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moved to the SSS-class production industry RAW novel - Chapter 18
제18화
05. 숨은 인어 찾기 (1)
“샬롯?”
“히히, 플레이어님 하는 거 따라해 봤어요. 어때요?”
샬롯이 마도식이 그려진 종이를 흔들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했다. 나름 괄목할 만한 성장이었다고 생각했거늘! 종이가 무더기로 쌓인 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내 속을 모르는 샬롯이 까르르 웃으며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나는 며칠 내내 서재에 틀어박힌 뒤에야 제대로 된 마도식을 그릴 수 있게 됐건만, 샬롯은 한 시간 만에 제법 그럴싸한 마도식을 그려냈다.
“스승님, 저 정말 재능 있는 거 맞아요?”
“뭐?”
“아무리 생각해도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아요.”
“하, 너 지금 내 안목을 의심하는 거냐?”
칼로스가 내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 악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마도식을 따라 그리는 것 정도야 누구나 가능한 일이야. 하지만 마나감응력, 특성의 갈래, 본질을 보는 눈. 이런 것들은 타고나야만 가질 수 있는 거지. 넌 그게 있고. 꼭 이렇게까지 말해야 알겠나?”
“그치만…….”
“스킬창이나 열어라.”
[npc ‘칼로스’가 스킬 열람을 요청합니다. 허락하시겠습니까?]얼떨결에 수락하자 칼로스가 지휘하듯 허공에 손짓했다.
‘뭘 하는 거지?’
탐색자의 눈을 발동시켰다. 스킬을 켜자마자 방 안 가득 뻗어진 마나회로에 눈이 돌아갔다. 키메라 알 따위와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방대한 회로였다.
“이게 세계탑 시스템의 구조…….”
아주 얇은 거미줄 같은 마나회로가 나로서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복잡한 방식으로 엮여 있었다. 이게 마나회로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칼로스는 평소와 다름없는 무심한 표정으로 회로를 비틀고 덧그렸다.
‘전에 만들어 준 미니 칼로스도 이걸 건드려서 만든 거구나.’
문득 그의 특성명이 떠올랐다. 세계관을 초월한 대장장이. 시스템까지도 자유자재로 다루는 장인에게 걸맞은 명칭이었다.
순식간에 조작을 끝낸 칼로스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확인해 봐라. 대단한 건 아니고 네 스킬을 조금 손 봤다. 이제 인챈트 성공률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하는 김에 동급 아이템을 제물로 바치면 장비 파괴를 막아 주는 기능도 추가했다.”
나에게 꼭 필요한 기능들이었다.
감동에 겨워 칼로스에게 달려들었다. 그는 싫은 티를 내면서도 나를 내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남의 장비를 터뜨리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저녁마다 칼로스를 붙들고 걱정을 토로한 보람이 있었다. 귓등으로도 안 듣는 것 같았는데 내심 신경 쓰고 있었구나.
“스승님은 세기의 천재예요! 천재!”
“후, 명심해라 가호. 스킬에 너무 의존하지 마. 이것도 원래는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자연스럽게 습득해야 하는 것들이야.”
“예?”
“모든 건 너 하기에 달렸단 거다. 시스템이 어떻게든 해 줄 거란 안일한 생각은 버려.”
생전 들어 본 적 없는 말에 눈을 껌벅였다.
이능과도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어 준 시스템에 의존하지 말라니.
“결국 스킬은 네 가능성을 끄집어낸 것에 불과해. 애초에 네 능력이란 거다. 시스템에 얽매일수록 딱 그만큼 밖에 하지 못하는 놈이 된다. 이 점을 잊지 마라.”
칼로스의 말을 전부 다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이 말의 진의를 알게 될 거라며 말한 칼로스가 바닥에 엎드린 채 마도식을 그리는 샬롯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와. 이론은 이만하면 됐다.”
“정말요?”
그리고 칼로스는 나를 공방에 가뒀다.
“스승님?”
“거기 있는 아이템들 다 분석하기 전엔 나올 생각도 마라.”
‘며칠 전에도 이 비슷한 말을 들었던 것 같은데…….’
칼로스는 책과 마도식 대신 아이템의 무덤에 나를 파묻었다.
***
낮과 밤도 구분가지 않는 공방에서 며칠이나 보냈을까.
헌터워치의 알림이 수련 생활의 종지부를 찍었다.
[- 발신인 : 최권영첫 번째로 탐색할 계층이 결정되었습니다.
파티원 결성 또한 완료되었으니 빠른 시일 내에 복귀 바랍니다.
-P.S. 윤수호 헌터가 안부 전해 달라더군요.]
드디어 시작된다는 생각에 들뜨는 한편, 정말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덜컥 불안해졌다. 죽상을 하고 공방에 앉아 있는데 머리 위로 툭, 커다란 손이 떨어졌다.
“갈 시간인가 보군.”
“예.”
“다녀와라.”
무뚝뚝하게 내뱉은 칼로스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휙 사라졌다.
다녀오라는 그 말이 뭐라고. 서툰 배웅에 어느새 걱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실실 웃음이 나왔다.
그래, 나는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스승님께 드릴 재료를 가지고서 말이다.
“다녀오겠습니다, 스승님.”
듣는 이 없는 인사를 남기고, 나는 33계층을 떠났다.
***
늘 그렇듯 오늘도 구 서울역사 안은 헌터들로 붐볐다.
평소 같았으면 제 할 일에 열중이었을 헌터들이 누군가를 힐끔거리기 바쁘단 것을 제외하면 익숙한 풍경이었다.
