
뒤늦게 이상을 눈치챈 요괴들이 발버둥 쳤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다. 이건 물리적인 힘으로 끊을 수 있는 실이 아니었으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의 실로 둘러싸인 요괴 뭉치가 완성되었다.
“뭐, 그럭저럭 백업 역할은 되겠네.”
원래는 나 대신 이강토가 검격으로 요괴들을 한곳에 몰 예정이었다. 내 스킬이 요괴들을 완전히 묶을 수 있을지 나조차도 확신이 없었으니까.
내심 버티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인챈트’는 S급 스킬 값을 했다.
“이제 윤수호가…… 이런.”
다 됐다고 생각했건만, 몸집이 작은 요괴 몇몇이 촘촘한 봉쇄를 뚫고 비집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화살을 만들기도 전, 다른 이가 먼저 행동에 나섰다.
[‘축복고래 해랑’이 스킬, ‘누구게?’를 사용합니다.– 복제 대상 : 대양의 아스트로
※ 사용 시간에 비례하여 포만도가 소요됩니다. (현재 포만도 : 41%)]
작은 고래의 주변에서 물로 만든 듯한 무기들이 뻗어져 나왔다. 해안 동굴에서 보았던 그 스킬이었다. 그때 본 것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작은 요괴들을 상대하는 데는 충분했다.
놀란 내 표정을 보며 해랑이 의기양양하게 꼬리를 흔들었다.
– 큣!
더 칭찬해 달라는 듯 고래가 손에 얼굴을 비볐다.
“그래, 잘했어. 기특하네.”
– 큐우우!
끝없이 칭찬을 요구하는 어리광쟁이를 달래는 동안, 다음 타자인 윤수호가 제 할 일을 끝냈다. ‘연쇄’ 효과가 요괴들을 묶은 잠깐 사이를 놓치지 않고 윤수호는 정육면체 모양으로 방벽을 세웠다. ‘최후의 보루’를 응용해 사용한 것이다.
섬세한 제어가 어려운지 미간을 옅게 찌푸렸으나 결과물은 확실했다. 이제 차태양과 사로뫼가 합동하여 저놈들을 한 번에 날려 버리기만 하면 된다.
“이제 좀 편해지겠네.”
주문을 외우는 차태양을 보며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가 입을 다물었다. 헌터의 예감이 요란하게 경종을 울렸기 때문이다.
‘이놈의 입방정. 또 데드 플래그 꽂은 건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