“늦었군.”
“뭐야?”
“마중.”
네가 왜 내 마중을 나오는데?
보기 드문 S급, 그중에서도 미디어 출현이 없다시피 한 윤수호의 등장에 주위가 술렁였다.
최권영이 남긴 추신이 떠올랐다. 윤수호 이 녀석, 그새 또 길드에 찾아갔구나.
일반인들보다 체격 좋은 사람이 많은 각성자들 사이에서도 머리 하나가 큰 윤수호는 여러모로 눈에 띄었다. 팔짱을 낀 채 오래된 역사 벽에 기댄 모습이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일단 나가자. 일행인 척하지 말고.”
“일행 맞지 않나.”
“아니야!”
빠른 걸음으로 역사를 벗어났다. 윤수호가 두세 발짝 뒤에서 나를 따라왔다.
“차 가져왔어. 저쪽에 세워 뒀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됐어. 너 혼자 가.”
“왜?”
“왜애? 나야말로 묻고 싶다. 넌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난린데?”
어려운 것을 물은 것도 아니건만 윤수호가 턱을 만지작거렸다.
‘저건 저 녀석이 고민할 때마다 나오는 습관인데.’
한참을 생각하다 내뱉은 말이 ‘위험하잖아.’ 다.
“난 대중교통 타고 갈 거니까 알아서 가시라고요.”
“대중교통? 불특정 다수와 접촉하는 게 얼마나 위험…….”
황야 헌터들은 죄다 안전 불감증이냐며 고집부리는 걸 보자니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말이 나갔다.
“야, 나도 헌터야, 헌터.”
“C급이지 않나.”
“놀랍게도 각성자 특별법에 의하면 C급 이상의 헌터는 일반인을 위협하기만 해도 처벌받을 수 있는 주의대상이란다.”
그게 뭐 어쨌냐는 듯 윤수호가 고개를 기울였다.
“오지랖 부리고 싶다면 내가 아니라 나랑 같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일반인을 걱정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겠니?”
헌터들 사이에선 어정쩡하단 소리를 듣고 다니지만 나도 각성자다. 일반인 서넛 정도는 식후운동거리란 말이다. 위험은 무슨…….
윤수호는 일자로 꾹 다문 입매만큼이나 완고했다. 내 능력이 아직 공표되지도 않았건만 그는 나를 납치예정자로 대했다.
“어, 저 사람 윤수호 아니야?”
언쟁이 길어지자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럼에도 윤수호는 꿈쩍하지 않았다.
수군거리며 핸드폰을 꺼내는 사람들이 보이자 마음이 급해졌다. 여기선 전략적으로 후퇴하는 수밖에.
“아, 알았어. 가자, 가자고!”
동물원의 원숭이가 되기 전에 마지못해 윤수호의 차에 타자, 먹색 세단이 부드럽게 출발했다.
이거 얼마쯤 하려나. 수당 받으면 나도 차나 살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승차감이 좋았다.
등받이에 깊게 몸을 묻다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얘는 어떻게 알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거지? 급하게 호출을 받고 나온 건데.
“내가 여기 올 거란 건 어떻게 알았어?”
“최권영이 알려 줬어.”
이 인간이! 길드원을 팔아넘겨?
손해가 되는 일은 절대 안 하는 최권영이다. 내 소재를 알려 주는 대신 뭔가를 뜯어냈을 가능성이 농후했다. 따져 봤자 덕분에 편안하게 오지 않았냐 뻔뻔하게 굴겠지.
나를 태운 것으로 목적을 달성해서일까, 윤수호는 묵묵히 운전기사 노릇을 했다. 간간이 제 근황을 늘어놓았을 뿐이다.
꾸벅꾸벅 졸다 보니 어느새 길드 건물에 도착했다.
“넌 왜 따라오는 건데?”
윤수호는 길드 건물 안까지 나를 따라왔다. 볼일이 있다나. 뭐 그거야 내가 알 바가 아니고. 최권영의 사무실 앞에서 시간을 확인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쯤은 괜찮겠지.
똑똑. 조심스레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기다렸다는 듯 최권영이 대답했다. 문을 열자 짙은 색의 원목 가구로 꾸며진 방이 보였다.
길드장의 책상 앞에는 서류에 파묻힌 황재희가 앉아있었고, 방의 주인인 최권영은 한껏 방만한 자세로 소파에 늘어져 있었다.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최권영이 우리를 사무실과 연결된 응접실로 안내했다. 안내받은 응접실에는 선객이 있었다. 아마 저 사람들이 최권영이 말한 파티원일 텐데.
익숙한 얼굴 둘에 낯선 얼굴이 하나였다.
‘한차현은 그렇다 치더라도…….’
“김 서방이다!”
“언니, 오랜만이에요.”
차태양이 붕붕 손을 흔들었다. 커피를 홀짝이던 한차현이 눈인사를 건네기에, 목례로 답하곤 빈자리에 앉았다.
“잠깐, 윤수호 너는 왜 내 옆에 앉는 거야?”
어느새 착석한 윤수호가 자연스럽게 태블릿을 확인했다.
‘설마…….’
최권영이 눈을 휘어 웃었다. 아닐 거야, 아니어야만 한다.
이어지는 최권영의 말에 나는 책상에 얼굴을 묻고 말았다.
“이걸로 전원이 모였군요. 당분간 함께하게 될 파티원들이니 모쪼록 사이좋게 지내시길.”